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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기도 (삼하 7:1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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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줄로 믿습니다. 왜 기도하냐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 계속 기도하느냐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임박하시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대해서 물으면 기도는 하고 싶지만 바빠서 하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새벽기도회나 수요기도합주회 때 보면 있어야 할 이들이 없어서 안타까움을 겪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많이 바쁘시지요?’ ‘네. 가고 싶은데 바빠서 못 갑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분들에게 저는 오늘 이런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하면서 열세에 놓인 북쪽에 흑인들이 모인 북군들은 오합지졸이고, 남군들은 리장군에 리더를 받은 아주 훈련된 규모 있는 군대였는데, 누가 보아도 북군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남군이 모든 면에서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링컨의 승리로, 하나님의 승리로 끝난 줄로 믿습니다.

빌레몬서를 읽던 링컨대통령이 노예제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도가 아니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서 오네시몬을 용서하기를 바울이 권했던 것처럼 노예들을 자기의 가정으로 그리고 인격과 존중함을 받아야 할 한 시민으로 돌려보내야 할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전쟁 와중에서도 링컨은 기도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돌발상황이 많고, 긴급한 상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정한 시간은 기도시간으로 자기의 비서에게 그 시간만큼은 누구와도 면회하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다짐을 해 두었습니다.
전쟁에서 긴급한 상황이 와서 왕을, 대통령을 면회하기를 원하지만 대통령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들여보내 주지 않자, 이것은 시간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대통령은 그를 면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서는 일관되게 ‘지금 대통령께서는 기도하고 계십니다.’ 전쟁 중에 기도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가장 중요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링컨,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인적, 물적 상황이었지만 이겼던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승리하고 왕이 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고백하지 않습니까? 이 나라가 주께서 친히 세운 나라가 아닙니까? 다윗이 뛰어나고, 다윗이 잘났기 때문에 다윗의 왕국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 고백을 우리는 이 본문에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링컨대통령에게 있어서 전쟁 중에도 기도의 시간만큼은 빼앗기지 않았던 그, 바로 우리는 그를 가리켜서 바쁘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그 하나님의 사람들의 고백을 우리는 그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나 존 웨슬리나 모두 그들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대표적인 사람 조지 뮐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바쁘다고 핑계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공감하시고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실 예배에 중요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비고, 찬양대도 자리가 빈 것 같습니다. 얼마전 우리 목사님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현상 중에 연휴가 꼈을 때에 성도들의 태도, 지금 우리는 오늘과 내일, 6월6일 현충일 연휴입니다.

주 5일제다 보니까 토요일부터 쉽니다. 3일이지요. 부안초등학교는 내일을 개교기념일로 앞당겨서 쉰다고 하지요. 그러면 4일 금요일 오후부터 하면 4박5일이라고 하는 기가 막힌 연휴가 생기는 거지요.

저는 오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뒤로 하고 멀리 떠난 분들도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옛날 같으면 하나님께 혼 좀 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을 텐데, 조금 제가 너그러워 졌습니다. ‘주님 저들의 안전을 지켜주시고, 그들도 주의 자비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오늘 그런 현상들을 보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황금연휴를 어찌 즐기지 않으리요. 매주 드리는 예배인데, 그들은 예배를 소홀히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저는 아주 감동적인 짧은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정호득집사님 몸이 불편하신 분입니다. 나이도 많으신 분이십니다. 혼자 사시다 보니까 생활에 불편도 많고, 그래서 2층 빌라에서 웰빙칼국수라는 이름으로 조그마한 식당을 오픈했습니다.

