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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결심 (대하 16:9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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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방문 하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지난 잔치는 아주 풍성했습니다. 새롭게 초대받은 사람이 1600명이 넘었습니다. 시간마다 본당이 가득한 느낌을 받았고 밤에는 3, 4층까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지금 앉아 계시는 숫자의 비교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마음을 합해서 동참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이번 생명 사랑 나눔 잔치를 통해서 새로운 발걸음을 교회를 향해 디딘 분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새로운 결심”이라고 잡아 보았습니다.

세상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헌신된 소수의 사람, 전적으로 헌신된 몇 몇 사람이 역사의 물결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데에 정치가 그 대답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육이 그 대답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직 그 대답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 민족의 장래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변화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고 한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그가 사는 환경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복음을 받아들이면 주위 환경이 깨끗해집니다. 청소를 하고 삽니다. 그러면서 그뿐만 아니라 사람관계에 달라지기 시작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함께 한 이웃 여러분, 여러분이 결심하면 세상은 변합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결심을 하면 세상은 새롭게 바뀝니다. 새로운 결심이 없이는 새로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결심이 있을 때에 세상은 바뀌어 질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결심을 하는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보람된 삶이라는 것은 사실 결심이 빚어낸 작품입니다. 오늘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보여주시면 내일 어디에 도착할 것인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지를 들려주시면 내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상)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사람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두루 살피시면서 누가 자기에게 전심으로 향하는지 달리 말해서 누가 새로운 결심을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원하는지 그 사람을 찾으셔서 그에게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전심전력으로 주께 매달리기로 결단하십시오.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새로운 결심을 하면 삶에 차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대강 대강 살아가는 것과 대충 대충 믿기로 하는 것과는 내가 한번 주님을 제대로 한번 믿어 보겠다. 제대로 한번 섬겨 보겠다. 라고 결심하는 것은 차이가 날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세상만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충 대충하는 것 하고 정말 한번 잘하려고 결심하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잔치를 통해서 이 자리에 함께한 이웃 여러분, 그리고 수년 동안 믿어온 울산교회 교우 여러분, 사실 새로운 결심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부분적인 헌신과 전적인 헌신, 가끔 헌신하는 것과 항상 헌신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예수님을 향한 어떤 새로운 결심을 하고 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원합니까? 주님을 향한 다섯 가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다섯 가지 목적을 갖고 계신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그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셨고 아직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향해서 다섯 가지 목적을 갖고 계시지만 여러분을 강제하시진 않습니다. 여러분을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섯 가지 목적을 갖고 계시지만 거기에 응하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될 때에 여러분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라도 결심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수준의 삶을 살지 못하고 그 이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을 바꾸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다섯 가지 새로운 결심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먼저

1.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심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누구를 위해서 드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아는 것, 섬기는 것, 그분을 칭송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일생일대의 결단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중요한 결단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직업에 관한 선택도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라에는 20대에 태반이 넘는 젊은이들이 아직도 직업을 선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수입이 있어야 먹고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 문제가 있지요? 도대체 이렇게 살면서 누구와 같이 살 것인가? 누구와 더불어 살 것인지 아니면 내가 독신으로 끝까지 갈 것인지? 결혼한다면 누구와 할 것인지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누구와 살 것인지를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좌우됩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고통도 겪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것 때문에 겪는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직장을 가졌던지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했던지 거기서 받는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하는 결정은 영원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듣기를 원해서든지 아니면 사장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든지 집에서 아내의 마음에 들던지 그렇지 않으면 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목표에 따라서 살던지 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아직도 살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사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인 (主)자 이지요?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날 위해 죽으셨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난 것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님을 사흘 만에 살린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열심히 왔다 갔다 한다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의 제물로 주셨다가 그의 죽음을 인정하셔서 사흘 만에 다시 살려 준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은 데서부터 다시 살리신 그 하나님이 오늘 나의 삶에도 주인인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는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왜 그렇게 합니까? 내가 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경상도 사람들은 그래서 새빠지게 일한다. 그러지요?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죽음에서 예수님을 살려내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책임을 집니까? 주인이 주인노릇을 하려면 책임을 져 주어야합니다. 남편이 남편노릇을 하려면 책임을 져 주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을 하려면 국민의 안위와 복락에 대해 책임을 질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主라고 부르는 이상 당신이 나머지를 책임지기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 삶을 주님께 드리는 데도 값이 따릅니다. 백화점에 가면 온갖 백화가 널려 있지만 물건마다 가격표가 붙어있어요. 얻는 이것을 사므로 얻는 유익이 있고 내가 지불하는 값이 있습니다. 새로운 결심을 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영적으로 새로워집니다. 주님을 닮아가고 성숙해 질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까? 여러분 마음대로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인이라 생각하고 모든 고민 내가하고 내가 최후의 결정을 내립니다. 그래서 머리가 우지끈거리는 겁니다. 그것 더 이상 하시면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신앙생활의 첫 출발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강 대강 교회에 출석하고 사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교회만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냥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잘못된 길로, 다른 사람도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 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10년 20년을 예수를 믿는데 졸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또 투표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교회에 여러분 스스로의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겁니다.

