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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가족 관계의 비결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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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대화입니다. 어떻게 말을 하느냐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혼사유의 90%가 대화의 문제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름답고 좋은 모든 것을 창조 하신 이후에 처음으로 보기에 좋지 않다고 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담에게 대화할 상대가 없어 아담이 고독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 고독하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죄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심한 고문이나 형량을 더 길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화할 수 없는 독방에 갇히는 것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인간은 너나할것 없이 누구나 혼자일때 외로워합니다. 이처럼 대화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답을 찾고자 합니다.

정직이 좋은 관계를 만든다

첫번째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25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먼저 가까운 사람끼리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굽니까? 부부입니다. 이렇게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체끼리 거짓말하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배가 고프고 내 팔에 상처를 입었는데 머리가 모른다거나, 다리에 문제가 생겼는데 가슴이 그 아픔을 모를 수 없습니다. 지체는 반드시 서로의 아픔과 고통, 위기를 압니다. 한 지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만일 내 손가락이 다 빠지고 있는데 내 머리가 모른다면 문둥병환자입니다. 부부사이도 서로 거짓말을 한다거나 서로의 아픔을 모른다면 문둥병환자나 다름없습니다. 지체가 서로를 속인다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위선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대화할 때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거짓은 부부관계를 살얼음판으로 만듭니다. 항상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남편의 위선은 아내를 정신병자로 만듭니다. 아버지의 위선은 아들 딸을 우울증으로 몰아붙입니다. 위선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최대의 적입니다.

여러분,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정직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 줍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한 대화는 어떤 문제든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여인을 만나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을 때 이 여인은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여인은 정직했기 때문에 치유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덮어두고 남에게 전혀 얘기하고 싶지 않는 문제를 내어놓아야 치료받습니다. 내어 놓아야 관계가 회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것이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천국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은 이 땅에서 당당하게 천국 생활을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직시하라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정직하고 단순합니다. 사단은 오랫동안 거짓으로 가정을 지배해 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단에 이용되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번째,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2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명령문입니다. 성자도 분을 낼 수 있고 화를 낼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화를 냈고 모세도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분을 내는데는 제한된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죄로 연결되면 안됩니다. 분노는 하루를 넘으면 안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잠언 16장 32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순간적으로 나온 이 분노의 말은 상대방을 파괴하는 폭탄이 됩니다. 폭력중에 가장 무서운 폭력은 언어의 폭력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보지 않고 상대방의 인격에 융단폭격을 하면 이것은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화의 삼단계 도표를 보면 첫번째, 남편과 아내가 있고 가운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보지 않고 가운데 띄워놓은채 서로가 서로에게 화살을 쏩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서로에게 심한 상처만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화를 할줄 모르는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두번째, 문제가 있고 남편은 문제를 바라봅니다. 아내도 문제를 바라봅니다. 이것은 굉장히 좋은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세번째, 문제가 나타나면 그 문제를 바라보고 나를 바라봅니다.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분노의 말로 상대방을 거절하는 말을 하여 지울수 없는 상처를 줍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때 말을 막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를 만나면 문제를 보고 해결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중에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남편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한 대표적인 여인이 있습니다. 욥의 부인입니다. 집안에 어려움이 오고 아들 딸들이 죽고 가사가 무너졌을때 욥의 아내는 '우리가 죽게되었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믿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고 나가버렸습니다. 이럴때 사단은 쾌재를 부릅니다.
문제가 생길때 문제를 보십시오. 남편의 아픔은 아내의 아픔이며 남편의 실패는 아내의 실패입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남편이 가장 위로가 필요할 때에 아내가 위로를 해주기보다 날카로운 외면의 칼로 상처를 입히고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예수님은 먼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뺀 이후에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않고 상대방의 실수만 바라보는 실수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항상 '내가 문제'라고 생각할 때 문제는 해결됩니다. 만약에 상대방이 분노를 터뜨릴때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처를 줄 때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장 1절 말씀처럼 유순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욥의 부인은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여보, 힘드시죠? 힘내세요. 제가 뒤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하며 꽉 안아주었더라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요?
감정폭발을 잘하는 것은 병입니다. 분노는 치유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절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가능하다면 '항상, 늘, 절대'등의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항상 느려. 늘 반찬이 왜 이래. 어째 당신은 매일 아프냐? 당신은 나만 보면 늘 잔소리냐?' 이런 단어는 안쓰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싸움하는 것, 다투는 것, 분을 내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싸움은 즐기면 안됩니다. 잠언 21장 19절은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느니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실수는 기억않는다