원래 빌라에서 식당을 오픈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그 층에 4가구를 사는데, 다른 가구들이 동의를 해 주셨대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 분들이 뭐라 안 합디까?’ ‘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집사님, 그동안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셨군요.’ 웬만해선 자기 입장에서 손님들이 들락거리는거 좋아할 사람들이 없는데, 집사님 그동안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좋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 분이 손으로 빚은 칼국수와 손만두를 먹으면서 웰빙이니까 인공조미료는 넣지 않고, 멸치와 다시마와 이런 것들로 국물을 냈는데, 맛이 참 담백하고 좋았어요. 여러분들도 조그마한 모임들은
교회 앞 삼성빌라입니다. 2층 202호, 많이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너무 감동을 받은 것은요, 예배를 드리고 식사하는데 그래요. ‘목사님 사실 그 날은요, 열두시에 20명 예약을 받았는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오늘 12시에 목사님 모시고 예배드리기로 했는데, 물러줄 수 있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화를 내거나 식당에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다음주에 올께요.’

저는 그 분이 몸이 약하고 불편하신 분이지만 대단히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해도 사업을 하고, 그거 사업을 한다고 하기에 그럴 정도로 작은 사업이지만 그 분한테 당당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급히 전화해서 ‘목사님, 두 시로 예배를 연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왜요?’ ‘20명이 예약을 하자고 하는데, 20명이 어디입니까?’ 그러면 당연히 제가 ‘아휴, 그럼요.’ 하면서 2시도 기다립니다. ‘2시에 하지요, 2시까지 설거지 괜찮겠습니까? 3시에 할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목사님과의 예배를 위해서 20명과의 예배를 물르셨는데, 사업하는 분들은 마음에 꼭 새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과 비참하게 누추하게 살아가는 그냥 세상에 이끌려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예수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멋있게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그 분의 모습에서 예수 믿는 사람에 당당한 모습을 보았어요. 육체는 연약하고 나이는 드셨지만, 그 분에게서 신앙의 당당한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제가 그랬어요. ‘집사님, 참 멋있다. 너무 멋있다.’ 제가 집사님을 보면서 오늘 집사님의 제일 멋있는 모습을 내가 보았어요. 우리 성도들의 멋은 어디서 나옵니까?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의 표현에서 우리의 신앙의 멋이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그는 이제 남북을 통일한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남북을 이끄는 왕으로써 그는 분주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분주하겠습니까? 대통령도 한 해의 일정을 연말에 발표하는 것을 보면 정말 보통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회의를 하여야 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하고, 한 마디 실수 하면 여론부터 백성들이 그냥 놔두지 아니하고, 그런 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대통령은 건강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함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왕은 어떤 위치입니까? 행정, 입법, 사법 거기에 신앙적인 역할까지 지도자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감당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런 다윗왕이 오늘 18절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여호와 앞에 들어갔다고 하는 말은 법궤가 있는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만들려고 하시면서 내가 거기서 너희를 만나고, 내가 거기의 너희 간구에 응답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다윗은 시간을 내어서 성소에 들어간 줄로 믿습니다. 시간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시간을 만들어서 기도의 시간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그는 크게 4가지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19절에서 21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종을 아시지요? 종도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안다고 하는 표현은 대단히 중요한 동사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안다고 할 때, 여러분의 이름 석자만 알면서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안다고 하면서 우리 평안의교회 황목사님을 압니다. 제가 잘 알지요? 라고 말할 때 이름 석자를 알면서 잘 안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인격, 그의 신앙, 그의 비전, 그의 약점, 그의 장점,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제가 그를 알지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하나님, 종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종으로 있지만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 통일된 나라의 왕이지만, 이 나라일을 친히 세우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 아는 관계였습니다. 인격적으로 내적으로 교통의 관계였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22절에서 24절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아주 구구절절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성령을 고백하고, 교회를 고백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고백하고, 다시 주님의 나라의 갈 소망을 고백하고, 이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지만, 그 마음으로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할 때에 구원에 이른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마음으로 믿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여야 합니다. 그 시인을 하는 중요한 시간이 신앙고백의 시간입니다.

