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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상에서의 삶 (눅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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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신앙태도가 다르고 삶의 자세가 다르며, 삶의 우선순위도 다르고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좋을 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잉태되면 그 순간부터 세 단계의 삶을 살게 됩니다. 모태에서 보내는 9개월과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약 100년의 기간과 이 세상을 떠난 후 영원한 살게 되는 내세의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9개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9개월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눈이나 귀를 비롯한 모든 장기가 태중에서는 필요치 않아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준비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의 삶도 그 다음 단계인 영생을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를 위한 삶의 시작입니다.
야고보서 4:14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듯이, 이 세상에서의 한시적인 삶은 영원한 내세의 삶에 비하면 너무나 짧습니다.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 떠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큰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 1:17을 보면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4:18에서도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면 사라질 것들입니다. 한순간 소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세는 영원합니다. 루이스는 “영원하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에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마치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험준비를 잘해서 시험을 잘 통과하면 합격의 영광이 있고 성적이 우수하면 장학금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통과하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면류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통과하지 못하면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수치와 고통 속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 하는 이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시험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시험을 잘 치러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시험을 잘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하므로써 단번에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했습니다. 다윗은 여러 번 시험에 실패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 룻, 에스더, 다니엘과 같은 인물들은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요셉은 모든 시험을 모범적으로 잘 통과했습니다. 17세 때 형들에 의해 노예로 애굽에 팔려가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때 얼마나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성실히 맡은 일에 충성하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그는 노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인 보디발의 집에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험이 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에게 날마다 윙크를 하며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유혹을 잘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는 시험이 또 왔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맡은 일에 성실하며 믿음으로 살다 보니 감옥의 제반 사무를 관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요셉은 애굽의 총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실 사람이 남부럽지 않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되면 얼마나 교만해지고 방종하며 타락하기 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절도 있는 삶을 살아서 시험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그 후 애굽에 곡식을 구하러 온 원수 같은 형들을 만나게 되지만, 보복하지 않았고, 도리어 형들의 잘못을 다 용서해주고 그들의 자손들까지 모두 돌봐주었습니다. 요셉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써 이 시험을 멋지게 통과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시험과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실 때, 너무나 절박한 가운데 부르짖어도 해결해주시지 아니하실 때, 마치 하나님이 내 곁을 떠나신 것 같고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 같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우리가 어떤 처신을 하느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모든 재산과 자녀를 다 잃었고 자신의 몸도 병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도무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인생임을,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욥 1:21) 오직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축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끝까지 잘 참고 견뎌 승리합시다. 시험은 힘들고 괴로운 것이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됩니다. 우리의 인격을 온전케 만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일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시험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시며 그 시험을 능히 감당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고전 10:13).
여러분 중에 특별히 큰 시험이 와서 어려움을 당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런 분들은 “아버지, 제 믿음이 그렇게도 좋습니까?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 시험도 능히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와도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내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잘 참고 통과하는 자들에게 주시려고 상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1:12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너무 괴로운 나머지 화가 나고 낙심이 되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교회도 나오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시험을 잘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청지기와 같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다만, 청지기는 주인이 맡겨 준 것을 잘 관리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시간과 물질과 지식 등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24:1을 보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것이란 본래 없습니다. 우리의 몸과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시 내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면 다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전도서 5:15을 보면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4:7을 보면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한들 자신이 노력하여 번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면 돈이 들어왔다가도 없어집니다. 절대로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많이 맡기시면 많이 받게 되고 적게 맡기시면 적게 받게 됩니다. 그러나 많이 받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받은 만큼 책임도 크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청지기가 큰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으로부터 모든 것을 정리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청지기가 한 꾀를 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모두 불러 그 빚을 대폭적으로 탕감해주었습니다. 아직 자신에게 권한이 있을 때에, 불쌍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심을 쓴 것입니다. 그리되면 자신이 이 일을 그만둘 때 그들을 찾아가면 외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행동을 지혜롭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게 영원히 있게 될 줄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을 크게 하시는 분들도 어느 날 부도가 나서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놓으셨을 때, 다 없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 부지런히 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8을 보면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가 왕위를 받아서 돌아와 그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불렀습니다. 이에 첫째가 나아와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라고 보고합니다. 이에 주인이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라고 하고, 둘째도 와서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 두었다가 그냥 가져왔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5:21을 보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로, 칭찬을 듣습니다. 둘째로, 승진을 합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더욱 많은 책임을 맡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1.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으로 곧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자신이 가지고 모든 것이 많을수록 큰 시험이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하나님이 주셔서 맡겨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하여 자기의 뜻대로 자신의 향락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그 돈 때문에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돈 때문에 불행하게 살다가 영원히 지옥불에 들어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이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야 합니다. 오늘 밤 우리를 불러가시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기독교인조차도 이 세상에서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여 마치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간음하는 사람처럼 영적으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4:4에서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을 향해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라고 했습니다(벧전 2:11).
신앙의 사람들은 항상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을 가지고, 환난과 시험이 많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애를 씁니다.

이 세상에서는 만족이 없습니다. 완전한 행복이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살아야 행복하듯이, 참 만족과 진정한 행복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마음을 세상에 두지 말고,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며, 주님 만날 준비를 하며 살다가 영광 중에 우리 주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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