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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 3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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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사서 오른손에 들고 왼 손에는 잔돈을 받고 나오다가 유명한 영화배우 폴 뉴먼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력적인 파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는 폴 뉴먼을 보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를 지나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왔는데 손에 보니까 아이스크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가게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때 폴 뉴먼이 가게에서 나오면서 말합니다. “아이스크림 찾으러 오셨지요?” 그러자 이 여자가 대답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죠?” “제가 보니 당신이 좀 전에 잔돈과 아이스크림을 가방에 집어넣던데요.” 그 여성은 폴 뉴먼의 파란 눈을 보다가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 아이스크림을 가방에 집어넣고 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영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정신을 못 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옵소서.”하고 과감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히브리말로 ‘카보드’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한한 위대함과 가치가 있어서 그것을 보는 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헬라말로는 ‘독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한한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무한한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자비, 축복, 치유, 위로,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는 길, 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길입니다. 모세는 지금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보게 되면 하나님을 무서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면을 즐거워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섭섭한 마음과 두려움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하고,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먹고 마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를 보이셨습니다. 레위자손을 들어서 삼천 명을 죽이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질병으로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백성을 데리고 내가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가라 그러나 나는 너와 같이 가지 않겠다. 내가 도중에 너희를 진멸할까 함이라.”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말씀을 듣고 엎드려서 중보 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은 주의 백성이 아닙니까? 나는 길을 모르오니 주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함께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몸에 단장품을 하고 하나님 앞에 슬퍼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명령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의 의미

이 두 가지를 행위로 인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모세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자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믿음이 더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를 많이 보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보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많이 보며 살았다면 이 시간에 회개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1970-80년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살 능력이 있습니까? 이유가 있습니까? 자원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대한민국에 나타내시고 세계에 깃발을 휘날리는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사이에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사회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해 주옵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시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세 가지

오늘 본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을 보이십니다. 그 본질이 19절 전반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한 형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한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오.”하면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줍니다. 학위, 권력, 돈, 지위, 능력, 재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소유물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만유의 주인이면서도 당신의 선하신 본질을 영광으로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의 도덕적인 특질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좋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생각을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이 다 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도 선하고 율법도 선하고 하나님의 섭리도 선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만물을 보세요. 얼마나 선하십니까?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선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는 잘못 만드셨어.’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잘못 만드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33편 5절에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땅은 여호와의 선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고 착한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에 있는 새 한 마리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들풀 하나도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바람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시원해집니까? 자연의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착하심을 증거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시편 145편 9절에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천지창조를 봐도 하나님은 선한 분이고 인체의 구조를 봐도 하나님은 선한 분이십니다. 눈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한개만 만들어 놓으셨다면 운전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공격이 올 때는 순식간에 눈꺼풀이 닫혀 집니다. 속눈썹도 만들어 주셔서 깜빡거릴 때마다 얼마나 매력 있습니까? 관절 하나를 봐도 얼마나 선하게 만드셨습니까? 안에 연골이 있어서 뼈끼리 부딪히지도 않고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프지 않게 걷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것이 다윗의 말대로 얼마나 신묘막측합니까?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도다.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우리는 대 자연을 볼 때, 우리 신체를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드러내는 역사를 보아도 하나님이 착한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인간이 행한 모든 일에는 현세의 심판이 있고 역사의 심판이 있고 내세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판하시면서 악인의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지 않으시고 의인의 의에 대해서는 핍박하시고 심판하신다면 그런 하나님을 따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악에 대해서는 징계하시고 선인의 의에 대해서는 보상하십니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보아도 선하시고 역사를 보아도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은 이 선한 본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34편 8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겠지만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은 하나님의 선한 형상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9절 후반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은혜줄 자에게 은혜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나님은 은혜줄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진노하시면 우리가 광야에서 전부 죽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우상숭배에 빠졌구나. 그러나 그럴지라도 내가 너희를 다 죽이지는 않겠다. 너희 가운데는 은혜를 받을 자가 있고 너희 가운데는 내가 긍휼을 베풀 사람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은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구원하시는데 나타납니다. 천지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일반은혜라고 한다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구원하시는 영광은 특별은혜의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를 심판하셔도 선하시고 그 가운데 은혜를 주셔서 건져내셔도 선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택하신 영혼이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독재자이십니까?” 하나님은 택하셨어도 선하시고 버리셨어도 선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20절에 “이 사람에 네가 뉘기에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말하겠느뇨.” 하면서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이 만약 하나님의 공의대로 우리에게 행하셨다면 우리는 몽땅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왜 나를 지옥에 보내셨습니까?” 하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럴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며 살아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일부를 불러내시고 아무런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긍휼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셨으니 얼마나 선한 하나님이십니까? 악인들에게 벌을 주어도 선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일부를 구원하셔도 선한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볼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보고 죽으면 더 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긍휼을 본 사람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죽으면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5장에 장차 올 영광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환란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조금 어려움을 겪고 살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신 그 영광은 우리의 마음으로도 상상할 수도 없고 눈으로도 보지 못하던 위대한 영광인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진실로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고 진실로 마음 깊은 곳에서 예배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은 하나님의 선한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본문에 20절에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살 자는 없습니다. 모세같이 위대한 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해서 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네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위에 서 있으라.” 22절에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은 모세 같은 위대한 인물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영광은 하나님의 등의 영광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후에 천국에 가서 우리의 죄성을 다 벗고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그 때에 하나님의 얼굴의 영광을 보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세가 숨어있었던 반석 틈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이 바위를 영적으로 해석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이 바위를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며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우리 인간,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곳은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을 쳐서 쪼개시고 그 틈에 모세를 두시고 모세가 그 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등의 영광을 보여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볼 사람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석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반석을 쪼개시고, 틈을 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그 틈에 숨기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바위틈,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인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에 우리 대신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그 바위틈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예수 이름 이외에 우리를 구원한 이름은 없습니다. 부처 믿어서 구원 받습니까? 마호메트 믿어서 구원 받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예수이름 외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이름이 없음을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려면 바위 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만이 찢기신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보이실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를 보며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나라가 강성하고 국방이 강성하고 국운이 융성하고 선한 왕이 나와서 정치도 잘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나라는 쇠약해지고 국방도 약해지고 국가는 멸망하고 어리석은 왕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볼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기본자격이 안 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밖에 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의 반석 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에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택자의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하신 영광을 날마다 체험하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영혼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국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어 주시고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 오늘 그렇게 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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