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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을 따라 사는 삶 (엡 2:10, 창 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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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누구라고 인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합니다. 자신을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보잘것없게 살아갈 것입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소중하게 살 것입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소중하게 살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든지 부자이든지 간에, 유식하든지 무식하든지 간에, 우리 부모한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경험하고 자란 사람은 인생을 자신 있게 살 수 있는 준비가 상당 부분 되어 있는 사람이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가졌고 많이 배웠어도 자식에게 이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면 그 자식은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기가 쉽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러분을 어떤 존재라고 말합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28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는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인간을 짐승이나 물건 덩어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는 말씀을 하나님의 코 모양대로 인간의 코를 만들고, 하나님의 귀처럼 우리 귀를 만든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형상은 외모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짐승들과는 다르게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데 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들에게 주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을 왜 인간에게만 주셨을까요? 에베소서 2장 10절에 따르면 “선한 일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성도와 교회가 많아도 세상을 변화 시키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에는 6만개가 넘는 교회가 있고, 목회자가 12만 명이나 되며, 예수 믿는 사람의 비율은 전 국민의 20%쯤 됩니다. 그런데 신자가 이렇게 많은 대한민국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세대간, 지역간의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청년 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가는 치솟아 오르고 서민들은 여전히 살기 어렵습니다. 일평생 동안 받은 월급을 한 푼 쓰지 않고 저축해도 아파트 한 채 사기도 어렵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혼율은 급증하고, 자살률도 또한 아주 높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져 가고 있으며, 늘어나는 노인 문제는 이미 발등의 급한 불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선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을 청소하고 치유하는 일을 위해서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장으로 보내시고, 이곳저곳에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목사나 전도사가 되어야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 연약함 가운데 하나는 한국 교회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삶에 익숙합니다.

교회에서는 제법 신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앞에 결단도 합니다. 하지만 집에 가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회사에서는 더욱 딴판이 됩니다. 교회에서는 중직을 맡은 사람이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의 역할은 가정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싶으셨습니다. 이 창천동에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목사를 세우시고,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성가대 등을 제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창천교회를 건강하게 세워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을 주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마지막 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얼마나 큰일을 하다 왔느냐를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23절에 보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무엇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말을 주님께서 거짓이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그들이 분명 무얼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법이 아닌 ‘불법’을 행했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행한 것이 진리를 따라 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상관없이 자기 좋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몇 십 년 나왔다고요? 하지만 혹시 하나님을 만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 나오시지는 않았습니까? 성가대를 주의 이름으로 10년을 했다고요? 하지만 혹시 그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니고, 노래가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습니까? 나 좋아서 한 것이면 법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고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올바르게 전진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됩니다. 주님께서는 주께서 맡겨주신 일을, 얼마나 주님의 의도를 따라 행하였느냐를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피곤치 않으면, 포기하지 않으면 추수할 때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살아야 할 그 삶을 사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상이 그만큼 죄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실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낙심하고 지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습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말은 ‘나의 심장을 드립니다.’라는 뜻에서 온 말입니다. 다른 모든 장기들은 암에 걸릴 수 있지만 심장은 암에 걸릴 수가 없습니다. 심장은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바로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소중한 심장을 드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줄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인데 그 사랑이 바로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분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공급하시고, 가야할 길을 보여주시고,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억하면서 낙심치 않고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어렵다고 그만두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분들이 절망을 느낍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안되는 자신을 보고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셨는데 그것도 제대로 안됩니다. 이것저것 해 보다가 잘 안되면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진실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시이저에게는 아주 충성스런 심복 부르투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이저가 자객들에게 살해될 때 그 자객들 중에는 그렇게 신임하던 브루투스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때 시이저가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루투스, 너 까지도...” 이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실망할 때 이런 볼멘소리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 앞에서 아니 우리의 이웃들 앞에서 허물과 연약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목사 너 까지도...” “아니, 아무개 너까지도...”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 모두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속에서 선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가정과 교회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 민족이 회복되는 복을 주께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의 가정과 교회 공동체가 아름답고 건강하게 회복될 때 이 민족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삶으로써 이 땅과 사람들을 회복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이형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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