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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통한 기적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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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마 8:5-13)


먼저 예배에 참석한 모든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하심이 성도 여러분과 가정과 사업장과 직장과 학원에 항상 충만하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신자가 있을 경우에 목회자들이 모이면 자기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에 대하여 자랑하는 경우가 있고,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면서 칭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칭찬을 하고 나면 그 칭찬의 여파가 긍정적으로 미치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안타까운 경우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에 모범이 됩니다. 공적인 예배의 참석은 물론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뛰어나고, 성경공부나, 기도생활, 봉헌생활 등등을 아주 모범적으로 합니다’’고 이렇게 칭찬을 하고 나면 그 칭찬을 받은 신자도 칭찬을 한 설교자도 나중에 큰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시대가 심성이 왜곡되어 있고, 하나님 앞에 바른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시기심과 질투심이 있습니다.??믿음이 좋은 신자를 칭찬할 때는 충분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어린 동생을 칭찬하면 형이나 언니들, 즉 위에 자식들은 부모님 심정을 이해해 줘야 하는 데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부모님이 없을 때 쥐어박든지 뒤에서 괴롭히든지 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본성 가운데 죄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신앙생활을 오래 한 성도는 목사의 칭찬보다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합니다. 그런데 처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격려하기 위하여 한 마디 칭찬하고 나면 그 새신자에 대하여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목사는 꼭 아무개 신자만 칭찬한다”고 하는 유치한 일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그 새신자를 칭찬하고 나면 기존 성도들도 그 새신자가 신앙생활 잘 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일들도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시대가 악한 시대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통해 의도적으로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셨으면 괜찮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라고 이스라엘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자!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자기들이 신앙이 제일 좋고, 자기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의 선민이고, 이방인들은 짐승 같은 존재로 인식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마땅히 멸망 받아 마땅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 속에 놓여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그러한 선민사상에 철두철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백부장의 일화를 통해 단순하게 백부장을 칭찬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유대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12절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이 말을 들었던 유대인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서야 되었을 줄 압니다. 그러시면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백부장의 종의 병이 나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통한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받게 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백부장 처럼 이러한 은혜와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1. 백부장처럼 연약한 자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 조그만 어촌 마을인 가버나움이란 마을로 들어 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나와서 간구하며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자세하게 묻지도 않으면서 내가 가서 고치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백부장은 너무 당황이 되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으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고 합니다. 자, 여기서 보십시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합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단지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라는 믿음을 갖고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세우면서 칭찬받은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혹시 이 설교를 들으면서 기분이 나쁘다든지 기분이 찜찜한 사람이 있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오래 믿은 것 정말 축복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저는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기도 가운데 태어나서 기도 가운데 자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데 그 축복을 잘 관리해서 더 큰 축복으로 영글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축복 속에 태어나서 성장했으면서도 그 축복을 관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중 된 자보다도 더 형편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내 자신이 해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성도가 되도록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용은 마태가 기록한 것과 누가가 기록한 것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백부장의 이야기이고 백부장의 종의 병을 낫게 한 사건이지만 예수님의 칭찬까지는 다 같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나가서 간청을 했고 누가의 기록에는 백부장이 자기와 친분이 있는 유대인 장로들을 보내어 간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집에 오겠다 했을 때에 이 사실을 안 백부장이 급히 또 다른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오실 필요없이 말씀만 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누가는 이 백부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이렇게 포인트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백부장이라고 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어떤 백부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백부장이 뭡니까? 오늘날 군대 편제에서 백부장이라는 제도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이렇게 편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모세 시대에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받아서 백성들을 인도해 나가면서 재판도 하고 백성들을 리더해 나가는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 백부장이라는 명칭은 구약에 나오는 백부장이라는 제도와 전혀 다릅니다. 로마 군대는 군단이라는 큰 조직이 있었는데 그 군단 속에는 6천명의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6천명의 병사를 60명의 백부장이 지휘하는 소부대, 즉 Centurion(센츄리온)이 있었습니다. 요즘 소대보다는 좀 크고 중대보다는 좀 작은 100명의 병사를 거느린 지휘관을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Centurion이라는 말은 κεντυριων(켄튜리온)이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100명의 부하를 지휘하는 지휘관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일본계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읽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면 백부장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백부장은 그 군단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경력이 있는 지휘관들로서 로마 군단의 핵심적인 그런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 전술 전략을 구사해도 이 백부장들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전투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로마 군대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이 백부장은 돋보였습니다.

