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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생명 걸고 전도해야 할 때!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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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점심 시간에 중국 집에서 자신은 우동을, 그리고 친구 둘은 자장면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웨이터가 주방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우∼ 짜짜∼."
잠시 후에 7명의 손님이 중국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우동 3개에 자장면 4개를 시켰습니다. 웨이터는 또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우∼짜 우∼짜 우∼짜짜."
얼마 후에 단체손님 2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들 주문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자장 7, 우동 4, 짬뽕 6, 울면 2, 탕수육 2, 깐풍기 1 등등. 아무튼 매우 복잡하게 주문했습니다. 이번에 웨이터는 주방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아주 간단하게 전달했습니다. "이봐∼ 너도 들었재?"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예배 드리는 자세를 보면 사모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지, 아니면 억지로 앉아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자세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래야 바른 은혜를 받습니다. 제대로 들으십시오.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은혜를 받습니다. 고개를 숙여서 눈을 지긋이 감고 들으면 희미해지다가 잠만 옵니다. 고개를 들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면서 말씀을 들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우리, 말씀을 잘 들읍시다"라고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모압과 암몬이 다른 족속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치러옵니다. 당시의 여호사밧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엄청난 연합군들과의 전쟁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렇게 절규합니다. "저 엄청난 군대에 대항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도 약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는 지금 주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세력 앞에서 그들은 너무도 미약한 존재였습니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순간에 그들은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위태로운 순간에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방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성령의 임재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의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기서 신뢰하라는 말은 믿으라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Have faith in the LORD your God",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제대로 믿으십시오. 똑바로 믿으십시오. 입술로만 믿는다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강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신실하십니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로 나오십시오. 나와서 그냥 멀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바울은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오늘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제대로 들으십시오.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세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은혜를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선포되는 말씀에서 나에게 구체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시편 118편에 보면, 기자는 우리가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지위가 높은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세상 환경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분께로 피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래서 영적인 새 힘을 공급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개입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든, 어떠한 문제에 부딛치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 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일하시고, 나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꿈을 꾸고,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믿으십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믿습니다. 믿으십시오. 확실히 믿으십시오. 인생의 막다른 벼랑 끝에 내 몰렸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만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벼랑 끝에 섰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여정에서 때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심이 생길 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던 일들을 적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깊은 확신이 들면 우리의 믿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기회를 드리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서는 용기'라는 책에서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나뭇가지 끝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나뭇가지 끝으로 갔을 때 '위이잉∼'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사탄이 전기톱으로 당신이 서 있는 나뭇가지를 잘라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가지 끝에 서서 톱질하던 사탄이 마침내 나무와 함께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나뭇가지 위에 선 채로 공중에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무나 나뭇가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지키실 분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무나 나뭇가지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와 나뭇가지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혹여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아닌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이 당신이 서 있는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나무가 넘어지는 그 순간에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여기에서 나무는 우리의 환경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무너지는 그 벼랑 끝의 순간에라도 사랑하는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직접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을 내 삶에 초청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해 주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내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사건들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큰 잔치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본문의 말씀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잔치 집과 같습니다. 잔치 집에 가면 기쁨이 있습니다. 잔치 집에는 평안이 넘치고 사랑이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로 주신 죄사함과 영원한 의를 가지고 영생 복락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땅에서도 천국의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잔치 집과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죄인된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은혜를 받고 보혈의 피로 의인이 됩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이 기쁨을 얻습니다. 불안하던 사람이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적인 평안을 얻습니다. 주님의 교회에 들어오면 은혜를 받습니다. 가정이 잘됩니다. 범사가 잘 됩니다. 영혼이 잘됩니다. 교회에 와서 손해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디를 가든 잔치 집에는 사람이 많아야 흥이 납니다. 사람이 없는 잔치 집은 썰렁합니다. 적막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더 은혜로운 잔치 집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넘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잔치 시간이 되어서 종들을 보내었는데도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합니다. 큰 잔치를 준비했는데 사람이 없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을 시켜서 동네로 가서 골목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 불구자, 소경, 절름발이들을 데려와서 자리를 채우라고 합니다. 