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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보아 주라 (요 21:1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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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5-23.

지난주일, 우리는 이웃초청 잔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고 우리 이웃들이 듣고 이해하고 믿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동안 1500명 정도를 마음에 품고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곳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왔습니다. 그 중 절반정도인 750여명이 지난주일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분들과 하나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 천국의 소망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요 기쁨이었습니다. 다만 진행상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3부 예배 후에 점심대접을 위해 뷔페를 차렸는데 참석자가 너무 많았던 탓에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10월에 있을 다음 이웃초청 잔치에는 이번의 실수를 만회하여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기도했던 1500여명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하시고 이끌어주시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셨습니다. 이분들은 우리 마음에 잉태된 분들입니다. 초청대상자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우리 마음에 떠오른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위해 우리는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중에서 참석하신 750여명은 하나님께서 정말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여기까지 올 마음을 허락하시고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돌보아주셨으니 큰 축복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누구든지 영생을 선물로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을 사랑합니다. 이제 여러분께 권하는 것은 그 1500여명을 앞으로도 계속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럼요,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돌보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정말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두고 가는 내 양들을 돌봐다오.” 세 번째도 똑같이 물으십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사랑한다고 왜 또 물으시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놓고 가는 이 사람들을 돌봐다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 물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가야바의 궁전에 끌려들어갈 때 베드로가 멀리서 따라왔습니다. 문 앞에서 어느 여자가 “당신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하고 묻자 “나는 그런 사람 몰라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분명히 당신이 예수와 같이 있는 것을 봤는데…”라고 하자 “모른다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당신 말투를 들으니 갈릴리 사람인데, 당신이야말로 예수의 제자가 아니요?”라고 하자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르오”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 번 다 “정말입니다.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과 구원의 은총을 전파하다가 네로 황제 때 붙잡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사랑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들은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주위사람들을 돌봐주는 것입니다. 그분들 모두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과 영생을 믿을 때까지 돌보고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그분들이 하나님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 될 때까지, 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첫째로, 그분들을 가슴에 품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과 물질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한계가 없습니다. 인간은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성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역사하시고 이끌어주시고 축복하시면 우리가 하는 것보다 수백만 배의 은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기도합시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 보는 그 시간에,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축복하시도록 기도하십시다. 기도 속에 사랑이 솟아납니다. 누구를 놓고 반복해서 기도하다보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면 기도하고 있다고 반드시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분들에게 힘이 됩니다.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저도 여러분이 종종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실 때 힘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도 편지를 쓸 때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너희를 위해 기도하노라”는 말을 썼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을 꼭 알려주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에 가 있는 자녀, 유학 중인 자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화로 그것을 말해줄 때 그들은 부모의 사랑을 느낍니다. 누군가를 놓고 기도하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위해 무언가 하고픈 마음이 생깁니다. 사람을 돌보는 첫 번째가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축복하시고 이끌어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그 가슴에 느끼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들이 필요할 때 내 몸이 가서 잠깐이나마 있어주는 것입니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정밀검사를 해야 된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합니다. 그 결과 좋지 않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외로운 시간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들이 먼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도 수술시간이 되면 그 아들이 생각납니다. 자식이 온들 주사를 놓겠습니까? 수술을 돕겠습니까? 그냥 옆에 와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기쁠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힘들 때, 그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 축복이요 사랑입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도 그저 고통에 동참하는 눈빛만으로도 큰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수술을 경험해보신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있고 기도해주면 서로 사랑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지난주에 성도들의 가정과 사업체 몇 곳을 심방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그 구역식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그 구역 어느 집사님 댁에 고3자녀가 있었는데 그 학생이 입시준비를 하는 1년 동안 이웃의 집사님이 1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서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그 아빠와 함께 성경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그 자녀와 아빠가 영적으로 많이 성장했습니다. 이제 학생은 대학에 합격하고 지난 1년 동안 자기를 위해 기도해준 집사님과 참 친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시간을 내어 그 옆에 있어주는 것이 참 유익합니다. 또 한 곳에서는 가게를 아름답게 리모델링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를 드렸는데, 거기에도 우리 교인 여러분이 와 계셨습니다. 서로 방문해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초상을 당할 때는 참 외롭고 힘듭니다. 갑자기 초상을 당한 집에 가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천국 가셨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고생이 많으시지요.”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해줄지언정, 천국에 가서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슬픔을 당한 가정을 위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그분들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같이 있어주며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품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한편 우리 인생에는 좋은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 기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 때도 그곳에 가서 함께 기뻐해주면 사랑을 느낍니다. 꼭 필요한 때에 사랑하는 사람이 안보이면 이해는 하지만 많이 섭섭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적절히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사랑의 열정이 여러분 가슴에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정기적으로 그분들과 접촉해야 됩니다. 1주일에 한 번 또는 2주일에 한 번 정도 늘 접촉해야 됩니다. 전화나 이메일, 카드나 편지, 또는 직접 찾아가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정기적 접촉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친형제라도 반년 이상 대화가 없으면 교회에 같이 다니는 형제만 못합니다. 접촉은 저쪽에서 연락이 오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솔선해서 먼저 하는 것입니다. 제게도 친척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젊은 사람들이 어른에게 먼저 인사를 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연락도 잘 안하고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저희 집안의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하고 제가 찾아갑니다. 어른이 어떻게 젊은이에게 연락하느냐고 하겠지만 젊은이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으니 어른이 그들과 접촉을 하고 대화하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유교의 예법은 아랫사람이 인사를 하고 어른들은 받는 것이지만, 성경의 방법은 언제나 윗사람이 먼저 인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락방에 모여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자마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세 번이나 먼저 인사하셨습니다. 그 축복을 제자들이 맞받아 축복을 합니다. 페르시아 대국의 국무총리였던 느헤미야도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라는 지주는 소작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룻2:4). 인사는 서로 나누는 것인데 누구든 먼저 하는 사람이 최고입니다. “인사하나 안하나 한 번 보자. 저것 봐. 또 안 해” 할 것이 아니라 눈이 마주치면 누구든지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될 것입니다.