또 이 백부장은 전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또 로마가 엄청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식민지를 지배하는 지역 주둔지에서 백부장의 영향력은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식민지 지배 하에서 백부장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이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위해 회장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교회당을 지어 줄만큼 재력도 있었고 영향력도 있었습니다. 하인을 거느릴 만큼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하인이라는 말에 ‘파이스’(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볼 때에 백부장은 이 아이를 자신의 상속자나 아들처럼 사랑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7:5)고 한 것을 보면, 백부장은 사랑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하인을 사랑했기에 예수님께 찾아나가 간구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은 찾아나가게 하는 믿음이고 간구하게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가버나움의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중풍병 걸린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차 있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네 친구는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그 환자를 침상 채로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네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눅 4:20)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는 믿음은 친구를 침상에 싣고 예수님께 데려가는 적극적이고, 열심인 믿음이 되게 했습니다. 친구들의 사랑하는 믿음은 지붕위로 올라가고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는 모험적인 믿음이 되게 했습니다.

사랑은 주님을 향한 믿음을 만들어 내는 줄 믿습니다. 사랑은 적극적이 되게 하고 모험적이 되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럼으로 사랑은 큰 믿음을 만들어 사람을 살리기까지 하는 믿음이 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사랑하라)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3-24)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모든 인생을 사람을 살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에는 5명의 백부장이 등장합니다. 제일 첫 번째 등장하는 백부장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모두 나오는 오늘 본문에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했던 무명의 백부장입니다(마 8:5-13, 눅 7:2-10). 두 번째 백부장은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한 로마병들을 지휘한 그 현장의 총 책임자였던 백부장입니다(마 27:54, 막 15:39, 눅 23:47). 세 번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넬료라는 백부장입니다. 베드로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최초의 이방인입니다(행 10:1). 네 번째로 예루살렘에서 치안을 담당했던 백부장이 있었습니다(행 22:25-). 다섯 번째는 바울을 로마까지 호송해 갔던 호송 책임자였던 율리오라는 백부장입니다(행 27:1,6). 이렇게 5명의 백부장을 볼 수 있는데 백부장은 당시에 상당히 영향력있고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로마에 대하여 배타적인 민족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 나아가 간청한 사람은 백부장 자신이 아니고 백부장과 친한 유대인 장로들이었다고 합니다. 유대인 장로들과 친분관계가 있을 정도면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가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백부장이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하니 저가 유대 민족을 사랑하여 회당도 건립해 주고 유대인들을 돕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집에 직접 가셔서 낫게 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장로들이 예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이 백부장은 단순한 수준의 백부장이 아니고 유대인들과의 좋은 친분을 가지고 인정받는 로마의 관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백부장은 사랑과 인정이 풍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집에 하인 한 사람이 아파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그 당시 로마 시대에는 하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소유물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 백부장은 그 하인의 아픔까지도 헤아려서 예수님에게 그 하인이 낫게 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 저의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그 가버나움 동리에서 제일가는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떠돌이 청년 나사렛 예수가 자기 집에 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이라고 그 당대의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영의 눈을 뜨고 예수님을 보니까 영안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니까 예수님이 예사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인류의 구원자시고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감히 우리 집에 오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오라하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덜 된 사람들 가운데 쥐꼬리만한 권세를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도 목사를 함부로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나 백부장은 연약한 자신의 하인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지금까지 백부장은 자신의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사람이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풍병에 걸려 누워지냈기에 백부장은 너무나 안타까 워서 좋은 의원, 좋은 약을 다 찾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백부장은 모든 업무를 다 전폐하고 시간을 내서 예수님을 찾아가 자기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실, 일생동안 전쟁터에서 잔인하게 싸우던 사람이, 자기 식구도 아니고 자기 하인을 위해서 로마 장교의 체면도 다 접어두고 찾아가서 간청했다는
