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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 승리하는 말 (단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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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겸손한 사람이 은혜 받습니다. 옆에 앉으신 분들과 손 잡으세요. 그리고 반갑게 인사합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귀한 사람입니다. 인사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피차 복종하며,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피차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효도하시고 직장상사들에게 순종하고 부하 직원들에게도 공갈 협박하지 말고 아내사랑, 남편 존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승리하는 말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려울 때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말로 "감사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잖아요. 고양이가 쥐를 쫓아갔어요. 그런데 쥐가 쥐구멍으로 쏙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쥐를 잡을 수가 있습니까? 못 잡아요. 그래서 쥐가 '이제 살았다'하고 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 쥐가 고양이가 갔는지 안 갔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렇다고 고개를 내밀면 고양이한테 잡혀 먹힐테고. 그런데 밖에서 '멍멍'하는 소리가 나는 거에요. '아아~~고양이는 가고 개가 있나보구나' 그래서 쥐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겁니다. 쥐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고양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죽기 전에 하나 물읍시다. 넌 고양이가 왜 '멍멍'하는 소리를 내었니?" 그랬더니 고양이가 하는 말이 "요즘 먹고 살려면 2개 국어는 해야 먹고 산다"고 하는 거에요.

또 하루는 쥐가 고양이에게 쫒겨 도망을 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도망을 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쥐는 평소에 성경을 많이 보았는데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고 시험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도 주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거에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그래서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피할 길을 주세요. 감당할 길을 주세요.” 드디어 쥐는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살기가 등등한 고양이가 곧 잡아먹을 궁리만 하고 있는데 조금 전까지 도망을 치고 벌벌 떨던 쥐가 한참동안 뭐라고 기도를 하더니 태도를 돌변을 해서 의기양양하게 고양이에게 다가 오는 겁니다. 그러더니 고양이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고양이가 사색이 되가지고 슬금슬금 쥐를 피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쥐가 고양이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고양아, 미안하다. 내가 조금 전에 쥐약을 먹었다. 나를 잡아먹으려면 먹어라! ” 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믿는 성도에게는 살아날 길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어려움을 당할 때 피할 길이 무엇이냐? 그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것이라고 본문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감사 기도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의 감사 기도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 포로되어 간 사람입니다.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당시 오만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려갔답니다. 다니엘은 어디까지나 포로입니다. 그런데도 총명이 있고 지혜가 있으니까 느브갓네살 왕이 그를 등용해서 정치가를 삼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바사 나라가 되었지만 새로운 나라의 왕 다리오도 이 다니엘을 또 정치가로 기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 와서 두 나라를 넘나드는 정치가로 일하는 영광을 누리는 대단한 사람이요, 신앙적으로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사나라의 다리오 왕은 120명의 방백을 두고 나라를 다스렸고 그 위에 세 명의 총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 명 중에 한 사람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는데 그 한사람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임금 다음으로 제일 높은 총리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 특히 본토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가 많습니다. 이방사람이요, 노예 출신을 가만둘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헐뜯고 음모하고 갖은 방법을 다 했지만 오늘 본문대로 다니엘은 전혀 허물이 없는 사람이고 충성된 사람이라서 다른 일로써는 고소할 수 없음을 알고 결국 다니엘의 신앙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이제부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다른 누구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다리오 왕에 대한 역적이니 이 사람을 잡아서 사자 굴에 집어넣자」고 하는 금령을 만들었고 다리오 왕이 그 조소에 어인을 찍었습니다. 결재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세요. 다니엘은 이러한 법령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보세요.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진실 되게 그리고 정직하고 충성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험이 옵니까? 과연 이때에도 기도,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다니엘은 기도를 하고 사자의 굴을 선택합니다. 왜 사자굴 입니까? 원망하자면 원망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실 되게 살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원망할만 하죠.
놀라운 사실은 다니엘은 '어인을 찍은 것을 알고도' 이 말은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대로 사자 굴에 끌려가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운명을 다 알고도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했다는 겁니다. 모르고 행한 일이 아닙니다. 알고한 일입니다. 성경은 놀라운 사실을, 아니 통쾌한 결론을 줍니다. 결국 다니엘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함으로 승리를 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주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승리를 가져왔던 말 - 감사는 어떤 감사입니까? 승리할 수 있는 말인 감사는 ‘습관적인 감사’입니다.
습관적인 감사는 그냥 해본 감사가 아닙니다. 습관적이고 아주 오랫동안 숙달된 감사입니다.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감사가 아닙니다. 10절에 “전에 하던 대로 무릎을 굻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 합니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에요. 습관입니다. 숙달이 된 감사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감사를 합니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불평을 합니까?

