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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정의 힘 (민 13: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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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INTRO
어느 일간지의 문화 칼럼을 읽다가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안 돼!, 잘 되지 않을 게 뻔해! 왜 하필 나야? 그럭저럭 먹고 살면 되지 뭐! 등등,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책이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아마존 닷 컴 장기 베스트셀러로 이미 200만부 이상 팔린 책, 바로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이란 책이다. 이 책은 실패와 좌절의 악순환을 끊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비결을 알게 할 것이다.>

<긍정의 힘?> 대체 어떤 책이기에 교계 신문도 아닌 일간지 문화 란에, 이토록 자신 있게 소개하는 걸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해서 얼른 책을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책을 받아 드니 우선 이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 <믿는 대로 된다!> 어? 이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하며 첫 장을 펼쳐 드니, 추천의 변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페이지의 상단의 꽤 긴 제목 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긍정의 힘은 인생을 향한 사자의 포효입니다!> <긍정적 사고만 있어도 반은 성공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의 <불가능은 없다!>, 그리고 노만 필 박사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란 책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었는데요,

추천의 변을 지나자 꽤 시원하게 구성한 목차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모두 일곱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너 댓 소단원으로 나누어, 독자들의 읽기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개인이 아니라 <엔터스 코리아>라고 밝힌 번역 팀의 깊고 세련된 감각이 꽤나 돋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각 장의 목차만 따라 읽는데도 벌써 내 마음 속에서 어떤 움직임이 시작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문, 저자는 아예 처음부터 작심한 듯,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오늘을 온전히 잘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간단하지만 심오한 일곱 단계가 펼쳐질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의 일곱 단계를 적용하면 전보다 더 큰 행복을 얻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 하루나 이번 한 주가 아니라, 평생 동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열정이,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저자의 자신감 넘치는 제안은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당신이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잠재력을 극단까지 발휘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정적인 태도를 벗어던지고 더 큰 비전을 품어야 한다. 더 많은 일을 행하고, 더 큰 즐거움을 누리며, 더 대단한 사람이 된 자신을 상상하라. 바로 이것이 오늘을 온전히 사는 비결이다. 자, 잠재력을 극한까지 발휘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제 시작이다. 오늘부터 최선의 삶을 살아내자!> 저 자신,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제안에 상당히 동감하는 바 있어, 오늘은 그의 책 <긍정의 힘>을 의지하면서 말씀 마당을 풀어가겠습니다.

