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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있는 것으로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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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덩이 인생에서 금강석 인생으로 변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이라는 칭송을 매스컴으로부터 들었던 조엘 소넨버그(Joel Sonnenberg)라는 미국 청년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조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맛살을 찌푸리며 수군거립니다.
"어머, 외계인 같다. 더러운 가면을 썼나봐, 밥맛 떨어져!".

1979년 9월 15일 생후 20개월 된 아이가 부모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고 있다가 40톤 트럭과 추돌하여 자동차는 금새 화염에 휩싸입니다. 불길에 달아오른 아이의 몸에 물을 끼얹으니 치익 소리를 내며 하얗게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숯덩이처럼 변한 아이를 보며 엄마는 오열합니다.
"얘야, 너 조엘 맞니?"
몸의 85%가 3도 화상을 입고 50여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손, 발가락, 코, 입술, 귀 모두 떨어져 나가 버렸습니다.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아이는 자지러질 듯 울어야 했습니다.

"아저씨,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 얘기를 들려주면
"엄마,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보다 내가 더 아픈 것 같아요."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퉁불퉁한 자기 피부를 만지며 "내 피부는 언제 엄마 피부처럼 될까요?" 묻습니다.
"조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엔 그렇게 살아야 할거야."
"그럼 언제 바뀌어요?"
"천국에 가면."
"그러면 나 천국 갔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가슴이 무너집니다.

이러한 아이가 감사와 꿈을 잃지 않고 자랐습니다. 손가락 발가락도 없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 및 농구 선수로 활약을 합니다. 청소년 시절엔 산악 자전거와 클레이 사격 선수로 이름을 날립니다. 드디어 테일러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전 세계인 앞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다닙니다.

사고 후 18년 만에 도주했던 트럭운전사가 체포돼 재판정에 출두했을 때 조엘은 가해자를 흔쾌히 용서합니다.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증오는 또 다른 고통을 낳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에 감싸여 살아갈 것입니다. 가해자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내 외모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세상도 기쁨으로 용서합니다." 조엘은 우리나라 매스컴 앞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본분을 정확히 깨달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많이 빼앗겼기에 많은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실패와 손실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잃는 것보다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오늘 나의 승리는 내가 대단해서도 아니고 내 가족이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대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내게 있는 것' 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 앞에 자랑할만한 것도 못 되는 소유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은 돈 한 푼 갖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없는 것' 을 생각하며 의기소침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내게 있는 것' 을 돌아 볼 줄 아는 적극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에게 줍니다. 이게 나의 전부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당신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병이 낫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사랑의 시선입니다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브릿드웰 중령은 국방부 건물 복도로 걸어가다가 테러범의 비행기 자폭으로 중상을 당하였습니다. 의사들이 도착했을 때 브릿드웰 중령은 전신의 40%가 불에 탄 3도 화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 대통령 영부인 로라 부시가 브릿드웰 중령을 방문하여 부인인 멜을 포옹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누군가가 브릿드웰 중령 부부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부시 대통령이 병실로 걸어 들어 왔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거수 경례를 했습니다. 브릿드웰이 답례하기 위하여 손을 드는데 15초에서 20초 정도가 걸렸습니다. 팔에 입은 화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거수 경례한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다가 브릿드웰 중령이 손을 내리자 비로소 내렸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부하가 상관에게 하는 거수 경례 예법을 브릿드웰 중령에게는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한 영혼에게 이와 같은 관심과 사랑을 보였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불행한 이웃에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시면서 여러분들은 누구를 보았습니까? 늘 그랬듯이 그냥 무심결에 스쳐 지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관심사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베드로는 성전에 오면서 왜 앉은뱅이를 주목했을까요? 베드로의 마음속에 예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베드로, 성령강림으로 성령 충만을 입은 베드로, 그는 앉은뱅이를 주목했습니다. 베드로 안에 있는 예수 사랑이 베드로의 시선을 다르게 만든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예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사랑을 품고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면 관심이 달라집니다. 예수 사랑의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보면 달라집니다. 어떻게 섬겨야 되는가 하는 원리를 보게 됩니다. 목이 곧은 자세로는 섬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앉은뱅이의 더러운 손을 잡아야 합니다. 예수 사랑의 시선을 가지고,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손을 잡아 일으키고 생명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이천석 목사님이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 안에서 목발을 집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순간 불쌍한 생각이 들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그분을 붙잡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낫지를 않았어요. 너무 창피해서 그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느 집회에 갔더니 간증하러 나온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옛날에 다리를 절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떤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 해주어서 내가 나았습니다." 라고 하여 자세히 보니 그때 바로 그 사람이더랍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듣는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우리의 몫이며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우리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 하실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좋은 전통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구시 기도시간 즉 오후3시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는 누구나 잘 하나 일하는 도중에 기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을 하면 사람이 움직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그러기에 일이 확장되고 바빠지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쁘기 때문에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의 사건을 만들어 주십니다.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하고 귀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영국의 어떤 부자가 한 가난한 여자를 집안 일을 돌보도록 가정부로 고용했습니다. 그 여인은 20년 동안 충성되게 일을 했습니다. 어언 세월이 지나 부자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직전에 그 가난한 가정부를 불러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몇 자 적어서 그 여인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여인은 런던 변두리에 있는 조그만 오두막에 살고 있었는데, 그 주인 부자가 준 종이를 벽에다 압핀으로 꽂아 놓고 계속해서 가난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병들어서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유명한 스펄젼 목사님을 모셔다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린 다음에 스펄젼 목사님이 일어서서 무심코 벽을 쳐다보니까 벽에 엄청난 액수의 수표가 꽂혀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이 "부인! 글을 읽을 줄 모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네. 저는 글을 배운 적이 없어 읽을 줄 모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부인! 이 수표는 엄청난 액수의 수표입니다. 진작 이 수표를 사용했다면 이런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돈이면 런던 중심의 제일 좋은 집도 살 수 있는 액수의 돈입니다." 우리도 내 안에 있는 예수 이름의 가치를 모르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베드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해서 앉은뱅이를 향하여 외칩니다.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지는 놀라운 치유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했던 것입니다. 죄와 죽음에서 건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갖는 권능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철저히 신뢰하면서 앉은뱅이의 오른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touch' 한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의 고통을 예수 이름으로 어루만질 때 기적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 이름에 기적이 있습니다. 세상 것을 다 가지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많은 것을 가졌으나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해서 실패합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좋습니다. 그것은 예수여야 합니다.

여러분 속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를 받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화해가 이루어집니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는 믿음의 행위가 있습니까? 조용히 주님 앞에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건강보다 소중하고, 물질보다도 소중하고, 명예보다도 소중하고, 생명보다도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의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 생활을 더 이상 취미 삼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재미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기분으로 신앙생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속에 예수의 사랑을 가짐으로, 능력 있는 기도를 가짐으로, 소중한 예수의 이름을 가짐으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장애와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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