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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선택이 주는 의미 (창 11: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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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바벨탑 사건이후 셈에서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벨탑 사건 이후 절망에 빠진 세상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희망을 주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 말씀은 11장에서의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의 범죄가 홍수라는 엄청난 심판으로 결론지어 질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를 비롯한 그의 가족을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심은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류 곧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시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홍수 이후 방주에서 나오는 노아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 내어 보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인류는 점점 번성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번성과 함께 사람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던 죄도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홍수 후에 죄가 처음 드러난 것은 함을 통해서였으나 그 죄가 장성하여 결국은 바벨탑 사건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증거 합니다(창 11:1-9).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주심으로 세우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것을 막고자 세운 인간의 나라로서 사탄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이에 바벨탑으로 인한 인간의 의도를 아신 주님께서는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흩으심으로 아무도 이 땅에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막을 수 없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을 흩으신 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극도의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압도적인 분위기는 절망적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에서의 결과는 죄가 인간을 극도의 절망으로 몰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지는 절망이이라는 것입니다.  즉 죄로 인하여 홍수심판이 내려졌고, 그 가운데서 당대에 의인이라고 하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 살아남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인류를 구성하시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는 인간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홍수 심판에서 없어지지 아니하고 죄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가 바벨탑이며, 이는 결국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를 구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는 인간을 정복하였고, 죄에 빠진 인간은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바벨탑 사건은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죄가 여전히 인간을 다스림으로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은 결국 소망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절망적인 분위기는 11장에 나타난 셈의 족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셈에서 시작한 족보가 데라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11:32). 데라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이러한 족보가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의 절망을 그대로 증거 한다는 사실은 11장의 족보와 이전의 족보 기록과는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 주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5장에서 홍수 이전의 족보에서는 ‘누가 언제 누구를 낳고 죽었더라’로 기록되다가 그 마지막에는 “낳았더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많은 조상들이 누가 언제 누구를 낳고 낳은 후에 몇 년을 살다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낳게 되는 역사는 진행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즉 이전에 조상들은 죽었을지라도 그 후손은 여전히 생겨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사실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또한 홍수 후에 창세기 10장의 족보에서는 낳았더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특징적인 사실은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의 백성으로 나뉘어졌다”(10:5, 20, 31-32)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기록된 족보의 방식에 따라 말씀의 의미를 상고해 보면, “여러 백성으로 나뉘었더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인간이 후손을 낳고, 그 후손들이 여러 백성으로 나뉘어졌던 것처럼, 낳고 번성하는 역사는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이전의 족보는 비록 세상이 범죄 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진행해 가는 역사로 인하여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 바벨탑 사건 이후에 나타난 셈의 족보만은 ‘누가 언제 누구를 낳았다’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데라에 와서는 ‘죽었더라’롤 되어 있습니다. 즉 11장의 족보는 죽음으로 끝이 나는 족보였던 것입니다. 이는 바벨탑 사건이 미친 영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즉 홍수 후에 하나님의 계속된 은혜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범죄는 극에 달하였고, 급기야 바벨탑 사건으로 이어졌는데, 그 사건은 인간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절망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낳고 또 낳는다고 할지라도 결국 인간은 죄로 인하여 죽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11장의 족보는 인간의 절망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3. 그러나 11장의 족보가 인간의 절망만을 증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족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역사가 셈에서 아브라함으로 연결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이 절망적 상황에 빠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여전히 구원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역사를 진행해 가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가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데라의 족보에 나타납니다.  데라의 족보 이야기는 바벨탑 이후 절망에 빠진 세상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그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갔다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된 것이 아브라함의 주도로 된 것이 아니라 마치 아버지인 데라가 주도권 쥐고 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온 가족을 이끌고 하란으로 이주했는데(11:31), 그들의 여행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함께 나온 가족들은 “데라의 아들인 아브람과 그 아내 사래, 그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미 죽은 하란의 아들 조카 롯”이었다는 것입니다(창11:31).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날 당시 데라의 나이는 어떠했는가?  데라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가 아니면 아브라함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가? 데라는 왜 하란으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왜 죽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데라가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11:26), 또한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11:32).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지금까지 데라와 관련하여 데라는 70세에 아이를 낳았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가 75세였으므로, 이를 합하면 145년이 되고, 데라의 향년 205년에서 145를 빼면 60년이 남음으로, 일부에서는 이를 해석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데라를 부르셨는데, 데라는 믿음이 없어서 하란에서 멈췄고, 하란에서 60년을 살다가 죽었다고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 해석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데라가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11:26)고 기록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우리는 26절을 “데라는 나이 칠십세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하였는데, 그 아들은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이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아브람이 데라의 족보에 가장 먼저 등장하기에 데라가 아브라함을 70세에 낳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데라의 장남은 아브라함은 아니라 하란이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은 데라의 장남이 아니기 때문에 데라가 아브라함을 70세에게 낳았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는 70세 보다 훨씬 이후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는 그의 나이 몇 세였을 때인가? 아주 쉽게 생각해서 데라가 하란에서 205세에 죽었는데,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것이 그의 나이 130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데라는 그의 나이 130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낳았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으므로 이를 합하면 데라의 향년 205년과 일치합니다. 이렇게 연도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데라는 평생을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는데, 그의 죽음 직전, 곧 노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실을 데라가 알았고, 또한 데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부름에 동참하여 긴 여정에 함께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의 나이가 많았으므로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란에 도착하여 피로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이후 절망에 빠진 세상을 다시 구원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과 함께 그의 모든 가족을 갈대아 우르에게 건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시고 홍수 심판으로부터 노아의 모든 가족을 구원하신 것과 일치합니다. 이는 창세기 15:7절의 증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그러면 본장에서 데라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부르심에 동참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성경 창세기 12:1절에서는 데라가 하란에서 죽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 사실을 증거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단지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야할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일행에게 목적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데라도 역시 갈대아 우르에서 떠날 때 어디로 가는지 몰랐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여 따라 나섰으므로 데라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부름에 동참하여 따라 나선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우리는 본장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구원을 위한 언약의 계승자로 세우셨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절망적인 분위기를 소망으로 바꾸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은 데라의 족보에서 아브라함은 데라의 장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데라의 족보에 가장 먼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록의 특징은 아브라함이 언약의 계승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중요성 때문에 데라의 족보에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등장한 것입니다. 즉 바벨탑 사건 이후 죄로 인하여 절망에 빠진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언약의 계승자로 삼으심으로서 바벨탑 사건이후 절망에 빠진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 이후에 나타난 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어지는 셈의 계보는 홍수 이후 함의 범죄로 인하여 노아가 “셈의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바벹탑 사건으로 인간이 범죄하여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는 셈의 계열을 떠나지 아니하셨고, 급기야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구원의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셈의 계열에 함께 하심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천하만민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 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아브라함이 셈의 후손 중에서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를 성실히 이루시고 계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장의 셈의 족보가 아브라함으로 연결되는 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 구원에서 완전히 멀어진 인간의 절망적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택함을 입고 언약의 계승자가 됨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열려지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아브라함이 있는 것입니다.

5. 이렇게 본장의 족보는 바벨탑 이후 인간의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끊임없이 기억하시고 이루어 가심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시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증거 함으로 그러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건지심으로서 의도하신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12장부터 더욱더 상세하게 증거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의도하신 구원의 역사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역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셨듯이,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약속하신 구원을 성취하신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이렇게 일하심은 곧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일하셨던 하나님께서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구원을 완성하심으로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의 절망을 구원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결과가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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