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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 (민 14: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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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이 갈수록 그들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가나안을 향한 소망이 아니라 힘든 현실에 대한 불평이었습니다.
어찌 이것이 그들만의 한계이겠습니까. 모든 인간들의 예측 가능한 한계일 것입니다.
이들의 불평은 결코 단순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 과연 축복의 땅인가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정탐꾼을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믿음으로 행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를 원했습니다(신 1:22)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확신을 가지기는커녕 가나안 정복 자체에 대하여 불안한 나머지 정탐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은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데서 온 것입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하여 레위지파를 제외한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① 르우벤 지파 삼무아 ② 시므온 지파 사밧 ③ 유다 지파 갈렙 ④ 잇사갈 지파 이갈 ⑤ 에브라임 지파 여호수아 ⑥ 베냐민 지파 발디 ⑦ 스불론 지파 갓디엘 ⑧ 므낫세 지파 갓디 ⑨ 단 지파 암미엘 ⑩ 아셀 지파 스둘 ⑪ 납달리 지파 나비 ⑫ 갓 지파 그우엘이 각각 뽑혔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파송한 곳은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였습니다. 정탐꾼들은 이곳에서부터 북상하여 사해 서쪽 헤브론을 지나 갈릴리 바다 북쪽 하솔을 거쳐 가나안 최북방 경계인 르홉까지의 가나안 온 땅을 정탐하고 다시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 오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40일간의 긴 여정동안 충분한 정탐을 마치고 가데스 바네아의 이스라엘 본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 증거물로 가나안 땅의 수확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의 풍성한 생산 현장과 함께 그곳 원주민의 강대한 사실을 본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 앞에서 가나안 땅의 정복의지를 강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열 정탐꾼들은 그곳 원주민이 강대하다는 이유를 들어 가나안 정복 불가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f급기야는 민심을 얻기 위하여 그럴듯한 과장법까지 동원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3절에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열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는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고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찢어놓고 말았습니다.
본문 14장 1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 한심한 일은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발상을 하게 되었습니다(14:4)
이때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에서 엎드리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옷을 찢고 말하기를 가나안 땅은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강변했습니다(14:8-9).
이 말을 듣고 있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 돌로 치려 할 때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14:10).

본문 14장 11-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다급해진 모세는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14:20).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대가는 당연한 것입니다(14:22). 그것은 그들이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하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23).

열 번이나 시험했다는 말은 그들이 심판을 자처하기에 만족할 만큼 시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패역상을 살펴보면 홍해(출 14:11-12), 마라의 쓴물(출 15:23-24), 신광야(출 16:2), 만나(출 16:20-27), 르비딤(출 17:1-3), 금송아지(출 32:1-6), 디베라(민 13-14장) 사건 등을 예로 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14장 24절에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면 바로 본문에 나타난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평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혈기를 따라 함부로 말한 것 곧 14장 2절에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한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셨다는 말입니다.

