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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치관이 변해야 합니다 (민 13:30 - 민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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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4개국을 돌아보면서 이상하게 여겼던 것 가운데 하나는 왜 이스라엘은 잘 사는데, 다른 중동국가들은 못 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사막지대에 영토를 두고 있는데도 이스라엘을 가보면 사방 어디나 푸른 올리브 숲을 볼 수 있고 풍성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요르단이나 시리아 레바논 같은 나라들은 분명히 땅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크고 토질도 훨씬 더 기름진데도 불구하고, 참 가난하고 황량하고 어렵게 사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어디를 가나 거지, 구걸하는 아이들...)
석유나 천연자원도 이스라엘땅에는 별로 나는 것이 없는데, 시리아같은 나라는 유전이나 아주 풍부한 천연자원들이 엄청나게 많이 묻혀 있습니다.
또한 고대문화 유적지 같은 것을 보면 시리아나 요르단같은 나라는 얼마나 다양하고 흔하게 널려 있는지 그걸 잘 활용하기만해도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머리가 나빠서 못사나? 아니면 게을러서 그런가?’ 별 생각을 다 해 보았지만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대로우 밀러라고 하는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부총재직을 맡고 있는 신학자의 책을 한 권 읽다보니까 거기에 그 이유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잘 살고 그 옆의 중동국가들이 못사는 이유는 단 한가지 ‘가치관의 차이’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이스라엘에서 유학을 했을 때에 한 교수님이 들려주었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루는 이 대로우 밀러가 이스라엘 사막 한가운데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 사막에도 숲이 울창하게 또 질서정연하게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 교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왜 중동 다른 나라의 사막은 황량하기 그지없는데, 유독 이스라엘의 사막만 이렇게 울창한 것입니까?”
그랬더니 레니라고 하는 이스라엘 교수님이 대답하기를 “ 지금 보는 이 숲은 자연의 숲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만든 숲입니다. 그렇지만 아랍인들은 이런 숲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두가지 서로 다른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랍인들은 이  땅에 대해서 알라신이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이렇게 황량하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손도 쓰지 않고 그냥 저주아래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이 그 젖과 꿀을 이 땅에서 거두기 위해서 사막에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숲을 이루어 열매를 따기 까지 된 것입니다....“라고 설명해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한 민족은 숲을 만들어 풍요하게 살아가고 있고, 또 한 민족은 그 땅에서 여전히 척박하게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그 사람들 안을 차지하고 있는 가치관의 차이때문입니다. 알라신이 저주를 내렸다고 믿는 가치관과 하나님이 축복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믿고 있는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가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아프리카 난민촌에서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대륙에 큰 기근이 내렸을 때 이디오피아 한 난민촌에 기아대책봉사요원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움막을 지나가는데 아이울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아서 들어가보니 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의 머리가 불덩이같이 뜨거웠습니다. “왜 빨리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엄마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신의 뜻에 따라 어차피 죽을 운명입니다. 그냥 놓아두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 봉사요원은 말하기를 “아닙니다. 이 아이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라고 하며 즉시 병원으로 옮겼고 그 아이는 건강하게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행동과 삶을 지배하는 것은 그 사람안에 있는 가치관입니다. 어떤 가치관이 그 사람안에 자리잡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고 운명이 바뀝니다.

‘여자가 공부는 해서 뭘해, 살림이나 돕다가 시집이나 가면 되지....’ 이런 가치관을 가진 부모들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신사임당, 큐리부인이 그야말로 평범한 부엌떼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까? 지금도 아랍에 가면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예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여자를 그 아버지나 남자형제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살인풍속입니다. 그런데 그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이 무슨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네에 소문이 좀 안 좋다, 예를 들면 요새 저 집 아이가 옷차림이 난하다. 인사를 잘 안한다...이러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해서 명예살인을 자행합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는겁니다.
남자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습니다.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건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남자는 인격을 가진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인격도 없고, 열등한 존재기 때문에 그렇게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겁니다. 아랍인들은 전생에 잘못을 저지르면 여자로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여자가 열심히 공덕을 쌓고살면 다음생에 남자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자를 죽이는건 아무런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는겁니다.