유명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유명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을 잘 아시지요? 하루는 기차 여행 중에 화학실험을 하다가 기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만 약병 하나가 떨어지면서 그만 연구실이 불이 났습니다. 그간에 연구해 왔던 자료는 물론 기차가 불에 타자 화가 난 기차 차장이 달려와서 에디슨을 차창 밖으로 내던져 버리는 바람에 부상을 입고 귀를 다쳐서 평생 듣지 못하게 됐습니다. 귀머거리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많은 연구를 하여 발명을 함으로 발명왕이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질문을 할 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열차사고로 귀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못 들으니까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에디슨이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실패가 있었고 그 실패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실패도 감사해야 한다?
컴퓨터의 제왕이라는 빌게이츠도 '미래로 가는 길' 이라는 책에서 “내가 우리 회사에서 사람들을 고용할 때 이제는 되도록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많이 쓰겠다.”고 했습니다. 뭐 실패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빌게이츠는 말하기를 “그러나 실패했다는 사실만으로 고용하지는 않겠다. 나는 반드시 실패했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배웠느냐? ” 여러분 ' 실패를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배웠느냐?’는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실패!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서 배운 사람, 교훈을 얻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숙의 새로운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런 삶의 진리를 아는 사람은 실패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에게 감사를 가르칩니다.
지난 수요일 밤에 수요기도회를 마치고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는 유치부 교사 몇 분과 그 자녀들과 함께 같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날 늦게까지 수고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기특한 마음에 얼마 안 되는 식사비를 제가 부담을 했더니 모두가 한결같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는데 같이 앉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감사합니다'하라고 인사를 시키더라구요. 그 어린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그런데도 가르칩니다. 밥을 다 먹고 뛰니까! "앉아 있어야지요!" 이구동성으로 그러더라고요. 중요한 겁니다! 맞아요! 이 아이 부모님들이 잘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고맙다는 거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가르쳐야 되요. 조그만 일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가르쳐야 합니다. 엄청난 일에도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거지 이게 하루아침에 되나요? 안 그렇습니까?

