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뜨거운 열정을 가져라! (계 3:14~22)

  • 잡초 잡초
  • 517
  • 0

첨부 1


시작하는말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시아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세상과 세속에 대하여 냉철함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주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애간장만 태우는 교회였습니다. 너무 미지근하여 주님의 속을 울렁이게 하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버릴 것만 같은 교회였습니다. 주님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그 교회와 교인들에게 주문하신 것은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열정을 바라셨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전 세계 교회가 지나치게 세속에 물들어 갑니다. 세상의 향락과 쾌락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뜨거운 열정이 없어졌습니다. 미지근하다 못해 냉랭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대하여 뜨거운 가슴, 하나님과 주님에 대하여 냉랭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멘도 식어졌고, 충성도 사라졌습니다. 믿음도 죽은 믿음의 모양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신앙적인 자만에 빠져있고,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파렴치한 교회와 교인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미래가 없는 교회였습니다.

토니 캠폴로(Tony Campolo)교수가 실존주의 강의 시간에 앞에 앉은 학생에게 “학생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학생은 본능적으로 “24년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캠폴로 교수는 “내 질문은 학생이 숨 쉬고 움직이는 한 인간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가 묻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을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가 묻고 있는 걸세”라고 말했습니다. 학생은 어리둥절하여 대답을 못했습니다. 교수가 살아있는 삶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학생은 그렇다면 “저의 삶은 1-2분도 채 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학생은 이어서 “내가 살아온 삶의 시간들을 꼼꼼히 생각해 보니까 극히 짧은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나의 삶의 대부분은 의미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 나이를 먹고 죽습니다. 생애 어떤 격렬한 자각과 같은 시간이 없습니다. 숨 쉬고 있지만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종족을 번식하고, 그리고 외우고 잊어버립니다. 발끝으로 조심조심 걸어가며 안전한 삶을 도모합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죽음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평범한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적인 삶을 살다가 갑니다.

오늘의 말씀 “ 뜨거운 열정을 가져라”는 말은 “살아있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너는 얼마나 신앙생활을 했느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모태신앙이요, 10년이요, 20년이요, 30년이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주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러한 연수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크로노스의 세월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신앙생활다운 삶을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가“카이로스”의 세월을 얼마나 보냈느냐는 말씀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시간, 며칠, 몇 개월, 몇 년”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1. 예배에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토니 캠폴로는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광고에 속고 있다. 광고하는 상품만 획득하면 우리의 깊은 영적, 심리적 갈증도 해갈된다는 감언이설에 크리스천들이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하나님에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경배와 찬송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흠모하고 숭배하는 것들 - 상품들 혹은 적어도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돈 을 얻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한다. 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산품을 우리에게 약속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종교를 믿는다. 우리의 하나님은 단지 민주 자본주의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순수하고 확고부동한 뜨거운 가슴을 가진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을 생각해 봅시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느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것은 “격렬한 춤과 함께 드린 예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요4:23-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예배 자들을 찾으십니다. 찬송을 뜨겁게, 찬양을 뜨겁게, 말씀을 뜨겁게, 기도를 뜨겁게 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예배를 뜨겁게 드릴 때에 드리는 자가 은혜를 받습니다. 함께 하는 자들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 결과로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많아지게 됩니다.

“무디”가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설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설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소녀가 우뚝 서서는 강단을 향해 나오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하나님은 받아 주시지요?” 달려 나오는 소녀를 끌어안으면서 무디는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께서 그대로 받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를 받으신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까지 영혼의 고민을 안고 있었던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감격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때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가대의 “에리사 해밀턴”이 작사를 시작했고 무디의 동역자로 음악 목사인 생키가 작곡을 했는데, 그 곡이 “나 주의 도움 받고자”입니다.

2. 아멘에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아멘”은 히브리어 “돌보다, 부양하다, 결실하다, 진실하다, 신뢰할 만하다, 신뢰하다, 믿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즉 “아멘”은 “진실로, 참으로”라는 감탄의 말입니다.성도들(회중)은 그들이 들은 “맹세, 축복, 저주, 기도, 송영”등에 대하여 동참하게 되며, 그러한 동의의 결과를 감내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하는 의미로 “아멘”을 외치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❶다윗이 솔로몬의 왕위 추대를 명했을 때(왕상1:36), ❷하나냐가 포로들의 돌아옴을 단언했을 때(렘28:6), ❸하나님께서 순종치 않는 백성들을 저주하실 때(렘11:5), ❹제사장과 레위인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축복했을 때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❺더욱 간절하고 엄숙했을 때에는 아멘을 계속 말하게 됩니다(민5:22).

