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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욕과 영성 (고전 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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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 가족의 해체 등 삶이 일순간 중단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때로는 건강 문제로 인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 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를 넘어뜨리는 수많은 덫이 참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은 채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참 아름답게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우리 삶을 중단시킬 수 있는 덫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중에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에게 쉬운 방법으로 끊임없이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는 덫이 바로 성적인 욕망입니다. 정욕의 문제를 우리가 잘못 행하게 될 때 자신이 쌓아왔던 인격, 공로, 그동안의 좋은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다 묻혀 버립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피해를 봅니다. 자신 뿐 아니라 자기와 더불어 사는 가정이 파괴되고 자신도 동일하게 제 2, 제 3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삶의 가치관이나 의미를 잃어버려 성격이 변하는 사람도 있고 감정적으로 병드는 사람도 참 많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것들은 마음과 육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인 황폐함을 가져와 부서지고 망가지는 인생들을 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치르는 대가가 단순히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후대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영향력을 가지고 한꺼번에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적잖게 다가옵니다.

윌 듀란트(Will Durant)라는 역사가는 문명사(Story of Civilization)에서 도덕의 가장 큰 임무는 언제나 성의 규제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는 언제든지 사회질서를 위협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역사의 축복과 저주는 바로 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갈림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삶에 축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성의 바른 이해와 사용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삼손이라는 사람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혼란한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공격해 오는 적들과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얻었고. 또 삼손이라는 사람은 특별한 은혜가 있어서 나귀턱뼈로 그 자리에서 일천 명을 죽이는 괴력 같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요 빛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릴라라고 하는 여인에게 유혹당하면서 성적인 욕망, 정욕의 문제를 잘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한 순간에 눈알이 뽑혀지고, 그 모든 명성과 하나님께 쓰임 받던 사역과 그리고 그가 의미를 두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큰 돌맷돌을 돌리는 노예로 전락해버리며 비참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라는 사람을 한번 볼까요? 이 사람은 목동에서 임금이 된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했습니다.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문학적인 소질도 다양했습니다.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를 범함으로 인해서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 가정에 풍파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자기 자녀들 끼리 서로 범하고 죽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기는 그 아들에게 쫒겨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결국 그 아들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며 자기 가정의 파탄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과 염려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그의 생애에 끝까지 따라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순간에 잘못된 일들로 인해서 이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그 고통과 아픔을 자기뿐 아니라 자기가 죽고 난 다음  후대에까지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정욕의 문제를 올바로 사용하지 못할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정욕의 적절한 사용은 가족 간의 친밀함, 부부간의 친밀감,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형성하고, 귀한 후손들을 배출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역사를  풍요롭게 합니다.

요즘 통계를 보면 부부간에 갈등이 있어도 성적인 문제에서 서로 만족한다면 나름대로 그 가정이 심각하게 깨어지지 않는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든 믿음을 따라 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선택하는 많은 것 중에 ‘믿음을 따라 절제했는가? 믿음을 따라 즐거움을 누렸는가? 믿음을 따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웠는가? 그리고 믿음을 따라 결별 했는가?’ 등 모든 일에 믿음의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성의 문제, 정욕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믿음을 가장 우선순위로 세워서 나의 삶을 아름답게 이끌어 갈 때,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즐거움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파멸로 이끄는 정욕의 문제를  영적으로 바르게 진단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이 일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이 저지른 잘못된 정욕의 문제 때문에 엄마가 둘, 아빠가 둘, 또 배다른 동생들, 형제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들, 그 아픔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 중에는 남편이나 아내가 저지른 부정의 문제 때문에 지금 가슴앓이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고통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정말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씀을 따라서 조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픔과 고통을 겪게 만들고 파멸로 이르게 만드는 정욕의 죄는 언제 시작되며 들어오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1)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을 때 육신의 정욕의 문제는 죄의 문제로 우리 삶 속에 찾아옵니다.