그래도 빈자리가 있음을 보고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에서 '강권하다'는 말은 억지로라도, 최선의 방법을 다하여 데려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여기에는 잔치에 잿밥을 뿌리는 사람이 있고, 잔치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천국의 잔치에 잿밥을 뿌리는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잔치를 준비한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도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참여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여러분, 오늘 이 땅의 교회에 안에도 정작 그가 주를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은 하지만 주님께서 마련하신 천국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 그들은 천국의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앓이를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그들은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섰을 때에 부끄러움을 당할 사람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외면하십니다. 하나님은 헌신하는 종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풍성한 잔치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잔치에 사람들을 채우기 위해서 시내로, 거리로, 골목으로 달려나간 종들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잔치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 잔치가 잔치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온 시내 골목을 다 누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빈자리를 다 채웠습니다. 주인이 준비한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 찬 모습을 바라보는 종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스스로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도 천국 잔치를 준비하시고 이 자리를 채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순종하며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무조건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라도 전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데리고 오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둔다고 말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게는 전도의 달란트가 없나봐요." "저하고 전도는 궁합이 안 맞아요. 그러니 저한테는 전도하라고 하지 마세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소명입니다. 전도는 특별한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소명입니다. 명령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전도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의지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전도는 습관입니다. 전도는 이벤트가 아니고 생활입니다.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겠노라고 결심하고 나가면 성령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예비된 영혼을 붙여주십니다. 복음의 능력은 많이 아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복음의 능력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한 마디로 재생산입니다. 함께 누릴 수 없는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설입니다. 재생산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에 불과합니다. 전도는 거룩한 섬김이 전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마음에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 이웃에게 전염시키는 전염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도의 전염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소극적인 태도를 전염시키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생각들을 전염시키지 마십시오. 불평과 불만을 전염시키지 마십시오. 그랬다가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까? 성도들을 낙심케 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을 낙심케 하는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신앙이 없는 열 명의 정탐꾼들이 내뱉은 말이 이스라엘을 낙심케 했습니다.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형제를 낙심케 하지 마십시오. 가족의 뜨거운 신앙에 제동을 걸지 마십시오. 성도의 열심을 비웃지 마십시오. 교회의 활동에 찬물을 붓지 마십시오. 김빠지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낙심케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되어 주십시오. 타오르는 불길에 기도의 기름을 붓는 사람이 되십시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십시오. 합심해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합심해야 천국의 잔치를 우리 교회의 공동체를 통해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외치십시오. "주여, 내게도 한 영혼을 주옵소서. 이 땅을 우리 영신교회에 주옵소서. 내 민족을 내게 주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울부짖던 모세와 전도자들의 열정을 가슴에 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일본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선배 신앙인들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가슴에 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영적 암흑의 시대에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전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마지막의 관심은 사람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불신 영혼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을 따라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마지막 행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사람에게 쏟아 붓지 않으면 종교화되고 맙니다. 관습화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어떤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관습화된 종교꾼이 되지 마십시오. 복음의 재생산이 없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세상에 나가서 불신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는 하나님의 가슴앓이를 잃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집을 나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아들로 회복되어 능력 있는 믿음의 군사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앓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정복자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단의 진을 깨뜨리는 주님의 군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주변에는 넘어져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쓰러져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내가 받은 내 은혜 속에만 머물러 있는 자폐증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의 분명한 자기 사명과 역할과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름 받은 자로서 몸된 교회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크게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마땅히 동참해야 할 책임을 피해가고자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짐을 보고도 어깨를 내밀 줄 모르는 사람, 사명이요 주님의 명령인 줄을 알면서도 달려나갈 수 없는 사람, 공동체의 아픔을 보고도 뛰어들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름만의 교인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라고 외칠 뿐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죄는 많습니다.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 피 값을 내게서 찾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분명히 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이 사람을 향해서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 죄, 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죄, 이것은 속물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죄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구경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명을 보고 회피하고, 소명을 듣고 귀를 막는다면 교회의 무거운 짐들은 누가 담당해야 합니까? 내가 싸우지 아니하면 이 험악한 세상에서 누가 사탄과 싸우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에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전혀 싸울 준비를 하지 않고 영적 무장을 해제한 속물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문제는 기름진 식탁과 침상에는 관심이 있지만 여호와의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는 받지만 세상에서는 아무런 영적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봉사 생활에는 나태하고 충성 생활에는 방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표는 안일이요 쾌락의 추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죄라는 것을 말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라는 사람이 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이라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자의 집에 갑자기 전기가 나갔습니다. 그는 촛불을 켜기 위해 양초를 모아둔 창고로 들어가서 양초를 찾고 있었습니다. 양초 한 자루를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양초가 말을 합니다. "주인님, 나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빛을 밝힐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빛나는 불을 밝힐 수 있는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밝히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상하다 양초가 말을 하네."

