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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고후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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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일단 고린도 성의 타락과 부패로 인해 그 속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성도들마저 서로 갈라져 하나가 되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며 서로 파당을 짓고 헐뜯고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두 번씩이나 편지를 보내며 저들을 권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투성이 교회였지만, 저들에게 아주 귀한 장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9장 2절을 보니,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그 장점을 자랑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다!>

거기 <아가야>는 고린도를 수도로 하는 로마 속주의 이름으로 고린도를 지칭하는 다른 말인데요, 거기 2절에 보니 사도 바울이 저들을 자랑한 이유가 좀 특이합니다. 저들이 일년 전부터 무언가를 예비한 점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다!>

그런데 감사한 일은, 사도 바울이 저들의 그런 열심을 자랑하자, 2절의 후반부, <그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다!>는 겁니다.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 시켰느니라! 아멘!> 거기 <격동 시켰다>는 말, 헬라어로 자극하였다, 혹은 감동케 하였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어떤 열심이 그토록 도전이 되고 감동이 되었다는 말일까? 저들은 일년 전부터 무엇을 예비했기에 자랑거리 보다 문제가 더 많았던 고린도교회를 이토록 자랑하는 것일까? 궁금해지는데요, 그 답이 9장 5절에 나옵니다.

9장 5절의 맨 뒤에 나오는 단어, <참 연보>가 그것입니다. 거기 <참 연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표시하시고, 별표 다섯 개! 그러고 보니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자랑은 저들이 연보를 잘 하는 것이었군요. 그랬습니다. 저들의 최대 강점은 연보하는 일이었군요. 일년 전부터 예비하여 드리는 연보, 그것이 저들의 자랑이었던 겁니다.

# 2
연보(捐補), 바칠 연 자에 도울 보자를 쓰는데요, 직역하자면 무언가를 바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연보란 내가 가진 것을 바쳐 어떤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요즘 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풀자면 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려서 교회를 다닐 때만 해도 헌금이란 단어 보다 연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어머님께서 주일이면 어디서 구하셨는지 미리 예비해 두셨던 <새 돈>을 쥐어 주시며, 교회에 가서 정성스럽게 연보하라 말씀해 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늘 미리 예비하여 두셨다가 정성을 다해 연보를 바치곤 하셨습니다. 심지어 꼬깃꼬깃한 돈을 인두로 펴서 참 연보를 바치려 애를 쓰셨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9장 5절의 중간 대목을 보니,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연보를 바치겠다고 누가 약속했다고요? 우리가! 내가! 중요한 점은 자기가 서원해 놓고 까맣게 잊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거지요. 해서 어서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 권면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는 미리 예비했다가 바쳐야 합니다. 예비했다가 바치는 것, 그것이 참 연보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내가 전에 약속했던 연보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2005년을 시작하면서, 연초에 하나님께 약조한 연보는, 미리 미리 준비하고 예비해서 바쳐야 합니다. 왜? 내가 약조했기에 내가 언제 어떤 연보를 얼마나 바쳐야 할지를 이리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주신 말씀,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 하신 겁니다. 그래야 참 연보가 된다는 거지요.

여기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로 가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인데요, 1절의 첫 문장을 보실까요?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곧 우리가 바칠 연보에 대하여 권면하시는 말씀인데요, 함께 나누고 싶은 구절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함께 읽지요. / 고전 16:2 / (읽기) / 거기 <저축>이란 단어에 표시하시고, 무슨 뜻인가? 연보를 위해서 미리 저축하라는 겁니다. 내가 약조한 연보를 어김없이 바칠 수 있도록, 매주일 첫날, 곧 정기적으로, 이윤이 남을 때마다, 하나님의 몫을 떼어 저축을 함으로 연보를 준비하라는 겁니다. 뒤집으면, 그 날 딱 당해서 허겁지겁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바치지는 말라는 거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우리 동광의 하늘 가족들은 모두가 다 그렇게 하고 계신 줄 압니다만,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는 말씀, 연보는 미리 미리 예비하였다가 바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내가 하나님께 약조한 연보가 있거든 저축을 들면서 예비하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최소한 우리 노후를 대비하여 미리 저축하고 보험 들고 준비하는 정도 이상의 정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치는 연보를 예비하였다가 바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 연보입니다.