그 신앙고백의 시간을 여러분들이 소홀히 한다면 여러분들은 예배를 실패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자리라고 하면 이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요? 학교에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 저 시민회관에서 문화교실 모인 자리, 예비군훈련에 정신교육 받으러 온 예비군 정신훈련 자리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 자리가 세상의 여느 자리와 다른 것은 우리에게 신앙고백이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는 광대하시며, 주와 같으신 이가 없다.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고백했지만, 올해도 고백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부부간에 사랑을 계속 고백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우리 신앙은 예배 때마다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감리교는 예배 시간 외에는 잘 안 하잖아요. 그런데 장로교인들을 보면 어디 야외 소풍 나가서도 신앙고백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신앙고백 해요. 뭐 이런데 나와서 신앙 고백 하나?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신앙고백을 그냥 가는 곳마다 하는 거예요.

신앙고백 많이 해서 나쁠 이유 없지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고백 되어진다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우리가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메고, 그리고 구두를 실을 때의 자세와 청바지를 입고 티셔츠를 입었을 때의 자세는 너무나도 다른 것입니다. 저 자신도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가능하면 저는 그래서 정장을 하려고 그럽니다. 정장을 했을 때에 제 자신이 의복이 저 자신을 다듬어주고, 규모있게 만들어 줍니다. 제 행동을, 제 태도를 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를 나오셔도 티셔츠를 입고 나온 것과 정장을 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벌써 여러분 태도를 달라지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괜히 슬리퍼를 끌면은 사람의 태도가 이상해 지지요. 그러나 구두를 신으면 달라지지 않습니까? 티셔츠 걸쳤을 때와 양복을 입었을 때 제 자신이 달라진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으니 주께서 저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자와 양의 관계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린 양으로, 하나님이 인도함을 받아야 할 그런 순종해야할 왕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남북을 통일한 권위있는 왕인데, 힘이 있는 왕인데,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 받아야 할, 자비를 구해야 할, 용서를 받아야 할 주의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다윗의 겸손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25절에서 27절까지는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리라라고 하는 약속의 말씀을 제목으로 삼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왕조창건의 신탁이라고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내가 너로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게 하겠다.

그 전에 사울왕이 있었지만 그는 교만함으로 인해서 내가 그를 버렸노라. 그는 1대왕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초대왕은 이제 다윗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후손과 보좌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보좌가 있어야 후손들이 왕이 됩니다. 후손이 있어야 보좌들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왕조에는 후손과 보좌가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내가 너의 후손을 끊임없이 이어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너의 위, 너의 보좌를 내가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왕조가 번성하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인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인정하신 다윗 왕조에 시작을 다윗이 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인도해 주실 때에, 형통으로 인도해 주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이렇게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견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번성하고 이 나라가 견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정치를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지켜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고 있었어요.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교회는 우리의 기업을, 우리의 사업을 지키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견고케 해야 견고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아주 감동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29절 마지막 절은 모든 성도들이 사랑하는 말씀이지요?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입주예배를 드리거나 개업예배를 드리면 원목에 성구를 새겨서 선물로 하거나, 시계를 드리고는 하는데, 많은 성도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옵소서. 누구 때문에? 주님 때문에, 주님의 은혜로 인해... 지금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영히 서게 하옵소서. 내가 곧 교만해서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이 누구냐? 이 나라가 누구 때문에 된 거냐? 이러한 교만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다윗은 사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정치를 못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교만해서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는 사실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겸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키우시는 백성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견고케 하시고, 하나님이 이 삶을 견고케 하시지 아니하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는한 우리는 견고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평안의 모든 성도들, 언제나 다윗의 기도를 기억하면서 우리가 분주한 중에도, 바쁜 중에도, 피곤한 중에도 내가 피곤하기에, 내가 바쁘기에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삶의 승리는 기도에서 비롯되기에 나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여러분들의 삶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기도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방법이 앞서지 않도록 언제나 저희들을 말씀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왕으로써의 다윗, 이제는 위용을 떨치만 하고, 이제는 자랑할 만 했지만 그는 사울의 전철을 밟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이 나라가 견고하고, 이 나라가 강건한 것은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 다윗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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