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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병이어 (요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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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가장 잘 아는 성경의 내용만큼 저는 개인적으로 이 본문은 또 들어도 새로운 감동을 주는 성경 본문입니다.
요즘 우리가 듣는 주요 뉴스나 우리 삶의 가장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물론 요즘은 특별한 이슈가 있어서 좀 덜하지만 가장 궁극적인 관심사가 아마도 경제문제일 것입니다.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좋아지고 얼마나 수출이 많아지고 어디 집값이 오르고 취직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등 주요문제가 경제입니다. 저도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서 집에 가서 신문을 볼때 요즘 가장 관심있게 보는 부분이 경제부분입니다. 국민일보는 주로 신앙면을 많이 보고 동아일보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사회 스포츠부분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아마 주요관심이 경제일 것입니다. 나의 직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 사업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경제문제에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예배를 들리러 와서도 그런 마음과 생각으로 예배드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우리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대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향이었습니다.예수님당대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군중들의 필요는 경제문제였었습니다. 예수님을 좇으면 현실에서 빵의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과연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오늘 교회가 이런 현실적인 땅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종종 우리가 믿음생활을할 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적인 말만 하고 이상적인 가르침만 강조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신앙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혁해가기도 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빵이 필요한 현실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필요를 생각하시고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 않으시고 인정하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 애쓰십니다.
오늘 교회는 이런 필료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현실에서 우리는 이러 필요를 믿음 안에서 해결받기를 바랍니다. 과연 우리 주님은 땅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주십니까?

1. 먼저 무리들을 보셨습니다.

5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시겠느냐
여기 큰 무리가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이때 인원이 남자장정만 5천명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대략 1만 5천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정도의 인원이면 지금 교회로 보아도 메타교회에 해당되는 큰 인원입니다. 그러니까 초기의 예수님을 보면 굉장한 인기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한 것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주님을 따랐던 이유는 주님의 표적을 보았고 주님의 표적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주님은 이런 자기에게 오시는 백성들을 보셧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필요한 그들을 보셨습니다.그리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왜냐하면 지금 그들의 필요는 배가 부르는 육체의 필요가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관심을 갖으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혼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만이 아니라 육체의 필요를 염려하셨고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실제의 생활과 동떨어진 분이 아니라 우리 실제 생활의 필요까지도 관심을 갖으시고 해결하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우리는 구약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의 땅의 필요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채워주시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가장 관심있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만나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용할 양식인 “만나”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매일 새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고 안식일날에는 그 전날 따불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인 만나는 갓씨같고 모양은 진주같은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이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서 과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맛 같았다고 합니다. 모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족함이 없돌고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다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하나님이 고기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 먹고 싶다고 불평하면서 말을 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일으켜서 메추라기를 몰아서 이스라엘 진곁으로 내리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메추라기를 잡아모아서 진 사면에 쌓아놓고 실컷 먹게도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갈할 때 그 필요를 아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서 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덥거나 춥지 않도록 낮는 구름기둥으로 하늘의 해를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동안 크게 10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모세를 거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원한 자기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추워서 얼어죽거나 더워서 죽거나 하지 않고 그 생명을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땅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땅에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땅의 필요한 것들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지 말라 “그러면서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땅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그런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6장 9절 이하에 보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보통 우리는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11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 일용할 양식에는 우리의 육체의 필요가 포함이 됩니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그런데 그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시간 먼저 우리 주님께서 나를 형편을 보고 나의 필요를 알고 계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 우리의 땅의 필요를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우리가 염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는데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하십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자들아 하십니다.
나의 필요를 아시고 나를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께 구하시고 그분을 믿으시고 그분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2. 헌신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6-8절
여기 주님 앞으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배고품을 주님께서 채우실 때 제자들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먼저 제자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겟느냐”하십니다. 그러자 빌립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입니다”
여기 일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최저 하루 5만원을 기준하여 보더라도 최하 1천만원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빌립은 주님 앞에 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돈으로 빵을 사서 해결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님은 빌립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까?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기 시험이란 말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는가 하면 ‘마음을 떠보려고’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테스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빌립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여기 주님께서 테스트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빌립이 계산을 먼저 앞세울 것을 아셨습니다. 빌립은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빌립과 같은 사람은 돈으로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합리적인 계산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왜 주님께서 아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하면서 빌립을 시험하셨습니까?
빌립은 주님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이성과 합리적인 계산을 먼저 앞세우는 쌀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빌립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나는 믿음으로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성과 합리적인 계산으로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여기 주님은 빌립의 연약함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연약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약함을 드러난다면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빌립을 사용하셔서 일을 하시고 주님의 나라에 귀하게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계산을 앞세우고 합리적인 생각을 앞세우고 논리를 앞세우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오직 주님을 믿음으로 오직 주님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안드레를 보십시오.
8-9절을 보십시오.
“제자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겟삽나이까?“
계산을 앞세우는 빌립과 달리 안드레는 계산이 안되는 작은 것을 주님께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한아이의 음식인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습니다.이것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도무지 가능성이 없는 지극히 작은 음식이었습니다. 안드레는 그 적은 음식을 주님께 믿음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적은 음식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적은 것 보잘 것 없은 것이더라도 그것이 믿음으로 드려질때 주님이 그것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오병이어와 같은 작은 것을 인간적인 안목으로 보면 거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기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를 통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오병이어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믿음의 일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보기에 희망이 없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지경에서도 하나님이 하려고 하면 그곳에서 희망의 일이 일어나고 그곳에서 희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들이 주님에게 들려져 사용되어질때에 지금 여기에서도 주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나의 필요를 위해 쓰기 위해 갖고있는 오병이어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내어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원하실 때 내어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성지순례를 가면서 가장 알아보고 싶었던 것 중에서 과연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가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갈릴리에 갔더니 길가에 겨자나무가 있었습니다. 보통 성인들 키 크기의 나무에 맺혀있는 씨를 보았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컸습니다. 깨알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나라에서 말씀하셨다면 천국은 마치 깨알같을 것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때에는 작고 보잘것없는 씨와 같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겨자씨가 자라서 결국 나무가 되어 새가 와서 깃들일 정도로 천국이 확장될 것입니다.