고린도전서 20절 말씀 보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지 못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 불행의 씨앗이 자리 잡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욕은 하루아침에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서서히진행합니다. 가만히 있을 때 시작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초점을 잃어버릴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 들어와서 씨앗을 뿌리고 자라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갈등과 분열로 나누어 졌던 이스라엘이 통일왕국이 되면서 첫 왕이 바로 다윗이 되었습니다.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그 마음에 얼마나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겠습니까? 사무엘하 5장 13절 보면 그 때에 다윗이 <처첩을 더 취하였으므로 > 그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이미 그에게는 처와 첩이 있었지만 더 취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시에 문화와 관습으로 왕이 후궁을 소유한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도, 윤리의 기준도 이것을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정욕의 욕심을 점점 살찌워갔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은 그 당시 법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남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의 여자로 만들어 버리며, 그 남편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17장 14절-17절까지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이 꼭 지켜야 할 계명은 ‘많은 말을 두지 말라. 아내를 많이 두어 미혹함을 받지 말라. 또 하나는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쌓아 두지 말라.’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고 존귀한 삶을 살아서 주님 앞에 영광 돌리며 주님이 기뻐하시기에 합당한 왕이 되려면 이 세 가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잘 지켰는데 그는 아무런 의식 없이 아내를 많이 두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1)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릴 때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① 첫 번째는 ‘누구나 하는 일이야, 너만 그런게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그런 생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이성을 만나고 생각하거나 다른 어떤 음란물을 보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 처음에는 약간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이거 가지고 그러냐. 다들 그렇게 살아가. 사람들 봐라.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 이런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다가와서 우리를 합리화 합니다.  매스컴에 이런 보도가 된 적이 있습니다. ‘oo에 사시는 분들은 아내와 남편이외에 애인이 없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그런 마음이 들어갑니까? ‘죄는 너만 짓는 것이 아니야. 누구나 짓는 거야. 목사, 장로, 권사도 죄짓고... 봐라! 대통령도 죄짓고...이일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든지 위험하고 노출되어 있고 다 이런 시험을 받는 거야. 너만 그런거 아니야.’ 이렇게 위로로 가장한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와 닿게 합니다. 

②두 번째는 ‘이거 큰 거 아니잖아. 작은 거잖아. 너가 포르노 영화 본다고 큰일 일어나니? 한번쯤 보는 것은 괜찮아. 인터넷 들어가서 보는 거 괜찮아. 또 괜찮은 사람과 만나서 교제하는 거 괜찮아. 작은 일이야 . 큰 일  아니야. 뭐 이렇다고 해서 큰 파장이 일어나니? 그냥 삶의 일부분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는 ‘너는 아직 젊고 건강하잖아. 너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한 사람에게 매여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워.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딱 한사람과 일평생 산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니?’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 쏙 집어넣습니다. ‘그렇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리고 ‘딱 한번만 하는 거야. 딱 한번, 여러 번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딱 한번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렇게 사는 거야.’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느낌을 좋게 만듭니다. ‘괜찮겠다. 분위기가 괜찮고 사람 괜찮구나.’ 하고 좋게 느끼게 만듭니다. 여러분, 불륜이 처음부터 복잡하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창가나 매춘굴로 들어가는 것 이외에는 처음 시작할 때 굉장히 낭만적으로 좋게 느껴집니다.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 속에 합리화의 작업이 일어납니다. 이 합리화의 작업이란  신앙적인 기준을 무너뜨리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변호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너무 외로웠어. 아내와 남편이 있었지만 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야. 다른 부부들은 저렇게 행복하게 다정하게 살아가는데 ...... 나도 내 인생 살아야 되지 않니?’ 그렇게 생각 하면서 자신의 신앙속의 무장을 해지합니다. 도덕적 기준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이 기준의 담을 넘어서 그 다음에는 의지적인 결단을 하게 하면서 빠져나오지 못할 길로 들어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거룩함을 내 삶을 통해서 이루어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삶의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할 때에 다윗에게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편안함과 익숙함이 그를 덫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생활 속에 하나님 자녀다운 삶, 하나님이 내게 주신 ‘ 나도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 라는 그 거룩함에 대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잠시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죄가 나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그래서 Walk Through the Bible Ministries 를 설립한 부르스 윌킨스박사는 빌립보서 3장 15절, 17절부터 20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를 점검 해 보라고 합니다.

(2) 다음과 같이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① 점검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적어도 한 가지 정기적인 사역을 통해 주님을 적극으로 섬기는 일을 하는가?’입니다. 구역모임을 인도한다든지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서 그들을 돌아본다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사역을 적어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가운데 나의 시간과 물질을 내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고정적으로 하고 있습니까?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들을 찾아간다든지, 구역의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본다거나 매주 목요일은 심방 가는 날로 지킨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말기 암 환자를 돌아보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신앙적으로 돕는 것을 보면 그 속에 헌신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그 다음 점검사항 중의 하나는 ‘정기적인 경건의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는가?’입니다. 매일매일 고정된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주일에 왔다 가는 것으로 끝나는가? 후자라면 굉장히 위험한 일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경만 되면 언제든지 작은 것부터 휘둘릴 가능성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위해서 묵상하는 고정적인 시간을 가지며  ③‘내가 가진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내 욕망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의 일을 위해 더 열심히 활성화 시키고 있는가’도 점검 해 보라는 것입니다.

