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요 15:1-8)

  • 잡초 잡초
  • 239
  • 0

첨부 1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하늘이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신경쇠약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기우’라는 말입니다.
살면서 걱정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출발도 안 하고 걱정부터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맡긴다”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돈은 은행에 맡기고, 고장 난 차는 정비소에 맡깁니다. 병들면 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남녀는 결혼함으로서 서로에게 서로를 맡깁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맡긴다”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맡길 수만 있다면 ‘기우’ 같은 건 아예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다. 맡길 수가 없습니다. 은행도 파산할 수 있습니다. 고장 난 차 정비소에 맡겼더니 오히려 더 고장 내서 수리비를 더 청구한다고 합니다. 병들어 의사에게 몸을 맡긴 어린 소녀가 의사로부터 성추행 당했다고 합니다. 서로 믿고 결혼했는데 왜 그리도 이혼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요? 혜성이 부딪칠 수 있다고들 해서 걱정했던 적 있습니다. 어느 나라 위성이 수명을 다 하여 떨어지는데 어디 떨어질지 몰라, 혹시 내 머리 위가 아닌가 싶어 걱정할 때도 있었습니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성수대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이 그랬습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역시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삶과 내 생명을 맡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행여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닐 때도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기에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 믿을 수 없는 세상이 갈수록 하나님도 믿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믿음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조차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보세요. 안 그런가?
베이리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독일의 폭격기들이 영국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온 거리의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베이리 목사님은 친구의 집에서 그 공포의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열 살 난 친구의 딸이 편안하게 잠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베이리 목사님은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금새 잠이 들던데 무섭지 않더냐?”
그러자 그 소녀가 명랑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깨어 계시는데, 둘 다 깨어 있을 필요가 어디 있어요?”
어떠세요? 이 어린 소녀의 믿음과 여러분의 믿음을 비교해 보면?
뉴욕의 유명한 설교가 노만 빈센트 필이라는 목사님이 후두염에 걸렸습니다. 의사를 찾아 갔더니, “혹시 걱정되는 일이 있습니까?” 하고 의사가 물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계속적인 설교 때문입니다. 주일 설교, 수요예배 설교, 초청설교 등 무슨 내용을 준비할지 1년 내내 걱정이 끊일 사이가 없습니다.”
이때 의사가 목사님께 설교합니다. “당신의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착하십시오.”
이 의사의 말이 나중에 필 목사님의 설교가 되었습니다.
"Don't focus on your problems, but on God."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신에 붙어살고,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자 ‘들포도 열매’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인 이스라엘을 가꾸고 계셨습니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마련하고 좋은 열매가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좋은 땅에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포도원인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우리 생각에 “들포도면 어떠냐? 포도나무면 되지?” 그러나 쓸모없는 열매를 맺는 들포도나무는 그야말로 쓸모없는 나무일뿐입니다. 그들은 땅만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종교지도자들은 욕심과 불순종과 교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의와 희락과 평강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오히려 사람들을 의와 탄식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이들의 인도를 받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하고, 불안하고, 소망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 역시 소망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들어왔던 가르침과 전혀 다르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과 전혀 다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에, 배와 그물과 가족과 일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풍랑 이는 바다에서 바다를 잔잔케 하셨을 때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을 때에도, 예수님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말씀해주실 때도 그들은 불안해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았고, 눈에 비늘 같은 것도 떨어지지 않았고, 성령 충만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에 이대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시게 된다면,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이나, 흔히 말하는 들포도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 역시 세상에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주지 못하는 들포도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도나무라고 해서 다 좋은 포도열매 맺는 것 아닙니다. 아주 좋은 포도나무에서도 들포도 열매가 맺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분명, 하나님께서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해 주셨는데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난 겁니까?
이사야 1:2-4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님을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들을 돌리고 말았구나.”
심겨진 나무가 그 심은 주인을 거역했다는 겁니다. 주인이 왜 자신을 심었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심겨진 나무가 그 심은 주인을 업신여겨서 들을 돌리고 그 주인을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의 뜻대로 좋은 포도열매가 맺힌 것이 아니라 들포도가 맺히고 말았던 겁니다.
분명히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인데,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가 아니라 들포도를 맺을 수 있으며, 본문 2절의 말씀처럼 열매를 맺지 못해서 잘라버려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머지않아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철없는 아이들 같은 제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셔야 했습니다.
마치 죽을지도 모르는 큰 수술을 앞두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품에 안은 엄마가, 멀리 다녀올 동안 잘 있으라고 말하며 흐느끼는 그런 슬픈 어미의 심정으로 예수님은 지금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여기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잘 있으라고, 잘 견디라고, 절대 신앙을 포기하지 말고, 절대로 하나님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분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라고 절대로 들포도나무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참포도나무의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너희가 내게 붙어 있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그렇게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 중에 당신을 팔 자가 있고,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자도 있고, 당신이 잡히시면 다 도망간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강조하시는 겁니다. 절대로 떨어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냥 시간이 좀 있어서 제자들을 불러 놓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날은 곧 죽음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마귀가 그냥 두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는 영혼들을 모조리 집어 삼켜 버릴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절대로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간절히 당부하시는 겁니다.

시편 91:14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사랑한즉”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하샤크’입니다. 이 말의 뜻은 ‘찰싹 붙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표현하면 “네가 나를 사랑해서 내게 찰싹 붙어있기만 하면” 그러면 환난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겁니다. 재난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겁니다. 병중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겁니다. 외로움과 근심 가운데서 번쩍 건져주시겠다는 겁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어떻든 하나님께 찰싹 붙어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붙어서 죽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사자굴 속에서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서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셨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고, 소원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시원치 않고, 그래서 막 살아가다 보면 죄책감에 눌리고, 그래서 또 내 죄를 씻어 보려고 선행을 하지만 여전히 껄끄럽고 찝찝함을 떨쳐 버릴 수 없는 방황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렇기에 내게 붙어 있어야 한다.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해주게T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새로운 약속입니다.
하나, 죄 씻음의 열매입니다.(3절)
죄 씻음. 그것은 주금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죄 용서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려면, 마음이 청결하려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7:9 이하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찬송하는 큰 무리가 있는데, 그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로서,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께 찰싹 붙어있으면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둘, 번영의 열매를 약속하셨습니다.(5절)
마귀의 이름은 ‘디아불로스’입니다. 그것은 ‘갈라놓는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 이웃과 나 사이, 심지어 나와 나를 갈라놓는 자가 마귀입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자’란 뜻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께 붙어 있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생명수의 샘물을 공급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4:13-14,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면 가지된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셋, 응답의 열매를 약속하셨습니다.(7절)
악한 재판장도 끈질기게 간구하는 한 여인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줍니다.
하물며 사랑이신 그분께 찰싹 붙어 살아가는 우리의 간구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왜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야말로 예수께 붙어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 제자 됨을 약속하셨습니다.(8절)
아무나 제자 되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능력을 주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사도로서의 직분은 그를 불러주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으셨고,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인정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으면, 주님께서 능력을 주실 것이고, 그래서 열매를 많이 맺으면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찰싹 붙어 잇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영 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