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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침과 저녁 (창 1:29~31, 마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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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5 동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일전에 신문에 보니 젊은 세대 60%가 한국전쟁이 언제 났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40대는 전쟁이 나면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60%가 넘었습니다. 저도 전쟁을 모릅니다. 그러나 전쟁 후의 비참했던 삶은 기억이 납니다. 지지리도 못 먹고 살던 때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는 압니다. 우리나라가 다시는 전쟁이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비핵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평화와 사랑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한 우리의 기도와 노력이 우리나라를 든든하게 세워나가는 영적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 티벳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티벳은 불교의 나라입니다. 여행사에서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저의 신고서에 직업을 ‘목사’라고 적어 놓고는 여행목적을 ‘성지순례’라고 써놓았습니다. 목사가 무슨 불교 나라에 성지순례를 가느냐고 하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성지순례가 아니라 방문하면서 선교사를 만나 선교의 가능성을 살펴보았습니다. 티벳은 고원지대입니다. 지금은 중국 서장성 자치구이며 수도는 라사입니다. 라사는 티벳에서 가장 낮은 곳인데 고도가 해발 3800미터입니다. 라사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공항이며 활주로가 가장 길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달라이라마가 살면서 집무를 보던 포달랍궁(布達拉宮)궁이 있습니다. 포달랍궁은 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3,000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이제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티벳 불자들은 매일 포달랍궁 돌이를 합니다. 시계 방향으로 하루에 세 번을 돕니다. 그리고 정문 앞에서는 길바닥에 길게 뻗어 절을 합니다. 티벳에서는 고행을 20년 이상 한 승려를 라마라고 한다고 합니다. ‘마니차’라고 하는 돌리는 경전이 있습니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돌리는데 한바퀴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옴메니 밤메홈”을 반복합니다. 이 말은 “이 무지에서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무지에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종교의 참 의미가 아닙니다. 옛날 영지주의 이단들이 지식을 구원의 도구로 앞세웠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고행이나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너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달라이라마는 현재 14대인데 포달랍궁에 5대에서 13대까지의 달라이라마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은 어머어마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각 달라이라마의 무덤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5대 달라이라마의 무덤은 가장 큰 무덤으로 금이 3,721킬로나 들었답니다. 무덤을 전부 금으로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번에 티벳에 갔다가 여러분들을 못 볼 뻔 했습니다. 호텔이 있는 라사가 3,800미터이기 때문에 산소가 희박합니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 오면 호텔 방에 모여 산소 호흡기를 코에 꼽고 앉아 있었습니다. 남쵸 호수라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새벽에 호텔을 나서 가는 길은 티벳을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새벽에 출발하여 조금 가다보니 그 때부터 설산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산은 7,700미터라고 했습니다. 남쵸 호수는 5,190미터인데 정상에 길에서 호수가 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호수를 보고 10분도 채 안돼서 내려오는데 공사한다고 길을 막아 놓았습니다. 그 때가 오전 10시였는데 저녁 9시에 공사가 끝나니 그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정해도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길을 막아놓고 오도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점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고,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올라가고 구토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행들은 토하고, 코피가 나고, 발을 내디딜 수가 없을 만큼 어지럽기 시작하여 모두 버스에서 죽은 사람처럼 쳐져 있었습니다. 버스에 싣고 왔던 작은 산소통의 산소가 떨어져 모두들 절망 가운데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내려가서 다른 차들은 수배하여 길이 아닌 냇가로 내려오는 동안 4시간 반을 죽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고 졸음이 오는데 졸면 죽는다는 말이 생각나서 졸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버텼습니다. 5시간 여 만에 4,000미터 가까이 내려오니 숨을 쉴 것 같고 살 것 같았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이런 고산증세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산소를 호흡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국에 오니 정말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가를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이 신비입니다. 숨을 쉬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산소가 이렇게 많으니 감사한 것뿐입니다. 저녁에 쉼을 가지고, 아침에 새로운 날을 가진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다는 것이 경이롭고 신비한 일입니다.

  창세기 1장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입니다. 깁슨이란 분은 “창세기 1장은 신앙계에서 불멸의 기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록이 있음으로 모든 세계, 우리의 존재, 모든 존재의 생성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이 없으면 모든 장이 없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한 마디만 가지고도 성경 전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대전제입니다. 장엄한 신앙고백입니다. 창조신앙의 근거입니다.

  엿새 동안의 창조는 완전한 창조입니다. 하루의 창조 사역이 끝날 때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라”고 합니다. 저녁과 아침은 하나님이 만드신 날의 구분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저녁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억하고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저녁은 쉼과 어두움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일로 시작하셨지만 인간은 쉼으로 시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까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때는 여섯째 날이었습니다. 이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 곧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신 다음에 쉬셨지만 사람은 창조되자마자 안식의 날을 맞이하여 쉬고 그 다음에 일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안식일은 창조상으로는 마지막이지만 의도상으로는 첫째이며 천지 창조의 목적입니다.

