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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전도회헌신예배] 온전한 헌신 (고후 5:11-21; 신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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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던 땅을 팔아 그 값의 얼마를 떼어놓고 교회 앞에 드렸는데 베드로가 이를 꾸짖었습니다. "아나니아야, 사탄이 네 마음에 들어와서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떼어놓았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 너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하고 말하자 아나니아의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그의 부인인 삽비라도 이것을 알지 못한 채 들어왔다가 거짓말을 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영생을 찾으러 나왔던 부자 청년도 온전히 헌신하지 못한 사람의 표본입니다. 그는 부분적으로는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들을 잘 지켜 왔고, 그는 영생을 갈망할 정도로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온 청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근심하며 그 자리를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동시에 가지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두 마리를 동시에 잡겠다고 생각한 포수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 부자 청년은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하므로 사실상 그가 가진 재물이 그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1. 온전한 헌신

  오늘 읽어 드린 신명기 말씀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인용한 신약의 예수님의 말씀에는 '목숨을 다하고'라는 말씀이 한 가지 더 첨가되어 있습니다. 우리 말에 '다한다'는 말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전체' 혹은 '완전한', '나뉘어지지 아니한'이라는 뜻입니다. 좀 강한 표현을 쓴다면 '몽땅'이란 뜻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우리의 모든 생명을 바쳐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전적인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사랑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두를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우리에게 전적인 사랑을 요구할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이와같이 전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을 완전히 십자가에 내어 주어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이 우리로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끔 강권하신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할 때는 누구나 그의 생각과 마음과 그의 생활 구석구석에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몸으로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 2:20). 완전히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아닌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그의 생애를 이와 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헌신해야 할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주님의 사랑으로 격동함을 받지 않고는 자신을 헌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헌신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후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의 전적인 헌신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일 뿐 아니라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 -20). 이것은 옛날 노예제도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노예는 자기를 사준 주인에게 절대 봉사하고 헌신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온전히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랑의 연고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로 작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적인 규정으로 우리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여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헌신이 법적인 의무에서만 행해진다면 이것은 마지 못해 주인에게 복종하는 노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자유인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의 명령 외에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헌신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와 같은 헌신의 본을 보여준 여인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몽땅 부어 버렸습니다. 그 향유는 그 여인의 전부였습니다.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향유를 모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의 생애 전체를 주께 헌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완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헌신의 축복

  그런데 우리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여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헌신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 청년처럼 영생을 사모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헌신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하여는 완전히 포기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헌신의 걸림 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은, 폭군처럼 우리를 얽어매려고 하심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하려 하심이요, 완전케 하려 하심에서 입니다.
  우리가 과감하게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그에게 헌신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맛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축복과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약하고 불완전한 몸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며 완전케 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 할 때 우리는 많은 근심과 걱정에 쌓이며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맡아 주시며, 그가 친히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평강과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가 죽기 얼마 전 어떤 이가 그에게 "선생님의 생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카네기는 서슴없이 "나는 매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로 인해 정신적 갈등이나 번민은 내게서 사라지고 평안과 능력이 나를 사로잡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하기 이전에 우리를 죄악에서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 자유케 된 우리들이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우리 몸을 바칠 때 그는 보너스로 우리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능력과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헌신은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이것은 말로다 할 수없는 영광스러운 특권인 것입니다. 이 헌신이란 하나님에 대한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왕이나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고 봉사할 수 있는 길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보통 영광스러운 특권이 아닐 것입니다.

  이 봉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실 때 자기를 섬길 자들이 없어서 제발 좀 와서 나를 섬겨 달라고 구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할 수 없는 자리인데 특별히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을 봉사할 수 있도록 헌신할 자격을 얻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헌신이란 완전히 우리의 모든 재물과 시간과 생명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의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전적인 헌신은 말할 수 없는 희생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은 그 희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놀라운 축복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희생이 두려워 헌신을 주저한다면 이것은 마치 낡은 집이 정들어 좋다고 아름답고 좋은 집으로 이사 가기를 거부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전적인 헌신은 완전히 내 삶을 주님께 맡기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헌신의 길로 나아갔고 또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온전히, 부분적이 아닌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이 이룩하시는 영광스러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생애 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박 광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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