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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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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다음주일에 우리교회에서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앞둔 이 시간“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드리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명문여대 4학년생이었던 이지선 양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고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전신 55%의 3도 중화상을 입고 7개월 동안 11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살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비록 옛날의 얼굴이 아닌 일그러진 모습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온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과정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작은 눈썹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알았고 막대기처럼 돼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깨달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내 안에는 묻혀있는 감사의 조건들 즉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은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손톱을 두고 감사하거나, 눈썹을 두고 감사하거나, 불편 없이 접히고 펴지는 관절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하신 말씀의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을까요?

1. 감사함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60년 전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이 72가지였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 18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생활에 필요한 것이 5백 가지이고, 절대로 필요한 것은 50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 많은 것을 가진 현대인이 과거 사람들보다 더 행복 합니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더 불만이 많고 불행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이나 문명의 발달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의 밀도와 감사의 깊이는 정비례합니다.“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감사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감사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무(無)감사입니다.

감사는 없고 불평과 불만만 가득합니다. 이런 사람은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난, 불평, 원망, 저주, 불행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은 탄식하시기를“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 1:2-3)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할 때의 모습니다.

둘째, 조건적 감사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면 감사하겠다는 조건적 감사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오늘이라는 현재의 감사가 없습니다. 한 가지 소원을 이루면 또 다른 소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감사는 짧은 순간 그때뿐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피곤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려 해도 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맡기며 무엇을 하겠습니까?

셋째, 결과론적 감사입니다.

받은바 축복으로 인해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감사의 원인이 없어지면 감사도 함께 사라자고 맙니다. 받은 만큼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받은 것이 없으면 감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주고받는 감사입니다. 이는 세상적 수준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을 사업의 파트너 정도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도, 십자가의 공로도, 하나님의 능력도, 말씀의 의미도 깊이 깨닫지 못한 철없는 심령입니다. 철없는 사람과 무엇을 하겠습니까?

넷째, ...이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없을지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상황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적 감사입니다. 비록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잇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의 분량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심령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모하며 추구해야 할 믿음의 경지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인 손양원 목사의 감사하는 신앙이 곧 이러한 신앙입니다. 신앙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모습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행복이 어디서부터 올까요?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없는 잘 갖춰진 생활환경을 통해서 올까요?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사치스러운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종이 위에 태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에서 햇빛이 발산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과 같다.”그렇습니다. 행복은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극한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가 깨닫고 한 말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2,14)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눈이 가려 이미 얻은 것, 현재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현재 없는 것, 못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천하를 얻는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참된 만족이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가는 아내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아내에 대한 감사한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있습니다. 남편의 성실한 삶을 생각한다면 비록 수입이 많지 못하다 할지라도 남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솟아날 것입니다. 또한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자녀의 모습을 본다면 비록 학교에서 1등은 못한다 할지라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나를 이만큼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사무쳐 올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 내 영혼과 육신을 이날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나로 하여금 순간마다 깨닫게 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감사함이 넘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부흥사가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옆에 앉았습니다. 이 흑인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럴 경우는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하다가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옆의 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우스운 일이지만 불평보다는 좋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미움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불평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이해와 사랑이 솟아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만족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환경과 상관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카네기는 말하기를“지구상의 온갖 비극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데서부터 온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들의 행복한 삶을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2. 감사는 육체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그의 스승이신 연세 많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이“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의 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제안을 했습니다.“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이 노트에 감사한 일들을 적으라고 하자“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라고 말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사모님이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 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젊은 화가“오너 숄맨”은 결혼을 하고, 그의 아내가 잉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숄맨은 임파선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숄맨은 아내에게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우리 감사합시다. 이때까지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 부부의 좋은 만남과 사랑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바로 죽지 않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그리고 그는 남은 3개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기로 결정하고 정성을 다해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팔려나갔습니다. 그의 생명은 3개월의 한시적인 생명이라고 의사는 진단을 했는데, 30년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고 건강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존 헨리는 말하기를“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함의 능력입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맑은 음성과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하려면 채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에도 생체 리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체 리듬을 감사함에 맞추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때 인체의 기능이 원활할 뿐 아니라 건강하게 됩니다. 반면 불평하며 원망하게 될 때, 인체의 리듬이 깨어지며 건강을 약화시킵니다. 이것이 곧 스트레스의 이치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저녁에 유난히 피로를 느낀다면 원인은 둘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낮에 일을 열심히 했거나 종일 화를 내고 불평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불평할 때 우리의 건강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정상적인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암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미움이나 증오 불만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게 되면 체내의 정상적인 산소를 소비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감정 중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시키는 것이 미움이라고 합니다. 평안한 마음과 기쁨이 넘치는 삶,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즉 감사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인체의 신진대사를 정상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연 치유력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삶을 지켜주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3.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 바울이라는 훌륭한 전도자가 있습니다.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고, 신약성경을 13권이나 기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바울을 얽어맨 쇠사슬이 끊어지고 굳게 닫쳤던 옥문은 열렸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곳에 우리들을 얽어매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다니엘이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다니엘서가 다니엘 선지자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할 때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갔습니다. 포로 가운데 남달리 영특했던 다니엘은 바벨론 국왕의 총애를 받아 훗날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매사에 민첩한 다니엘을 남달리 신임하여 나라의 수석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은 다니엘을 시기한 나머지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죄인으로 몰았고, 다니엘을 끝내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짐을 받았을 때 천사가 나타나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간신들의 음모임을 뒤늦게 알게 된 왕은 음모한 간신들을 사자 굴에 던지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들을 던지자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어 간신들의 발이 땅에 닫기도 전에 뼈까지 부숴 삼키고 말았습니다(다니엘 6:1-24). 이처럼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베세다 광야에서 수만 명의 무리들이 운집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런데 먹을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대로 먼 길을 되돌아간다면 지쳐서 스러질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먹을 음식은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도시락 안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도시락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 주었습니다. 이때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나눠 줘도 나눠 줘도 끝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바울사도처럼 얽매인 순간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나를 얽어맨 줄들이 끊어집니다. 다니엘 선지자처럼 죽음의 위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예수님처럼 굶주림의 순간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함의 조건을 찾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배후에는 사탄의 조종이 있습니다. 사탄은 파괴자입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감사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아이작 윌튼이란 사람은 말하기를“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천국이요. 다른 한 곳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행복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육신의 건강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사람들의 심령을 시험하십니다. 감사함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신앙 인격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절기 맥추감사절을 맞았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시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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