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야에서 당한 시험 (마 4:1-11)

  • 잡초 잡초
  • 273
  • 0

첨부 1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여 주님 앞에 나와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무수한 시험을 당합니다. 오늘의 우리들이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험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시험은 항상 예고 없이 우리에게 닥쳐와서 우리를 괴롭히고 또한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고통과 시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선민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고통과 시험의 역사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애굽에서 출애굽 하기까지의 역사는 정말 고통과 시련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통과 시험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혹독한 고통과 고난을 당함으로 그들은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고, 광야생활 40년을 통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보여 주신 것이며 이를 통하여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도 지금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도 절대로 무의미하거나 무가치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과 섭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겨울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혹독한 추위가 있은 뒤에는 따뜻한 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여름 태풍과 폭우가 쏟아진 후에 모든 식물들은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리고 튼튼히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 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119:67-72)
그래서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환난을 당할 때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야 합니다.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12-13)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세상도 이기시고 마귀도 이기시고 마지막 죽음의 권세도 이기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본문 1절 말씀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지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 때에…“ 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 때를 말합니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에 시험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올라가고 신앙이 견고해지고 은혜를 받았을 때에 우리들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마는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참 인간이시기 때문에 영적 존재인 마귀는 처음 아담을 시험하여 쓰러뜨리고 둘째 아담인 예수님까지 시험하여 쓰러뜨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마귀를 마가복음에서는 「사탄」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헬라 원어로는「디아볼리스」인데 그 뜻은 훼방자, 대적자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마4:3에는 ‘시험하는 자’ 계12;10에는 ‘고소 자’ 엡2:2에는 ‘공중권세 잡은 자’ 계12:3,9에는 ‘옛 뱀’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대적 마귀는 그의 속성이 다양하고 교활하여 사람마다 시험하는 모양과 방법이 다릅니다. 노인에게 오는 시험과, 청년에게 오는 시험이 다릅니다. 남자에게 오는 시험과 여자에게 오는 시험이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독특한 시험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라고 하였습니다. 왜 광야로 가셨을까요? 유대 나라는 광야가 많습니다. 이 광야라는 것은 나무나 풀이 전혀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불모지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 광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훈련시키시고 연단 시키는 훈련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도 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고, 엘리야도, 세례요한도, 사도 바울도 모두 광야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런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은밀한 깊은 영교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도 받았습니다. 위대한 능력과 담대한 용기도 받았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갈고 닦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사탄의 시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이 광야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받고, 하나님과의 영교를 가지며 하나님의 사명을 받기도 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야곱은 형 에서의 추격을 받으며 벧엘 광야에서 홀로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비관만 하지 말고, 부정적으로만 살지 말고,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장소로 바꿔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무슨 시험을 어떻게 받으시고 또 어떻게 이기셨는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시험은 육신의 먹는 문제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먹는 문제로 타락시킨 사탄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에게도 제일 먼저 먹는 문제를 가지고 와서 시험을 하였습니다.
본문 3절 말씀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고 말한 사탄의 말속에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능력을 나타내 보라’ 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려면 어김없이 사탄은 예수님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막1:23-24)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눅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잔득 불어넣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물을 가지시고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그 능력으로 돌을 떡이 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실 주님은 능히 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극도로 굶주려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떡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사탄은 돌들로 떡이 되게 하여 먼저 자신의 굶주림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자고로 이 먹는 문제 앞에서는 그 누구도 약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청렴을 자랑으로 하는 공직자도, 정치인도, 고고함을 자랑하는 선비도, 모두가 먹지 않고는 살아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 같은 시험을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예수님은 이 문제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유혹임을 아시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고 사탄을 이기신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방법으로든지 떡만 있으면 그만 이라는 유혹,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은 바로 사탄이 유혹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마귀의 유혹을 일언지하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둘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 말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영웅이 되라고 부추깁니다. 분명히 구약성경 시편91:11-12절 말씀에는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그 발이 상하지 않게 해 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귀는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특히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 내려 천사들이 보호하여 사뿐히 내려서기만 한다면 예수님의 인기는 극도에 달할 것이며 당장에 메시아로 인정받고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때로는 위험과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위험에 자신을 던지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바란다거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사탄의 두 번째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사탄도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왔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고, 성경은 성경으로 조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상한 표적이나 이적을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나와서 표적과 이적으로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을 미혹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거짓 것들이 더 이상한 일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24:4-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24:23-24)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3. 세 번째 시험은 마귀에게 한번만 절을 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주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도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기록이 있는데 그것에는 두 번째 시험과 세 번째 시험이 바꿔져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 지극히 높은 산이라고 하는 곳은 해발 9천 피트나 되는 헐몬산을 말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고 하였는데 마귀가 어떻게 만국의 치리권과 그의 영광을 넘겨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마귀는 말하기를 세상의 정치와 세상의 권세는 내게 속한 것이니
‘내게 엎드려 절을 하라’ ‘그리고 나와 타협하자’
‘나의 도움을 받으라’
‘나를 이용하여 너의 명예와 권세를 잡아 보라, 너의 메시아로 가는 길은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 아니냐?’
