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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의 그릇을 빌라! (왕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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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주신 본문 열왕기하 4장 1절을 보니, 선지자 엘리사에게 사사하던 생도 한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빚을 남긴 채 죽고 말았습니다. 홀로 남게 된 선지자 생도의 아내, 혼자 된 것만 해도 막막한 데, 곧바로 채주, 곧 빚쟁이에게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여인의 친척이나 친지들 가운데 그 빚을 대신 갚아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결국 채주는 빚 대신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 가겠다고 주장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채무자와 그 자녀를 종으로 삼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그 기간은 희년까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빚 때문에 끌려온 종들을 다시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어야 했던 것인데요, 어쨌든 마지막 희망인 두 아들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 여인이, 그러나 다급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와 그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4장 1절에 보니 그녀가 조용히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부르짖어 아뢰었다고 합니다. 아주 잘 한 일입니다. 그럼요, 하나님을 믿는 자, 다급하면 다급할수록 주님께 나아와 부르짖어 간구해야 합니다. 다급하다고 엉뚱한데 가서 일을 더 그르친 다음에 오는 것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주님께 달려 나와 부르짖어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럼요,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시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 2
그런데 4장 2절을 보니, 부르짖는 이 여인을 향해 선지자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금 무엇이 있는지를 선지자가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없어진 것, 이미 사라진 것, 이미 잘못된 것, 이미 빚진 것, 한 마디로 실패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실패하여 없어진 것 대신 성공하여 남아 있는 것을 먼저 묻고 있는 것이지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실패에서 시작하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성공에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전자의 경우, 항상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그 잘못된 것을 고쳐가려는 사람이요, 후자의 경우, 무엇을 잘했는지를 먼저 분석하고 성공 사례를 찾아 그로부터 한 단계 발전시켜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요, 항상 실패에서 시작하는 사람, 문제를 파헤치고, 늘 비판하고, 잘못된 것들을 찾아 해체하는 일에 소진하다가, 그만 정작 일을 종합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대목에 가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패에서 시작하는 사람, 항상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캐고 묻는 바람에, 그만 자기 스스로 부정적인 사람으로 체질화 된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성공을 향한 현실적인 대안을 내지 못하는 사람, 실패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이지요.

그러나 성공에서 시작하는 사람, 언제나 대안을 먼저 찾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납니다. 물론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합니다만, 그러나 성공에서 시작하는 사람, 문제 보다는 성공 사례를 찾아 그것을 확대 재생산 하는 방식으로 일을 풀어갑니다. 그런 사람, 산더미 같은 문제 속에서도, 언제나 성공한 케이스를 먼저 찾아냅니다. 그러다 보니 늘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긍정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아는 사람, 해서 늘 성공을 향한 다음 대안을 창안해 내는 사람, 한 마디로 성공에서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가는 경우이지요.

존경하는 여러분, 나는 실패에서 시작하는 사람입니까? 성공에서 시작하는 사람입니까? 부디 성공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작은 것 같지만, 여기 기름 한 병, 남아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름 한 병으로 새 역사를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믿고, 그 날의 기쁨을 선취하며, 소리 높여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겐 이것 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나는 더는 못하겠다고, 이미 나는 실패했다고, 늘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 하나님의 새 역사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지금 나에게 있는 기름 한 병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큰 역사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 3
<너의 집에 무엇이 있느냐?>는 선지자의 물음에 과부는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다른 건 다 실패해서 사라졌고, 겨우 남아 있는 것, 기름 한 병이라는 거죠. 그러나 주목할 것은 여인이 대답 속에 어떤 탄식이나 절망이나 원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니, 한 병의 기름이라도 주님께서 축사하시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는 믿음이 전제된 대답입니다.