습관적인 감사
오늘 본문에 보니까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감사기도를 일상화하는 거지요. 하루에 식사를 세 번하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하나님 앞에 세 번 시간을 정하고 꼭 그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습관적인 감사입니다. 이처럼 오랜 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 가면 성품이 되는 거예요. 이런 면에서 우리는 체질적으로 감사를 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고마웠다는 말 한 마디를 할 줄 모르는 것이 큰 약점입니다. 큰 흠집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그저 고맙다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이게 체질이 되고 습관이 되고 문화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앞으로 큰일을 당해도 또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돌발적으로 이런 위대한 감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에요. 여러분 잘 생각하십시오. 조그마한 일에도 원망 없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요. 이 감사라는 습관적인 한 마디가 그의 삶의 결과를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행복은 여행이지 목적이 아니다. (Happiness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까? 아니면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졸업, 입학, 결혼, 진급, 출세하거나 복권당첨 되는 것이 과연 행복입니까? 인생은 계속 이어지는 여행이고 매 순간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1:31) 현재와 미래는 연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춥고 몸은 무겁습니다. 돈도 즐거운 일도 없어요. 이런 식으로 늙어가면서 삶은 고통이 됩니다. 하지만 행복을 연습합니다. 어떻게요? '좋은 면만 보면 된다'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만한 인격을 가진 훌륭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 그래서 역경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쉽지 않아요!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역경을 감당할 수도 없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감사는 단순히 좋은 면을 보고 하는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 감사입니다. 구원받고 천국의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된 것
제 2차 대전 때, ‘헤럴드 레셀’ 이라고 하는 청년이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폭탄에 맞아서 두 팔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낙심을 했겠습니까? 불구가 된 청년은 참으로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나를 왜 살려 두셨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의 기도를 하고 지쳐서 쓰러져 있는데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때에 그의 귀에 이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 사랑하는 내 아들, 러셀아 두 팔을 잃어서 그렇게 마음이 아프냐? 그래도 나는 너를 위해서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게 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죽은 사람도 많다. 너는 살았고 그래도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아직도 많지 않느냐.”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레셀이 이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자기를 돌아서 생각해보니까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죽은 사람도 있는데 자기에게는 아직 숨쉴 수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고,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고, 걸을 수 있는 두 발이 있습니다. 정말 자기는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순간,,... 생각을 고쳐먹은 러셀은 당장 그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의 의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잃어버린 두 팔 대신에 인공으로 의수를 만들어 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타이프 치는 것을 연습하여 자기가 지내온 생활을 잘 정리하여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이 책은 2차대전 이후 실망에 사로 잡혀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소설책이 되었습니다.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 졌는데 저자 자신이 출연까지 해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이때 한 기자가 러셀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 때 러셀은 유명한 간증을 합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가 도리어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리고 나에게 있는 것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잃은 것의 열매를 크게 보상해주시고 더 많은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이 됩니다. 누구하고 다릅니까? 세상 사람하고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평이 심합니다. 불평은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깨달음 속에서 계속 감사를 함으로써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해주겠다.(마11;28)”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시고 감사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 하늘의 아버지께서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리라” “할렐루야!”
감사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한두 번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시간마다, 그렇게 습관으로 삼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신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며 그래도 감사 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복음송 가운데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라는 곡이 있습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 함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 하셨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 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통한 해결과 감사가 없다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잘되면 자기가 잘난 것이요. 안 되면 조상 탓을 하는 사람에게는 환경이 바뀌고 여건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기를 한평생 기다려도 '감사'가 없습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입니까? 잘 산다고 복이 아닙니다, 가졌다고 복이 아닙니다, 출세했다고 복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바로 그것이 복입니다. 감사는 습관적이고 체질이 되어야 되고 성품이 되어야 승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승리할 수 있는 말인 감사는 종말론적인 감사입니다.
다니엘은 인생의 마지막으로 할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을 사람들, 원수들 앞에 당당히 밝힙니다. 믿는 자는 자기의 믿음을 보이는 일이 필요해요! 언제입니까? 지나간 과거는 아니에요! 앞으로도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이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 됩니다. 과거의 아픔도, 미래의 걱정도 접으시고 지금 현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다니엘은 죽을 걸 각오하고 죽는 시점에서 감사하고 있는 거예요. 만족합니다, 이대로 만족해요. 거룩한 백성으로 의롭게 선하게 이렇게 살고 깨끗하게 죽어갑니다. 바로 그 한마디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 그러한 위대한 감사요, 절대적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하나님께 위탁하면서 "지금 저는 주님 앞으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종말적 감사였습니다. 그래서 16절에 보니 원수들의 계략대로 왕은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 던져 넣습니다. 이 때 왕이 다니엘에게 말합니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이렇게 의인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

또 다른 삶의 빛
어떤 분이 혀에 암이 생겼습니다. 혀를 자르게 생겼습니다. 의사가 혀를 자르면서 "앞으로 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면 말이 있으시면 한마디만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입장에 있으시다면 여러분은 마지막 그 한마디를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감사! 그것은 또 다른 삶의 빛입니다.