④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결단과 열정을 매순간 주님 앞에 드리고 있는가’ 를 점검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도 모르게  고통 속에 아픔과 비극적인 결말로 자기 인생을 마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의식과 열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평소에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합니다. 주님과 기도하고 교제하는 것을 사모합니다. 그래서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라는 마음을 날마다 하나님께 올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굉장히 어려움 속에 처하기가 쉽고 이미 여러분 속에 이 씨앗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해야 할 생각을 하지 못할 때  정욕의 잘못된 생각이 우리 삶 속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생각 속에는 해야 할 생각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이 우리들 삶 속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5절 말씀을 보면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절과 19절 말씀을 보면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생각은 ‘내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 이 생각을 하고 살아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이 생각을 하게 되면 나의 옆에 있는 사람을 두고 ‘저 사람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의 소유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다.’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상대방을 볼 때 성적인 욕구의 대상으로 도구화 시키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성전을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그를 배려하게 되는 마음이 우리들 속에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없이 대하게 될 때  나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도구로써 그 사람을 보게 되며 거기서부터 문제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맞아요, 목사님, 제가 상대방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나의 성적인 욕구의 대상으로 삼으니까 젊은 딸 같은 아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문에 보니 어느 아버지가 노래방에 젊은 여자들과 재미있게 즐기려고 갔는데 노래방에 2차 가겠다고 따라오는 사람을 보니 자기 딸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절망하며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인격적인 사랑과 만남 없이 사람을 보게 될 때 인간을 도구와 방법으로 보며 돈으로 거래하게 되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더 깊은 쾌락이 무엇이냐? 더 즐거운 자극적인 것이 무엇이냐?’ 이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성적인 가학, 동성연애, 심지어는 짐승과의 수간 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현대의 개방된 성문화가 문화라는 이름과 낭만이라는 포장과 자기의 권리와 개성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몸을 쾌락의 도구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잠에서 깨어나 목욕하는 여자를 누구인지 알아봅니다. 그가 자기를 섬기는 우리야장군의 아내 밧세바임을 알고도 그의 권력과 지혜로 밧세바를 소유하게 됩니다. 정욕의 뿌리가 그 속에서 ‘내가 뭐, 웬만한 여자들 모두 내 여자로 삼았는데 이 여자도 괜찮을 거야. 내가 왕인데...’ 라는 생각을 만들고  정말 그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고 먼저 깨끗하고 정결하게 우리 삶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2절을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룻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질그릇 같은 우리들이 보배로운 것은 우리 속에 보배로운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위버는 60명의 대학생을 모집하여 5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연구한 결과를 발표해서 음란물이 사람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5개의 그룹에게 각각의 5개의 영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제1그룹에는 성적 묘사가 전혀 없는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2그룹에는 상호동의하에 성관계를 갖는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3그룹에는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영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4그룹에는 남자가 강압적으로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제5그룹에는 폭력을 동반한 성관계를 하는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 60명의 대학생에게 성폭력사례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형량을 부과하도록 과제를 주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성관계를 맺은 영화를 본 대학생들은 매우 낮은 형량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영화를 보기전보다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여성들은 은근히 성폭행을 기대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생각입니까?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성적인 기준이 무너지면서 우리도 동일하게 젖어들어 파멸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마땅히 해야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정욕의 지배를 받게 되면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자기를 합리화 시킵니다

‘그런 즐거움을 갖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인생에 즐거움이 없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분명히 하나님은 거절하지 않으시고 나를 이해해주신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가장 수준 높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나의 결혼은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어.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비판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판단하는 것을 보면 당신은 나보다 더 큰 죄인이다. 이 사랑은 내 삶에 활력을 주고 있다. 잃어버린 인생을 다시 찾은 흥분과 삶의 의욕을 다시 불어넣어주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지내왔다.‘

