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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을 만한 이 시대의 선지자가 누구인가 (왕상 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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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 아합은 벤하닷이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지 않자 일전을 결심했습니다. 이때 유대 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말하기를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자고 제의했습니다.
여호사밧의 제의에 아합 왕은 즉시 선지자 400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고 했습니다. 이때 400명의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올라가서 싸우라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주께서 그 성을 아합 왕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유대 왕 여호사밧이 아합 왕에게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이르기를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에 대하여 길한 예언은 하지 않고 항상 흉한 예언만을 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처음부터 비판적인 인물은 배격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호사밧은 말하기를 왕은 그런 말을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왕 아합은 한 내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급히 오라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왕복을 갖추고 수도 사마리아 중앙 광장의 보좌에 앉았습니다. 그때 모든 선지자들 중 시드기야가 철뿔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왕이 이것으로 아람을 찔러 진멸하리라고 하였는데 모든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곧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그 성을 손에 붙혔다고 했습니다. 미가야를 부르러간 사자가 미가야 선지자에게 모든 선지자들 같이 흉하게 말하지 말고 길하다고 말할 것을 충고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는 사자의 말을 일축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참 선지자의 특색을 보여주는 진리인 줄 압니다. 이것은 곧 오늘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을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Ⅰ. 대세와 영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2장 13절에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왕의 심부름꾼은 말하자면 좋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는 잠시 잠깐의 영화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16절에 ?왕이 저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고 그의 순수한 예언을 사전에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를 보십시오. 17절에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과 모든 거짓 선지자들이 입에 거짓의 영을 넣어 화를 받게 하였다고 증거하였습니다(왕상 22장 19-23). 아합이 거짓의 영에 꾀임을 받아 죽음을 자초하고 거짓 선지자는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 왕에게 화받을 예언을 한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이때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왕상 22:24)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미가야는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왕상 22:25)고 다시 말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왕은 대노하여 그를 잡아 옥에 가두고 자기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2:26-27).
이 말을 들은 미가야는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올 수 있다고 하면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이다(왕상 22:28)라고 예언적 응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단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7절에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말하는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아합이 열왕기상 18장 17-18절에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는 온갖 것들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려져 있는 시대입니다. 그릇된 신학 사상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그러합니다. 특별히 대세주의 처세술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 없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 6장 14절에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현상을 탄식하기를 예레미야 5장 30-31절에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이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Ⅱ.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2장 14절에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사자의 청에 대해 적절히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계시해 주시는 대로 말하겠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이것은 미가야의 고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서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 말씀 속에 복과 저주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 말씀만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7)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장 25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8)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4절에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9)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1장 2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10)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보다 상위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Ⅲ.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므로 고난도 달게 받는 자입니다.

1) 왕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본문 22장 8절에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백성이 왕에게 미움을 받는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섭섭한 일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왕과 나라에 충절을 다한 백성이 미움을 당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 백성은 진정한 의의 임금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2) 동역자에게 뺨을 맞았습니다.
열왕기상 22장 24절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라고 했습니다.
어용 선지자들에게 참 선지자들이 뺨맞고 매를 맞는 일은 역사상에 자주 있는 일입니다. 대세주의에서 고립되는 아픔입니다. 이러한 아픔은 엘리야가 그러하였습니다. 역대의 진리의 교부들과 여러 시대의 지도자들이 그러했고 교회가 그러하였습니다.

3) 옥에 갇히는 고난이 왔습니다.
열왕기상 22장 26-27절에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입니다.
또한 장차 마태복음 10장 21-22절에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족적인 박해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상급입니다. 바로 이것이 경건하게 살았다고 하는 신앙의 흔적입니다. 이것이 예수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이 순교자의 길입니다. 이 길이 오늘 갈보리 사람들의 길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시 119:71).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했습니다(시 34:19).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벧전 3:14).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롬 8:17).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딤후 3: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마 5: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삼대 표지를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전파입니다. 둘째가 성례의 정당한 집행입니다. 셋째가 권징의 신실한 시행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나타나는 다른 표현들입니다.
학생 신앙운동 생활원리 중에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역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나타나는 다른 표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하나님 말씀으로 그 터를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그 기둥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그 지붕을 삼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시대의 양심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 국가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이 세상 교육 현장의 선구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세상 인간들의 삶 속에 깊숙이 관계하는 것만큼 인간들의 행복의 깊이를 더해 갑니다. 언제나 이 세상 교회는 세상역사의 구심점입니다.

오늘의 이 땅에 국가와 인생들이 이 세상 역사의 시작을 교회에 물어보아야 하고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도 교회가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 세상 역사나 인생들의 복잡한 여정에 대해 탁월한 대답을 한 것으로 교회적 사명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크게 착각한 것입니다. 탁월한 대답이 아니라 바르고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적 대답입니다. 교회는 이미 과거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를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여기가 서울이라고 하는데 지역적인 긍지를 가지면서 이 시대에 사람들의 하고많은 물음에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물을 만한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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