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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렘 2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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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미국을 염두에 두며 기도하고, 이 미국의 역사와 현실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맡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을 복 주셔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같이 이루어지는 귀하고 복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덕을 끼치고 유익을 가져다주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지도자들을 위해 또한 기도해야 될 줄 압니다.

우리는 이 미국 땅에 이민으로 혹은 공부하는 유학생으로 와서 거주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이 미국과 연관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이곳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며, 또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가 미국에 왜 왔을까?”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 자신도 때로는 이 질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왜 미국에 왔을까?” 흔히 대답하는 대로 “자식 교육 때문에 왔을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아마 이 질문은 저뿐만 아니라 미국에 오신 모든 분들이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엄청난 질적인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해야 이유를 알고 공부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그냥 공부하는 것과의 차이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틈틈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나타나는 나사렛 회당에서의 처음 설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고 왔다”고 하십니다(눅 4:17절 이하). 또 요한복음에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 10:10)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나 마가복음에서는 “죄인을 불러 구원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가운데에서 발견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아시고, 또한 그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감당하게 되면서 고백하기를,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여 정해 주셨노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은 기독교 초창기에 기독교의 기초를 놓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곳 미국에서 우리가 사는 의미와 목적을 바로 잘 안다면 우리 인생의 질이 달라질 것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형편은 어떻습니까? 때로는 우리 스스로에게서나 주변의 한인들의 모습, 그리고 다른 지역 특히 한인이 많은 지역에서 보여지는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볼 때, 우리가 미국에 온 이유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반성하는 마음과 더불어 들 때가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 한인들이 이 미국의 교포 사회에서 단합되지 못하고 싸우며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욕하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러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모습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교회까지도 물들어 있다는 서글픔 속에 놓여 있음을 우리는 자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이러한 문제의 포괄적 원인이 이민 온 목적과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혹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위주의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불과한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자각하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한 그 의미와 목적을 깨달아야 될 줄 압니다. 아울러 우리는 또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성서적 이민 생활에 대한 모델 케이스(Model Case)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이민 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모습을 성경을 근거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델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에 포로로 잡혀 와서 고생하며 살게 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는 그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전달해 줌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포로 생활의 의미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포로된 모습으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특히 3~14절까지에서 예레미야는 세 번에 걸쳐 “바벨론에 사로 잡혀 가게 한 하나님”이라고 언급합니다. 사실, 포로 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포로가 된 비극적인 현실 속에 있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귀한 섭리가 들어 있음을 예레미야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지시키는 흔적이 발견됩니다.