그러자 선지자 엘리사가 이렇게 명합니다. 3절이지요.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라!>

아마 그 상황에서 제가 엘리사였다면, 정말 한심하고 무책임한 그 생도에게 한 마디 했을 겁니다. <아니, 집 한 채 남긴 것 없지요, 예금 통장이나 부동산이나 혹은 숨겨 놓은 패물도 없지요, 그런 채로 아내와 아들들을 빚더미 위에 앉혀 놓고 훌쩍 떠나다니, 무책임한 놈 같으니라고, 정말 한심한 지고!> 이렇듯 여러 말로 탓하고 질책하며 탄식했을 겁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는 달랐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실패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대신 거기 남아 있는 것, 그나마 남겨 놓고 간 것, 우리 손에 남은 성공의 결과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기름 한 병이 남아 있느냐? 그렇다면 너는 가서 모든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려 오너라, 조금 빌지 말고 많이 빌려 오너라!>

그런데요, 빈 그릇을 가져오라는 명령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4절을 보니, 더욱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 4:4 / (읽기) / 거기 <함께 들어가라!>에 먼저 표시하십니다. 그럼요, 우리가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함께 역사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풀어야 합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새 역사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일해야 합니다. 함께 들어가라!

그런데 다시 4절을 보니, 함께 들어가라 하신 주님, 이번엔 문을 닫으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먼저 세상을 향한 문은 닫고, 하늘을 향한 문만 열어두라는 겁니다.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둔 채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다는 거지요. 세상의 소음이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한, 응답받기 어렵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린 시간 마다 제단에 달려 나오는 것이요, 또한 정기적으로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건데요, 정말입니다. 온 신경이 세상을 향해 있는 채로 하늘의 역사를 감당할 수는 없는 법, 그런 사람, 그냥 이 땅에서 살다 이 땅에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 4
그런데 이 여인을 좀 보십시오. 선지자의 명령에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습니다. 그 어떤 토를 달지도 않습니다. 우리네 같았으면 최소한 한번은 따져 보았을 겁니다. <엘리사 선생님, 우리 집에 달랑 기름 한 병 남았거든요? 한 병이거든요? 그런데 빈 그릇을, 그것도 있는 대로 많이 빌려다가, 거기에 채우라니요, 선생님, 기름 한 병 밖에 없다니까요. 그건 안 되는 일이라니까요, 선생님이 세상 물정 몰라서 그러시는 거라니까요, 불가능한 일이라니까요!>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이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공에서 성공으로 이어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었던 것이지요. 5절 보실까요?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라!> 그러고 보니 4절과 5절 사이에서 저들이 벌써 그릇들을 빌려다 놓았군요. 무슨 뜻인가, 즉시 순종했다는 뜻이지요. 선지자의 명령을 들은 즉시, 아멘하고 순종했다는 뜻이지요.

그랬더니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6절의 첫 문장, 정말 감동적인데요, <그릇에 다 찬지라!> 저들이 온 동네를 돌며 빌려온 그릇이란 그릇에 기름이 다 찼다는 거지요.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즉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내가 준비한 그릇마다 차고 넘치는 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늘 아멘으로 긍정하는 자에게 이웃집에서 빌려온 그릇까지도 차고 넘치는 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우리 오랜 만에 옆의 분과 덕담 한번 나누실까요?

<즉시 순종하여 큰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모두 복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동광 교회에 나오시는 여러분, 모두 하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명색이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아버지께 불효하는 일이요, 세상을 향해서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아버지와 자녀 모두 망신살이 뻗치는 거지요.

해서 부족한 종이 시간 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 우리 하늘 가족들, 모두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준비하신 그릇마다 차고 넘치는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대목에서 오랜 만에 김인호 목사님께 배운 인사 한번 하고 갈까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 5
그런데요, 6절에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일단 직접 들어보실까요? / 4:6 / (읽기) /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실 기름은 남아 있는데, 나에게 더 이상 받을 그릇이 없다는 거지요.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더 없습니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우리 주님은 또 그릇을 가져오라 하시는데, 가져오기만 하면 축복의 기름을 부어주신다 하시는데, 준비된 그릇이 더 없었던 거지요. 해서 우리의 선지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되, 조금 빌지 말고, 모든 이웃에게 가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려 오라 하셨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내가 더 이상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준비한 그릇이 더 없어서 그렇군요. 그러니 누구 탓할 것 하나도 없지요. 자기가 준비하지 않는 탓을 누구한테 돌리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분들은 복 받을 그릇이란 그릇은 파삭 파삭 다 깨버리고는, 왜 나에게만 복을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을 하는데요, 아니오, 준비는 못할망정, 최소한 있는 그릇이라도 깨지는 말아야지요. 아니 자기 손으로 복 받을 그릇을 깼으면, 그 결과도 자기가 감당해야죠.