이제 꼭 한 달 후면 맥추감사주일이 다가옵니다. 금년엔 7월 3일이 맥추감사주일인데요, 예를 들면 맥추감사헌금이 바로 전에 약속한 연보입니다. 2005년 우리 동광의 살림 규모를 정하면서, 금년에도 맥추감사헌금을 바치기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보를 예비하는 방법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미리 예비했다가 바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예비하고 계신 줄 압니다만, 혹시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리 하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부터라도 맥추감사주일을 대망하며 나의 약조한 연보를 예비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담임목사로서의 간절한 소망은, 작년에 바친 맥추감사연보 보다는 더 많이 바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슨 뜻인가? 그만큼 금년 상반기에 더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다는 뜻이거든요. 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참 연보로 풍성한 맥추감사제단을 쌓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3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내가 가진 것을 내 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내 것, 내 소유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대인들로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당신 가진 것을 좀 내 놓으시오!> 이렇게 말하는 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함몰된 사람들, 결코 응답하기 힘든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 해서 지금 형제들을 뽑아 고린도교회에 급히 보냈던 것인데요, 9장 3절을 보실까요? / 고전 9:3 / (읽기) / 이 형제들을 왜 보냈다고요?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저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나마 하나 있는 자랑거리를 놓치지 않게 하려고 지금 사람까지 보내어 미리 준비케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실컷 자랑까지 늘어놓았는데, 정작 본인들은 준비하지 아니하여, 4절 후반부, 저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다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해서 5절에서 주신 말씀,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다!>는 거지요. 한 마디로 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약조한 연보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권면하시는 중이지요.

그러면서 연보를 준비하는 자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을 가르쳐 주십니다. / 9:7 / (읽기) / 첫째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 하시는데요, <각각 그 마음!>이란 말, 각자의 마음, 곧 내 마음에 따라 바치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연보는 내가 정해서 내가 바치는 것, 그러므로 내 마음이 문제라는 거지요. 뒤집으면 누구 눈치 보며 바칠 것 아니요, 군중 심리에 휩쓸려 바칠 것도 아니요, 그저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대로, 내 믿음의 분량을 따라 바치는 것, 해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바치라!> 하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은 원이로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이지요. 7절에 보니, 가장 고질적인 방해요소가 있으니 두 가지군요. 인색한 마음과 억지로 마음입니다. 해서 주신 말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거지요. 하나님께 바치는 연보, 인색한 마음으로 바치려거든 차라리 바치지 말라는 거지요. 억지로 바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거지요.

거기 <인색함>이란 헬라어 단어에는 근심이란 뜻이 담겨 있는데요, 무슨 뜻인가? 인색한 마음의 근원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왜 근심하게 되는가? 연보란 것이 어쨌든 내 것 내 놓는 일이니, 내가 내 놓은 만큼 나는 경제적으로 손실을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니 근심이 될 수밖에요. 근심이 되니 점점 더 인색해질 수밖에요.

또 하나의 방해 요소, 억지로 마음이라 했는데요, 억지라는 단어, 헬라어로 탐심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억지로 마음의 근원은 탐심이라는 거지요. 왜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즐겁지 못하고 억지 춘향 격이 되는가? 내 마음의 탐심 때문이라는 거지요. 탐심이 가득하니 내 것 내놓고 싶지 않지요, 내놓고 싶지 않으니 점점 더 인색해 질 수밖에요.

그런데요 내가 손해 볼 것 같아서 인색하게 굴었던 것인데, 뒤집어 말하자면 내가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인색하게 굴었던 것인데, 그 인색한 마음에서 하늘의 사랑이 떠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색한 사람, 돈은 좀 남길지 모르겠으나 사랑을 잃게 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색하게 굴어 내가 잘 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인색한 자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떠납니다. 그렇게 하늘의 사랑이 떠난 자리, 남는 것은 허무 허무밖에 없습니다. 하늘의 사랑이 떠난 자에게서 사람들도 사랑을 거두어 버립니다. 결국 인색한 인생, 하늘과 땅의 사랑을 모두 잃어버린 채, 허무 속에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고 맙니다. 해서 사도 바울이 간곡하게 권면하시는 말씀, 미리 저축하면서, 미리 준비하면서, 미리 예비하면서, 먼저 내 마음 인색하지 않도록 훈련할 것이며, 하여 마침내 하나님께 즐겨 바치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7절의 맨 마지막,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 하시느니라!> 아멘!

# 4
그런데요,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연보의 목적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먼저 듣겠습니다. / 9:9 / (읽기) / 하나님께 바치는 연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이라? 곧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 구절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대목인데요, 여기서 원문을 확인하고 갑니다. / 시 112:9-10 / (읽기) / 그렇습니다. 하나님 주신 것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는 것, 이것이 연보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망각할 때 우린 시험에 들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 빈궁한 자를 구제하는 자, 그 의를 영원히 기억하여 영생복락을 주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관련된 잠언의 말씀 한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 잠언 11:24-25 / (읽기) / 그렇습니다. 흩어 구제하면 내가 가난해 질 것 같으나 오히려 부하게 될 것이요, 과도하게 아껴 인색하게 굴어도 가난하게 될 뿐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즐겨 내라는 거지요. 즐겨 바쳐 구제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라는 거지요. 그렇게 구제를 좋아하는 자,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모든 일에 모든 넉넉한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요, 마침내 그의 이름을 생명록에 올려 그를 저 영원한 나라에 받아 주신다는 거지요. 그러니 즐겨 바치라는 거지요.