신약에서는 ❶천상의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하여(계22:20),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온갖 약속은 대답 곧 아멘을 얻게 됩니다(고후1:20). ❷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기도했을 때(고전14:16), ❸송영의 끝부분(계1:6, 5:14)과 서두에서(계7:12, 19:4) 아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약에서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신 그리스도의 호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아사야 65:16절 “이러므로 ❶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❷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❸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❹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니라”는 말씀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아멘의 생활이 풍부한 자들에게는 환난이 잊어지고,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뜨거운 아멘은 모든 악조건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자,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아멘”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아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생활은 총체적인 아멘의 생활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노멘”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아멘”이셨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욕심 많은 한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웨슬레 선생은 설교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❶“여러분! 여러분은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벌으시요!” 라고 하자 그는 “아멘,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❷“할 수 있는 대로 전부를 저축하시요”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때 그 부자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좋아라고 아멘을 연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웨슬레 목사님이 ❸“할 수 있는 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오”고 말씀하자 그 부자의 입에서는 아멘 소리가 나오지 않고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의 유명한 말씀 중에 하나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은 물질의 축복도 받고, 더 많이 저축을 했다가 할 수 있는 대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웨슬레의 정신이 현대 기독교의 정신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이 받아서 많이 나누어 주는 것이 아멘의 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아멘으로 시작합니다. 요하복음 1:51절에 “아멘 아멘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멘으로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하시기 위하심이셨습니다.

3. 충성에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근본이신 이”(계3:14)로 소개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충성했던 자들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께 충성했던 자들은 “세례요한, 사도들, 스데반, 바울 사도”와 같은 자들은 정말 하나님께 그리고 예수님께 충성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역사상 하나님께 가장 충성했던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생활은 정말 뜨거우셨습니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붙잡으러 다닐 정도였습니다.

어느 공산주의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공산주의 철학보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를 이길 수 있다. 우리는 현실주의자이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을 갖고 있다. 나는 공산주의를 위해 나의 봉급, 나의 정력을 모두 바친다. 반면에 너희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지극히 적은 정성을 쏟고 있다. 기독교가 실제적 생활 속에서 증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높은 이상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 너희 기독교인들은 손에 흙이 묻는 것조차도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당의 명령이라면 생명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자들보다 더욱 확고한 신념과, 그리고 어느 누구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랑과 그리스도의 명령이라면 세상 끝까지 따라가는 충성심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운동경기에서 경쟁 팀을 이기자면 그 팀에서 미친 자 즉 신들린 자가 나와야 이길 수 있다는 해설가들의 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위하여 충성에 미친 자 즉 신들린 자 곧 성령 충만한 자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을 어린 소자에게 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❶가난한 자를 먹이고, ❷벌거벗은 자를 입히고, ❸병든 자를 보살피고, ❹절망하는 자를 격려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께 장의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장례식을 집례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여 장례식 집례를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수십 명의 인사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거절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20-30명의 동성애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관 옆에 얼어붙은 것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동상처럼 보였습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속에 있는 시신은 “에이즈”로 죽었습니다. 목사님은 장례절차를 다 마치고 공동묘지를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할 일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시편23편”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시편23편을 읽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성경을 더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로마서 8장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성경을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1시간동안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동성연애자들은 교회에는 가고 싶은데 교회는 갈수 없고, 성경은 듣고 싶은데 성경을 읽어 주는 자가 없어 성경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성연애자들은 일종의 병을 앓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도 천국에 가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타고난 병을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들을 경멸하기 전에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맺는 말

신앙생활은 뜨겁게 하여야 합니다. 미지근한 것은 시험 들기에 딱 적당한 상태입니다. 신앙생활은 끌려 다녀서도 안 됩니다. 억지로 해서도 안 됩니다. 죽지 못해 해서도 안 됩니다.예수님께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