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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사람이 두려워해야할 것 세 가지 (시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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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설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마술사 한 사람이 쥐 한 마리를 보고 있는데 이 쥐가 얼마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쥐에게 마술을 걸어서 고양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변신한 고양이는 개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불쌍하게 느낀 마술사는 다시 한 번 마술을 사용해서 이 고양이를 개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가 된 고양이는 개가 되자마자 호랑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불쌍하게 여긴 나머지 또 한 번 마술을 부려서 개를 호랑이로 변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또 무서워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사냥군의 엽총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마술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언합니다.
  "내가 아무리 해보았자 이 두려움이 끝나지 않으므로 너는 별 수 없는 쥐새끼다.  다시 쥐로 돌아가라."
  그래서 다시 쥐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설화는 우리 인생들의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피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이야기일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현대인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삽니다.
  빨라지는 생활 속도, 일 중독 증세(일하지 않으면 불안함), 발달된 매스컴을 통한 불안의 전염, 증가되는 전쟁의 위협(핵무기, 화학무기, 테러), 환경적 불안(인구문제, 재난, 오염), 감소되는 공동체 의식(잦은 이사, 무너지는 대가족 제도, 우정의 상실), 인간관계에  있어 잃어가는 신뢰심(믿음) 등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에  싸여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폴레온 힐이라는 사람은 현대인에게  7가지 불안이나 공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가난에 대한 공포 입니다.
  둘째, 실패에 대한 불안 입니다.
  셋째, 질병에 대한 공포 입니다.
  넷째, 사랑을 잃을 것에 대한 공포 입니다.
  다섯째, 노후에 대한 불안 입니다.
  여섯째, 자유 상실에 대한 불안 입니다.
  일곱째, 죽음에 대한 공포 입니다.
  워드 워즈라는 사람은 “두려움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무려 1500회 이상 두려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사는 인생이기에 인생 행로에서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행로가 평탄한 대로를 걸어가는 때도 있지만 때로는 환난의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야 할 때가 있고, 무서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인생은 매일매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는 고난의 계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골짜기인 것입니다.
  인생이 산다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한문에서 '生'(산다)은 소우(牛)자 밑에 한일(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소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소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같이 위험하고 불안한 것이 인생 길입니다.
  산다 / 生(날생) - 牛(소우) 一(한일)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진정 두려워할 것은 가난이나 실패나 질병 등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본문에서 시인이 말한 것을 가지고 함께 생각해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람니다.
 
  1. 사망의 잠을 잘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자면 안 되는 잠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잠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망의 잠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문자적으로는 죽음의 잠입니다. 잠들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적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① 영적으로 게으르면 사망의 잠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만 자다가 예수를 부인하고 모두 떠나버리는 지경에 까지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살전 5:3절에 의하면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잉태된 여인은 언제나 해산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하면서 준비를 게을리 하고 있다면 어느 날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어 아이를 낳게 되는 것 같이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나태하고 게으른 것은 사망의 잠을 자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나태해지면 위기가 와도 위기의식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아 렘 49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공격당한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방에 사는 하솔 거민들에게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렘49:29) 고 경고하였습니다.
  “너희는 그 장막과 양 떼를 취하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약대를 빼앗아다가 소유를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그리고  빨리 도망하라고(30절) 명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솔 거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데 거하라 이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정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경고를 들은 그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마음이 아주 평안했습니다.(렘 49:31)
  렘 31절에 보면 “평안하고 염려 없이 거하는 백성”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평안하고 염려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준비하고 있는데도 평안하면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닙니다.
  눅 3:9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라고 했습니다. 열매 없음을 인해 찍어버리려고 도끼를 준비하고 있는데 염려 없고 평안하다면 그것은 사망의 잠에 빠진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남긴 모두 사람은 장사하여 배로 이익을 남겼습니다. 이익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상급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왔던 종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일도 없으니 평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무서운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게으른 것은 사망의 잠에 빠진 것이고 그것은 악한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안일하고 게으른 사망의 잠에 빠지 백성들에게 사 32:9-11절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여러분 혹시 우리 자신이 이 사망의 잠을 자려고 준비하고 있거나 졸음이 오는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깊은 잠에 빠져버린 상황은 아닌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2. 두 번째로 원수가 나를 이길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원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사단의 세력입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죄의 권세를 말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이기면 안 됩니다. 죄가 우리를 이기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사실은 이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언제 우리의 원수 마귀와 사단이 나를 이길까요? 즉 우리가 마귀의 세력에게 패배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① 내가 약해졌을 때입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어느 분에게 들은 기억이 납니다. 50cm 이상 되는 거대한 고기를 가는 줄로 낙아 올리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일단 큰 고기가 물리면 서서히 그 고기가 지쳐서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줄을 풀렀다 당겼다 해야 한답니다.
  억지로 끌어 올리려고 하다가는 필경 줄이 끊기거나 고기의 입이 찢어져서 잡은 고기도 놓치고 만다는것입니다.
  완전히 지쳐서 고기가 물위로 힘없이 떠오르면 그 그물망으로 떠서 올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의 죄라는 낚시 줄을 던져놓고 온갖 떡밥으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에 낚시에 걸려서 모든 믿음과 영력이 소진하기를 흉흉한 미소를 머금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 앞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강하면 결코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약해질 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세력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연약한 것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사랑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원수 앞에서 어째 그리 약한 모습들만 보이고 있습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신 31: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주셧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
  무엇 때문에 용기를 잃었습니까? 여러분을 그 깊은 좌절과 아픔과 낙심 속에 빠뜨린 것들이 무엇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여 당신을 무너 뜨리려고 하는 모든 원수의 세력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약해진 여러분 자신을 보고 마귀가 나를 이길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이 돕지 않으실 때 원수가 나를 이겨버립니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용기를 내고 힘을 낸다 할찌라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도움이 없이는 원수의 세력을 이겨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내게서 떠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도움이 계속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시 27:1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원수가 이기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우리는 어떤 대적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3. 내가 믿음이 흔들려 버릴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동하는 것은 흔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5:58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흔들리는 믿음은 바람에 날려 요동하는 겨와 같습니다. 
  믿음이 흔들려 버리면 상급이 없습니다.
  열심히 충성하고도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흔들려 버려서 지난날의 모든 수고와 땀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딤전 5:12절에 의하면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변함없이 꾸준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주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라고 했습니다. 처음 시작했으면 끝을 보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작은 좋은데 중간에 다 식어버리고 변질되고 도중하차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을 수 없을 뿐 만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 3:14절에 보면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첫 사랑이 식어진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첫 믿음이 없어진 것을 근심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도 지금 권태의 관성에 빠져 한 없이 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영적 게으름과 안일 무사의 사망의 잠에 빠져 있는지 돌아보아 야만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없이 약해져서 우리의 원수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두려워해야 합니다. 내가 약해질 때 원수는 나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식어지고 믿음이 약해진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첫사랑과 믿음이 뜨거웠을 때 우리는 강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하였습니다.
  그 믿음과 그 사랑이 식어진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이제 나태와 게으름의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고 약해진 마음과 심령을 강하게 하여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박 재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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