지난 월요일(11일)에 총회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세미나를 참석해서 가는 길에 동행하는 선배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포항에 있는 교회에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어서 포항에 다녀오신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100주년을 기념해서 예배당 신축했는데 이 행사에 다녀오신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 신축건물은 한 개인이 1만평의 땅을 기증하여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땅의 가격이 한 50억원정도라고 합니다. 목사님께서 지방이라고 해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고 쉽지 않은 헌신이지요. 그래서 질문을 하셨데요. 그 분대답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헌금을 할 수 있었습니까?” “ 제가 살아생전에 언제 하나님의 성전건축이라는 영광스러운 사역에 참여해 보겠습니까?” 겸손히 대답을 하시더라는 겁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대답에 다시 한번 은혜를 받으셨답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종말론적인 신앙이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섬겨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예배를 언제 또 주실지 어떻게 압니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
저도 전해 들은 얘기입니다.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 연로하신 한 권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의 네 아들은 하나같이 미국에서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되어 교회와 이웃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권사님은 29세 때 남편을 여의셨습니다. 당시 남편은 숨을 거두면서 권사님을 불렀습니다.
“여보,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미안하지만 이제 한 가지만 약속해주오. 우리 네 아들을 꼭 책임지고 키워주오” 권사님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약속할게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믿음밖에 없는 젊은 과부는 갖은 고생을 하며 어린 네 아들을 키웠습니다. 밥상에 먹을 것이 있을 때는 “주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식들을 앉혀놓고 “주님, 오늘은 금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답니다.
양식이 있건 없건 감사를 드리면서 아들을 키운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어머니와 네 아들을 크게 복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을 복 주시지 않으면 누구를 복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 감사하는 사람 ,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은혜주실 줄로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 였사오니...” (다니엘 6;1-22)
“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 하였더라”
(다니엘 6;1-28)

하나님께서 감사하면 다니엘을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여러분에게 이러한 일이 있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착한 이발사
어느 곳에 착한 이발사가 하나 있었는데 한 신부가 이발소에 왔어요. 정성껏 이발을 잘 해드린 다음에 "그저 하나님께 봉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발료는 내지 마시고 그냥 가시지요. 저도 하나님의 일 좀 하고 싶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 신부가 감사하다고 하고 가서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요. 그래서 우편으로 기도문 책을, 교회에서 쓰는 기도문 책을 몇 권 우편으로 보냈어요. 이것을 배달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순경이 와서 이발을 하게 되는데 순경이 이발을 다 하고 나서 돈 내려고 하니까 "내지 마십시오. 저도 지역 사회에 봉사한 셈치고 좋은 일 한 번하고 싶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 돌아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고마운 분이야, 참으로 고마워서 또 거기다가 편지 한 장과 도너츠 몇 개 봉투에 넣어서 그 문 앞에 가져다 놓았어요. 다음 날에는 국회의원이 왔어요. 또 이발을 다 해 드린 다음에 "저도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이발료는 안 내셔도 되겠습니다." 하고 보냈어요. 그 다음 날 보니까 국회의원들이 그 문 앞에 줄 섰답니다.

여러분 어떤 고마운 일이 있어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세상에 은혜를 당연히 입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이 고마운 이러한 은혜를 입을 만한 자격이 없어요. 그저 부족하고 허물 많고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에요. 작은 일이지만 소중한 것이에요. 그런데 '나는 당연하지. 나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혜택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잘못된 인격이에요.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십시다.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의의 세계, 믿음의 세계를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또 받게 될 은혜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은 루스의 황량한 벌판에서 외롭게 밤을 지내야 하는 처지에 있었으나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 그를 택정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합니다. 사라 에프 아담스는 이 창세기 28장에 야곱의 사건에서 전에 깨닫지 못했던 영감을 받습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혼자의 몸이 되었을 때처럼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다정했던 이웃이나 친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곳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담스의 처지도 이와 같았습니다. 고독과 직면하게 되었고, 그는 거기서 자신이 가까이 해야 할 대상, 자신과 항상 함께할 수 있는 분은 과연 누구이지를 발견했다고 보여 집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영감을 얻어 찬송시를 짓습니다.

찬송가 364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고 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 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 하면서 주께 더 나가길 원합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길 원합니다.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은혜를 끼치고 있습니다. 주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외롭지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으며,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경이나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와 함께 하는 생활에는 기쁨이 있고 행복과 평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승리할 수 있는 말은 "감사"입니다. 그 감사는 2가지인데 첫째는 습관적인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습관적인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종말론적인 감사입니다. 끝까지 감사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 창 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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