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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른 비와 늦은 비 (신 1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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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된 일입니다만, 『TIME』지에 감동적인 사진 한 장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폴로 13호’의 사진이었습니다. 달을 향해 가던 ‘아폴로 13호’가 지구로부터 2만 마일 우주 공간에서 고장이 났습니다. 산소 탱크가 폭발해서 타고 있던 우주비행사 3명의 목숨이 위협 받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4일간의 사투 끝의 ‘무사귀환’이었습니다. 비행선이 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는데, 거기서 내리는 우주비행사가 대기하고 있던 군목(軍牧)과 손을 마주잡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비행사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대통령 각하와 국민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무사귀환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본인들의 집념과 노력, 우주항공국 NASA 본부 요원들의 헌신도 귀한 것이었지만, 대통령과 전 국민이 시간을 정해놓고 함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그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집념과 노력의 위대성, 과학의 위대함 등입니다. 그러나 놓쳐서 안 될 것은 인간의 한계와 과학의 불완전성,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役事) 등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과학만능주의, 인본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머리를 써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생에 대해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은 분명히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하나님 없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결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아니, 생존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신 분입니다. 자존자(自存者)입니다. 인간이 없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의존자(依存者)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고백하며 사는 게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 성경의 주제가 바로 그겁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점점하고 참 신앙으로 반드시 성공하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 출애굽해서 광야 40년의 여정을 거의 마쳐가는 때에 모세가 백성들에게 당부한 말씀입니다. 그는 이미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이제 비장한 마음으로 말씀을 다시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함께 들어갈 수 없음을 통보받았기 때문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40년 동안 인도했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어서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을 맡기고 떠나는 그 심정이 어떠할지!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를 대할 때 모세의 그 비장한 마음을 헤아리며 읽어야 합니다.

[1] 축복의 원천 : 하나님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모든 축복의 원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4절~15절.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여기서 중요한 말이 ‘여호와께서’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는 농경 시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주로 농사나 목축과 관련해서 설명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의 원천임을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이 복을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복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릴 사명을 주실 때 먼저 복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약1:17에도 보면 하나님이 축복의 원천임을 강조합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 ”

[2]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 :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간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본래부터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을 기울이고 애를 써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것입니다. 시127:1~2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본문 14절에서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임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 즉 팔레스틴 지방은 우리와 전혀 다른 기후입니다. 우리는 4계절이 뚜렷하지만, 그곳은 우기와 건기로 나눠집니다. 우기가 있다 하더라도 연평균 강우량은 600mm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양이 충분히 내리고, 시기적절하게 내리면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있어 비는 문자 그대로 단비요, 축복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비 중에서도 ‘이른 비’와 ‘늦은 비’(14절)가 중요합니다. 이런 비가 내려야 농사가 잘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이른 비는 건기가 끝날 무렵 내리는 비입니다. 양력으로 9월말~10월경에 내리는 비로, 땅을 촉촉이 적시는 비입니다. 건기 내내 땅은 메마르고 갈라지게 됩니다. 거기에다 그냥 씨를 뿌리면 다 죽어버립니다. 파종기에 정말 요긴한 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늦은 비는 우기가 끝날 무렵 내리는 비입니다. 양력으로 3월~4월경에 내리는 비로 땅을 흠뻑 적시는 소낙비입니다. 늦은 비는 마지막 결실기에 낟알을 영글게 해 주는 비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충분히,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내려주셔야 그 해 가 풍년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여지없이 흉년이 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절대 의존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니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삶을 위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시기적절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듯이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를 시기적절하게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 : 말씀에 청종하는 삶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지만 우리 편에서는 받을 자세를 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효과적으로 은혜를 받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충분히 시기적절하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13절.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 ” 여기서 ‘나의 명령’은 곧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하고, 복된 삶을 보장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말씀에 청종하고, 말씀에 청종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임을 감안하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 청종’이 핵심적인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축복된 삶의 원리요 법칙입니다.

