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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마음이 머무는 곳 (대하 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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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드디어 성전 봉헌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벅차오르는 감격이 있다. 수고한 모든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이렇게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예배를 드리게 됨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셨다. 도구로 쓰임받은 것도 얼마나 감사한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이루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을 특히 맥추감사주일이다. 온 성도들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감사할 내용이 많이 있겠지만 교회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셔서 성전을 봉헌하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교회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성전을 지어지는 과정을 다른 교회 장로님에게 설명했더니 그 장로님이 내 말을 들으면서 “어휴 목사님 제 손을 보세요. 소름이 끼쳐요.” 왜 소름이 끼쳤는가? 무서워서?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렇게 성전을 봉헌하게 되었다. 오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내 눈과 내 마음이 이곳에 머물러 있으리라.” 나는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드렸다. “내 눈과 내 마음이 이곳에 머물러 있으리라.”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가?

우리도 이곳 저곳을 다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곳은 더 머물러 있고 싶은 곳이 있고, 어떤 곳은 얼른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사람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함께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자 그러면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우리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손으로 지은 성전,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으로 삼았으니.”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물러 있는 이곳은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를 세우신 이유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다. 교회가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다.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으로 삼았도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예배는 시대에 뒤떨어진 옛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까지 예배를 드리고 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대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예배가 밥먹여 주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배는 생명이다. 예배는 곧 우리의 목숨과도 같다. 인생의 성공과 승리의 비결이 바로 예배에 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바로 우리의 예배에 달려있다. 예배를 통해서 회개가 일어나고, 예배를 통해서 새로운 비전을 얻고, 예배를 통해서 새롭게 살고자하는 결단이 일어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는다. 예배를 드리면 건강해 지기도 한다. 듀크 대학교의 한 연구결과를 보면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 예배에 참석하고 또 최소한 하루 한 번 기도하거나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혈압이 일관성 있게 더 낮았다. 성전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서 예배 드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때에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북군은 남군의 리장군같이 휼륭한 장군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 북군에 리장군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기도보다는 사람을 더 의지하였을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북군이 승리한 비결이었다. 이렇게 역사상 큰 일을 남긴 링컨 대통령의 십계명이 있는데 첫 번째의 계명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생활에 힘쓸 것이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 보았다.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으로 삼았도다.” 이러한 신앙의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곳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곳이다. 하늘이 닫혔는가? 이곳 성전에 와서 기도하라.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이곳 성전에 와서 기도하라. 왜 그런가? 성전은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 말씀하셨다.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꽉 막혀서 고통을 당하는가? 이곳 성전에서 기도하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라.”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가?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라.” 삶의 문제가 있을 때에 말씀을 듣는 성전에서 기도하라. 인생의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에 성전에서 기도하라.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있을 때에 성전에서 기도하라.

어느 새신자가 결혼을 앞에 두고 있다. 큰 일을 앞에 두고 얼마나 떨리겠는가? 얼마나 염려가 되겠는가?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른다. 성전에서 저렇게 기도로 준비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분명히 들으신다. 응답해 주신다. 시간이 있을 때에 가끔 은혜채플에 내려가 본다. 눈물 흘려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라.”

열왕기상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누가 나의 마음을 다 알아줄 수 있겠는가? 부부가 살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 알아주는가? 그렇지 못하다. 친구가 나의 마음을 다 알아 주는가? 부모 자식 간에 서로의 마음을 다 알아 주는가? 그렇지 않다. “주만이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주님이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내가 주님 앞에 나의 마음을 털어 놓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

이렇게 기도할 때에 그 결과는 어떤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 성전이 얼마나 귀한 곳인지 모른다.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죄를 짓게 만드는 곳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가? 그러나 성전은 지은 죄를 용서받는 곳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서울대 이성우 교수에게 의뢰해서 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 범죄발생의 결정요인과 도시계획적 시사점’이란 연구논문에 따르면, 녹지(개발제한구역) 면적이 1% 증가하면 전체 범죄가 약 1.1% 감소하고, 주택지구 면적이 1% 늘어나면 전체 범죄가 36%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관이나 술집 등 숙박 및 유흥업소 면적이 1% 많아지면 전체 범죄건수는 2.5% 늘어나며, 5대 강력범죄는 무려 19.8%나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흥업소가 늘어나면 강력범죄율이 무려 20%나 증가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역할을 잘 감당하면 범죄율이 얼마나 줄어들고, 자살율이 얼마나 줄어들겠는가? 이러한 결과로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망가진 땅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신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다. 교회를 지을 때에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는 법이 입법될 뻔 했다가 이제는 잘 해결되어가는 모양이다. 일단 예배당을 짓는다고 하면 동네 사람들이 반대를 한다. 그래서 멀리 이전한 교회들도 있다. 덕을 끼치지 못한 우리의 책임도 있겠지만, 교회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말씀하셨다. 우리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도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나는 성전을 지으면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성전을 지으면서 성도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나는 성전을 지으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성전을 짓는 담임목사의 심정을 이렇게 글로 적어 보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불안한 것 같이 느낄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합력해서 일을 이루셨습니다. 염려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릎 꿇게 하셨고 그 무릎을 통해서 일을 이루셨습니다. 멋진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만입이 있어도 행하신 일을 찬양하기에 부족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좋은 성도들과 함께 목회하는 제가 얼마나 복받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성도들의 성격과 성향이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지어지게 하시고 봉헌하게 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앞장선 분들에게도 감사하고, 뒤에서 묵묵히 기도하며 동참한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바치고 싶으나 바칠 것이 없어서 눈물로 호소하는 성도들의 아픈 마음을 압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러나 바칠 것이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여 머뭇거렸던 성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성도는 체면유지 수준으로 동참했던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감격스럽기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더 많이 기도 하지 못하고 지혜롭게 지도하지 못한 제 자신의 부족을 탓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기도 합니다. 성전을 지으면서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집은 돈으로 지어도 성전은 감동으로 지어집니다. 눈물로 지어집니다. 감동의 눈물이 없으면 지어지기는 했지만 생명력이 없는 마네킹과 같습니다.

성전을 지으면서 특별히 고마운 성도들이 있습니다. 건축위원장으로 수고하신 박윤장로님. 힘있게 밀어 붙이면서 큰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관리부장으로 수고하신 최성태 장로님. 두루두루 살피시면서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셨습니다. 또한 여선교회의 헌신적인 노고에 깊은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감사한 분들은 기도의 눈물을 흘리신 성도들입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기도의 눈물이 이 성전의 기초와 기둥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봉헌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남겨진 부채가 있습니다.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남모르는 한숨을 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하여 더 많이 무릎 꿇게 하실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저는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성도들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더욱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영적인 깊이와 말씀 깊이의 소중함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부족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고 주님의 손에 사로잡힌 목회의 소중함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다니 식구들 너무 사랑합니다. 영양이 듬뿍 담긴 하늘의 양식을 기도하며 정성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이 종이 간구하옵나니 이 백성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잘되게 하옵소서! 이 종의 마음을 주님이 아시오니 “오늘부터 베다니 식구들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성전은 주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우리의 마음도 성전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곽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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