Ⅰ.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에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6장 4절에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난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지도자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 역사에 개입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 역사를 주관해 가고 계셨습니다.
여기 아름답고 광대한 땅이란 비옥하고 넓은 땅이라는 말인데 팔레스틴 지역은 요단강물이 흐르고 샘이 풍부하여 대체로 비옥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대하다고 한 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일정한 지역에 종살이하면서 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가나안 땅은 그 보다 훨씬 넓은 땅입니다.
더 중요한 의미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자유 할 수 있는 땅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에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과 체결하신 언약에 대해 성경 여러 곳에서 가나안 땅에 관한 약속이 한결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창 15:18-21; 17:7; 26:3; 28: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믿음으로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언약하신 바를 믿지 못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속에는 하나님 자신의 언약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Ⅱ.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앙적 도전 은 멸망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14장 2-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고 했습니다.
이것은 열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저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지시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도중에 조그마한 고통을 당해도 '차라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출 14:11; 16:3).
이러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망언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존재를 불신앙하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열 정탐꾼들의 불신앙적인 보고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물같이 녹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도전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말한 그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욥기 3장 25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은 모두 가나안에 입국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데스 바네아 반역 사건의 징벌대상을 20세 이상 된 자로 규정하시고 광야 40년 방황 기간동안 그들 모두를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결국 20세 이상인 사람은 불신앙의 책임을 물어 광야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군대의 자격이 있는 사람들로서 마땅히 싸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약속을 믿지 못한 죄 때문입니다.
20세 미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징벌이 제외된 것입니다. 따라서 20세 미만인 자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20세 미만이라고 해서 모두가 불평과 불신앙의 죄를 범하지 아니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세 이상은 그 연륜의 값을 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나그네 세월의 나이 값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연륜의 값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지성인의 값을 해야 합니다. 잘 사는 값을 해야 합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 값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철없는 유아식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레온 우드(Leon Wood)박사는 말하기를 징계를 받은 120만 명(남녀 각 60만 명)이 광야 유랑기간 38년 6개월 즉, 14052일 동안 매일 죽어야 했다면 매일 85명가량이 죽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징계사건은 불신앙하는 무리들에게 대대에 이르도록 경고가 됩니다.
열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백성들이 죽겠다고 말한 불신앙의 말 그대로 되고 만 것입니다.
수없이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언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해 버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들의 불신앙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삶의 결국이 바로 파멸로 나타난 것입니다.

Ⅲ.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뢰는 영생과 축복입니다.

본문 14장 38절에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장 30절에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 정탐꾼의 보고와는 상반된 보고였습니다. 열 정탐꾼의 불신앙의 보고는 백성들을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도록 선동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① 가나안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습니다(민 14:7).
②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민 14:8).
③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민 14:8).
④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⑤ 열 정탐꾼들과는 달리 아낙 자손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민 14:9).
⑥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민 14:9).
이러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그들의 신앙심의 표현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한 말 중에 저들 나름대로 지어낸 말이 없었습니다. 여기 저들의 '과연'이란 말은 "말한 대로구나", "참으로 그렇구나"라는 말입니다.
'과연'이라는 말이 곧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저들의 언약신앙을 표현하는 압권입니다. 충분합나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 두 정탐꾼이 다 같은 땅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10대 2로 양분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수보다는 다수를 따랐습니다.
열 두 정탐꾼들의 보고가 모두 가나안 정복에 대하여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계속되는 기적을 체험한 그들로서는 적어도 그렇게 극단적인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불신앙의 망발(妄發)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중생받지 못한 자의 포악입니다. 이것은 같은 사물을 두고 신앙의 눈과 불신앙의 눈과의 차이입니다. 신앙의 입과 불신앙의 입과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성경)에 대한 도전적이고 부정적인 불신앙적인 망언은 하나님 귀에 들린 그대로 되고 맙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성경)에 대한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말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그대로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혀는 자신의 현재 상태와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난 수요일(6월 8일) 한국갤럽은 종교의식 설문 조사를 위해 만 18세 이상 전국(제주도 제외) 성인 남녀 1천500명을 대상으로 가구방문을 통한 1대1 개별면접을 실시했었습니다. 표본 오차는 2.5% 포인트(95% 신뢰수준)였습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젊은이 1,500명 중 63.4%가 '천국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이 세상에 있다'고 대답했고 '아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23. 9%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선하고 착하게 살면 천국을 갈 수 있다'고 대답한 젊은이는 1,500명의 응답자 중 71.5%였으며 '아니다 갈 수 없다'라고 대답한 자는 18.5%에 그쳤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신론 사상이 창궐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적신호입니다. 과학 지상주의가 모든 사상의 우위를 점령하고 황금만능주의를 실천적 가치로 하는, 극에 달하는 인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신호입니다.
물질(빵)을 절대 삶의 수단으로 삼고 주어진 현재의 환경을 행복의 절대 기준으로 삼는 이른바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입니다.
이렇게 될 때 천국도 성경도 교회도 하나님도 예수도 저들 앞에 산산조각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권(神權)이 배척당하는 시대는 바로 암흑시대입니다. 어두운 시대의 특색은 무질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시대입니l다. 닏. 모든 것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없는 시대입니다. 혼돈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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