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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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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나타난 기도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목전에 두고 드리신
"대제사장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기도로서
예수님께서 자신과 제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드리신 기도일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대구평강교회 교우들도 염두에 두고 드리신 기도이기에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다 은혜를 받고 기도 제목도 본받으며
자신과 교회와 온 교우들을 향하여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01절에서 08절까지로서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2부는 09절에서 19절까지로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며
3부는 20절에서 26절까지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순서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9-13)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기도 순서도 다 무시하고 곧바로 간구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먼저 감사부터 하며 이어 간구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쳐 순서대로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데 대한 기도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늘 기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질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기도로 가득찬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기도 그대로
그렇게 기도하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맨 먼저 드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 기도를 눈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언젠가는 마감할 때가 있을 것인데
그때 우리는 생(生), 나의 생(生)을 마감하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기도이며
또 본문 1절과 같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도
이 점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는 먼저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심...
이것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이 말씀은 곧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으로서
예수님은 지금 바로 이점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예수님의 기도는 대단히 의미있는 기도이지만
우리 인간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기도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저기에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가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기도할 줄 알고 그렇게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믿음의 본질이 있고... 여기에 믿음이 주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두고 있다고 하니까.. 아주 힘든 상황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더 힘든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상황,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순교를 목전에 둔 상황 앞에 서게되면
무한히 약해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담대해 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때가 가장 진실해 질 수 있는 순간일 뿐만 아니라
가장 자기 다움인 그리스도인 다움을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 순간을 신앙적으로 잘 맺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여기서의 때란 자신이 십자가를 질 때, 죽을 때, 순교할 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배워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흉내라도 낼 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 5절에 나타나는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잘 지게 해 달라는 이런 의미의 "영화"라는 것으로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지고 자원적으로 지는!!
그래서 1절에 언급한 대로 아버지도 영화롭게도 하고
5절에 언급한 대로 자기 자신도 영화롭게 되는...
그런 신앙적 결단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사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
아버지도 영화롭게 하고... 아버지와 함께 나도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고 드리는 기도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 확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만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지금 십자가는 지고 순교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 그 확실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9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여기서 지칭하는 "내게 주신 자들"이란 12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12제자들을 위한 기도는 총 3가지입니다.

첫째는 11절에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는 제자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한 기도이고
둘째는 15절에서 "보전하시기를" 이라는 제자들의 신앙 보전을 위한 기도이며
셋째는 17절에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라는 제자들의 신앙 성화를 위한 기도인데
먼저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 1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미래를 다 내다보시면서 드리신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핍박이 일어나면 너희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다시 모여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너희들의 하나됨, 제자 공동체의 하나됨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의 미래를 내다보시며 제자들의 하나됨을 위하여 간구하였는데
이 제자들의 하나됨에 가장 큰 걸림돌이 누구인가 하면 사탄 마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탄 마귀만 공격하면 제자들은 넘어졌고
사탄 마귀가 장난하면 제자들은 하나되지 못했고 제각각이 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들도 이 사탄 마귀가 우리의 영적 지도자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영적 지도자들을 이간질 하지 못하도록!!
깨어 기도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공동체는 많습니다.
부부도 결혼 했으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도 하나, 뜻도 하나, 방향도 하나...

물론 부부라고 해도 다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 되어야 할 것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 되어야 할 것은 하나 되지 못한채!!...
하나 되어도 좋고... 하나 되지 않아도 좋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것들만 하나되어 살아간다면...
어떻게 그런 결혼생활을 가리켜 행복한 결혼생활이라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 공동체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제자들 각각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서로 다른 점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래도 같아야 하고 하나 되야 할 것은 하나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 되어야 하고 어떻게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11절 말씀처럼...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와 같이!!... 삼위(三位)가 일체(一體)인 것 같이!!... 
그렇게 신비스런 하나됨이 제자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같다고.. 하나되는 것 아니고... 같이 모여 있다고 하나 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같이 한국말을 쓰지만... 하나되는 공동체도 있고... 하나되지 못하는 공동체도 많습니다.

문제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되어야 공동체가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하나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사탄 마귀입니다!!

