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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침 받은 앉은뱅이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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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1. 하나님의 소망

요한복음 21장 25절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의 말씀을 기록해 주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가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요, 우리들이 이 자리에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 받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면 우리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앉은뱅이의 특징은 정상적인 사람처럼 걷거나 활동을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이 처음 하나님께로 지음 받을 때에는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아서 순종함으로 만물의 이름을 짓고 그것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 갈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지만 마귀가 자기의 주인으로 바뀌고 죄를 짓고 난 이후부터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교제도 정상적으로 되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순종하는 것은 죽고 망하고 손해 보는 것으로 아는 정 반대로만 사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라고 말씀하신대로 전적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서 살아 왔고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받아야만 정상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며 복 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요,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기까지 하셨고, 십자가게 죽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피흘려 정상 회복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여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정상적인 부활 기념 감사 예배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부활절을 아무리 성대하게 지켜 봐야 그것은 마치 부모의 속을 썩힐 대로 다 썩혀 놓고 맛 있는 음식 몇 가지 사다 대접하고는 한다는 말이 '부모님 행복하십시요, 기뻐하십시요, 만수 무강하십시요' 하는 것과 같은 격이니 이것은 부모에게 더 이상의 불효막심한 행위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은 앉은뱅이된 우리의 모든 인격의 병이 고침 받기를 원하십니다!

2. 고침 받기 전 앉은뱅이

1) 걷지 못하는 인간

본문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의 생활을 살펴 보면 이 앉은뱅이는 옆의 사람들이 메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도록 메어다 놓아 주어야 얻어 먹으러도 다닐 수 있는 사람이요, 그곳에 가서도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몇 푼 얻어서 생계를 40여세나 되도록 꾸려 나가는 사람이었으며(4:22),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도 예나 다름 없이 구걸하려고 하여 자기의 유익을 보려는 전적 남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는 걷지 못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겉 모양으로는 앉은뱅이가 아닌 것 같아도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과연 나면서 앉은뱅이인 주인공인가 하고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을 가지고 따져 볼 때에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검은 글이요 흰 것은 종이요' 정도의 앉은뱅이요, 기도 하는 것도 지금까지 믿어도 제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온전히 순종 못하는 앉은뱅이요, 세계 만방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말씀을 얼마만큼 순종을 잘하는 정상적인 교인인가를 생각 해 보니 앞이 캄캄 하더라고요, '내가 전도하여 제자 다운 제자 몇 사람을 만들었나?'라고 질문을 해 보고는 저는 완전히 목회를 실패한 인생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자를 몇 사람을 삼았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많은 지역에 가서 많은 사람으로 제자 삼는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 앉은뱅이의 생활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돌아 보고, 구제하고,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도 따져 볼 때에 아직 앉은뱅이의 생활을 못 벗어난 상태이며, 새벽기도 생활에 대해서도 따져 볼 때에 온전한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는 앉은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 이러한 우리의 앉은뱅이 병이 이 자리에 치료하러 찾아 오신 주님을 만나서 다 치료 받고 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 남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는 인간

다음으로 이 앉은뱅이는 자기 스스로 걸을 수도, 일을 할 수도,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도, 성전에 출입할 수도 없는 남의 도움으로만 전적 살아가는 제일 불쌍한 인간 중에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스스로 자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미 죽어서 다 흙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분 혹시 계십니까? 태어나서 20세, 아니 평생을 부모님과 다른 사람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먹고 있는 음식도, 타고 다니는 차도, 신고 있는 신발도, 예쁘게 단장하고 있는 머리 스타일도,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공부도, 기술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휴대폰, 노트북, 각종 가전 제품 어느 것 하나 우리 스스로 만들어서 가진 것 없이 남의 도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용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서 사용하며 누리고 살아가고 있음에 우리는 감사할 뿐입니다.

3) 소망이 없는 인간

이 앉은뱅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의 생활 방식이나 자기의 노력으로 아무리 돌아 보아도 자기의 병을 치유 받고 정상인으로 살아갈 금생에 대한 소망이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얻어 먹어야 하고 병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뿐인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내세적으로도 성전 밖에 있는 구원이 얻지 못한 인간 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기본 구원을 얻은 자들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건설구원적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가지 못하는 앉은뱅이 입니다.

