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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자족하는 삶 (빌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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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장마철입니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습기가 차고, 우울합니다. 경제도 우울하고 부정적인 측면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도 성층권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떠 있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해도 내일은 태양이 또 다시 떠오르는 것을 믿습니다.  세상에 부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의외로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두운 면으로 실망하고 좌절 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벨기에 사람인 엔트워프 대학의 요한 데놀레트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억압된 사고로 해석하는 사람은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무려 4배나 높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남자 81명과 여자 6명을 대상으로 심리테스트를 실시한 뒤 상태를 지켜본 결과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심장의 좌심실 펌프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1. 자족하는 삶이란?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영생을 소유한 기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요3:16)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요1:12, 엡3:12)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빌3:20)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자족하는 삶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4:11-12절을 보면 바울은 외적인 환경, 상황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는 하나님을 통해! 그 말씀을 통해! 그의 믿음을 통해!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의 삶을 통해 자족하는 삶을 통해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삶을 우리 생활에 적용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의존적인 존재들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신뢰하고 자기를 믿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왜 40년의 광야 생활을 시키셨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간은 사는 존재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광야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거기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그들은 굶지 않고 옷이 해어지지 않고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이스라엘을 만드시기 위한 훈련이 광야 훈련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수많은 환난을 경험하고 심지어는 살 소망까지 끊어진 것과 같은 위기를 만나기도 하였는데 그 때에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후1:9절에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16: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자족하는 삶은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빌4:13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을 단순히 적극적인 사고방식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순경을 만나든지 아니면 역경을 만나든지 간에 감당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내게 힘을 주시는 그분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랑하고 싶지 않지만 예수님 때문에 형제자매를 사랑합니다. 나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형제자매를 용서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원수도 사랑할 수 있으며 참고, 손해보고, 포기하고,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외쳤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족하는 삶입니다. 경제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더 나은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족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의 지금 형편은 궁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족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Immanuel Kant 는 말하기를 “나는 백만금을 소유하지 못한 때에라도 그것을 소유한 것처럼 만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자족하는 그런 자족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바울의 삶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의 자족은 이런 것입니다. 히13;5-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겠답니다. 왜 그런 신앙을 고백하느냐 하면 주님이 나를 돕는 자시며,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딤전6;6-8절엔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고후6;10절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참으로 귀한 고백입니다.

2. 그러면 누가 자족 할 수 있습니까? 자족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배움을 통하여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족하는 삶은 특별한 성품을 타고 낳기 때문이 아니라 배움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환경과 여건과 삶의 터전에서 자족하는 삶과 신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들은 감사를 잃은 세대입니다. 늘 불만이 많고 불평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이 곳, 저 곳을 돌아 본 후에 한국의 어떤 목사님께 "어떻게 지난 50년 동안 한국 교회가 이토록 놀랍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한국의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36년, 혹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더 이상 우리 민족 앞에 아무런 희망도 없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 안에서만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나가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당신네 미국과 비슷해졌습니다. 점점 부자가 되어 살만큼 되니 그때 당하던 고통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말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한국 기독교인들의 관심은 모든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민족과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기도를 잃어버렸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아까운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도를 한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것을 가질까, 어떻게 하면 더 즐길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차를, 더 엔조이 할까?”라는 식의 기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기도가 잘 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잃고 자기의 힘과 노력만 강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불안한 것입니다.

결국 지금 우리는 그 쓴 열매를 먹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외적인 풍요보다 내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세계의 동정을 받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려워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신뢰하면서 살 때는 그래도 행복지수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내 힘으로 살겠다고 힘쓰는 지금의 행복지수는 바닥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신앙을 충만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기본적인 4가지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입니다. 음식, 공기, 수면, 성(性) 같이 생존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을 갈구하는 욕구입니다. 둘째로 안정성 확보의 욕구입니다. 의, 식, 주, 정신, 편안함, 보호, 질서, 안전,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안전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은행저축을 늘린다든지, 보험에 가입한다든지, 직업을 갖는 것 등이 이런 안전의 욕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셋째로 소속감 유지의 욕구입니다. 사람은 어느 곳인가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낍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일터, 직장에서 일손을 놓고 나온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살아갈 의욕을 잃어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경우를 봅니다. 해 저물어 갈 곳이 없고,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 죽어서 갈 곳을 모르는 자가 불쌍한 사람입니다. 넷째는 자존감의 욕구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가치 있다고 평가해주면 만족해합니다. 그래서 명성, 지위, 평판, 위신, 성공 등을 추구하고 이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그래서 옷을 비싼 것으로 입는다든지, 좋은 학벌을 얻으려 한다든지, 무리를 해서 부자동네에 가서 산다든지, 좋은 차를 탄다든지,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게 생각하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다섯째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습니다. 자아실현이란 자기가 계발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계발하여 발휘하는 것입니다. 기대감 성취의 욕구라고도 합니다.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에 소속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안에서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주안에서 여러분들은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주안에서 나는 나대로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꼭 필요하고 중요하며 나대로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교회가 있습니다. 이곳에 나는 꼭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 나대로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쪼록 모든 염려와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고,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도 키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심으로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족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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