  유대인의 하루는 쉼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합니다. 저녁은 쉬는 시간이며 아침은 일하는 시간인데 유대인들은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를 하루라고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하나님은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도록 만들었을까요?.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서 밝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밤은 낮을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생각과 여유를 가지는 시간입니다. 어두운 시간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쉼이나 안식이나 휴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휴일(holiday)이란 말은 성스러운 날(holy day)이라는 뜻입니다. 쉬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신 성스러운 일입니다. 휴일은 쉬는 날이라고 번역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날은 사람의 모습을 되찾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때로는 안식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노래하다가 죽었답니다. 왜냐하면 악보에 쉼표가 없어서 숨을 쉬지 못해서 그만 죽었다는 것입니다. 악보에는 쉼표가 있습니다. 노래하면서, 연주하면서 왜 쉽니까? 시작했으면 계속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음악선생님은 제자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음악이란 언제나 쉬고 난 후 더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간은 공평한 것이며 소모적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시계를 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계는 일하기 위하여 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한 사수가 수도사 안토니우스의 수도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수도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들이 한가로이 쉬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도사가 그렇지 뭐, 게으르고 자기네들끼리 노닥거리는 것이 수도사야” 그 때 수도사는 사수에게 오라고 하여 활에 화살을 끼워 당기라고 하였습니다. 더 세게 더 세게 당기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사수는 “활이 끊어진단 말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수도사는 “그 것 보게,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야. 만약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수준을 넘어서 많은 일들에 전력을 다한다면 모든 것이 금방 파탄이 날 거라네”. 쉼은 노는 것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안식일을 영혼의 장날이라 불렀습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유독 더 많은 시간을 내는 특별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잘 쉴 줄 아는 사람이 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30:5에는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합니다. 저녁은 아침을 기대하는 시간입니다. 쉬는 시간은 일을 위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저녁은 어두움, 아픔, 고통, 마지막을 상징합니다. 환자의 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압니다. 그러나 저녁은 아침이 오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시간입니다.
  성자 어거스틴은 “오 주님, 당신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의 영혼은 안식이 없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참 안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의 안식이 참 안식입니다. 이 안식이 우리의 은총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침은 일하는 밝은 시간입니다.

  아침은 일하기 위한 밝음의 시간입니다. 만약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 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아침은 일어나는 시간이며 낮은 일하는 시간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한결같이 일하기를 장려합니다. 요한복음 9:4에는 예수님께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낮에 일하라고 권하십니다.

  바울도 일하기를 권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1에는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에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몇 가지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보면 알고, 함께 일해 보면 알고, 함께 여행해보면 압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일할 때에 주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멍에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멍에란 문자 그대로 동고동락하는 도구입니다. 멍에를 매고는 혼자 빨리 가거나 혼자 느리게 갈 수 없습니다. 멍에는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매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멍에를 매는 자체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절대 주님의 멍에를 매고 나 혼자 일할 수 없습니다. 멍에를 매면 더 이상 경쟁이 아닙니다. 멍에를 매면 조화를 이룹니다.

  일은 세 가지로 나눈다고 합니다. 발로 일하는 풋워크(foot work)와 머리로 일하는 헤드 워크(head work)와 함께 일하는 네트워크(net work)입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함께 일하는 네트워크 시대입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하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잡(job)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서 최선을 다하는 일을 워크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일하십시오. 잡이 아니라 워크로 하십시오. 일을 할 때는 전심을 다하십시오. 그리하면 일이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책의 제목이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입니다. 제목 자체가 교훈입니다. 정말 이렇게 살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일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또한 일하는 존재로도 지음을 받았습니다. ‘스케줄 오프 증후군’이라는 게 있습니다. ‘워크 홀릭’ 즉 일중독증이란 말도 있습니다. 일이 없으면 불안스러운 것을 말합니다. 일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너무 일에 짓눌려 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는 “너무 오래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아침이 없다면, 낮이 없다면, 해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삶일 것입니다. 그 의미 없음 때문에 사람은 죽게 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할 것입니다. 일과를 점검할 것입니다. 일을 준비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전에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을 해야 하겠지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놀 생각부터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잘 생각합니까? 아침부터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아침에는 하루의 일과를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사이쇼 이로시가 쓴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있습니다. 아침 시간은 이성적인 기운이 넘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밤 시간은 감성적 기운이 더 세진다고 합니다. 인간은 거의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주행성입니다. 잠이 깬 오전 5시부터 1시간가량이 지난 오전 6시부터 8시까지가 두뇌가 가장 명석해지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집중력과 판단력은 낮 시간보다 3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다케우치교수는 오전 5시부터 8시까지를 ‘시간을 버는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선 라이즈 파워’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아침 햇빛을 받음으로써 뇌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긴장과 흥분을 일으키는 부신피질 호르몬 분비가 가장 활발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아이디어 발상을 얻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입니다.
  영적 훈련의 또 한 가지 요소는 이른 아침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이끕니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아침을 늘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탈무드에는 “소년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3년 빨리 어른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2년 뒤에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갑니니까? 아침과 저녁이 금방 지나갑니다. 인생이 빨리 지나갑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1호선 인천행 지하철이 신도림역쯤 왔을 때에 어떤 아저씨가 가방을 들고 올라왔습니다. “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아저씨는 좋은 물건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프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린 것을 가지고 와서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칫솔입니다. 왜 가지고 왔겠습니까? 팔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개 200원씩 다섯 개가 한 세트입니다. 얼마이겠습니까? 천원입니다. 뒷면에 영어가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썼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수출했다는 뜻입니다. 수출 잘 됐을까요? 망했습니다. 여기서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궁금하시지요? 나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4개를 팔았습니다. 아저씨는 다시 시작합니다. “여러분, 4천원 벌었습니다. 내가 실망했을까요? 예, 실망했습니다. 내가 그렇다고 포기하겠습니까? 다음 칸 갑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삽시다. 다음 칸이 있으니까요. 또 아침이 오니까요. 피곤합니까? 또 저녁이 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저녁과 아침은 반복됩니다. 저녁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침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녁이 올 때 아침을 기대합시다. 아침이 올 때 저녁도 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사야 21:12에는 말씀합니다.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아침이 옵니다. 밤도 옵니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저녁에 쉬어야 할 영육을 잘 쉬어 조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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