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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선택과 책임(신 30;15-20, 마 5;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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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르 케고르는 인생이란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순간순간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선택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결정됩니다. 

  아담 이래로 인간에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생명과와 선악과를 나게 하신 후,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먹지는 말라고 하셨으며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면 하나님은 선악과를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셨을 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는  먹지  않는 순종이냐 먹는 불순종이냐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택의 기로에서 불순종을 택하므로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통해서 인간은 불순종을 택하므로,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대로 죽게 된 것입니다.
  자유로 인한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순종을 거부하고 불순종을 선택한 책임이 바로 죽음입니다. 
  이처럼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형벌 앞에서 인간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책임을 핑게하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숲속에 숨어 있는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먹었으냐고 책하실때에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먹게 하였다고 핑게하였습니다.
  또 하와에게 왜 먹었느냐고 책망하실 때, 하와는 뱀이 먹게 하였다고 핑게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핑게에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신 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하였으며, 아담에게는 땀흘리는 노동을, 하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으로 징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였듯이 우리 인간은 한순간도 쉼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두 가지의 길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 두 길은 어떤 길입니까?

  신명기 30;15-20절에 나오는 말씀은 우리게 두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과 복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사망과 화의 길입니다. 
즉 하나는 축복의 길이고, 하나는 저주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두 길을 두시고, 선택할 기회를 우리게 주신 것입니다.
  어느길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것은 자기의 자유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시 겠습니까?
  모두 축복의 길을 선택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주의 길을 선택할 사람은 여기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대로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가 축복의 길을 바로 선택한 그 자체는 생명이며, 복입니다.
  이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내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6)
  이 말씀을 풀어서 20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행 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롬 10:10절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며,
불변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누구도 이단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며,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믿음, 믿음 하다보니 율법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고, 무관심뿐 아니라, 아예 율법 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까?
  복음의 시대에 믿음이면 되지, 율법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복음을 위한 것이였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그리스도를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을 무시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마 5:17-18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로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축복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앞에서 읽은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오심은 율법을 폐하려 하심이 아니라 완성하려 하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그대로 믿도록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예화> 어느 왕이 법을 어긴 자는 두 눈을 뽑겠다고 공포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나뿐인 황태자가 그 법을 어기고 두 눈을 뽑히게 되었습니다.
  왕은 황태자의 한쪽 눈과 자신의 한 눈을 뽑으로써 법을 준수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 중에서는 법을 어기는 사람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도 결코 율법을 범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다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그릇 해석하고,
            율법을 주문처럼 여기고,
            율법을 인간을 억매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시고, 철저하게 율법의 참 뜻을 해삭하여 지키시며, 또한 오늘 우리에게 지킬 것을 요구
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선택한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율법의 조목 조목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지킬 능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생명의 길을 선택한 우리가 지켜야할 율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1.모든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
  봉독한 마 5:21-26절의 말씀의 내용이 바로 모든 사람과 화해할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형제에게 욕하는 사람은 법정에 가게 됩니다.
  또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무시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에배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를 하여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실제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 순간마다, 형제에게 화를 내게 되고,
    욕하게 되고, 무시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제 생명의 길을 선택하여 복받을 사람의 모습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해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을 선택한 우리가 지켜야할 첫번째 율법의 길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미움을 품으면 판단이 흐려지게 됩니다.
  마음 속에 미움을 품게 되면 미움의 대상을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먼저 회개하고, 그리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화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무서운 말씀을 주십니다.
눈이 죄를 지으면 눈을 빼고, 팔이 죄를 지으면 팔을 잘라서라도,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죄을 지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을 말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죄를 두려워 하여 범죄치 않도록 경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요,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죄를 두려워 하여야 합니다. 

  왜 죄를 무서워 해야 합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죄의 값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은죄를 언제나 회개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망하게 되는 것은 죄 때문에 사람이 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미쁘사 우리가 회개하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실을 믿는 것은 중요한데 잘못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못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입니까?
그것은 다음이 아니라, 회개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또다시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생각이 죄를 반복하게 하며, 죄의 타성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잘못된 것을 버리고, 오직 우리는 죄를 두려워 하여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한 사도 바울의 경고의 말씀을 들읍시다.

  3.거짓맹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세한 것은 지켜라" 이것이 생명의 길과 축복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맹세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맹세할 때도 있었지만,
  또한 당연히 맹세할 수 밖에 없어 맹세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들은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을 선택한 사람의 도리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부끄러움이 없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께  약속하고  맹세한 것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무시해 버립니까?
  이것때문에 축복의 길이 가로막힐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고 맹세한 것을 다 지켰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지키지 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이제라도 지켜야 합니다.
  거짓맹세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기칠 때가 없어서 하나님께 사기를 칩니까?
우리는 예면 예이고, 아니면 아이요라고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맹세한 것은 지키고, 거짓맹세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선택에는 책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축복의 길이요, 생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율법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장수의 복과 생명의 복과 형통의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강인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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