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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교회 (행 2: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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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리노이주에 가면, 윌로크릭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는 스타벅스풍의 카페가 있고, 서점도 있고, 자동차 수리점, 어린이 놀이공원이 있습니다.  “뭐 그런 교회 같지 않은 교회가 다 있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7200개의 좌석을 갖춘 초대형 교회로서 미국 내 지교회 수가 무려 100개에 달합니다.
  조금 전에 영상을 통해 보여드렸던 교회 내 커피숍의 연간 수입은 250만 달러, 서점 320만 달러, 자동차 수리점은 1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 수익금을 다시 교회 예산에 반영해서 계속적인 교회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그 교회를 방문했던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구도자를 위한 열린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얼굴은 충분히 밝아보였고, 좋아보였습니다.  그들에게서 성장하는 교회, 행복한 교회,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가 행복한 교회인가, 교회가 어떤 모습이 돼야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성경에 있는 초대교회의 장점을 닮아가는 것이 행복한 교회로 가는 첩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초대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행복한 교회’는 곧 건강한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과거 초대교회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근거로 해서, 과거 초대 교회가 간직했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는 가운데, 피차에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었습니다
 
  본문 37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그랬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 본문 앞에 있는 여러 구절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얘기가 바로 ‘이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시 말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는 ‘이 말’을 듣고서는 “마음에 찔려” 그랬습니다.  헬라 원문에 보면, ‘κατενύγησαν(카테뉘게산)’이란 말을 썼는데, 이 단어는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냥 마음에 조금 가책을 느끼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찔러 관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구약을 통해서 메시야를 대망하며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대망했던 메시야가, 바로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양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거침없이 찔림을 받았다는 얘깁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주(主)의 복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종류의 말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시는 ‘기록되어진 말씀, 즉 성경’이 그 하나구요, 이렇게 강단을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말씀, 즉 설교’가 그 하나구요, 또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나 혹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때에 여러분 각자에게 ‘계시해주시는 말씀’이 그 하나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시는 분이 계시는데, 사실은 이 세 가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구요,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들이 다 중요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말씀, 특히 성경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862년에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가 중국 선교를 개시하면서, 매킨타이어 선교사라든지 로스 선교사 같은 분들이 중국으로 파송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 날 여러 경로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지게 되고 세례까지 베풀게 됩니다.  그 중에 서상륜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1882년 10월 6일, 드디어 이 분이 500권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쪽복음이죠.  그걸 가지고 로스 선교사의 집을 출발해서 의주로 들어오게 됩니다.
  세관에서 검사를 받게 되는데, 검사관이 묻습니다.
  “성명은?”  “서상륜입니다.”
  “사는 곳은?”  “의주입니다.”
  “짐 속에 밀수품은 없는가?”  “없습니다!”
  이윽고 짐을 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옆에 서 있던 순검(巡檢)이 짐을 풀어보다가, 두 손에 책을 가득 들고서는 “야소교 책입니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서씨!  밀수품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때 서상륜이 아주 담대하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책들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책으로서, 나는 결코 밀수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검사관이, “좋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으니까 용서하겠소.  그러나 물건은 압수요!”
  그래서 모든 책을 압수당하고, 주소를 적어준 뒤에 풀려났습니다.
  서상륜이 성경을 빼앗긴 일로 인해서 실망에 빠져 있는데, 며칠 후에 검사관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내가 이 책을 다 읽어봤는데,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  압수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하고는 성경책을 다 돌려줬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후에 서상륜은 이 일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에 밀고 나갔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도하셨다!”  믿습니까?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요, 때로는 이렇게 좀 담대하게 나갈 필요가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었구요, 그 말씀을 여러 곳에 열심히 전하되 올바르게 전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 면요!
