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제의 삶을 주시는 주님 (요 2:1-11; 사 62:1-5)

  • 잡초 잡초
  • 231
  • 0

첨부 1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기쁨 보다는 여러 가지로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근심이나 염려, 슬픔, 절망이 가득 찬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태초에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주님의 원래의 뜻하신 계획은 우리로 하여금 축제의 삶을 살도록 지으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도 잔칫집과 같은 기쁨이 따르는 삶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 바로 기쁨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기적들을 성서학자들은 ‘표적’(Sign)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를 말해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갈릴리의 조그만 마을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대되어 있는 잔칫집입니다.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흥겨워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와 달리 결혼식 후에 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잔치를 벌이는 중에 혼인예식을 올리는지라 포도주가 떨어진 현실은 곧 혼인예식이 파장을 맞게 될 아주 심각한 상황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낭패스런 상황에 처해있을 때 오히려 그 위기를 더 큰 축제의 기쁨을 경험하는 기적의 순간으로 변화된 감격적인 사건을 본문은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잔칫집보다는 초상집 같은 삶에 익숙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런 기적의 삶을 누리면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은 우리에게 축제의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원래 계획하시고 원하신 것은 풍성한 생명, 넘치는 기쁨이 있는 잔칫집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10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특별히 창세기 1:31에 보면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축복(original blessing)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바로 축제가 있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잔칫집 같은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우리 인간이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고 사망의 길에 들어섰지만 하나님은 원래 우리로 하여금 아름답고 살맛나는 삶을 살아가는 희망찬 존재로 창조하셨으며, 축제의 삶을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마음입니다.

  주님은 잔칫집의 흥이 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은 부족하지만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삶에 모시기만 하면 우리가 살면서 직면하는 불평과 혼란, 수치와 변명, 근심과 어두움 등에 사로잡힌 인생현실에서 기쁨과 감사, 칭찬과 자랑과 같은 삶을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변화의 기적 역사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기적 사건에는 주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진 이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들의 모습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서 황당한 상황에 놓인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처음에는 그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거절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분명한 응답의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기쁨의 기적을 소망하는 자리에서 설령 우리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고, 주님이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몇 번 기도해 보다가 응답이 없는듯하면 그대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같이 믿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지각과 생각을 초월합니다.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끝까지 믿고 기도하고 기다림으로 응답받고 해결함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또한 우리는 하인의 순종을 봅니다. 마리아의 청에 따라 주님은 하인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7절)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8절) 이 명령에 하인들을 순종하였습니다. 포도주 항아리도 아닌 물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 하셨지만 그들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분명히 자신들이 부었던 물이지만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자 그들은 그대로 행했고, 그 결과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소망하는 기쁨의 기적 사건은 이와 같이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말씀 따라 물을 퍼서 가지고 가는 행위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이 있지 않으면 기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운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기본을 다지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헌신적인 섬김의 훈련이 있는 삶입니다. 축제가 있는 삶, 기쁨이 있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빈항아리에 물을 채울 것입니까?

  또한 물을 붓고 난 후에는 그것을 퍼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볼 때 기적은 “갖다 주었더니!” 바로 여기에서 기적의 역사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믿고 들고 목적지를 향해 가다보면 그 가운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적이 일어난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신앙은 모두 순종의 신앙이었다고 증거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서 물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들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물을 채워라! 물을 들고 가라! 이렇게만 명령하시지 우리들 보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해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포도주 되는 기적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포기는 곧 불신앙이요 불순종입니다. 기적을 소망합시다. 아직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기적을 일으키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빈항아리에 물을 붑시다. 그리고 그 물을 떠서 주님이 시키시니 축제의 삶을 위해 들고 가는 것입니다. 아직 좋은 것이 여러분의 삶에 많이 남아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을 소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서호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