아들이 여인에게 더 이상 그릇이 없다고 하였을 때 기름이 멈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준비한 만큼만 채워주십니다. 아니, 더 주시고 싶어도 내가 준비한 그릇이 없으면 더 주시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저주 대신 축복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실패 대신 성공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불행 대신 행복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기름 한 병 이외에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고, 이 작은 것으로 큰 역사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믿음으로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기왕이면 큰 그릇으로 많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혹 내가 가진 그릇이 모자라거든 이웃의 것을 빌려서라도 복 받을 그릇 많이 준비하여 주의 전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문은 닫으시고, 오직 하늘을 향한 문을 여시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그 믿음 보시고, 문제도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준비한 그릇 마다 누르고 흔들어 차고 넘치도록 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 6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나도 무방할 것 같은데, 성경은 한 구절을 더 남기고 있습니다. 중요한 뜻이 있기 때문인데요, 확인합니다. / 4:7 / (읽기) / 중요한 점은, 이 여인이 응답을 받은 후, 곧 하늘의 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에게 달려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주의 종에게 고합니다. 그러자 선지자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이 마지막 말씀에서 오늘 두 가지 메시지를 받고 싶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기름을 부어 채워주는데 까지만 복을 주신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복을 받았으면 주의 종에게 알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채워 주신 기름을 가지고 내다 파는 일, 그것으로 빚을 갚고 아들과 생활하는 일, 그것은 여인의 몫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거지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나님께 알아서 해 달라고 억지 부리지 말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기름을 주시는 데까지만 복을 주십니다.

다른 하나,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엔 주의 종에게 알리라는 겁니다. 왜? 어려울 때 주의 종과 같이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에 응답을 받으시거든 담임목사에게 말씀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복을 받으시거든 이번에 이런 복을 받았다고 말씀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 이번에 이런 귀한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주의 종, 담임목사에 고하는 일,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주의 종과 함께 나쁜 일은 나쁜 대로, 좋은 일은 좋은 대로, 서로 가슴에 담고, 나쁜 일엔 중보기도, 좋은 일엔 감사 기도를 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번 성공을 넘어 다음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한번 성공으로 인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러는 말씀은 도통 안 하시고, 담임목사가 다 알아서 해 주기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속으로는 담임목사를 기다리시며, 말씀은 안 하시고, 못 하시고, 그런 경우인데요, 그러다가 담임목사가 무언가를 놓치고 지나가면 섭섭하다고 하십니다.

아니오, 어떤 경우든 오늘의 주인공 이 여인처럼, 그 때 그 때 주의 종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좋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담임목사가 너무 바빠서 만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담임목사가 바쁜 건 사실인데요, 아무리 바빠도 담임목사를 확실하게 만나실 수 있는 보장된 시간이 있습니다. 새벽시간입니다.

동광 교회 담임목사는 일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공적인 출장을 제외하곤,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새벽제단에 나타납니다. 30분 동안의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오전 6시, 그 이후면 언제든 면담이 가능합니다. 미리 전화 한 통화만 주시면 됩니다. 새벽에 더 많은 분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7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 최고로 행복한 인생으로 거듭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처럼, 어려울 땐 주님께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시는 말씀에 즉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평소에 내가 복 받을 그릇을 많이 준비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준비한 그릇 마다 하늘의 복이 가득 찬지라! 이런 고백이 그치지 않는 우리 동광 제단이 될 줄로 믿으며, 이 말씀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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