이 사탄 마귀가 제자들 마음 속에 의심이나 교만 이간질 등을 넣어주게 되면
금방 그 공동체는... 비록 제자 공동체라 할찌라도 금방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게 되고... 서로 싸우게 되며... 서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장에 소개되는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내적 분열상은
바로 그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세상적으로 볼 때 꽤 괜챦은 교회였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가 상업도시여서 그런지...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지식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사랑이 부족한데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장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우들 중에는 교회 창립 때부터 있었던 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처음 믿기로 작정하여 교회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교회 다니다가 이사와서 다닌 교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인들의 성분이 이처럼 아주 다양했을 것이라는 점이며
요즘의 교회, 현대 교회나 별반 다른 없는 교회의 모습을 지닌 교회가
아마도 고린도교회였을 것이라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린도교회 공동체가 왜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까?

성경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모습이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11-13)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린도교회는 이처럼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원인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고린도전서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씀인가하면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문제, 하나되지 못하는 문제의 원인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형제 앞에서 자랑하고 교만하는
그 자랑과 교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난 지혜있다... 난 능하다... 난 문벌이 좋다...
이 나는 너와 다르다고 하는 생각, 자랑, 교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참 재미있게 표현한 글을 읽었습니다.

  부부관계를 보자. 남편과 아내, 몸은 둘이지만 분명 하나다.
  사람도 같은 사람이요... 운명도 같은 운명이요... 명예도 같은 명예를 가졌다.
  그런데 때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 화해가 잘 안되는 부부를 자세히 보면
  그 둘 중에 하나는 분명... 나는 너하고는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쪽이 있다.
  바로 그 한쪽 때문에... 그 나는 너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것 그 교만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아왔고... 산전수전 다겪고 함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되지 못한다.
  재산도 함께 모았고 자식도 함께 낳았고 함께 길렀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잘났는지
  사실 그 정도 살았으면 명예도 하나요 재산도 하나요 행복도 불행도 다 하나이다.
  그런데 밖으로 돌아다니며 상대방은 못났고 자기만 잘났다고 흉보며 돌아다니니
  이렇게 말하며 돌아다니는 그 사람은 정말 한심한 사람이다.
  결국 부부는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부부라는 공동체,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상배방을 깎아 내리면
  내 지위가 올라가고 내 명예가 올라갈 것이라는 것은 정말 착각인 것이다.

이처럼 부부도 서로 싸우며 사는 삶은 부질없는 삶이고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이러한 모습을 밖에서 보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 것 처럼!!
제자 공동체나 교회 공동체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서로 감싸주고 치유하며 살아야지
서로 비난하고 의심하며 분열하며 사는 삶 또한 교회 밖에서 보면 웃음거리일 뿐 아니라
조롱거리만 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3:3-5).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 제자들을 위한 두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15절에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保全)해달라는 기도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保全)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이 보전(保全)이란 말은 목양적(牧羊的) 의미의 말로서 보호와 지킴을 의미하는 말인데
제자들이 앞으로 하나되어 사역하며 나아가는 길이 힘들고 험난할 뿐 아니라
분명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며 거룩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악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이 집요하게 있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다음 제자들을 위한 세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17절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 기도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기도로서
제자들의 신앙 성화를 위한 기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제자들의 향한 거룩에 대한 기도는 악에서의 보전함에 대한 기도 그 이상의 기도입니다.

제자답게 생각하며 살기를 원하시며, 제자답게 말하며 살기를 원하시고
제자답게 행동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간구라는 것입니다.

비록 속세에 살지만 세속화되어서는 안되며
구별되게 살아야 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저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야 하며...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기도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여기서 말씀하는 "나를 믿는 사람들"이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도 앞 부분과 같이 총 3가지인데...

첫째는 21절에서 "믿게 하옵소서"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위한 기도이고
둘째는 23절에서 "알게 하려 함"이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확신을 위한 기도이며
셋째는 24절에서 "보게 하시기를"이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경험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
믿게 하옵소서... 알게 하옵소서... 보게 하옵소서...라는 3가지 기도는
모든 성도들의 믿음이 결국 온전함을 향하여 나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로서
결국 우리들이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이나 내용도 바로 이런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이 대제사장의 기도를 다시 한번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면
제자들을 향하여서는 제자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는 성도답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인데...
오늘 이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 은혜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임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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