오래 믿은 사람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내가 과연 본을 보이고 있는지, 사람들이 내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모습이라고 볼 것인지,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자신이야 자신의 결정에 따라서 책임을 져야하겠지만 다른 사람까지 잘못된 길로 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믿는 데는 하나의 조건, 지금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물어보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되겠습니까? 저렇게 되겠습니까? 묻는 겁니다.

그러면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지금껏 지은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습니다. 지금껏 지은 여러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미리 그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값을 치루셨습니다. 

둘째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죽은 자리에서 그를 살리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죽은 것 같은 삶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파산을 한 삶이라고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죽은 지 사흘 되는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끝난 것 같습니까?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지금 나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죽음에서 살리신 그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 삶이 바뀝니다.

셋째로 왜 사는지 목표를 뚜렷하게 붙잡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황홀해 질 것입니다. 살다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여러분은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장 받습니다. 딱하나 여러분의 마음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시면 하나님은 죄 사함과 새 능력과 삶의 목적과 영생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래 괜찮습니까?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결단을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원하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는데 우리의 마음을 모릅니까? 압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압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 나도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고 마음에 결심을 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자녀로 맞으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값으로 치루고 우리의 길을 예배하셨는데 여러분이 하나님께 손을 내 밀기만 하면 붙잡아 줍니다. 여러분이 제대로 하려고 이것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아무리 결심해도 그것은 안 됩니다. 될 일이라면 여러분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안됩니다. 안 되는 것을 알아야 이것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돌아설 것이 아닙니까?  안되면 돌아서야지 40년 50년 한 것을 그것을 아직도 길이 있다고 찾고 있으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 내 마음을 엽니다. 들어오셔서 나의 남은 삶을 책임져주시옵소서”라고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결단입니다.

2. 믿음의 식구가 되기로 결심하십시오.

믿음의 식구가 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 속하기로 결심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서 홀로 살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산골짜기에 혼자 두면 삽니까? 못 삽니다. 믿음의 생활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혼자 잘 해 보라고 하나님은 던져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 엄마도 자식을 그렇게 취급하지 않는데 하나님은 그럴 리 만무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적은 소그룹의 한사람이 되도록 그래서 서로 서로 격려하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사실은 엄청난 특권인데도 이 예수 믿는 것이 너무나 쉬워서 설탕 봉지를 쌓아두고 주면서 믿으라고 하니까 교회 오는데 아무도 뒷조사하는 것도 없고 순경도 방해 하지 않으니까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지상에서도 명문가의 일원이 되면 결혼을 통해 출생을 통해 일원이 되면 그에 따르는 특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는 특권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가 없으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 속할 가정이 없으면 그 아이를 뭐라고 합니까? 고아라고 합니다. 자기가 속할 교회가 없으면 등록된 교회가 없으면 그건 영적인 고아입니다. 길 잃은 어린양도 불쌍하지만 길 잃은 늙은 양은 더욱 불쌍합니다. 세상에 예수 믿은 지 10년 2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가 없어 자기가 헌신하고 자기 삶을 전부 바치고 자기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교회가 없고 대상이 없으면 그건 비참한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의 길을 걷기 원하시면 한 지역 교회에 속하셔야 합니다. 결혼 생활을 혼자서 못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나서도 구역예배에 참석하고 하면 어떨 때는 성가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잠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가 없으면 외양간이 깨끗하다는 겁니다. 외양간을 치울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나 소가 있으면 얻는 유익도 크다는 겁니다. 아무에게도 관계하지 않고 나 혼자 살면 편해 보이기는 하지만 같이 삶을 삶으로서 얻는 유익은 엄청난 겁니다.