# 2
오늘 주신 본문 민수기 13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의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총 2백만 명이 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인데요, 이집트를 떠난 저들이 2년 동안 걸어 도착한 곳이 바로 바란 광야의 <가데스>라는 곳이었습니다. <가데스>라는 지명이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지점까지 도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땅은 그저 얻을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은 전쟁 한번 치르지 않고 은혜로만 걸어온 길이었다만, 이제부터는 반드시 싸워 이겨야만 하는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나안 땅에 사는 일곱 부족은 유목민 이스라엘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뛰어난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튼튼한 요새와 막강한 전투 병력까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복지를 얻기 위해 저들과 맞서 싸워 이겨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뜻 움직이질 않습니다. 선지자 모세가 아무리 격려하고 권면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해옵니다. 정탐꾼을 뽑아 먼저 보내보자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적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주장이었지만, 그러나 매우 인간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에 안전하게 느껴지는 방법일지 모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다 왔으니, 어서 올라가 싸워 이기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탐꾼을 먼저 보내보자!>는 제안은 불신앙의 발로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오늘 주신 담론대로 하자면, 저들에게 긍정의 힘이 부족했던 까닭이지요. 그런데 내용은 불신앙인데도, 포장은 아주 그럴듯하여, 모든 백성들이 그만 그 잘못된 주장에 동조하고 말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불신앙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저들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선민의 자격을 저들에게서 영구 박탈하고, 그 자리에서 몽땅 몰살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해서 민수기 14장 11~12절을 보면, 화가 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심각하면소도 이례적인 제안을 하십니다. <모세야, 안 되겠다, 이 백성은 내가 믿지 못하겠다, 이젠 내가 싫다, 이것들 다 쓸어버리고, 내가 더 크고 강한 백성들로 너에게 새로 만들어 주겠으니, 우리 새로 시작하자, 모세야!>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저들에겐 자기 동포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지도자 모세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 덕분에 저들은 몰살당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끄럽긴 하지만 선민의 자격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불신앙의 대가로, 저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한 채, 다시 광야로 돌아가, 38년이란 긴 세월을 방황해야 하는 징벌의 역사를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요, 긍정의 힘을 믿지 못한 저들 백성들의 부정적인 판단으로, 2년에 끝낼 수 있었던 광야 생활을 40년 동안이나 계속해야 했으며, 120년을 기다려온 모세마저도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광야에 묻히는 참담한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신앙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마음 속에 긍정의 힘 보다 부정의 힘이 더 강하진 않습니까? 혹시 그러시다면 이 시간, 그 불신앙의 그림자와 부정의 힘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주신 긍정의 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태도와 부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말들은 이 시간 다 내버리시고, 오직 긍정의 힘으로 재무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긍정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긍정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긍정하시고, 나 자신을 긍정하시기 바랍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놀랍고 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 3
그렇다면, 왜 저들은 이런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어만 했던 것일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가슴에 안고, 이제 <가데스 바네아 사건>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지자 모세가, 저들의 주장에 밀려서, 각 지파에서 열둘을 뽑아 정탐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온 저들의 보고는 일단 긍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민수기 13장 27절인데요, 할렐루야 성가대 읽어주실까요? / 13:27 / (읽기) / 그 땅에 가보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틀림없다는 거지요. 그랬습니다. 저들의 첫 보고는 긍정적인 보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28절에서 저들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28절의 첫 단어를 보시지요. <그러나!> 입니다. 오래 전 새벽제단에서 느헤미야 강해를 하면서, 우리 그 때 <그러나 성도>는 되지 말자 다짐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예>만 있고 <아니요>는 없는 <그리고 성도>가 되자 했었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그만 주님 앞에서 <그러나>를 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28절의 보고를 보니, 저들이 이런 단어를 사용하고 있군요. <강하고, 견고하고, 큽니다!> 가서 보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 맞는데, 거기 사는 사람들이 우리 보다 강하고, 우리보다 견고하고, 우리보다 크더라는 겁니다. 문제는 저들의 마음이 <부정>으로 돌아서고 나자, 계속 <부정>으로 치닫고 말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13장 31절,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자기들이 방금 전에 했던 내용을 정 반대로 뒤집고 맙니다. <부정의 극단>에 빠지고 만 건데요, 직접 들어봅니다. / 13:32-33 / (읽기) / 거기 32절의 <악평>이란 단어와 33절의 <메뚜기>라는 단어에 표시하시고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긍정의 힘만 강한 것이 아니라 부정의 힘도 아주 강하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긍정의 힘은 창조의 힘인 반면 부정의 힘은 파괴의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해서 일단 가속도가 붙은 부정의 힘은 계속해서 다음 단계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단순히 <그렇지 않다!>거 말하던 부정이, 32절에 와보니 <악평>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정에서 시작된 악평이 땅을 넘어 사람에게까지 전이되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땅에 대해서만 악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악평을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33절,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니요!> 지금 누굴 보고 메뚜기라고 해요? 감히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보고 메뚜기라니요! 정말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이 메뚜기로 전락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가데스 광야 사건> 속에서 부정의 힘이 긍정의 힘을 이겼다는데 있습니다. 30절을 보시니, <갈렙>이 나서서, <그렇지 않다고,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이제 가자고, 우린 할 수 있다!>고 다른 각도에서 보고하며 저들에게 호소합니다만, 그러나 일단 부정적인 악평에 물든 저들의 마음이 돌아서질 않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부정의 극단으로 치닫고 맙니다.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어버린 거지요.

정말 조심해야 하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부정>은 늘 <악평>으로 이어진다는 사실과 <악평>은 언제나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들의 말로를 확인합니다. / 14:36-38 / (읽기) /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부정에서 시작하여 악평으로 끝을 내는 저들에게 조금치의 유예기간도 주시지 않고, 회개할 기회도 주시지 않은 채, 그냥 그 자리에서 벌을 내려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저들이 왜 그랬을까? 각 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었던 저들, 처음엔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고 있었다고 보고하던 저들이, 갑자기 돌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말을 바꾸었던 것일까? 답은 간단합니다. 한 마디로 저들의 가슴속에 불신앙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향한 저들의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 까닭입니다. 긍정의 힘을 상실한 까닭입니다.

그런데요, 더 심각한 문제는 10명의 정탐꾼들이 퍼트린 불신앙 바이러스가 한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감염시켰다는데 있습니다. 정탐꾼들의 악평 한마디에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14장 1절 이하, 온 회중이 목을 놓아 통곡하며 하는 말, <차라리 애굽 땅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젠 완전히 망했구나, 아니다, 이러지 말고, 어서 돌아가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집단적으로 메뚜기로 전락해서는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4
<메뚜기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 <부정>에서 시작하여 <악평>으로 이어지는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데요, 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고 나면,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사를 메뚜기의 눈으로 바라보니, 상대는 커 보이고 나는 작게만 보입니다. 그러니 매사가 불안할 따름입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는 일종의 영적 질병입니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 장점은 잘 보지 못하고, 약점만을 골라내 크게 확대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곤 할 수 없는 일들, 부정적인 일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까지 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니 무언가 새로운 역사를 성취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곤 항상 불안하여 메뚜기처럼 어디론가 튀어 도망갈 채비만 합니다.