3. 고침 받은 앉은뱅이

1) 걸을 수 있는 인간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40여세나 되도록 걷지도 못하며, 남의 도움을 받으며, 희망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는 비참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께서 보내신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보고도 그는 여전히 구걸하기 위하여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주목하여 가로되 우를 보라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고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 3:4~8)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놀라운 인생역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찾아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고는 일평생 자기의 소원이었던 걷고, 뛰고, 정상인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인생역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신앙 생활과 인생을 돌아 보면서 앞에서 우리가 왜 앉은뱅이인가를 살펴본 바와 같이 '나는 왜 이렇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을까?' 나는 면들을 이 시간에 찾아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앉은뱅이가 깨끗이 치유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 찾아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양심 속 깊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나는 이제부터 이것을 해야겠다'는 즉 이제부터는 '너는 이것을 해라'는 성령님의 강한 감동이 다 각자마다 제각기 다짐을 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성령의 감동을 붙들고 그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때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걸은 것처럼 '주여 나도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걷겠습니다. 더 이상 이 앉은뱅이의 자리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하고 일어서서 걸어야 합니다.

아니야 나는 아직 못해, 나는 아직 멀었어 하고 자기 생각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 찾아 오신 주님도 그의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고쳐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이시지만, 날 때부터 소경을 고쳐 주신 분이지만, 오명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 홍해와 요단강을 갈라뜨린 주님이시지만 이 자리에서 순종하지 안하는 여러분의 인격의 병, 앉은뱅이는 고쳐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이렇게 섭섭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의 앉은뱅이를 치료 해 주시려고 하는데 내가 들어서 치료 받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걸으라 할 때에 걷기로 작정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앉은뱅이가 다 치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은 함께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2) 남에게 기쁨을 주는 인간

이 앉은뱅이는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전적 도움을 받고만 살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완전히 인생역전 되었습니다. 본문 9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행 3:9-10)

그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날 때부터 앉는뱅이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그가 본래는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걷고 뛰고 하니 옆에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예전에는 거지상으로, 병신 노릇 중에도 더욱 병신 노릇을 더 많이 하고, 더 우거지상을 하여 더 많이 구걸하려고 하던 사람이 그의 얼굴에 찬미와 기쁨이 넘치는 얼굴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그의 얼굴과 삶의 모습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다 기록해 주려면 이 지구상에 다 쌓아 두어도 쌓을 곳이 없을만큼 많은 내용읠이분량 중에 이것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목적은 이 자리에 찾아오신 주님이 우리 자신들도 이렇게 고침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용기와 희망을 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내 한 사람이 변하면 온 세상은 다 변합니다. 나로 인하여 우리 가정이 건강해 지고, 교회가 건강해 지고, 사회가 건강해 지고, 국가가 건강해 지고, 온 세계가 건강해지고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으로 삼아 주시고, 온 세계의 복의 근원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고 나눠 줌으로 다른 사람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3) 소망이 있는 인간

고침 받은 앉은뱅이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성전을 출입 할 수도 있고, 정상적으로 활동과 일을 통하여 자기의 삶을 꾸려 나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도 있는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구걸하는 생활 하나만 하는 단순하고 비참한 삶에서 이제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돌아 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구제와 사랑을 베풀며 살아 갈 수 있는 소망이 생겨진 것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우리 자신들도 이제부터는 모든 신앙 인격의 앉은뱅이가 완전히 주님 만나서 치료함을 받고 나 자신의 신앙도 제대로 가름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제까지 살아온 것을 이 자리에 찾아 오신 주님을 만나서 완전히 치료함을 받고, 성경, 기도, 예배, 전도, 교제, 봉사, 구제, 모든 면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일평생을 살아가는 충성된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소원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4. 주님의 기쁨이 됩시다!

우리를 위해서 피흘려 구속하여 주신 주님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고 말씀하신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예배를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앉은뱅이 생활한 것을 더 이상 계속하여 구걸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근심 걱정거리가 되며 살아가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 만나서 주님의 뜻을 따라서 힘을 얻고 걸고, 뛰며, 찬미하는 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기쁨이요, 모든 성도들의 기쁨이요, 온 세계에 기쁨을 주는 행복의 주인공, 역사의 주인공,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기대와 소망을 그스리지 맙시다. 주님의 기쁨만 되는 성도들이 됩시다.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놀라움과 경이의 대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 사람이 예전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언제 저렇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바뀌었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이런 기쁨과 놀라움과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은 기대 하십니다. 고침 받은 앉은뱅이가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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