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유익한 근심 (고후 7:8~11)

  • 잡초 잡초
  • 362
  • 0

첨부 1


근심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에는 주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또 '내일 염려는 내일에게 맡기고 오늘 할 일에 충실하라.'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근심에도 유익한 근심이 있다고 합니다. 좋은 근심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근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근심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근심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인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근심을 하고 살아갑니다. 먹을 근심, 잠잘 근심, 오늘 근심, 내일 근심, 자식 근심, 사업 근심, 수만 가지 근심이 마음 속에 자리를 틀어잡고 있습니다. 근심만 없어도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심 때문에 불행합니다. 근심 때문에 건강을 잃습니다. 근심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합니다. 근심이 마음의 병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유익한 근심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유익한 근심은 회개를 이루고 또 구원에 이르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근심이 유익한 근심입니까? 욥이라는 인물을 살펴보십시오. 욥은 자식이 생일을 맞이해서 큰 잔치를 벌이고 난 후에는 그 자식을 불러다가 목욕을 시키고 하나님 앞에 세워서 혹시라도 잔치하면서 '하나님께 범죄한 일은 없는가?'하고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이런 근심이야말로 유익한 근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뒤돌아보는 일입니다. 혹시나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나 살펴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항상 뒤돌아보는 사람은 유익한 근심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잘못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가를 살펴보는 행위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올바르게 뒤돌아보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에서 모든 판단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투사라는 심리적인 방어 활동을 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잘못을 남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남을 많이 비난하는 사람은 자신을 잘 돌아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내면 아프고 창피하고 괴롭기 때문에 남을 비난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남의 험담을 들추면서 위안을 받게 됩니다.

  이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사람의 아주 약삭 빠른 마음의 행위입니다.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이 진정으로 참된 자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남에게서 험담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 안에서 자기를 깊이 파헤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을 깊이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모든 일들이 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나와 관계있고, 문제 해결의 출발도 바로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성숙한 인격의 사람으로 변화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보다는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유익한 근심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남을 보지 말고 나를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은 바깥을 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웃을 보고 자식을 보고 배우자를 보고 항상 남만을 보던 눈을 자신을 보기 위해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곧 마음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생각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와 사울을 비교해 보는 일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을 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통회 자복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유익한 근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이 할 일을 자신이 먼저 해버리고, 전쟁 기념비를 세우고,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일들에 대하여 깨우침을 주어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변명만 자꾸 합니다. '사무엘이 늦게 와서 대신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다윗을 쫓아다닙니다. 사울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눈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변화도 성숙도 개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사울처럼 멸망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 근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까지 근심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세상 근심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마음의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즐거움도 기쁨도 사라지게 합니다. 세상 근심은 병적인 사람으로 이끌고 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하는 유익한 근심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일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떠나 있는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내가 세상에 빠져 있는가 아닌가를 분별하게 합니다. 자기 통찰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지켜 주게 합니다.

  세상 근심은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환경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유익한 근심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기 때문에 자기 책임을 알게 하고 자기 안에 깨달음을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줍니다.

  세상 근심과 유익한 근심을 성냥불과 등잔불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냥불은 한 번 켜면 금방 크게 일어납니다. 한 순간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10초도 되지 않아 꺼지게 됩니다. 그러나 등잔불은 기름이 있는 한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세상 근심에 차 있는 사람은 성냥불처럼 한 순간은 자기 열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만 오래 가지 못해 쓰러집니다. 세상이 주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유익한 근심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끌림으로 오랫동안 주 안에서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섬유공장의 작업실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만일 실이 헝클어지면 작업반장에게 도움을 구하세요.” 어느 날 새로 입사한 여직원이 일을 하다가 경험 부족으로 실이 헝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실을 풀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실은 더욱 헝클어지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작업반장에게 찾아가서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작업반장이 말합니다. “다음부터는 일이 잘못되기 전에 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기를 “저는 스스로 풀려고 최선을 다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기 벽에 글을 보세요. 벽에 글처럼 곧 바로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모든 문제를 내 스스로 풀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인생의 문제는 더욱 헝클어지고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헝클어진 실을 푸는 일은 전문가인 작업반장이 가장 잘 풀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도 가장 잘 푸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근심을 마음에 가득 품고 인생의 문제를 풀려고 해 보았자, 남는 것은 아픔과 고통과 절망 밖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께 근본 문제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유익한 근심이란 바로 하나님께 생각과 마음의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전도서 7:14 말씀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 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시련과 고난이 많을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곤고함이 어디서 왔는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상태와 자신의 행동에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익한 근심입니다. 바로 이때에 사람들은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은 바로잡고 왜곡된 마음은 고치고, 악한 생각은 돌이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삶을 친히 경험해 보았던 욥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합니다. 유익한 근심은 연약한 사람들이 죄의 유혹으로 어쩔 수 없이 범죄했을 때 자기가 지은 죄가 얼마나 부끄럽고 추한 것인가를 깨닫고 슬퍼하며 근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근심은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 자기 죄를 자백하고 그 죄에서 돌아서게 하며 용서함 받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만드는 근심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아무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심을 하더라도 기왕이면 무익한 근심이 아닌 유익한 근심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추운 겨울날 먼 길을 걸었습니다. 오랫동안 걸었기에 너무 배가 고프고 추워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 동네에 아주 친절한 분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서 자기 집을 소개합니다. “우리 집에 따뜻한 방과 목욕물과 침대를 준비해 두었으니 이 열쇠를 가지고 가서 모든 것을 다 사용하십시오.” 그런데 이 나그네가 생각하길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겠는데 먼저 빵을 주어야지 이 열쇠가 무슨 소용이 있소?”하고 내버린다면 나그네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열쇠를 받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게 됩니다. 열쇠를 버리면 문제는 계속 고통 속에 있습니다. 세상 근심과 유익한 근심이 차이가 바로 삶의 열쇠를 받을 것인가 받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유익한 근심을 하는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에 빠져있는 사람은 내 인생을 문제의 깊은 수렁에 빠져 사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스펜스 존슨이 쓴 “선물”(the present)이라는 책에 한 소년이 노인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물에 대하여 배우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대하여 후회하고 미래에 대하여 불안을 가지고 근심과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the present'라는 말은 선물도 되지만 현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현재’라는 것입니다. 현재를 가장 알차고 보람되고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현재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세상 근심을 안고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끊임없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유익한 근심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광야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유익한 근심으로 알찬 삶의 복을 누리시길 축원드립니다.  (장연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