인간은 사람사이에 있을 때 사람人 사이間 사람사이에 있을 때 사람구실을 하는 겁니다. 혼자 살도록 절대로 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지내면 마음 상할 일이 적을 것 같다고요? 그렇지만 함께 어울리면서 얻는 유익은 신앙성장에 절대적입니다.

아직도 교회에 속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여기에 얼굴을 내민 분 있습니까? 결단을 하십시오. 울산광역시에는 450여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저는 굳이 여러분이 울산교회를 택하라고 강권하지 않겠습니다. 450여교회중에 하나를 택하고 거기에 헌신을 해야 합니다.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십시오. 소비자가 아니라 기여자가 되어야 됩니다. 예배에 그냥한번 와 봤다가 아니라 그 교회에 나는 소속된 교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여러분이 해야 할 결심입니다.

3. 주님을 닮아가기로 결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면 자녀들이 누구를 닮아야 됩니까? 아버지를 닮아야 되지요. 엄마를 닮아야 되지요. 부모를 닮아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우리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를 기억하고 떠 올릴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30년 50년 예수를 믿었는데 ‘그 사람 옆에 가면 찬바람이 나, 무서워!’ 그러면 그건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천국에서 유일한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신분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 주신 그분을 30년 50년 믿었는데 물건 하나 가지고 돈 몇 푼 가지고 움켜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아직 제대로 못 배운 겁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말도 한국말로 예수쟁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칭송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속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 들기 시작하면 예수님이 행동하는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결정하고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대하며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섬기는 분들이 모두 되기로 결단하십시오.

나의 믿음과 처신이, 나의 태도와 행동이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답게 되어야 합니다. 감정조차도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이 슬퍼하는 것을 슬퍼하고 사람들이 악을 저지르고 서로에 대해서 해치며 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척 하면서 위선을 범하면 뒤집어엎고 싶은 열망이 있어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상을 뒤집어엎고 비둘기를 다 풀어 놓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얌전하게만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생각도 예수님처럼 해야 되고 우리의 감정까지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한 사람이 주 앞에 돌아오는 그 일을 보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떼를 그냥 두고 그 하나를 위해서 돌아오는 순간은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기뻐한다고 했는데 세상에, 일, 월, 화, 수 나흘 동안 축제의 잔치를 하고 있는데 한 번도 교회를 나와 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회개해야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삽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산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짧은데 그렇게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시중들기 위해서 소모할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변해야 됩니다.

주님이 열정을 쏟는 일에 우리도 열정을 쏟을 수 있도록, 그래서 저는 울산에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백만에 대해서 마음이 가 있습니다. 저는 울산교회 담임 목사로서 울산교회만 커지는 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울산교회는 자랄 수 있습니다.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열배나 많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제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을 제 목표로 삼으면 저는 다른 교회와 더불어 다른 목사와 더불어 동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백만의 시민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겁니다.

‘울산에 거기 가보면 정말 달라 사람 사는 동네 같아’ 전국이 60개 70개의 광역시로 나눠지는 순간에 울산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 할 수 있도록 울산이 희망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울산교회에 왔을 때 그해 여름에 울산교회 교인 한 가정과 휴가를 갔는데 이야기를 하던데 그 여자 분이 하시는 말이 자기의 꿈이 서울에 가는 것이라네요. 저는 그때 얼마나 쇼크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그럼 나는 뭐 하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여자 분께서는 꿈이 서울에 가서 사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울산이 서울보다 더 사람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제 꿈입니다.