것은 대단한 사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5퍼센트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퍼센트가 인간관계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하찮다고 생각할 만한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챙겨서,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섬기는 믿음 있는 자를 끊임없이 사용하시기 위해 찾고 계십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은 연약한 자를 돌아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자에게 하는 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 성경학교에 주일학교 어린이를 위해 헌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부터 매주일 교사 자체 강습회가 있습니다. 이번 여름 성경 성경학교에 우리 성도 모두가 이 어린 소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피는 역사가 있어서 주일학교 부흥의 기적을 일으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모두는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는 크고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씀대로 이루어 질 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겠다 했을 때에 백부장의 간청을 받고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백부장은 말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시는 것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다만 말씀하옵소서. 백부장은 다만 말씀만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가식도 위선도 자기 이기심도 없이 예수님같은 분이 어떻게 우리 집에 오실 수 있겠습니다. 제가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저는 군인으로서 나도 위에 상관이 있고 내 수하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제 밑에는 많은 부하들이 있는데, 제가 저들에게 '앞으로 가'
하면 가고 '뒤로 돌아 가'하면 그대로 순종합니다. 오라 하면 오고 가라하면 갑니다. 내가 명령하면 부하들은 그렇게 합니니다. 자기 위치를 분명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성도여러분! 우리가 말씀의 권위 앞에 순종으로 살 수 있도록 항상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자기도 시험에 빠지고 다른 사람도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이 아무 권력이 없습니다. 아무 힘이 없습니다. 교회 직분은 봉사하기 위하여 주어진 직분이지 권세를 하고, 세도를 부리라고 주어진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집사가 장로가 되면 아, 내가 감투를 쓰게 되었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교회 직분을 맡으면 이제는 더 확실한 교회의 머슴이 되었구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 종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로 섬기지 않고 거드름을 피우고 다른 신자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나도 다른 사람의 밑에 있는 위치고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권위에 대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키울 때 부모들이 자녀들을 너무 엄하게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사랑 사랑 타령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커서 버릇없는 사람이 됩니다. 아니면 기가 죽어서 사는 자식이 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더불어 가정에서의 공의를 부모들이 잘 실현해야 합니다. 때로는 엄마들은 자녀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되고 아버지는 가정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올바른 진리를 통해서 내치는 사랑을 구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요즘 자녀들이 버릇이 없는 이유가 뭔가 하면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할 때 그냥 자녀들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망치게 됩니다. 그렇게 자라는 자녀들은 사회에 나가서 조직에 들어가서 절대 적응을 못하게 됩니다. 쫓겨 다니거나 떠돌아다니는 자녀들은 부모들의 양육 태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을 엄하게 훈계할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편을 들어서 이놈의 자식들 그러면 안 되지 해야 합니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해야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편을 들어서 옆에서 부채질을 하고 그리고 또 엄마가 혼을 내면 심약한 아버지는 또 아이들 편을 듭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망치고 망니다. 눈치만 살피는 기회주의자가 되고, 그러면 아이들이 자기 위치를 모릅니다. 요즘 아이들이 엄마에게 대들고 버릇이 없을 때는 아버지가 그 아이 끌고 나가서 안 죽을 만큼 두들겨 패야 합니다. 어머니의 권위에 대해서,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서 자식들 앞에서 서로 서로 권위를 세워 줘야 합니다. 내 위에 존귀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빵모자를 쓰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한 대통령이 돼도 내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하나의 표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 때 겸손하게 되고 자기 위치를 깨닫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오래 생각하고 이해가 되면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복잡하고 따지는 사라들은 대개 평생 큰 믿음의 역사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따져보고 의심해 보고 결정합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전체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용입니다. 