  우리나라 개신교 초기에는 ‘권서인(勸書人)’들이 있었습니다.  ‘권사’가 아니고, ‘권할 권(勸)자, 글 서(書)자.’  ‘권서(勸書)’  이분들이 집집마다 쪽복음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이 ‘권서인(勸書人)’들이, 쪽복음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한 다음에 며칠 있다가 다시 찾아옵니다.  말씀을 읽었는지 확인도 하고, 또 어느 정도 보충설명도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서 몇 사람이 모여지면, 이 사람들을 어느 한 가정에 모아놓고 선교사님을 불러다가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이만큼 애를 썼습니다.  대충 대충 한 게 아닙니다.  앞의 그 서상륜 권서의 증손자가 지금 새문안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서원석 장로님이시고, 현재 대한성서공회에서 성경을 반포하는 일의 홍보를 맡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잘 살펴보면, 말씀과 행함이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말만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말씀 없이 이적만 베푸신 것도 아닙니다.  언제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상응하는 귀한 이적을 베풀어서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면, 성도들에게는 주님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는 양분이 되는 것이고, 비신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서 함께 구원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결국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양육과 전도’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번동제일교회가 41년여 세월 동안 故 백낙기 원로목사님과 또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실로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잘 선포되어진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양질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것이고, 많은 교우 여러분들이 그 말씀의 꼴을 받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변화되어졌습니다.  우리 또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진정으로 변화되어지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초대교회는 회개를 포함한 기도 생활에 힘썼습니다

  교회생활을 요약하면 예배생활이라 할 수 있고, 예배생활의 중심은 기도입니다. 
  종교는 어느 종교이든 기도와 기도생활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종교의 핵심이요, 신앙생활의 생명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인격적인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원하는 것을 간청합니다.  교회생활에 기도가 없다면 참다운 신앙이 될 수 없고, 기도를 외면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구원의 길을 알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면서, 그렇게 되면 성령님께서 임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날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삼천 명이나 됐다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담대하게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는 멋진 설교자와, 자신의 양심을 찌르는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구원에 동참하게 된 멋진 청중의 모습을 함께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가 한 말씀 가운데 ‘회개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지만, 여기 ‘회개’라고 하는 말의 헬라어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란 말은, ‘죄(罪)의 길’로 가다가 멈추고 180도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의(義)의 길’로 가는 것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회개 기도를 했다고 해서 회개가 다 이뤄진 게 아니고, 그 기도 후에 삶까지도 완전히 바뀌어야 됩니다.  따라서 ‘회개’는, 전인격적․전생활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옛 생활을 떨쳐 버리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생활에 들어가는 것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회개’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생각의 결단과 행위의 결단을 함께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사에 보면, ‘평양 대부흥운동’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907년 1월,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이건 전국적으로 파급된 신앙운동인데, 한국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이 운동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열흘간의 사경회 기간 동안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 도화선은 외국 선교사들의 기도회 모임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그 모임에서, 캐나다 출신의 ‘하디’라는 의료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에 비해서 자신의 나태함과 무력함을 고백하는 통회의 기도를 드렸는데, 회개로 가득 찬 이 고백이 이날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특히 외국인 선교사를 우러러 보아왔던 국내 신자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님들 같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분들도 저렇게 회개를 하는데, 우리는 뭐하는 건가?” 하는 심정이 작용을 하면서 회개의 불이 강하게 당겨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양 사경회 전 기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엄청난 열정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블레어 선교사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합니다.
  “이날의 기도소리는 마치 큰 폭포소리처럼 들렸으며, 바다의 파도 소리가 하나님의 보좌에 부딪혀 울려 퍼지는 듯 했다.”  그 정도로 수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애통해 하면서 하나님께 울부짖었다는 얘깁니다.