‘그러므로 나에게 한번만 머리를 숙여보라 그리하면 십자가의 치욕의 죽음 대신에 만국을 다스리는 영광을 주리라’ 고 유혹을 합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유혹하여 타락시킨 마귀는 예수님도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그러나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이 유혹의 덫에 걸려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고난보다는 평안함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 예속되어 사는 것보다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더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고 말씀 하셨지만 좁고 협착한 천국 길보다는 당장 넓고 편리한 세상 길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또 사탄은 「한 번」이라는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함으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한번이야말로 얼마나 위험한 유혹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은 두 번 세 번으로 연결되고 결국은 파멸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마약 중독자를 보십시오 단 한번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도둑질을 하는 도둑놈들을 보십시오 그들도 딱 한번 만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딱 한잔만 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한잔은 두 잔이 되고 두 잔은 세 잔이 되고 결국은 인사불성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번이라는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날도 “오늘 한번만 빠지고 다음주일부터 잘 나가면 되지” 하고 자위하여 보지만 한번 빠진 주일은 다음 주일에 또 빠질 일이 생기게 됩니다.
새벽기도도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내일부터 나가지” 한 것이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조금만 쉬었다가 나간다고 한 것이 1년이 지날 수도 있고 영영 새벽기도와는 멀어져 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 번째 시험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본문 10절 말씀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패와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마귀가 제시하는 조건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적당히 사탄과도 타협하고 적당히 불신자들과도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유리할 대로 편리하게 해석도 하고 변질도 시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혼합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믿음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고후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예> 일제시대에 주기철 목사님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문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주기철 목사님에게 묻기를 “목사님! 정말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러면 왜 우리가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나는 그렇다고 해도 목사님은 믿음이 훌륭하시니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어서 베드로처럼 꺼내 주시든지 아니면 일본을 폭삭 망하게 하시든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라고 하는 말에 주기철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그대가 정말로 고문을 참기가 힘들거든 변절을 하라 차라리 변절을 하는 것이 지금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때 일제는 마치 사탄과도 같이 ‘단 한번만 신사에 절을 하라. 단 한마디만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라’ 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그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때만 지나고 나중에 회개하면 되지 하며 스스로 자위하면서 변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탄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유혹할 때와 같이 또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를 유혹하듯이 오늘도 쉬지 않고 우리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유혹을 받을 때에 예수님과 같이 “사탄아 물러가라” 고 담대하게 승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에 완전히 승리하셨고 사탄 마귀는 완전히 패배하여 쫓겨갔습니다. 마귀가 떠나자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습니다.
11절 말씀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물리쳐야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와 천사는 항상 교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이겨야 천사의 수종과 보호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되 모두 승리하셔서 메시아의 구속 사업을 완수하신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유혹과 환난과 시험을 당할 때에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이기려면 그냥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영적 존재이며 우리는 육신을 가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만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 갑주로 영적 무장을 하여야 합니다.
(엡6:14-16)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우리도 이길 수 있습니다.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오늘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쉬임없이 몰려오는 온갖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말씀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