군대에서 상사가 부하에게 명령하면 절대 순종하듯이 능력의 예수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하인의 병이 떠날줄 믿는 단순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 처럼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3. 뛰어난 믿음을 소유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문이 열렸다는 것을 말하고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은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지금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성경에는 “이만한 믿음”이라고 번역했읍니다만  NIV 영어 성경에는 「such great faith」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하고는 다른  위대한 믿음이야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때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 내 자신의 고정관념, 내 자신의 선입견, 이런 것을 가지고 자기 열심, 자기 이익, 자기 의에 취해서 착각하고 신앙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자세로 바른 자세로,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괸계가 이런 백부장과 예수님과의 관계로 재설정할 수 있는 이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밴 나이스제일침례교회는 대교회로 유명한데 그 담임목사님은 H.L 피케트 목사님입니다. 그가 쓴 「교회성장의 열 가지 원리」라는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그 교회는 큰 교회당을 짓노라 180만불(우리 나라 돈으로 약 21억원 정도) 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8년 어느 주일 아침 설교하는 도중, 갑자기 무엇인가 큰 감동에 휩싸인 채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1.000명 청소년
이 있는데 이들을 위해 청소년회관을 건립해야 합니다. 그 비용은 100만불(약12억 정도)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합심기도를 부탁합니다. 개인적
으로 기도하시고 가족예배 때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청소년회관은 10년 후에나 필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곧 필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교회 재정위원들이 와서 "목사님, 이제 다 망쳤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21억 갚기도 난감한데 또 다시 12억 짜리 회관을 짓겠다고 했
으니 교인들은 목사님의 말을 그대로 믿는데 이제는 목사님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교회가 큰 어려움을 만날 것입니다."라고 항의조로 말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여러분, 저는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한 해 동안만 비판을 삼가 주시고 대신 저와 함께 그 일을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
다.

그들은 기도하자고 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목사님과 교회는 전적으로 기도할 때에 만 일년이 되기 넉 주일 전 '자유레코드회사'
의 주인 '알 베네트'라는 분이 청소년회관 건립을 위해서 100만 불을 헌금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큰 믿음의 결과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
다. 교회는 이런 큰 믿음의 사람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 주님이 명령만 하옵소서. 그러면 병자가 그대로 나을 줄 믿습니다."라고 백부장은 믿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감탄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신 후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때에 그 하인이 즉시 나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적은 믿음의 그릇은 적은 능력이 담기지만, 큰 믿음의 그릇에는 큰 능력이 담깁니다.

믿음이라고 똑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시늉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누구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른 믿음은 바른 말씀에 대한 이해, 주님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오래 다닌 것 참 귀합니다. 교회에서 봉사 많이 한 것 참 귀합니다. 칭찬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들에게 칭찬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초신자가 칭찬받는 것 그것 못 견뎌서 막 시기하고 질투하는 유치한 신앙생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시비를 안 걸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구원 못 받는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분기충천해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가만히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분별력 있는 신앙,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백부장의 믿음이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7:21).

주님은 지금도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있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님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과부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을 대망했던 삭개오의 뽕나무에 올라간 믿음을 보셨습니다. 본문에 하인의 병을 고치고자 했던 백부장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축복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도 입술의 믿음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 믿고 받은 증거가 없다면 얼마나 맥빠집니까?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백부장 처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까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확신하며, 그 말씀안에서 행함있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탁월한 믿음으로 성령님의??손에 붙들려 도구로 쓰임 받으시고, 예수믿고 받은 응답과 체험과 증거가 있는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아멘>  (황영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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