시민들은 아무도 제게 투표를 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 일을 위해서 박맹우 시장보다 더 열심히 일합니다. 하기는 바쁘게 쫓아다니는 것을 보면 박시장도 불쌍하더라고요. 내가 아침에 맛있는 밥을 먹을 때 마다 늘 시장을 기억합니다. ‘참 안됐다.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이것도 못 먹다니!’ 하는 생각을 하지요.

여러분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한 순간에 원샷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잔을 마시면 그다음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은 만화에 나옵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하나짜리 테이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권의 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회에 한 번 참석하면 그냥 확 변한다. 그러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으니까 아이가 확 큽디까? 세상에 그러질 않더라고요. 조금씩, 조금씩 크고 사람만큼 손이 많이 가고 시간 이 많이 걸리는 것은 없습니다. 저도 30년 키운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직도 제 손이 가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도 그렇게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기독교의 초보적인 진리만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깊은 신앙생활을 하려면 더 깊은 진리를 배우는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할까요? 12시에 마치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켠다. 맞습니까? 신문을 펼친다. 맞습니까? 지난번 축제에 처음 나온 사람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답이 뭔지를 모르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꼭 텔레비전을 켜고 싶으시면 69번을 켜십시오. 가끔 좋은 소리가 나옵니다. 꼭 신문이 보고 싶으면 국민일보를 보시면 미션섹션에 가끔 좋은 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간을 아껴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면 하나님처럼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처럼 섬기게 됩니다.

4. 받은 은혜로 섬기기로 결심하십시오.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립니다.”라고 찬송하는 것은 모두 다 성직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찬송을 청년 때에 부를 때 마다 내가 목사가 돼야 되는 걸로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그쪽으로 소명을 주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몸 드린다는 것이 목사가 되는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내 평생은 이거다 생각해서 나는 숨이 넘어가면서 뭘 하고 살았으면 숨 넘어 가는 순간에 참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이 들것인가를 생각하니까 이 일이 제일 보람이 있게 마감할 수 있는 삶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보낼 때 그냥 보낸 것이 아니고 은사를 주셔서 보냈어요. 그러면 거기에 부합하는 사역을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그 재능과 능력을 통해서 누군가를 도와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길 원하십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욕심을 챙기려고 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면 다 목사가 주일날에 설교 하는 것만큼이나 거룩한 삶입니다. 섬김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얼굴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말이 안 됩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여러분에게 맡기질 않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한테 다 맡겨두었으면 일이 안될 뻔 했습니다. 이번 축제를 통해서 장식하는 것 그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 분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저는 할 줄도 모르고 해야 된다고 생각도 못 해 봤지만 해 놓으니까 멋지네! 오늘처럼 많은 분들이 이렇게 처음 오실 때는 이정도 이상으로 꾸미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린 페스티벌을 하기 위해서 지금 장식을 했지만 나에게만 시키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시길 원하시는지 다 각자 주특기가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리가 만무하거든요. 여러 가지 재능이 다르잖아요. 능력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이 마음이 가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뜨개질을 하는 것이 좋고요. 어떤 사람은 염색을 하는 것이 좋고요. 어떤 사람은 밥을 해서 먹이는 것이 좋아요. 다 달라요.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것도 다르지요. 교육수준이 다릅니다. 전체다 가르치는 사람, 가르치는 일을 할 이유가 없어요. 공부 말고 별로 잘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가르치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공부 말고 잘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 뭣 때문에 공부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마음에 보람을 느끼는지 마음에 기쁨이 있는지 사람들이 하고 나면 참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지 그것이 바로 그 일을 통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돈을 벌기 위해서 주일날 미장원을 열면 그것은 주일을 범하는 겁니다. 그러나 같은 기술을 가지고 머리를 못하고 몇 달씩 살고 있는 사람을 주일날에 가서 하면 일하는 겁니까? 이것이 구별이 안 돼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이라는 것은 내가 먹고 살기 위한 일하고 봉사하는 것 사역하는 것과 다른 겁니다. 주일날 우리집사님이 전 집사님은 그렇지 않지만 차량 수리하는 것을 오픈하면 그것은 지탄 받아야할 대상이지만 전 집사님이 주일날 운전하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는 여자들이 많이 있잖아요. 교회에 남편도 없고 그런 사람들을 차를 손봐주면 그것 일한다고 지탄 받아야 됩니까? 구별을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은사가 다 다릅니다. 거기에 따라서 일을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벧전4:10, 현대어성경)