이 말씀들을 기억하시면서, 우리의 사도 바울, 참 연보를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데요, 9장 6절의 말씀, 먼저 읽겠습니다. / 9:6 / (읽기) / 적게 심는 자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 많이 거둔다는 진리를 기억하라는 거지요. 여기서 사도 바울은 연보 바치는 일을 씨 뿌리는 일에 비유하고 있는데요, 그러므로 적게 바치는 자 적게 거두고, 많이 바치는 자 많이 거두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적게 심을 것인가 많이 심을 것인가, 적게 바칠 것인가 많이 바칠 것인가는 심고 바치는 각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하는 것 맞지만, 문제는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되는 것을 알면서 왜 인색하게 굴어 적게 심고 적게 거두는 쪽을 선택하느냐는 겁니다. 그러지 말라는 거지요. 많이 심어 많이 거두고, 많이 바쳐 많이 받으라는 거지요.

여기서 <연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9장 5절의 맨 마지막 대목, <연보>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거기 각주 번호 1번이 붙어 있지요. 각주 1번의 설명을 따라가 보실까요? 헬라어로 <복>이란 설명이 붙어 있군요. 무슨 뜻인가? 연보는 곧 복이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내가 바치는 연보, 그 자체로 이미 축복입니다. 그런데요, 6절의 <많이>라는 단어 각주 번호 3번에도 <복으로>라는 설명이 붙어 있군요. 그러므로 연보 자체가 복일뿐만 아니라, 복을 심는 자 복으로 거둔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내가 즐겨 연보할 수 있음은 이미 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작년 보다 올 해 더 많이 바칠 수 있음은 그만큼 더 많은 복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해서 사도 바울이 하시는 말씀, 즐거운 마음으로 많이 심고 많이 바쳐, 더 많은 복을 받아 누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 없는 인생이 안 된 인생입니다. 받은 것은 많은데 인색하여 바치지 못하는 인생, 정말 불쌍한 인생입니다. 여러분, 즐겨 바칠 뿐만 아니라, 해마다 내가 바치는 연보의 양이 점점 더 많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해서 많이 심는 자, 많이 거둔다는 이 말씀의 증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 5
그렇다면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즐겨 내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일까? / 9:8 / (읽기) / 거기 <모든>이란 단어에 표시하실까요? 한 마디로 모든 복, 만복으로 갚아주신다는 말씀인데요, 제가 다시 읽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여 나에게 주시는 복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1. <즐겨 내는 자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해 주십니다!> 아멘!

2. <즐겨 내는 자가 하는 모든 일에 모든 것으로 넉넉하게 해 주십니다!> 아멘!

3. <즐겨 내는 자의 인생에 모든 착한 일이 넘치게 해 주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어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해 주십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은혜만 받아도 축복인 것을,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사람,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게 채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 모든 것으로 넉넉하게 채워주시니, 즐겨 내는 자, 한 마디로 만사형통의 복을 받게 되는 거죠. 할렐루야!

그러고 보니 그렇게 인색하게 굴어 더 잘 살 줄 알았는데, 즐겨 내는 자가 훨씬 더 잘 살게 되었군요. 그러니 얼마나 손해입니까? 인색하게 굴어 인심 잃지요, 인색하게 굴어 사랑도 다 놓쳤지요, 알고 보니, 손해 볼 것 같던 즐겨 내는 자가 훨씬 더 충만한 복으로 잘 살고 있지요. 해서 시편 기자가 예언했던 말,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할 것!>이라 하셨던 것이지요. 그러니 인색하게 굴지 말고, 즐겨 내라 하셨던 것입니다.

<즐거이 바쳐 만사형통하시기 바랍니다.>

# 6
오늘 말씀 마당을 닫으면서 사도 바울의 권면 가운데 한 구절을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 9:10-11 / (읽기) / 10절, 심는 자, 곧 즐겨 내는 자에게 하나님은 씨를 주십니다. 먹을 양식도 주십니다. 또한 내년에 심을 것도 주십니다. 해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풍성한 은혜로 늘 충만케 해 주십니다. 거기에 의의 열매까지 허락하시어 구원의 은총까지 베풀어 주십니다. 내가 한 일이라곤 하나님 주신 것의 일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친 것뿐인데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1절, 심는 자, 곧 즐겨 내는 자,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해 주십니다. 이미 받은 부요한 복으로 너그럽게 연보하게 해 주십니다. 하여 마침내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감사의 제단을 쌓게 해 주십니다.

저는 우리 동광의 하늘 가족들, 모든 일에 부요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해서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너그럽게 연보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여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감사 제단의 쌓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과 소망으로 금년 맥추감사주일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축하며 약속한 연보를 예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여 작년보다 더욱 너그러운 연보로 더 큰 감사를 돌리시며, 하나님께서 작년 보다 금년에 나를 더 사랑하시고 더 축복하셨다는 이 말씀의 증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 찌니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아멘!>
(/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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