상대방과 접촉할 때마다 늘 그의 형편을 살피고 특별히 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혼자 독차지하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전 미국 LA에서 어느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그분이 미국인들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모임에서 수련회를 갔는데 어느 한 사람이 자기 앞에 앉더니 사흘 동안 계속 말을 시키더라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 모든 것을 다 말하도록 묻고 답하고 또 묻기를 반복했는데, 실컷 말을 하고 나니 집안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쁘고 마음이 가벼워져서 모든 상처가 다 치유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사랑을 느끼는지 아십니까?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줄 때입니다. 비판하거나 정죄하거나 야단치지 않고,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입니다. 이 세상에는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들어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말하고 싶어서 찾아가면 시작하자마자 탁 끊어버립니다. 일본 여행을 처음 다녀와 너무 좋았던 이야기를 해주려는데 “아, 그래? 나도 프랑스 갔다 왔는데…” 하며 자기가 프랑스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처음 말 꺼낸 사람은 기운이 빠져버립니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주 질문을 하여 상대방이 실컷 말을 하게 만들면 그가 사랑을 느낍니다.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며 듣는 이야기 속에서 기도의 제목을 찾으십시오. 이야기를 듣다가 그 집 둘째 아이가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감기가 들어 아프다는 것을 알았으면 전화로라도 같이 기도하고 또 집에서 매일 기도를 해줍니다. 사흘 후에 그 집에 전화를 합니다. 아프던 아이가 요즘 어떤지 안부를 묻습니다. “이제 조금 낫습니다.” “감사하군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 아이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접촉할 때마다 기도 제목을 찾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큰 돈을 주거나 선물을 주어서가 아니라 마음과 관심과 사랑과 기도를 보낼 때 사랑을 느낍니다.

넷째로, 그분들에게 삶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기도생활, 섬기는 삶을 여러분을 통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분들이 여러분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여 기도해주고 시간을 내고 함께 있어주는 것도 보게 하십시오. 기도하는 것을 보여주고 기도의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신앙생활에 유익을 주십시오. “서로 섬기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사람을 어떻게 섬기는지 본을 보여주십시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는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퍼져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사랑합니다.” 그리고 부탁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사람들을 돌봐다오.”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늘 접촉하고 그들에게 좋은 신앙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개인적으로 알고 천국을 알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회원으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돌봐주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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