우리는 누구에게나 특기가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할 때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부어주신 복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사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내가 예수 믿고 나 혼자 천국가기위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 “I'm saved to serve” 나는 섬기기 위해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그렇게 말했지요.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막10:45, 표준새번역) 고 주님이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은 지 수년이 되고 수십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대접만 받고 섬기는 사역이 없으면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이제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이도 태어나서 3년 5년 10년쯤 되면 그래도 먹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책상을 치우고 자기 옷이라도 제대로 벗을 줄 알고 해야 되는 일이 있어야 되는데 예수 믿은 지 10년 2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누가 나를 안 챙겨주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숙하지 않는 성도들로 인해서 걱정합니다. “여러분은 벌써 오래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을 가르칠 만도 한데 아직도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도 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히5:12, 현대어성경)

아직도 수년 동안 구역 원 노릇만 하고 있는 분 없습니까? 3년 넘도록 계속해서 권찰만 하고 있는 분 없습니까? 나가서 이제는 구역하나 맡아서 새로 시작해야지요. 이번에 이렇게 새로 오신분이 많은데 여러분들의 구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남을 한번 새로 시작해 보십시오.

구역장 봉사, 성가대 봉사, 교사 봉사 말고도 세상에는 섬길만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주보에 보니까 백합부라고 좀 지체부자유한 아이들을 섬기는 부서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서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요. 가르칠 사람 그리고 왔다갔다 실어다 줄 사람을. 혹시 여러분 중에서 교사하고 싶었던 분 있으면 여러분이 아는 것만큼만 가르쳐 줘도 충분히 감사하고 그 아이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도 안 됩니다. 운전밖에 안됩니다. 그러면 운전을 하시면 됩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 주일날 내가 봉사하는 날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섬기는 일들은 세상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사랑으로 돌보려고 하면 여러분의 방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어제 우리 밝은 미래복지재단에서 아이들에게 장학금과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그 시간 참석하여 감동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사장이라고 인사말을 하려고 아이들을 신경 쓰고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진짜 아이들이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울산광역시 교육위원회 교육장께서 와서 한마디 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자기들의 이야기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데 동생과 늘 싸워서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해요. 지금부터 잘 할게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떠들던 아이들이 그렇게 조용해 질수 있더라고요. 어떤 엄마가 몸이 불편해 절룩거리며 단상에 겨우 올라가서 “네가 운동회라고 날 오라고 했지? 난 너 생각하고 너 때문에 안 가려고 그랬어. 그런데 용기를 내어 갔더니 네가 시선을 내게서 돌리고 있더라. 그때 내가 마음이 아팠어” 그런 이야기를 편지로 읽으니까 아이들이 조용해지면서 모두들 듣더라고요.