스코클랜드의 어느 작은 마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한주간 동안 계속되는 집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헌신할 사람을 계속해서 초청했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마지막 날 한 작은 소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부흥회 기간동안 예수님을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이 겨우 한명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단한명의 사람,예수님을 영접하고 헌신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온 이 소년만은 달랐습니다. 그의 눈에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으며,그 소년은 “오 하나님 저의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저에게 아프리카를 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리빙스턴입니다. 작은 한소년의 믿음이 어둠의 아프리카 새벽에 빛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헌신한 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지극힌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 주님께 드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애세 주님이 쓰시는 오병이어같은 값진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축사하시고 주셨습니다.

11절
여기 주님께서 축사하십니다. 오병이어를 축사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손에 들고 그것을 감사하면서 기도하셧습니다.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것에이 감사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갖고 축복하셨습니다.
보통 우리는 작은 것은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작은 것의 가치를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병이어의 작은 것들이 감사를 통해서 축복을 통해서 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여기 주님께서 기도하시고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저희의 원대로 주시었습니다. 그리고 배부른 후에 남은 조각이 열두바구니에 찼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축사하시는 모습을 한번 상상하여 보십시오.
어쩌면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이 떡들과 고기들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이것을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버지 지금 여기에 저 많은 사람들에게 떡과 고기가 필요합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늘부터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병이어를 위해 감사의 기도 축복의 기도를 분명히 어떻게 하든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1만 5천명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을때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요.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그런 기도가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고 비웃을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축복과 감사의 기도하실 때 정말 축복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감사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감사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빈들에서 예수님 앞에 나왔던 사람들같이 물질과 세상의 필요를 좇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풍성하게 줄 수 있는 놀라운 복이 하나있는데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오병이어는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오병이어는 사람들의 눈에는 비록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 오늘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 주님은 “내가 곧 떡이요 내가 곧 살이요”라는 것을 알리시기를 원하십니다.오늘 주님께서 오병이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원대로 모든 사람들이 풍성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만난 예수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예수님이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없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도 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생명이 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6장 3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 앞에 모인 광야의 사람들처럼 목마르고 배고프로 공허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 나올때 우리 주님이 빵이 되어주시고 우리주님이 생선이 되어주시고 우리 주님이 생명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이땅에서 풍성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목마르지 않도록 축복하십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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