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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작도 끝도 아름답게........! (창 5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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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0세를 살다가 이 땅을 떠난 요셉이라는 한 인간을 생각하며 “시작도 끝도 아름답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시작은 거창하게 하는데 끝마무리를 잘 못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시작은 미미한데 끝은 화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작은 좋은데 끝이 꼭 나뿐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시작도 분명하고 잘 해야 하지만 끝은 더 분명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봅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인생에서는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짓느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떻게 끝을 맺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겠습니까?

1. 마지막까지 가족을 책임지고, 가족에게 인정받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요셉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책임지며 돌보았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가족으로부터 배척받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비참하게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되어 애굽에 팔려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힘이 없었으나 이제는 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명예도 얻고 권력도, 부도 얻었습니다. 얼마든지 가족에게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돌봅니다.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원수 같은 형들, 형의 아들들을 돌봅니다. 손자들까지 돌봅니다.(23,대상7:14)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요셉은 끝까지 경건한 가정을 가졌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들입니다. 요셉은 권력도, 돈도, 명예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첩을 거느릴 수 있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그는 깨끗한 가정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많은 어머니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입니다. 그는 철저히 가정을 정결하게 지켰습니다.(창41:50) 참으로 아름다운 끝은 가족을 책임지며 가족에게 인정받는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출세도 하였습니다. 80년 동안을 총리로 있었습니다. 명예도 얻었습니다. 부도 얻었습니다. 많은 백성에게 유익함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그가 실패하였다면 그의 죽음을 결코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움 마무리는 가정에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은퇴를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을 하여도 가정에서 실패하면 그것은 참다운 성공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지 못했다하더라도 가정에서 성공한 사람이 참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흠이 무엇입니까? 하갈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가정의 실패입니다. 그의 사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류는 그것으로 지금까지 종교전쟁, 민족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습니까? 야곱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가정의 실패입니다. 그것으로 가족이 분열되고 나라가 분열됩니다. 마지막 순간 가족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만델라라고 하는 사람이 은퇴하였다는 것이 보도 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한 신문은 "아름다운 퇴장 "이라고 머리글을 달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실시된 한 국제 여론조사에 의하면 만델라는 “지난 20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우다가 27년간 옥살이를 했지만 94년 집권하면서부터는 과거를 묻지 않고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화해의 정치를 실천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권 기간이 끝나자 타보 음베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정계를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을 키워준 계곡과 언덕, 시냇가를 손자들과 함께 거닐며 생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고별 유세장엔 10만이 넘는 청중이모였고 만델라의 연설에 유세장은 온통 눈물 바다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퇴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이런 것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장로님을 장례하고 글을 홈페이지에 실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6.25 때 월남하여 열심히 사업을 하여 큰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교회를 개척 할 때에 목사님을 도와 초대 장로로 열심히 수고하여 큰 교회도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 갔습니다. 장례식에서 손녀가 나와 추모사를 읽었답니다.  "할아버지, 우리는 할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진실과 겸손과 바르게 사는 길의 표본이 되어 주시고 말없이 실천해 주신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우리 할아버지로 모신 것을 저는 행복하게 생각하고……할아버지 우리가 할아버지 같은 신랑 얻게 해 달라고 소원했던 것을 아시지요"

우리가 죽은 후 할아버지와 같은, 아빠 같은 삶을 나도 살아야겠다는 자식들이, 손자 손녀들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끝이겠습니까?

2. 마지막까지 나의 연약함을 알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인이 아름답습니다.

24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즉 요셉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 말씀은 죽음을 앞둔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입니다. 30세에 국무총리가(창41:46) 되어 80년 동안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의 유언적인 고백은 무엇입니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라는 말입니다. "나는 죽으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많으나 인정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생의 한계와 유한성입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미래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되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에게 형제들에게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나이 110살입니다. 조상들에 비하면 한참 일할 나이이지만 부르시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우리는 싫든 좋든 일하다 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사명을 받았고, 하나님 앞에 가서는 결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일하지 아니하고 세상 중심으로 쾌락 중심으로 살아도 한 세상 삽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때로는 힘들고, 오해받고, 고달프지만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으며 고난을 당하다 가는 것도 한 세상입니다. 이렇든 저렇든 한 세상 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 앞에 결산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다 가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시험된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기에 세상 방법을 동경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누구를 원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 맡긴 일 충실히 하다가 영원한 나라로 가면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행복합니다. 심지어 일용할 양식과 아울러 우리의 목숨과 죽음까지도 맡기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3. 끝으로 마지막까지 말씀을 붙들고 소망을 갖는 신앙인이 아름답습니다.

지금 요셉은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숨을 헐떡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숨을 몰아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땅에 자기를 묻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명당자리가 아닙니다. 산세 좋고, 경치 좋은 땅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입니다. 거기에 묻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말짱하고, 총기와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말씀 붙들고 천국의 소망으로 불타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숨을 헐떡이면서, 숨을 몰아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천국에 입성하는 나의 죽음은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던 애굽 땅에 연연하지 아니하였습니다.(창41:46) 세상의 것을 잡으려고 전전긍긍하면서 쫓기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세상 미련 다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천국을 소망하고 기다립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끝입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미래를 소망하기 때문에 현재의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고후5:1-10)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십니까? 내 생애의 종말이 되어 숨을 헐떡이면서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실히 갖고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임종자들의 모습을 몇 가지 유형별로 분류 하였습니다. 첫째는 “나는 안 죽어, 못 죽어!”형입니다. 평생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내가 왜 죽어”형입니다. 분노를 터뜨리면서 죽어가는 형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는데 왜 내가 죽어야 하는지 억울해 하면서 죽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애원 형입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보려고 애걸복걸하는 형입니다. 넷째는 절망 형입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 앞에서 충격을 받고 정신을 놓은 사람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죽는 사람들입니다. 다섯째는 승리 형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부활이요 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웃으며 아름답게 인생을 끝마치는 형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하기를 원하십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어야 할 소망이 없어 헛손질 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그런 끝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추합니까?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년-1883년)는 독일 출신의 혁명가, 경제학자,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입니다. 자본주의를 제창했으며 공산주의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계급투쟁으로 역사를 해석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1883년 3월 14일 칼 마르크스가 사망하던 날, 그의 하녀가 다가와서 "저에게 당신의 마지막 말을 남기시면, 제가 기록해 두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마르크스는 "시끄러워, 나가!"라고 소리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나는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 ...." 이라며 초라하게 숨졌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88세로 죽음에 임했을 때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며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유명한 19세기의 미국 부흥사 D. L 무디는 임종을 당하여 슬퍼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내일 아침에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거든 정말 내가 죽은 줄로 생각지 마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은 이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습니다. "이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새로운 생명에 들어간 것이다." 김활란 박사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에 장송곡 대신에 승리의 행진곡을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시작도 잘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인생을 살다가 엎치락뒤치락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은 더 아름다워야 하겠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죽음까지도 호령하면서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신자들만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우리에게 죽음까지도 희망이 있습니다.

부디 대선의 성도들은 시작도 잘하시고 끝은 더 아름다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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