세번째, 좋은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좋은 대화를 하려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분노는 오래 가지고 있으면 큰 병이 됩니다. 상처가 났을 때 바로 치료하면 금방 낫지만 오래 놔두면 수술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마찬가지로 분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마귀'라는 단어에는 '쐐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무를 쪼갤때 잘 쪼개어 지지 않으면 그 사이에 쐐기를 넣고 때리면 잘 쪼개집니다. 벌어진 사이에 들어간 '쐐기', 이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부부 사이가 벌어지면 금방 들어와서 붙지 못하도록 갈라놓는 것입니다. 마귀는 부부사이에 있는 틈을 아주 좋아 합니다. 마귀는 파괴자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나오는 이 말씀은 시편 4편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시편 4편은 잠자리 들기 전에 그날의 모든 슬픔과 분노를 상기하며 하나님 앞에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분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분을 품는 것도 큰 죄입니다.

수와 윌부부가 아담스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여자는 아주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남자는 아주 신경질적으로 목사님을 대합니다. 여자쪽에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의사가 이곳을 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나는 위궤양에 걸렸는데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핸드백에서 양면에 빽빽하게 쓰여진 A4용지 한 뭉치를 꺼냈습니다. 그 뭉치를 보니까 한달 내내 읽어도 다 읽을수 없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이 글을 읽으면 왜 내가 위궤양에 걸렸는지 알게될 것입니다'. 그 부인은 결혼생활 13년 동안 남편이 잘못된 일을 조목조목 다 기록했습니다. 또 남편의 잘못을 잘 알아 볼 수 있도록 새김표까지 해 두었습니다. 그녀는 13년 동안 분노를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상대방의 잘못을 관용으로 받아주고 실수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능이 낮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넓은 마음, 사랑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면 하나님처럼 용서의 마음, 관용의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실수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악한 행실을 기록으로 남겨놓아서 공격용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사악한 일입니다.
대화 중에 제일 좋지 않은 방법은 침묵으로 자기의 분노를 나타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는 한달 동안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도 이틀만 만나지 않으면 그 사이에 사탄이 틈을 탑니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분방은 절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화가 나서 옆방으로 가면 베개들고 따라가십시오. 고린도전서 7장 5절에 분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찾아가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예수님은 끝까지 찾아갔습니다. 부부관계는 자존심의 관계가 아닙니다. 자존심이 필요없는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을 주는 관계

네번째 대화의 좋은 방법은 28절에 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말씀을 부부관계에 적용하면 '상대방을 위하여 주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서 도적질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의 가장 큰 비극은 이기주의입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존재하시오'.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사랑은 다 주는 것, 다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다 줄 때 가능해집니다.
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근본적인 성경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세상을 사랑하셔서 주셨습니다. 사랑하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내가 모든 것을 채워주마'라고 했습니다. 주는 분위기는 가정을 바꾸어 놓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잠언 1장 5절에 보면 '지혜있는 자는 듣고', 야고보서 1장 19절을 보면'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중에 누구를 칭찬하셨습니까? 반찬을 잘하는 여자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당신때문에 행복해요'