5. 사랑의 전달자가 되기로 결심하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다섯 번째 일은 하나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우리 울산교회는 울산시내에서 독특한 교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독특한교회입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 울산교회 성도만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남다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15년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새생명 훈련원이 울산교회 훈련원이 아니라 광역 훈련원으로 내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도 복음에 대해서 짧은 시간에 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영리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자연계에 자연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도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제 1원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논산 훈련소를 왜 거칩니까? 일단 유사시에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인이 되기 위해 거치는 것입니다. 제대증을 받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착각을 하지만 1기 5기 7기 그것 내어 놓기 위해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훈련은 그 목적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영리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하고 말 할 수 있는 교회는 준비된 교회는 우리 울산교회 밖에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귀하게 놀랍게 사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울산을 복음화 시키는데 여러분들이 울산복음화는 누가! 내가! 라고 소리쳤던 여러분들이 백만 영혼은 누가! 우리가! 라고 소리쳤던 여러분들이 이 일에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2010년 전국이 60개 70개 광역시로 나눠질 때 울산이 어떻게 복음화 되었는지 울산이 그들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울산이 공해가 많은 도시가 아니라 울산에 가면 정말로 사람 살만한 도시야! 사람들이 눈빛이 달라 거기서는 절망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도시, 기왕 한평생 살면서 그러고 살날이 산 날보다 훨씬 짧다는데 우리가 그냥 되는대로 살아서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의 전달자가 되기로 결심하십시오. 훈련받은 여러분, ‘이제는 생사나 축제가 지나갔다 1년은 안심이다’ 그러지 말고 ‘이제부터 다시 일주일에 한사람씩 복음 때문에 만난다.’ 복음을 전하려고 만나고 만나는 겁니다.

예수 믿고 나서 여러분이 아무것도 바뀐 것도 없고 재미도 없으면 절대 다른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와서 들어오기 전과 비교해서 아무차이가 없으면 사람들이 바빠요. 데리고 오지 마세요. 바쁜 사람을 왜 더 바쁘게 만듭니까?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여러분이 들어와서 삶의 목표가 분명해지고 부를 노래가 뚜렷해지면 입에 감사가 있고 삶이 달라졌으면 여러분은 전해야 됩니다. 안 전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난번 축제 때 그랬지요? 여러분 보고 예수를 믿으라고 한 번도 전도 안한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고, 친구를 삼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이미 주일날 교회 나와서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은혜가 많다’고 노래하면서 왜 노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한숨쉬며 저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새 삶의 길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

목사가 전도하러 가는 것은 받는 월급을 더 받기 위해서 인줄 압니까? 울산 시내는 울산교회보다 큰 교회는 많지 않아도 울산교회 정목사 보다 좋은 차  타는 사람 많습니다. 차를 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지금 타고 있는 차도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티즈가 제 수준에 맞는 것 같아요. 결심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일을 잘 풀어 주셔서 이용구 목사님이 오시는데 차가 하나 준비되기를 바랍니다. 같은 값이면 차를 많이 만들고 있는 정몽준씨가 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 그 일이 안되면 제가 제차 내어 놓을 겁니다. 그러고 저는 마티즈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불편해 질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의 생각도 하고 있으니까 함부로 결정을 못 하고 있습니다만 기도는 열심히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저는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이 좋은 소식에 굶주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알고 그렇게 흘리던 그 눈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대면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이제는 매 주일 복음을 전한다’라고 각오를 하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이 그것을 듣게 될 그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예루살렘, 점점 지경을 넓혀서 땅 끝까지 복음을 듣게 하십시오.

주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시간을 주고 계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벧후3:15, 현대어성경)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분명하게 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사역은 없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그가 사는 주민이 바뀌어 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뀌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얼마나 바뀌는지 지난번 새 생명 훈련을 받으면서 한 서너 분이 자기 남편이 교회로 나오게 된 것, 보니까 아내가 바뀌니까 아내의 마음이 바뀌니까 사람이 주위의 있는 사람이 영향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방문자 여러분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다섯 가지 새로운 결심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십시오. 첫째는 우리의 삶을 주께 드려야 됩니다. 둘째는 소속된 교회가 있어야 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혹시 아직도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은 적이 없는 분은 없습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지 않으신 분은 바로 여러분 옆에 앉은 분에게 책을 좀 빌려달라고 하십시오. 그래서 읽어 보십시오.

미국에서는 성경책을 읽는 가정은 거의 다 목적을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이라는 책이 있다고 그럽니다. 엄청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들으셨지요? 법정에서 총기 난사한 사람이 목적을 이끄는 삶을 읽은 자매에 의해서 하룻밤에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변화 시킵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있으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섯 가지 가운데 몇 가지 결심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 몇 몇을 찾으시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소수의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있으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전적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 사랑 전하기 위해서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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