여러분 보세요, 사람속에 있는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행동이나 삶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 가치관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그 사람속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속마음이 바뀌게 될 때 그 사람은 변화되었다....새로와졌다...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몸이 교회 나오고 안 나오고를 떠나서 그 사람 속에 있는 가치관이 영적 가치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뀔때에야 비로소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믿은 이후로 여러분 속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까? 이전에 옳다고 믿었던 것을 이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이전에는 저것 아니면 나는 못 산다고 말할만큼 절대적으로 추구하고 좇아가던 것을 이제는 아니다, 저건 아무 것도 아니다...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이 없다....나는 다른 것을 추구하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그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진정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생각과 가치관에 변화가 와야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가치관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자부하십니까? 신앙은 우리 안의 가치관에서부터 그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명의 정탐꾼들의 서로다른 두가지 보고에 대한 본문입니다. 여기에 두가지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가지 보고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서로 다른 땅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똑같은 땅이지만 서로 다른 두가지 가치관을 가지고 가나안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저주받았다’ 이렇게 믿고 보는 가치관과, ‘이 땅은 하나님이 복주신 땅이다...’ 이렇게 믿고 보는 가치관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가지 보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성도가 살아가는 생의 방식과 성도가 아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릅니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세상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리들 개인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환경이 바뀌고 없던 복이 저절로 부어지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환경속에서도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에 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고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서 결과적으로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을 바라보면서 저주받은 땅이다....하고 그냥 앉아있는 사람과 저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나님이 복 주셨다...이렇게 믿고 가서 그 꿀을 찾고 젖을 거두기 위해 나무를 심는 사람의 삶이 결과적으로 달라질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한국교회 신자들의 문제는 예수믿고 복이 저절로 부어지기만 기다릴줄 알았지,그 속의 가치관을 바꾸는 데에는 게을렀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 놓고도 그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만 만나면 두려워하고 어쩔줄 모르고 세상을 향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에만 바쁘고....그러다가 실패라도 하면 덜컥 주저 앉아버리고.....도대체 문제를 뛰어넘을 줄도 모르고, 문제앞에서 당당한 성도 본연의 태도도 전혀 길러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니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똑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안에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예수 믿기전과는 전혀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변화된 새로운 가치관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새로운 가치관을 여호수아와 갈렙의 가치관에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새로운 가치관으로 가나안땅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1. 성도의 새로운 가치관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게 된다. 8절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걱정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성읍이 얼마나 견고하냐, 그 사람들의 키가 얼마나 장대하냐?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직 그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과연 기뻐하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견고한 성읍, 장대한 아낙자손...이런 건 하나도 문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건 하나님이 알아서 치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낙 자손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보다 더 강하겠습니까? 가나안의 성읍이 아무리 견고해도 지진과 바다에 쓰나미를 불러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한번 하실려고 하시면 가나안이 아니라 온 세상이 뭉쳐서 이스라엘을 공격해온다하더라도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기뻐하실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지금 합당하게 행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실만한 태도로 지금 이 문제 앞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지금 그게 두렵습니다. 이렇게 믿음없는 소리를 해대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 죽었다, 우리는 저 사람들 밥이다.....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울부짖고 있는 것....이걸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겠나?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의 그 두려움대로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니까 그들은 그 견고한 성읍 근처도 못 가보고 그대로 광야 사막길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눈으로도 한번 못본채 광야에서 비참한 죽음을 죽어버리는 쓸쓸한 생애를 마감하게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못 들어간게 아닙니다. 적이 너무 강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했기 때문에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못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죽을 때까지 평생을 잊지 말아야할 사실은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이루어주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 불가능한 일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일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고, 죄와 타협하고, 하나님백성답지 못하게 살면 하나님은 광야로 돌려보내십니다. 가나안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삶은 여전히 초라하고 답답할 수 밖에 없이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내 생애 모든 삶의 문제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시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기에 우리 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도의 새로운 가치관은 말씀의 신실함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게 된다. 8절
‘과연...’--정말로, 진짜로....(사실이야?진짜야?...) 뭐가 정말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정말이라는 뜻입니다.....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정탐 40일 내내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대한 아낙자손들을 보면서도 ‘그들은 우리 밥이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열 명의 장탐꾼은 믿지 못했습니다. 말씀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두려움과 염려가 몰려왔습니다..그래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그 장대한 아낙자손앞에서 ‘우리는 메뚜기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의 새로운 삶의 가치관은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얼마나 믿느냐?가 그 생이 얼마나 바뀌는가?를 결정합니다.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생이 달라집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을 믿는데 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비겁하게 불법을 쓰거나 죄를 짓겠습니까?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사는 사람이 왜 문제앞에서 하나님이 망한다고 하신 악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겠습니까?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데, 왜 쓸데없이 염려하고 걱정에 빠져 낙망하며 살겠습니까?
말씀을 믿는 믿음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가치관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행동과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성도의 변화된 삶은 바로 이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66권의 말씀을 모두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고 살고, 특별히 어렵고 힘든 시기에 소망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 읽는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5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성경66권 가운데 한구절 말씀을 올해 나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다른 모든 말씀도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특별히 그 한구절 말씀을 일년내내 기억하며 사십시오. 모든 삶의 현장에 그 말씀을 가져가고, 여러분이 처하는 어떤 문제나 형편이든지 그 말씀을 항상 기억하면서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그 문제나 형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가나안땅을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바라보았을 때에는 두려운 땅이요,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불가능의 땅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새로운 눈으로 가나안땅을 바라보면 그 땅은 아름다운 땅이요, 그 장대한 아낙사람들은 그저 우리 밥으로 보이게 되는 전혀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풍요로은 가나안의 젖과 꿀은 그런 변화된 태도로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신실함을 믿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장에도 말씀을 들고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사업 파트너를 만나고, 중요한 인생의 문제를 결정하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들고 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닥치는 문제와 상황들을 바라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길이 보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 밥으로 보여지는 새로운 관점이 일어납니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캄캄하던 견고한 문제의 덩어리들이 아름답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보여지는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된 가치관으로 세상을 전혀 다르게 사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강 영 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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