다섯번째, 어떻게 좋은 대화를 해야 할까요. 29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에 더러운 말은 '썩은 말', '부패한 말',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말'을 뜻합니다. 이런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끼리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보고싶었어요. 당신 때문에 행복해요, 당신때문에 신이나요'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어휴, 지긋지긋해';라는 말은 상대방을 죽이는 말입니다.
우리는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똑똑한 말보다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의 말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킵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가정안에는 똑똑한 말을 하는 사람보다 사랑의 말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30절을 읽어볼까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대화할 때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면 아무리 테크닉이 좋아도 그 가정은 깨진 가정입니다.
약혼한 사이인 마리아가 어느날 배가 불러서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조용히 끊고자 했으나 성령이 결혼하라고 해서 순종했습니다. 만일 그가 성령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 가정은 깨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인간의 방법을 썼다면 예수님은 그 가정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와'너'는 서로 긴장의 관계입니다. 서로 배경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가까워 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와 '너'위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을 향해 서로 반응 하다보면 좁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결혼생활은 지옥입니다. 서로가 성격과 환경과 배경이 달라도 하나님이 있으면 관계없습니다.

용서로 죄사슬을 끊으라

하나님 외에 다 포기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대화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32절을 읽어볼까요?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같이 살다보면 상대방의 약점을 정확히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부부끼리 용서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악이 그 다음 대에 이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거짓의 죄입니다. 이삭도 그랄땅으로 도망갔을때 그 땅의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탐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죄는 한 세대로 끝나지 않고 자손대대로 물려 받습니다. 또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양털로 형처럼 변장하고 목소리도 바꾸어 형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야곱의 열한 아들이 또 야곱을 속입니다. 애굽에 요셉을 팔고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바른뒤 요셉이 사자에게 먹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한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 가서 총리가 된 요셉 앞에 가서 식량 구걸을 하게 됩니다.
요셉은 17세 나이에 애굽에 팔려가서 13년 동안 종살이를 합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매정하게 팔아버린 형들을 밤마다 기억했을 것입니다. 수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이 일들은 나쁜 형들때문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자주 들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형님들이 곡식을 얻겠다고 찾아왔을 때 용서해줍니다.
20년만에 형님들을 만납니다. 요셉은 가슴 속에 복수심을 불태우기 보다도 그 형들을 보고 울었습니다. 불쌍히 여길 때 용서가 시작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미운 사람이 계십니까? 어느날 어머니 아버지가 불쌍히 여겨질 때 용서가 시작됩니다.
나중에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그들에게 드러냅니다. 창세기 45장에 보면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라고 합니다. 요셉은 복수를 하거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죽게 되자 요셉의 형들은 걱정을 합니다. 아버지가 죽고 나면 요셉이 복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그 형들은 아버지를 빙자하여 요셉에게 나타나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그들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나 벌벌 떨며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속이는 사람은 계속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자자손손 삼사대를 내려가도 계속 내려가는 이 죄의 저주, 거짓의 죄, 이것을 요셉은 용서라는 것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요셉은 네 어머니의 손에서 컸으며 속이기에 명수인 아버지 밑에서 살았지만 가문의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는 훌륭했다기 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족간의 아픈 상처, 대대로 내려오는 생각하기도 싫은 고통스러운 것이 여러분의 가정에 있다면, 그 죄의 고리를 용서의 마음으로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환경이 개인을 결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론일뿐 진리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아무리 죄가 흐른다해도 예수의 보혈이 모두 끊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마음에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가 이렇기 때문에 나도 이럴거야'라는 불안을 끊어버리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한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나 한사람 예수가 죄를 끊어버립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을 믿으십시오.
바다에는 썰물과 밀물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모래와 해변을 하루에 두번씩 씻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 인간관계에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살펴보고 하루에 두번씩 씻어버리기 바랍니다.
용서는 노함과 악독과 분냄을 없애고 나를 해한 사람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중에 아직도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게 되면 자유케 됩니다. '내가 잘못했소.' 이말은 가정을 천국으로 바꾸는 천국의 방언입니다.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용납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나보다 큰 죄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납해 주셨기때문에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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