해서 메뚜기 콤플렉스는 패배주의로 연결되곤 합니다. 항상 문제의 주변을 맴돌기는 하는데, 말 그대로 맴돌기만 할 뿐, 그 문제에 도전하고,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려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부정의 악순환 속에 빠진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부족한 종도, 오늘의 문제 앞에 스스로 오그라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은 초라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엄청난 일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하면서도 다음 순간 저 가나안 땅의 거인 족들이 눈에 보여 자꾸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나도 모르게 메뚜기 사고방식에 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메뚜기라 생각하는 착각의 감옥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혹독합니다. 남은 생애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그렇게 광야에서 죽게 되는 겁니다.

해서 긍정의 힘이란 책의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흔하디흔한 메뚜기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명령을 실천할 능력과 자세를 갖춘 적극적인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메뚜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부르심 받은 역군이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승리가 예정된 불굴의 용사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나 자신을,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메뚜기가 아닌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메뚜기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나안 복지를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로 받아 누릴 수 있을까? 오늘 소개해 드리는 책, <긍정의 힘>에서 몇 가지 처방을 드리면서 말씀 마당을 닫으려고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책을 통해 읽으시고, 여기선 큰 제목 중심의 처방전만 드리겠습니다.

# 5
<긍정의 힘 - 메뚜기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7단계 처방>

1. 비전을 크게 품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결코 현실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믿지 않았는데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비전을 크게 품으십시오. 기대 수준을 높게 잡으십시오. 하나님의 창고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예비하신 보화로 가득합니다. 과거의 장벽을 허무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시고, 은혜 속에서 성장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 나는 이미 은혜를 받았노라, 과감하게 선포하십시오. 나는 비전을 크게 키우는 사람입니다.

2. 건강한 자아상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품으십시오. 언제나 약점이나 문제를 보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깨달아 알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복사판 인생이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그대로의 원판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믿음대로 된다는 믿음>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3.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기쁜 생각을 하면, 항상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기쁜 말을 하면, 내 주위엔 항상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기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기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항상 올바른 생각을 품고, 늘 믿음의 말, 축복의 말을 하십시오. 나의 생각과 나의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이제 나 자신과 나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나의 미래를 향해 오직 하늘의 복을 선포하십시오. 긍정의 힘을 믿으시고 긍정적 생각과 긍정의 말로 축복하십시오.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4.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은 결코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먼저 내 마음의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내 가슴 속에 원망이 뿌리 내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억울함은 하나님이 풀어주십니다. 아니, 억울함을 풀어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을 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마시고,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믿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과거의 망령에서 어서 벗어나십시오. 나는 내일을 행해 온전한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5. 역경을 통해 강점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 질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강하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먼저 마음으로 일어서십시오.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는 날 수 없고, 물의 저항이 없으면 돌고래가 헤엄칠 수 없듯이, 인생의 시련이 없이는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없습니다. 해서 우린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해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따르십시오.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 사람입니다.

6. 베푸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남에게 베풀면 하나님은 내가 베푼 그대로를 나에게 갚아주십니다. 참 멋진 일인 동시에 겁이 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오직 마음을 집중하여 자비와 선행에 힘을 쓰십시오. 베푸는 일은 하나님의 창고에 은혜를 저장해 놓는 일, 베푸는 일은 하늘 은행에 예금 들어놓는 일, 그러므로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을 만나거든 연민의 마음으로 즉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나는 베푸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7.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닌 선택입니다. 한번 뿐인 인생, 최고의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내 가슴 속 열정과 소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눈과 가슴과 얼굴에 열정을 가득 담고 하루를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늘 행복하기를 선택하십시오.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 6 - OUTRO
존경하는 여러분, 우리 동광 가족들은 절대로 메뚜기가 아닙니다. 우린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니 늘 긍정의 힘으로 사람이기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나의 인생은 여기까지야, 그렇게 심드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다시 한번 내 가슴 속 열정의 불씨를 되살려 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만나는 나의 하나님을 그냥 그렇게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열정의 불씨를 되살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당연하게만 여기지 마시고, 뜨거운 감사로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우리 가운데 새롭게 타오르는 열정과 긍정의 힘으로, 날마다 최고의 오늘을 살아, 마침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아멘!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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