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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록 작은 겨자씨이지만 (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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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적다고 말할 때 뭐라고 말합니까?
‘좁쌀만하다. 또는 좀 지저분하지만 코딱지만하다. 또는 눈곱만큼, 쥐꼬리만큼’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는 작다고 표현할 때 ‘겨자씨만하다.’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라고 겨자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겨자씨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예전에 어떤 분이 주셔서 본적이 있었는데 잘 보관하려고 했는데 너무 작아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좁쌀보다 훨씬 적은 씨앗이었습니다. 
아마 콧김이 샌 사람이 손바닥에 놓고 보다가 잘못하면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작은 겨자씨를 천국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작은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세계 최고” “동양 최대”란 말을 쓰기 좋아합니다. 

한 마을에 빵집이 여러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빵집에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맛있는 빵집”이라고 현수막을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옆집에 있던 빵집이 “동양에서 최고로 맛있는 빵집”이라고 광고를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옆집에 있던 빵집은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빵집”이라고 한술 더 떠서 현수막을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빵집이 현수막을 부쳤는데 뭐라고 했겠습니까?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맛있는 빵집”
여러분은 어느 빵집에서 빵을 사시겠습니까? 먹어 보고 맛있는 집이겠지만 만약 이름만 보고 들어가라면 어느 집으로 들어가서 빵을 사시겠습니까?
저는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맛있는 빵집에서 빵을 살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최고가 먼저 되어야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어야 동양에서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면 큰 것도 못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작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찮게 여깁니다.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어린이들에게 요즘 100원을 주면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요즘은 거지들도 100원을 드리면 “뭐 나를 거지인줄 아나?”라고 화를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아는 사람이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록펠러는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남을 위해서 가장 많은 돈을 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작은 돈이라고 함부로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단골로 가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자기를 위해서 봉사하는 종업원에게 언제나 15센트의 팁(1, 200원정도)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하고 나서 팁을 주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더니 5센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5센트만 팁을 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작은 팁에 불만이 많았던 종업원은 결국 록펠러에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록펠러씨, 내가 만일 당신 같은 부자라면 그까짓 10센트 때문에 쩨쩨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록펠러는 종업원을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업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네. 부자인 나도 10센트를 아끼는데 어떻게 자네가 10센트를 하찮게 여기는가?” 그렇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에게 큰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를 소중히 여깁니다. 작은 것은 소중히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씀하신 성경이 있습니다. 어디 입니까?
누가복음입니다. 15장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시면
100마리의 양 중에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시는 목자의 마음, 10드라크마 중에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림으로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소중히 여인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양은 99마리의 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숫자로 계산하면 99는 1보다 훨씬 많은 수입니다. 9드라크마보다 1드라크마는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99(아흔 아홉)보다 1(하나)을, 10(십)보다 1(일)을 귀한 것은 이 한 마리가 이 한 드라크마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 마리의 양입니다. 여러분이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하나는 비록 적은 수이지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 처지가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또 내가 하는 일이 별 볼이 없는 일처럼 보고, 내가 초라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겨자씨 같은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욥기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겨자씨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비록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앞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죽은 것에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에는 무한한 잠재력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고,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미미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이렇게 창대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독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놀랍게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죽은 종교가 아니고 살아있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살아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놀라운 진리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곧 희망입니다. 생명은 꿈입니다. 생명이 비전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것은 꿈이고 희망이고 비전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겨자씨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랍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밭에 심으면 빠른 속도로 자랍니다. 쑥쑥 자랍니다. 대부분의 겨자씨들이 밭에 뿌려져서 자라면 4M나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기에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이 있습니다. 이들도 자랄 것입니다. 쑥쑥 자랄 것입니다. 몸도 자라고 지혜도 자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겨자씨와 같이 어리고 약한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이들은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장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 바로 우리 어린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어린이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꿈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비전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교회에 가장 겨자씨와 같은 사람은 오늘 100일을 맞은 지민이인 것 같습니다. 지민이가 오늘 출석한 교인들 중에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지민이가 자랄 것입니다.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사회성도 자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대감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주신다면 우리 어린이들은 겨자씨가 자라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지민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오늘 겨자씨는 자랐습니다. 4M~5M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자란 나무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서 깃들었습니다.
여러분 나무가 자라서 새들에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겨자씨가 존재하는 목적이고 천국을 소유한 우리들의 목적입니다.

동화책 중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에게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 받은 사람은 자기만 복을 받고 그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의 사람은 나도 복을 받고 다른 사람도 나로 인하여 복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남을 더욱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것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 가운데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어거스터스였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한 신비한 노인이 밤중에 산모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의 사랑도 받고, 친구의 사랑도 받고, 이웃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행복치 않았습니다. 사랑만 받고 베풀지 못하니까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노인이 되어서 결국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외롭고 비참한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에게 신비한 노인이 또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삶에 만족합니까?”
어거스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어 주고,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해 주고,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축복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작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살아있고 여러분이 말씀으로 살아있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성장할 것입니다. 왜 성장해야 합니까? 세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을 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입니다. 나눌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교회가 구체적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계획을 가져야할까요? 여러분 우리의 가족이 성탄절을 통해서 새들이 깃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함께 기도하며 작은 것 하나를 실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찬양하시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겨자씨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크게 자라도록 기도하십시다. 더 좋은 나무로 자라도록 기도하십시다.
우리 교회도 겨자씨 같은 교회입니다. 이제 성장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십시다. 복의 근원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이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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