옆에 있는 양초에 손을 뻗치자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나는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을 깊이 묵상하는 중입니다. 아직 묵상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묵상에서 깨어날 때까지 내 몸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연기하면 안되겠습니까?" "어, 양초가 말을 하네."

문득 옆에 나란히 서 있는 4개의 양초를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 하나의 양초를 가지고 나가려 했더니 4개의 양초가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다른 초들이 훨훨 탈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중창단 화음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작은 나의 빛 비취게 할테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어떤 양초도 불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불 밝힐 양초가 없다고 투덜거리며 나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왜 초를 가지고 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화를 내면서 "무슨 그런 양초들이 있죠. 도대체 당신은 그 양초를 어디서 사왔길래 그래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양초들은 건너 마을에 문을 닫은 교회에서 사왔다는 겁니다. "아, 그랬구나!" 그제서야 그 양초들이 왜 그러는지를 알았다는 겁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은 세상의 빛된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길 기대하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은 나를 태우길 원하십니다. 나를 태우면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하여 손을 내밀면 너도 살고 나도 삽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몸을 던질 때에 나도 살고 공동체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나 혼자만 살아야겠다는 이기적인 탐심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공동체는 물론 나라의 운명과 더불어서 우리 모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잘 것 없는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총동원되셨습니다. 열두 사도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맹수에게 찢기어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수많은 성도가 순교를 당했고, 토마스 선교사님은 도끼에 맞아 대동 강변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갔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저들의 모든 소유를 포기한 채 고통스런 죽음을 달게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세상 것을 흔쾌히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내 주변에 있었으며, 나 하나를 위한 땀방울이 얼마였으며, 내게 복음이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핏방울이 내 밑에 고여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주어진 일을 소홀히 다루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십시오. 주님의 피 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여러분의 희생 없이는 자랄 수도 없고 발전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없으면 역사를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하나님의 가슴에 빨대를 들이 대고 꿀을 빠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나의 행복이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에 잠시 잠깐 찾아가는 백화점 같은 곳이 교회 생활이 아닙니다. 바른 신앙 생활은 사역입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만이 천국을 차지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다. 그렇습니다. 애써 힘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전도보다 더 큰 상급도 없습니다. 전도보다 더 큰 면류관도 없고, 전도보다 더 큰 영광스런 구원도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재생산이 없는 우리의 모습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제 나가서 어두운 세상을 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파트를 내게 주신 것은 거기서 밥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서 아파트를 정복해라. 복음으로 정복하라는 거룩한 주님의 명령, 선교적인 사명이 내게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피로 세워진 이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빈자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 빈자리는 내가 채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인 우리 교회가 잔치 집이어야 합니다. 잔치 집에 사람이 없으면 낭패입니다. 주님의 피로 세워진 주님의 교회에 빈자리를 가장 기뻐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주님의 교회에 더 많은 빈자리가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낙심하게 하려고 우는 사자처럼 달려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먹이가 되지 마십시오. 사탄과 피 터지게 싸우십시오. 생명 걸고 싸우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영신 재단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 위대한 성령의 불덩어리가 이 교회 한복판에서, 여러분의 심장 심장마다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장에 불을 던져서 그 불덩어리로 이 땅을 태우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불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는 잔치 집 분위기여야 합니다. 교회가 잔치 집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피로 세우신 이 재단에 빈자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헌신과 수고와 눈물과 기도로 위대한 부흥의 계절이 불어오게 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생명 걸고 전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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