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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정답이다 (마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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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 건국의 아버지요, 국무장관이었고, 과학자요 철학자요 부자였던 사람이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별로 신앙이 없었던 그의 말년의 말이다. "나는 오래동안 살았다. 살면 살수록 한 가지 진리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를 보게 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이 지배하신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신자들은 자기들의 삶이 세상사람과는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이 전능의 신이 우리와 상관 없이 자기 뜻대로만 행하는게 아니다. 그가 자기의 위대한 계획 속에 자녀인 우리를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없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천지를 만드셨드시 다시 새천지를 만들면서 자기 자녀들을 그 주인으로 훈련시킨다는 사실이다.

무슨 훈련인가? 바로 믿음의 훈련이다. 믿음의 아버지를 신뢰하고 의지해서 역경과 싸워 성장하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서 자녀들은 믿음의 아버지인 하나님에게까지 자라난다. 이 성장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이 삶을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뿐 아니라 강하고 아름답게 하는게 바로 믿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세상을 창조하는게 믿음이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것이 신자들에게 주어진 믿음의 말씀이다. 우리는 산을 옮겨야 한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하는게 신자의 삶이다. 심심하니까 산을 움직이는게 아니다. 하나님처럼 살기 위해서 산을 옮겨야 할 때는 옮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벌레같은 인간이 어떻게 산을 움직이겠는가! 믿음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누가 그런 완전한 믿음을 가졌겠는가? 누가 산을 명해서 움직일 믿음을 가졌겠는가? 없다. 인간은 본래 믿음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 속에는 충분한 믿음이 없다. 믿음만 없는게 아니다. 꿈도 생명도 의도 아주 빈약한게 우리 인간이다. 자기 힘으로 설 수 없을 정도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연을 띄워서 전기를 실험했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대사였다. 콧대 높은 유럽 사람들도 그의 위대한 삶을 존경했다. 그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지식이 많았고 지혜로웠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깨닫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자기의 지식과 경험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아마 그는 억울했을 것이다. "이렇게 늙어서 이것을 깨닫다니! 좀 더 젊어서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지식과 그 믿음으로 살았더라면 얼마나 위대한 삶을 살았을 것인가!" 지혜의 보고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다."(엡 1:12) 신자가 곧 하나님의 찬송이라는 말이다. 놀라운 이야기다. 얼마나 훌륭한 삶을 말하고 있는가!

이 삶은 믿음으로 된다. 겨자씨 만큼만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의 영역을 벗어나 전혀 새로운 삶 곧 모든 것이 가능한 삶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삶의 영역은 하늘에서나 열리는게 아니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 똑 같은 현실에서 나타난다. 바로 이 현실에서 산을 명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산을 왜 움직이는가? 산이 우리 가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옮기는 것이다.

물론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고통도 없고 실망도 없다는 뜻도 아니다. 역경이 피해진다는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산을 움직이는 창조적인 힘이 나타난다. 어떤 어려움이건 물리치는 것이다.

믿음은 문제의 철학을 가르쳐주는 교육과정이다. 이 과정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들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맛보게 한다.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큰 보물을 주실 때 손쉽게 넣을 수 있는 선물처럼 주지 않는다. 쉽게 이루는 일에 부어지는 가치보다는 힘들게 이루어지는 일의 가치가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일일수록 가치있는 선물이 온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어떤 부흥사는 이렇게 말했다. "축복은 저주의 얼굴을 가지고 온다." 신자는 어떠한 역경과 문제라도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을 부여 받았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저주로 그대로 우리에게 임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문제를 향해 창조적으로 도전하며 거기서 참된 삶의 권능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산을 움직여야만 한다.

참 믿음을 가진 신자는 문제가 클수록 얻는 것도 많음을 안다.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에게 홍해로 가라고 명하셨는가? 왜 쉬운 길이 아닌 사막길을 걷게 하셨는가? 왜 여리고 성 같은 천혜의 요새와 거인들과 싸우게 하셨나? 불신앙인들은 불가능이라고 볼 것들이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안다. 그들이 무엇을 얻을지. 이렇게 노예 집단은 강한 나라로 일어난 것이다.

니체가 말했다. "잔잔한 풍파는 얼마나 단조로운가. 파도가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믿음의 사람은 이 말 이상으로 산다. 모든 어려움에는 그 어려움만이 가진 유익이 있다. 거기만 있는 놀라운 축복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기 숨겨진 축복을 믿음으로 찾아 누리게 하신다. 만약 피한다면 절대로 얻지 못하는 복이다. 말하라. "나는 하나님과 새 일을 하리라."

믿음의 사람은 불가능이 없다는 걸 믿기 때문에 문제를 대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대를 가지고 대한다. 먹구름을 바라볼 때 거기 은혜가 덮혀 있음을 기대한다. 그래서 기도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지시를 구한다. 마음은 문제로부터 올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한 불안에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에 집중한다. 그는 산이라도 옮기는 사람이 된다.