이런 생각으로 바뀌어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과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전인 것을 알게 될 때 요셉처럼 유혹이 와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유혹이 찾아 와도 내가 이길 수 있는 힘이 그 만큼 많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죄를 짓겠는가?’ 라고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놀라운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된 이미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내 몸이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알 때 ,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갈 때 어둠과 정욕의 생각은 우리 속에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테두리 안에 없을 때 우리를 무너뜨리는 정욕이 찾아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욕이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진정 우리 가정 가운데 연합의 비밀을 두시고 아내와 남편이 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 아내와 남편이라는 구조 속에 성적만족이 없을 때 인간은 정욕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혹시 사이가 좋지 않은 분들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부부간에 친밀감을 다시 회복하는 일들을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과 삶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유혹당하는 시기는 휴식시간, 생리주기, 휴가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W.T. Taylor 는 ‘유혹은 일하는 시간에는 거의 찾아 오지 않는다. 남자들이 바로 서느냐 넘어지느냐 하느냐의 기로는 늘 여가 시간에 달려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성적인 자극과 범죄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수많은 환경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인용품을 파는 가게를 보면 당당하게 진열 해 놓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만 켜면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음란물이 계속해서 밀려옵니다. 전화나 벽에 언제든지 음란한 것에 접촉될 수 있는 전화방, 대화방, 참된 만남,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과 동시에 가정 안에서 이런 것들이 수용될 수 있도록 부부간에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노력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호르몬은 37개월밖에 안 나온다고 합니다. 신혼생활이 3년 정도면 끝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의지와 사랑과 정으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아내와 남편의 자리를 다시 찾고 영적인 대화를 시작하면서 부부간의 대화를 아름답게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친밀감이 우리들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테두리 안에서 그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그 안에 있는 즐거움을 우리가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음란잡지인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가 데이비드 프로스토 쇼에 나와서 대담한 글이 스코비 커비의 책 그리스도인의 데이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프로스토가 휴 헤프너에게 물었습니다 . ‘헤프너씨 당신은 남자라면 원하는 모든 것 즉 명성, 성공, 여자 등을 모두 얻으셨는데 이제는 과연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이 질문에 휴 헤프너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다음과 같이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데이비드씨 나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고라도  진실한 사랑을 얻고 싶습니다’

음란물에 제왕과 같은 그도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테두리 안에서 있지 않을 때 참된 인생의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죄를 짓는 이유를 볼 때 죄에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쾌락이 따라옵니다. 쾌락 때문에 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죄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면서 즐거움 뒤에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21세의 소녀가 유명한 컬럼 Dear Abby에 편지를 썼습니다. 이 소녀는 14세 이후부터 여러사람과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결과 성병에 걸렸고 성병을 고치는 과정에서 그녀는 영원히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는 뼈아픈 후회의 글이었습니다. 제프라는 청년은 결혼 전에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그는 사업을 하게 되었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성병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묘에서 눈먼 아들을 안고 통곡했습니다.


인간은 정말로 죄의 쾌락을 바라볼 뿐 그 뒤에 숨어 있는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지어놓은 테두리가 불편 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주시는 놀라운 기쁨과 감격을 찾게 될 때 가정 안에 주시는 놀라운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어거스틴 참회록에 보면 어거스틴이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너무나 고달프고 지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저를 이 정욕에서 건져 주세요’ 하는데 한편의 묘한 생각이 떠오르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좀 더 두세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이중적인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지적 할 때까지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가 한번 그렇게 관계를 가져서 아기를 가졌겠느냐 라는 물음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는 생리 후에 정결의식을 행하고 있었을 것이며 반복의 결과로 임신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반복되어 진다는 것을 학자들은 다윗의 삶을 통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테두리를 벗어나는 정욕은 육체적 사망과 더불어서 인격이 부서지고 가정이 깨어지고 결국은 자기가 이루었던 삶의 모든 것이 불가피하게 해체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죄렌 키에르케고르 라는 철학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속에 매춘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 기도는 쉽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드디어 대답을 발견하고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마음의 깨끗함, 진정한 마음의 깨끗함은 오직 한가지 목적에 몰두하는데 있다. 신적인 목적, 즉 하나님의 목적 앞에 몰두할 때 나는 내 마음이 깨끗해 지는것을 느낀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살아갈 때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보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이제는 죄 짓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초점을 맞추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 삶, 그리고 정말 마땅히 해야 할 생각을 하면서 주님이 주신 그 테두리 안에서 주신 기쁨을 누리며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신 크나큰 풍성함과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욕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그 궤도를 이탈할 때 무서운 독이 되어서 내 삶을 파고들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 중에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부모님의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서로 헤어지고 사랑으로 교제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며 고통 중에 계신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들 마음속에 그 마음이 꿈틀대고 자라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는 분들은 없습니까? ‘나는 괜찮지’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적인 것이 주는 드러나지 않는 즐거움을 즐기고 있는 분들은 없습니까? 지금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것이 적당한 환경이 되면 어느 날 절제하지 못하고 주체하지 못할 어려움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정한 영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그는 이것을 이길 힘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이 유혹에서 자유로운 분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든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무너뜨리는 수많은 덫이 인생 중간 중간에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따라서 자신의 삶속에 성적인 욕심을 잘 사용하여 주님이 주신 풍성함을 가정 안에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원치 않는 고통과 아픔이 있다면 주홍과 같이 붉을지라도 희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그 앞에 회개의 고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이 더욱 더 아름다워지고 내 남은 생애가 비참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름답게 평안하게 마무리되면서 보람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힘들었던 내 자녀, 아내, 남편이 정말 평안하고 기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주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는 기도하는 주님의 자녀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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