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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대하 29: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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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 유다의 왕들 가운데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3대 성군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그의 나이 이십오 세였습니다(대하 29:1).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반(反)앗수르 정책을 펴서 독립을 하려던 북조 이스라엘이 히스기야 통치 6년째 되는 해에 멸망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의 범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남조 유다에서는 아하스가 반대로 친(親)앗수르 정책을 폈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망신만 당하고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대하 28:21). 이쯤 되고 보니 백성들 사이에서는 오직 의지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갔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앗수르와의 종속관계를 벗어날 수 있는 묘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히스기야가 얻은 결론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민감한 국제적 정세에 무게를 두지 아니하고 종교개혁운동에 박차를 가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구체적이고도 광범위하게 단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앗수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애굽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는 승산이 없으니 앗수르에게 항복하자고 하는 무사안일주의자들이 히스기야에게 충고를 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나 미가야 선지자는 두 종류의 여론을 질타하면서 힘과 승리의 근원이 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유다가 살길은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의 시국관과 히스기야의 시국관은 동일했습니다. 여기에서 히스기야는 결정적인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시국관이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도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Ⅰ.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정책은 미리 준 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적 운동입니다 (예배의 외적운동).

역대하 29장 5절에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고 했습니다.
약관(弱冠) 25세에 위(位)에 오른 히스기야가 국내외적으로 처한 민감한 난세를 극복하기 위한 최우선의 조치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이 성전정화운동으로 가시화되었습니다. 본문에 성전 정화운동을 위한 히스기야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정화하는 목적과 이유를 백성들 앞에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습니다.

①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했습니다(대하 29:6)
②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졌다고 했습니다(대하 29:6).
③ 우리가 낭실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대하 29:7).
④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대하 29:7).
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대하 29:8).
⑥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시므로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대하 29:8).
⑦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다고 했습니다(대하 29:9).
⑧ 하나님의 그 맹렬한 진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대하 29:10).
⑨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운 자들로 성전을 정화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대하 29:11).

그리고 히스기야는 성전정화를 위한 구체적 집행을 단행했습니다. 레위인들은 히스기야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일을 시작했습니다.
① 레위지파의 지도자 14명과 그의 가계에 속한 자들을 모았습니다(대하 29:15).
②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한 것을 좇아 여호와의 전을 깨끗케 했습니다(대하 29:15).
③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었습니다(대하 29:16).
④ 성전정결운동은 16일 동안에 걸쳐 전격 이루어졌습니다(대하 29:17).
이렇게 히스기야의 성전정결운동이 급속히 시행된 것은 한 목적을 위해 레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적 현상이었습니다.

Ⅱ. 히스기야의 제단 회복의 결단은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적 운동입니 다(예배운동).

역대하 29장 24절에 {제사장이 잡아 그 피로 속죄제를 삼아 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고 했습니다.
① 히스기야는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 전에 올라갔습니다(대하 29:20).
② 히스기야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 그리고 어린 양 일곱으로 번제를 드리게 하고 그리고 수염소 일곱으로는 속죄제를 드리게 했습니다(대하 29:23-24).
여기 속죄제는 온 이스라엘의 범죄를 위하여 드려졌습니다(대하 29:24). 그리고 번제는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드려졌습니다(대하 29:21). 번제는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레 1:3-17; 6:8-13). 그런데 이 제사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친히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줌을 의미합니다(마 26:39-44; 엡 5:2; 빌 2:5-11).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희생적인 헌신을 의미합니다(롬 12:1, 2). 속죄제는 특정한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려집니다. 특히 수염소를 제물로 드리는 경우는 족장들의 죄사함을 위한 것입니다(레 4: 22-26). 이것은 유다 민족 전체가 죄로 인해 받을 심판을 면하는 제사입니다.
③ 히스기야는 전통에 따라 레위 사람들을 성전에 두어서 악기를 연주케 했습니다(대하 29:25). 온 회중이 경배하고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로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로 번제를 바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대하 29:28).

Ⅲ. 거국적인 충만한 감사 행위는 미리 준 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적 운동입니다 (감사운동).

본문 29장 31절에 {이에 히스기야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케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회중이 드디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을 가져오니}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제사와 찬양을 마치자 백성들로 하여금 화목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에 바치도록 명령했습니다.
여기 {제물}과 {감사제물}이 나오는 데 여기 {제물}(제바힘, )은 희생제물 자체를 가리키는 총체적인 것입니다. 여기서는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희생제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여기 {감사제물}(토도트, )은 이미 받은 어떤 특별한 은혜 때문에 드리는 희생제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전정결운동으로 성전이 본래의 모습을 찾아서 예배가 회복된 것에 대한 감사를 가리킵니다.

회중이 감사축제에 가져온 예물은 자원하여 가져온 것입니다.
① 수소가 칠천, ② 수양이 일백 ③ 어린양이 이백인데 이것은 번제용입니다. ④ 소가 육백, 양이 삼천이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벗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의 수가 부족한 이유는 세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예측 가능한 것은 첫째는 제물이 너무 많아서였을 것입니다. 둘째는 아하스 왕 이후로 우상 숭배를 한 제사장들이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에 가담한 제사장들은 다시 성결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것은 제사장들의 직무 자체가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레위인들보다 성심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지도자로서 아하스의 우상 숭배에 더 많이 관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의 전 예배가 순서대로 갖추어졌고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의 시국관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 신앙입니다. 그의 난국타계의 방법은 ①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정결운동과 ② 여호와 하나님께 향하는 예배 회복운동과 ③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운동으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이 성전정결운동은 정월 초하루에 시작해서 그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정월 십육일에 마쳤습니다. 16일 동안 전격적으로 된 성전재건공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 지라도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아하스의 폭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우상을 섬기던 자리에서 급선회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예비하시고 섭리하신 것입니다. 결코 우리에게는 우연이 아니고 필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하스의 치하에서도 히스기야를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기뻐한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갑작스럽게 된 것 같고 히스기야의 독단적 종교성의 열심으로 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한 것은 오래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적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하나님 이전에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갈멜산상에서 응답하시던 엘리야의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수태고지는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갑자기 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갑자기 오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결코 갑자기 오시는 것이 아니고 이 모두는 이미 오래전에 예언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을 준비하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예언을 따라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 의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신림동에 갑자기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쩌다가 이 교회에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피차 어쩌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가 아닙니다. 이 모두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건물을 매입하고 주차장 부지를 확보한 것이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각자 건축연보를 작정한 것이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작은 일 하나하나에까지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그것에 의미를 담고 우리가 크게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래 전에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섭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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