포로라고 하는 것 - 그것도 전쟁포로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뜻”이라고 한다면, 이 말 자체가 이들에게는 귀한 위로가 되고 삶의 의미를 갖게 해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포로 생활도 하나님의 뜻으로 의미가 있는 귀한 것이거늘, 오늘날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된 것을 우리는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귀중한 사실에 대해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모습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미국의 역사 초기는 다름 아닌,  영국의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 플라워(May Flower)”라는 배를 타고 이 미국대륙으로 피신해 온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크리스천들로서, 어려운 역경 가운데에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자기 집과 마을을 형성해 나가면서 미국의 초창기 역사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 속에 기독교 정신이 함양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곧 미국의 건국 공신들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심지어는 태평양 건너편의 동양 사람들도 이민을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나라의 이민자 중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이민 사회를 건설해 나간 민족은 초창기의 이러한 건국 공신들 외에, 우리 한국 민족 밖에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당신은 미국에 왜 왔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네,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곳 미국에서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내용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포로민들에게 삶의 지침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크게 3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곳에서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5~6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이곳 미국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아야 될 줄 압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을 하여, 합당한 결실을 맺음으로 우리의 후손의 번영을 기대할 수 있어야 될 줄 압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 교포들은 부족함 없이 열심히 하는 줄 압니다. 이곳 미국 생활에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능히 터전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많은 한인들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둘째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번영하도록 힘쓰고 기도해야 합니다. 7절,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북미 대륙이 하나님의 복 가운데 거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미국 땅에 정치적, 경제적 폭력과 마약과 알콜 중독, AIDS 같은 병이 없어지도록 위하여 기도하고 고쳐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와 우리 후손이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이 아직 여기에는 많이 미치지 못함을 느낍니다. 좀 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성숙되어져야 될 줄 압니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하고자 하는 노력과 자세가 필요한 줄 압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 장로교를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셋째는 이 세상의 거짓된 가르침과 풍조에 빠져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8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 땅의 여러 가지 우리를 미혹하는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모습에 눈을 돌리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미제(Made in USA)” 하면, 좋다는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곳 미국의 물질문명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습관과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영적 각성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특히 물질 만능주의의 삶의 패턴을 우리는 습관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정신의 공허감을 가져다주는 안일함이 교묘하게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10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시는 민족적 계획과 사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모습 속에 이스라엘의 번영과 행복이 있다는 그래서 이스라엘의 최선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곳 미국 땅에서 잘되고 또 미국의 잘못된 모습을 고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이루어짐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으로 갈려진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밑거름도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70년을 약속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70년을 희망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도 이 포로기 70년 동안 그동안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를 청산하고 이 포로생활을 통해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되돌아와 이스라엘 민족을 재건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 민족과 이곳 미국 땅에서의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의 마음에 담아두고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다. 사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가진 것도, 배경도, 그리고 연합된 힘도 없는 형편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한다면, 우리의 육체에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력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사실, 이러한 믿음밖에 없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들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할 지, 그 비결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12~13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여기서 “너희”는 어느 한 개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시 바벨론의 이스라엘 민족은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비록 적은 숫자라고 하더라도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매달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만나 주심으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우리에게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에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지시켜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약한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상한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약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나약함 속에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고린도 후서 12장에서 육체를 찌르는 가시와 같은 아픔을 겪는다고 하면서, 이를 위하여 3번이나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나의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로부터 말씀을 받은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바라신대로 하나님의 섭리도 이루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매를 오늘 우리들도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의 이민 생활의 모델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민족이 간직하게 된 귀한 신앙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어떤 하나님인가 하면, 하나님은 우주적인 하나님(The Universal God)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포로가 되기 전에,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만 여겼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 제국에 망하고 난 다음에는 이들이 낙담하면서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 하나님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전쟁을 신들끼리의 싸움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전쟁에 지니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의 하나님에게 졌다고 자기들의 하나님을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보니까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의 거대한 문명을 접해보고 난 후에는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으로 초라하다고 느꼈습니다. 바벨론의 거대한 문명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의 위대함을 보고 놀라고 당황하고 그래서 위축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꼭 같지는 않지만, 오늘날 우리들도 이곳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거대함과 다양함과 복잡함에 놀라기도 하고, 아찔하고 당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미국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스스로 보면서 “하나님이 없어도 살겠구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합니다. 또 현실적으로 그렇게 여기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뿐 아니라, 바벨론 및 모든 족속에게 섭리하시는 우주적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무엇보다도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 행한 결과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또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이 거대한 문명 속에서 위축되거나 현실의 만족만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하나님을 소망가운데 기다리며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하고자 하게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들이 발견한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야 사상을 이 바벨론 포로생활 시절에 발견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발견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은 강한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포로생활을 통해서 우리 인간을 위해 고통 받는 하나님의 종, 메시야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사상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러한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은 예레미야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잘 행한 결과, 현실의 삶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한 자, 소수민족, 그리고 변두리 인생과 같은 약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약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긍정해야 합니다.

1. 이러한 약한 자의 힘은 위대한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은 포로기 이후, 모든 역경의 삶 속에서도 개인적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 놀라운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디에 가서 살더라도, 그 사회에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즉, 창조적 소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노벨상 수상자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창조적 능력에서 나오는 지혜로 말미암아, 인류 사회에 귀한 업적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에서도 더욱 두드러집니다. 기술 과학 문명을 비롯하여 의학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언론계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분야에도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된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게 된 이유 중에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포로생활 하던 유대인들이 잘 따르고 지켰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이러한 약한 자의 힘은 공동체 형성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끼친 유대인의 영향은 바로 19세기에 미국에 이민 온 유대인들의 공로가 큽니다. 이들은 특히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치는 모습으로 오늘날 이렇게 귀한 열매를 맺음으로 미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인 교포들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유대인들의 공동체 정신을 정말로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 한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Identity)를 분명하게 가지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한다면, 오히려 이 미국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공동체 형성의 능력은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 내용대로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며 의지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렇게 한마음과 한뜻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따라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약한 자들을 통해 새롭게 되고 변혁되는 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렇게 약한 자들은 의심의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세대와 모습을 그냥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눈으로 보면서 변화를 꾀하기 때문에 새로움을 창조할 능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변두리에 있는 사람(Marginality)에게서 변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역사만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에스더, 바울 등등 이들은 그 당시 주류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변두리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모두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역사는 곧 이민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우리 이민자들도 비록 소수요 약자이지만, 이러한 변두리 인간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 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줄 믿고,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나님의 새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에 순종하여 바벨론 포로생활을 잘 감당한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경청하고 따르는 한인 이민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로 하여금, 이 미국의 역사에 새롭고 신선한 바람이 불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미국의 역사를 써 나갈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노 강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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