  내후년, 그러니까 2007년은, 과거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있었던 해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100년 전에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2007년도에 정체현상으로 애를 먹고 있는 우리 한국교회에 다시 한번 대부흥의 불씨가 당겨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42절에 보면,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그랬습니다.  개역개정판에 보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는 이렇게 간곡한 기도에서 시작되고, 부흥되어 갔습니다.  현대 교회의 치명적인 결함 중의 하나는, 이런 깊은 기도가 부족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기도는 다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하고도 깊은 열정의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올바른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 생각, 내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눅 18장에 나타난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무의미하고 응답도 없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세리와 같은 간절함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간구’라는 말을 잘 씁니다.  성경에 30번 이상 기록돼 있는데, 이 말의 헬라어 ‘έρωτάω(에로타오)’라는 말은, 배고픈 거지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간절히 구하는데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지 못함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서 또한 간절히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순수했습니다.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선진들의 기도의 삶을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다분히 형식적이고 기복적인 우리의 기도생활을 다시금 회복시켜 나가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깊은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영적 체험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초대교회는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교회가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말씀과 교제와 거룩한 삶을 통해서 능력 있게 성장해 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날마다 마음을 함께하면서, 기쁘고 순전한 삶을 누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본문에 기록했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 도전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많아지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을 때, 하루에 3,000명의 새신자가 생기는 등, 초대교회 공동체는 급속도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교회, 생명력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표현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소유의 종말』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책을 보면, ‘21세기에는 누가 강력한 사람이 되겠는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21세기의 강자(强者)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접속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접속이 강한 교회, 접속이 강한 민족, 접속이 강한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접속입니다.
  그러면,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얘깁니까?  좋은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의 공동체, 좋은 교제권을 형성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가지기 위해서는 모여야 합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처럼, 이 말세의 때에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이름을 말씀드리면 다 아실만한, 서울시내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전에 괌으로 교역자 수련회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교인들 반응이, “안식을 통해서 사역을 더욱 더 잘 감당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내 돈이라도 내서 보내주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기쁩니다” 그랬답니다.
  그런데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전 교역자가 그렇게 교회를 비운 기간동안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 성도의 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늘었다는 거예요.  “교역자들이 모두 괌으로 수련회를 떠났으니 우리라도 교회를 지켜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인들이 긴장하면서, 평소에 예배 안 드리던 사람까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요, “괌으로 수련회 좀 보내달라”는 얘기가 아니구요.  그 교회는 참으로 건강한 교회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섭니다.  교역자를 대신해서 스스로 교회를 지킬 줄 아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 그 교회는 건강합니다.  튼튼합니다.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담임목사님이 안 계시는데도 이렇게 주일(主日)에 예배당에 나와 주신 여러분들, 감사하구요, 정말 영적으로 건강하신 분들입니다.
  가끔 교인들이 시험에 들었다는 얘기를 하시잖아요?
  그런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말 시험에 드시는 분들은 대부분 교회에 잘 나오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처럼 담임목사님도 안 계시는데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이구요, 주일 오후에도 나오시는 분들이구요, 수요일까지 나오시는 분들이구요, 좀 더하신 분들은 금요 심야에 나오시는 분들입니다.  정말 못 말리시는 분들은 새벽까지 나오시는데, 바로 그런 분들이 요주의(要注意)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열심이 있는 만큼, 마귀가 호시탐탐(虎視耽耽) 틈탈 기회를 찾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열심 있는 사람, 한 사람만 쓰러뜨리면 파장이 크거든요!  영향이 크다 말입니다.  그래서 열심과 열정이 있는 것 좋습니다마는, 그렇기 때문에 더 겸손해야 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조심해서 사역을 감당해야 됩니다.
  언젠가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연합남선교회가 헌신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오후에 남자 교인들은 다 성가대연습실에서 특송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는 안내를 하기 위해서 예배 시작 30분전에 본당에 올라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누가 ‘툭, 툭’ 어깨를 치는 거예요. 
  고개를 들어보니까 임원을 맡으신 집사님이 저를 가리키면서, “남자 교인들은 다 성가대 연습실에서 찬양 연습하고 있으니까, 집사님도 빨리 내려가라”는 거예요.  마침 옆에 계시던 다른 목사님이 그분에게 “집사님, 여기 목사님이잖아요!” 그렇게 말씀하니까, 그분이 아주 멋쩍어 하면서 자리를 피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 만 명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부목사 너댓 명 있는 교회에서, 그것도 부임한지 1년이 다 돼가는 데, 자기 교회 부목사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모이고 교제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렇게 성장하며 성숙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바로 진정으로 건강한 교회요, 행복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초대교회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을 모델로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회개하며 열정적으로 깊이 기도하면서,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이뤄나갈 때, 건강한 교회ㆍ행복한 교회로 변화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으로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가 우리 번동제일교회 안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김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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