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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지하고 사는 사람 (시 4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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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하고 사는 사람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
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
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
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
로다) (셀라) (시편 49장 6절-13절)

1.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의지하는 것 없이 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벌써 서로 의지하고 살 수 있도록 배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
다.
중국 글자의 사람 인(人)자를 보면 서로 의지하는 작대기 둘을 세워 놓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를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청소년이 되면 친구들을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결혼 정년기가 되면 배우자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결국 사랑하는 배필을 만나서 한평생을 함께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가정을 꾸려 나가려니 돈이 필요하게 되므로 돈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벌어서 저축을 하게 되고, 어느 정도 재산이 모아지면 그 후부터는 재물을 의지하게 됩니다.

여기에 도가 지나치면 재물의 노예가 되어, 도리어 그 재물로 인하여 번민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스트레
스를 받다 병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경우에 사람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재물 자체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란 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이 재물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재물>은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로 하여금 재물 얻을 능력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기가 능력이 있어 벌게 된 줄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17절에“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
라”고 경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8:18절에“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되었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물로 인하여 범죄 하지 않고, 그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재물이란 단순히 돈이나 부동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재물일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재물입니다.
연기를 하는 배우나 탤런트는 그들의 재능이 재물일 수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가수는 자기의 성량과 노래가 재물일 수 있습니다.
박주영 같은 축구선수는 자기의 발재간이 재물일 수 있습니다.
그런 재물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 때 그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재물 얻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알아서, 그 재물을 잘 관리할 줄 알
아야 합니다.

재물을 의지하고 살지 말고, 잘 관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왕왕 보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이 재물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많아져서 하나님 보다 재물을 의지하게 되어 하나님을 등한히 여기게 되어 멀어지고, 또 반
대로 재물이 없으면 없어져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후자인 경우가 우리의 실제적 상황에서는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관리의 대상이지 의지할 것이 아님이 성서적 교훈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이라고 했고, 옛날 성경대로 보면“자기의 재물을 의지하
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영어 번역으로 보면 They trust in their wealth, and boast of great riches 라고 했습니다.
자긍한다는 말을 boast 라고 하였습니다.
이 boast 란 보통 자랑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쭐 된다> <큰 소리 친다>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재물로 인하여 우쭐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재물로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말입니다.
현대인의 허망스러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은 만능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시드니에서 아름다운 해안가를 구경했습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자랑할 만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내하는 이가 저기 저 집은 US $ 20,000,000(이천만 달러)라고 하였습니다.
200억 가는 아파트가 한국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는,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그 집을
의지하고 우쭐된다면 그것이 제일 허망스러운 일이란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밑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그것으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속량 하는 값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누가 돈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아니 당장 수술비만 있어도 수술했으면 살 사람이 돈이 없으니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가? 하겠지만, 그것은 목숨일 뿐입니다.
  이 목숨은 심장이 멎으면 그날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은 목숨이 아니라 <조에>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즉 이 생명은 하나님께로 받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목숨 연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목숨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뿐입니다.
영생 얻기 위함이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왜 예수 믿고 구원 받아야 한다고 합니까?
이 구원은 돈으로 살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값비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의지하고 오히려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며 교만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어
리석은 자들이란 말입니다.

여기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은 영생(永生)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재물을 잘 관리하다가 그것으로 의롭게 살다가 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께서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8복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들여다보면 주님이 가르쳐준 복과는 반대의 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주님의 가르침과는 멀어진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영생을 얻는데 있는데, 100년 안에 죽을 목숨을 위하여 항상 무엇을 먹을까, 무
엇을 입을까만 걱정합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를 통하여 이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만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너희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한 것 같습니다.

2. 그러면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9절에 보면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자가 있다면 자기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준비 없이 사는 자들입니다.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의 하나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외나무다리요 마지막 출국 수속인데 그것을 모르고 사는 자들이 있습
니다.
물론 이것은 가난한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눈이 열리지 못하면 자기들은 영원히 이 땅위에 거할 줄 그렇게 생각합니다.
11절을 다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토지에 소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자기 이름으로 토지와 건물을 등기해 놓으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의 것 인줄 착각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것을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 재물을 더 의지하고 있는가?
어느 쪽입니까?
교회에 나와서는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도 실제 생활에 들어가서는 하나님 보다 자기 앞으로 등기해 놓은 재
물을 더 의지하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인생은 유한적 존재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벧전 2: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
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약 4:13-14“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
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또 탈 현세적인 삶을 살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정체(正體)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자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존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존귀하다는 것은 내 육체가 존귀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속 사람인 내 영혼이 존귀하다는 말입니다.
나를 조성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당신의 형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 육체는 그 영혼을 담고 있는 흙집일 뿐입니다.

우리는 나면서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들도 우리와 꼭 같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육체의 장애일 뿐, 그 영혼의 장애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육체는 다 죽음으로 끝날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육체를 가꾸고 얼굴을 성형해도 세월과 함께 시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아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가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본분입니다.

그래서‘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다 가야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기 바랍니다. ♣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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