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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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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인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부부가 아픔을 딛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거액의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헌금봉투에 적힌 감사의 내용은 “좋은 아들을 20년간 우리 곁에 두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혼을 받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는 글귀였습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도 저들처럼 감사헌금을 드립시다.” 라고 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우리 애는 아직 살아 있잖아요.” 이때 남편이 “바로 그것 때문에 감사하자는 것이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잊고 있는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감사를 기다리고 있는 은혜, 감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은혜가 너무나 많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뚜렷한 특징입니다. 신앙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함이 있는 신앙은 건강한 영혼을 지닌 증거요, 감사함이 없다면 영혼이 병약한 증거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맥추절이란 유월절이 지난 칠 주 후에 농사를 지어 첫 번째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오순절, 칠칠절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맥추절의 성경적 기원은 신명기 16장 9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날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한해의 상반기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지혜와 건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보며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그 어떤 수고도 열매 맺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성함도 허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개인적이거나 가정적인 모든 은혜로 인한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예배적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7절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영어성경은 ‘overflowing’ 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가득 차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를 뜻하는 thank와 생각하다인 think의 어근이 같습니다. 그리고 grace인 은혜라는 단어는 gratitude인 감사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감사함이 넘치는 뜻깊은 감사주일이 되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가 감사함을 넘치게 하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를 주로 받은 증거입니다

이탈리아의 성자로 알려진 성 프란시스코에게는 늘 괴롭히던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하루는 두 사람이 격렬한 신앙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 앞에 한 걸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걸인은 맹인으로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프란시스코가 맹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내 명령에 순종하겠소?” 맹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디 순종뿐이겠습니까? 평생 선생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섬기겠습니다”. 프란시스코는 무신론자인 친구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이 맹인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면 평생 노예가 되겠노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자네는 밝은 눈과 명석한 두뇌를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그 친구는 그때서야 자신의 우둔함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여기의 ‘주(Lord)’ 라는 말은 ‘상전, 주인’ 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주인이었기에 욕심의 종 되어 살았고, 육신의 종 되어 살았지만, 이제는 상전이 바꿔지고 주인이 바꿔졌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사업장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고, 나의 인생 전체가 주님의 것이라는 거예요. 주님의 것이 되면 실패가 없습니다. 주님의 것으로 고백하며 살면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밤이 있고, 낮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도 평탄한 길이 있으면, 꼬불꼬불 힘든 길도 있습니다. 때로는 터널도 지나가고, 때로는 확 트인 길도 지나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꾸어 주시는 주님,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이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에 굳게 선 모습입니다

흑인들의 예배는 매우 열정적입니다. 그들은 온몸으로 찬양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를 외치며 큰 소리로 화답을 합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습니다.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어나서 걷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뛰어가야 합니다.” 교인들은 신이 나서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뛰어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더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그러자 모두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목사님께서 흐믓한 모습으로 교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시간 하나님께 헌금합시다." 그러자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한 사람이 용기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하여금 예전처럼 다시금 앉아있게 하십시다.”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향한 희생과 헌신은 반드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사람만이 넘치는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기에는 감사하기 어렵다 해도 그 속에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믿음,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이런 믿음만이 넘치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은 예수 안에서 행하여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대로 행하며 온전히 세움을 받을 때에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있으면 사건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어느 기도원에서 김장 무를 심었는데, 마침 무를 심은 장소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응달진 곳이어서 무가 제대로 알이 차지 않고 달걀 만했습니다. 기도원 원장과 일군으로 고용된 믿지 않는 사람이 김장 무를 함께 뽑으며 대화를 합니다. “무 농사가 잘 안 되었군요.” 그러자 원장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잘되었습니다. 실은 잎사귀나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무 밑 둥까지 들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시각의 차이입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과 땅의 것만 바라보고, 세상 것만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확실한 사람이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확실하게 내리고 살면 범사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감사로 받아들이게 되어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축복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이었던 헨리 포드는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 한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고아원생들을 위해서 강당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2,000파운드를 기증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신문에 뜻밖에도 이러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서 20,000파운드를 기증하기로 약속하다.” 2,000파운드가 20,000파운드로 잘못 게재된 것입니다. 고아원 측에서 그 기사를 보고 포드 회장을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정정 기사를 내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18,000파운드를 더 내겠습니다. 그 대신 고아원의 강당이 완공이 되고 나면 그 입구에 이런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드려진 헌금으로 지어진 강당’.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함도 마땅히 넘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낭비가 아닙니다.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언제나 축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게 마련입니다.

감사를 연습하고, 감사에 익숙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없어진 것, 사라진 것을 바라보지 말고, 이미 내게 주신 것, 받은 복을 세어보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를 늘 고백하며 표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환경도 달라지고, 내 육신과 영혼도 복되게 달라질 것입니다. 도무지 감사 할 수 없던 것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게 하십니다. 때문에의 감사가 아닌 그리 아니하실찌라도의 감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주로 받은 자답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굳게 선 자이기에 감사하시며, 축복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더욱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부디 눈으로 보는 것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귀로 듣는 말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범사에 감사함으로 언제나 감사함이 차고 넘치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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