신명기 28장(축복과 저주의 장)을 보면 말씀에 청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 보면 말씀에 청종하는 것은 두 가지가 포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을 삼가 잘 듣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 ...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 ” 영어성경(KJV)을 보면 더욱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임한다는 말은 come on(뒤에서 따라오다)으로, 미친다는 말은 overtake(뒤따라가 붙잡다, 덮치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축복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표현한 것입니다. 마치 복이 뒤좇아 가서 붙잡듯이 복이 확실하게 부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또 순종한다는 헬라어 단어를 잘 분석해 보면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순종한다는 말은 ‘휘파쿠오’(υπακουω)인데, 이 단어는 ‘~아래에서’(under)라는 뜻의 ‘휘포’(υπο)와 ‘듣다’(listen)라는 뜻의 ‘아쿠오’(ακουω)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말씀 아래에서 겸손히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말은 순종한다고 하지만, 자주 말씀 위에 서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듣고 내가 옳다 그르다 하면 이미 내가 말씀 위에서 심판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니까 무시하면 이미 내가 말씀 위에 군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나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자신이 말씀 위에 서서 판단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게 순종하는 겁니다.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프란체스코의 일화입니다. 수도원에서 농사일을 보고 있는데, 마침 두 청년이 왔습니다. 수도사가 되고 싶으니 받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프란체스코가 그 말에 가타부타 하지 않고 배추를 주면서 뿌리가 하늘로 향하도록 심으라고 말하고 가버립니다. 두 청년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배추를 심으면 죽을 게 뻔한데 그럴 수도 없고, 안 그럴 수도 없고 ... 한 청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뿌리를 땅 속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청년은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한참 후에 와서 한 청년은 받아주고 한 청년은 돌려보냈습니다. 누구를 받아줬겠습니까? 이치에 맞지 않아도 프란체스코의 인격을 믿고 순종한 청년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또한 ‘즉시’ 해야 됩니다. 만일 말씀을 듣고도 꾸물거리면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거역하는 것만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을 지체하는 것도 불순종입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뒤뜰에서 놀고 있는데 그 선교사가 옆으로 지나가다가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얘! 빨리 땅에 엎드려!” 그 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즉시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또 외칩니다. “빨리 기어서 아빠한테 와!” 아이는 계속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선교사가 말합니다. “이젠 일어나서 아빠한테 달려와라!” 아이가 달려오자 선교사는 와락 안고 한숨을 내쉽니다. 사연인즉슨 아이가 놀고 있는 바로 위 나뭇가지에 독사가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빠의 말에 아이가 대꾸하면서 지체했다면 큰일 났을 겁니다. ‘즉시’ 순종하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겁니다.

렘7:23 보면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소리, 즉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미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은 사실이지만,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 순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역사해 주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할 게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해도 그 결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유용한 도구로 기도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즉각적으로 안 될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더불어 인내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며 인내하고, 인내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 약5:16~18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그러므로 순종하며 기도하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당장 무엇이 이뤄지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좋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를 맞추기 위해 지연시킬 때도 있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말씀에 불순종하는 게 걱정이지,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면 다른 것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경고의 말씀 : 하나님을 떠나지 말 것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에 청종하되 혹시라도 태만해지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16절 보면 스스로 삼가고,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영적인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미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16절.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 ” 여기서 ‘미혹’이란 단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혹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파타’인데, 본래의 뜻은 ‘공간이 넓다’ ‘열어놓다’ 등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태만하게 열어놓을 때 마귀의 유혹과 죄악에 미혹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엡4:27에서는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생쥐와 비슷합니다. 조금만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죄에게 틈을 보이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대번에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17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신28:16~24 참조)

미혹을 받아 불순종하는 게 얼마나 나쁜 건지 모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말씀에 불순종하다 어려움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침에 등교할 때 날씨가 흐리면 어머니가 우산을 갖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가방도 엄청 무겁고, 우산도 얼마나 길고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귀찮다며 그냥 가버립니다. 그러는 날이면 영락없이 하교 길에 비가 쏟아집니다. 비를 맞고 생쥐 모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말을 듣지 않은 데 대해 은근히 꾸중하시던 말이 있습니다. “거 봐라! 내가 뭐라 하든 ... ” 마치 이 말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거 봐라! 내가 뭐라 하든 ...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신11:22~23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하면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얻을 것인즉 ... ” 여기서 부종(附從)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어로 ‘다바크’인데 접착제로 붙인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에 청종하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사는 ‘의존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충분하고도 시기적절한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비로소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모쪼록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시고, 말씀에 청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축복의 생애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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