어떤 세일즈 맨의 적응방법을 들어보자. 그는 부끄럼타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이 없었다. 고객이 자기 물건을 싫어하리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직업을 택할 수 없었기에 그냥 그 자리에 있었으나 도무지 매상은 없었다. 어느날 그가 믿음의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기 문제를 놓고 "적용되는 믿음의 방법"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날마다 사용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매일 창조적인 믿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하심을 믿는다. 하나님의 인도로 올바른 과정을 택할 것을 믿는다. 내 속에서 일하는 하나님이 실수를 점점 줄여주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심을 믿는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받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 다음에 그는 모든 고객을 친구로 여기고 도와주려고 애썼다. 물건파는게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정말 잘 되기를 원했다. 그는 책상 위에 고객 명단을 놓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그는 경쟁자들도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기도하며 풍족하신 하나님이 모두에게 다 풍족히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는 참으로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나는 믿음으로 살도록 항상 노력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럴수록 모든 것이 더 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 놀랍고 감사합니다." 그는 이제 산을 움직이는 비결을 배운 것이다. 가능한 일을 잘 해낼 사람은 많다. 그러나 최고의 상은 언제나 불가능을 행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가능한 일은 경험과 기술이 한다. 불가능은 믿음만이 해낼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믿음의 질이다. 겨자씨 같은 믿음 곧 살아있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하나님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하나님이 나를 자기처럼 만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 나는 산을 움직일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은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는 믿음을 가지셨다. 나는 하나님의 이 믿음을 신뢰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그 믿음으로 내 속에서 일하심을 믿는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젊은 사람이다. 반면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20이라도 늙은 사람이다. 정말로 멋진 삶이 무엇인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믿음에 의지하는 사람보다 더 멋지게 살 사람이 어디 있는가? 무엇이 재미있는 삶인가? 하나님이 도우심을 믿고 함께 창조의 유희하는 것 아닌가? 무엇이 행복인가? 하나님처럼 사는 것 아닌가?

이제 믿음으로 각자는 하나님처럼 위대한 삶을 산다. 신문에 이름이 안나고 정주영 같은 부자가 않되어도 하나님과 함께 만드는 위대한 삶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 각자는 각각 중요하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공간,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영향력이 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믿음으로 내 세계는 창조의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너무도 큰 도전이다.

믿음이 있으면 강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굳세게 살아가자. 우리는 빈둥대러 방황하러 세상에 온게 아니다. 우리 각자가 해야할 일이 있고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이 있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마지하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선물을 주신다. 남의 탓, 세월 탓, 경기 탓하지 말자. 두 손 마주 잡고 부끄러운 점은 시인하자. 그리고 일어나 용감하게 하나님 이름으로 말하자.

믿음은 모든 어려움과 무의미함에 대한 해답이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증거로 가득차 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부터 그렇다. 그는 이름 없는 가난한 마을의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다닌 것도 유산을 받은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함께 엄청난 일을 한다. 사람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고 병과 가난과 죄와 미움의 억압에서 해방시킨다.

온 세계가 그에게 대항하였다. 그의 제자들도 배반하고 조롱 속에 재판을 치루었다. 두 강도 사이에 벌거벗기워 못박힌다. 참으로 좌절하고 한과 억울함 속에 망할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그의 삶을 너무도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는 모두를 사랑했다. 자기를 못박는 사람을 축복했다. 믿음으로 그는 온 세상의 주인이었다.

그의 믿음은 평상시에 그를 강하게 했던 것처럼 그를 다시 살아나게 하였다. 이제 2천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인류의 중심이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다.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삶이 어디 있는가! 그의 뒤를 따르는 모든 믿음의 용사들을 보라. 바울, 베드로 어거스틴, 루터, 칼빈... 그들도 믿음으로 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신앙생활이 일상 생활과 다른 것이라는 생각은 악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자라 하더라도 아예 신앙생활과 일상 생활을 구분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아무렇게나 살기로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선다. 이것은 악한 삶이다. 이것은 죄짓고 악하게 살기로 결심하는 것과 같다. 실패와 역경을 두려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왜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믿음을 포기하는가!

세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준다. 삶이 내게 무엇을 해 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없이 우리는 성공하지 못한다. 언제나 승리를 기대하라. 믿음은 정신과 물질 모든 면에 보답을 준다. 믿음은 우리 영혼 속에 흐르는 강한 피이다. 싸움이 쉽거나 우리가 선해서 승리하는게 아니다. 믿음은 삶에 무한한 가치를 준다. 그래서 매 순간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바라게 한다.

"믿음은 어떤 방향이건 바꿀 수 있으며, 어떤 길이건 비출 수 있으며, 어떤 근심이건 덜어줄 수 있으며, 슬픔으로부터 기쁨을 가져오며, 반목으로부터 평화를 가져다 주며, 원한으로부터 우정을,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 준다. 믿음은 곧 일하시는 하나님이다."(F.L. 홈즈) 믿음만이 모든 어려움의 해답이다. 모든 악한 상황을 믿음의 얼굴로 바꾸도록 끊임없이 움직이자.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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