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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방주의 품 (창 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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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재난을 꼽는다면 아직까지 노아시대의 대홍수임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로 인해 파멸을 자초한 것이지만 대홍수는 인류의 죄를 인해 호흡을 하는 생물은 다 죽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죄는 자기 만이 아니고 함께 호흡을 하는 관련자들을 재난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갖고 옵니다.  이 죄를 해결하는 세례가 노아 때는 홍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 베드로전서3장20절, 21절에 보면, 노아홍수를 기억하며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이 시작되었다고 증거합니다. 

3:20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우리가 세례를 받는 그 이유는 죄를 씻는 일, 죄 사함받고 구원받은 표를 받는 일입니다.  물의 세례는 죄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를 정결케 해주시는 일을 위해 근본적으로 죄용서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증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홍수는 심판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죄를 씻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증거합니다.  방주는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용서의 위대한 사건을 증거하는 도구이며 사랑의 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방주의 품은
1.큰 안심의 품

여러 해 전에 제가 성지순례차 시나이 반도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저의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가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돌아오는 노정이었습니다.  하늘이 흐리더니 소낙비가 잠깐 내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로 인해 시내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들이 보통 때에는 매말라있는 크고 작은 강줄기, 와디(wadi)들을 채우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시나이반도 전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올라가는 물줄기들로 사방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앞을 가로 막고 거품을 내며 쏟아져 흘러 올라가는 강줄기를 보면서 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구하소서.  결국 그 날 저녁 여덟시 경부터 우리 일행의 관광버스는 애굽 경찰차의 선도를 받아 방향을 바꾸어 밤새도록 시내반도를 시계바늘 방향으로 우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북쪽을 향해 돌면서 아침 8시 경에 드디어 동쪽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12시간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시내반도를 이렇게 일주한 관광객은 우리가 처음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위대한 경험과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시내반도의 남방에서 북방으로 사방에서 흘러 올라가는 시내들의 그 합류와 위력은 하나의 위대한 상징이었습니다.  옛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애굽에서의 엑소더스의 대장정을 하던 백성들과 그 구원의 물결을 상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성경계시가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큰 구원의 물결을 우리 민족과 열방 속에서 이루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그 때 시편126편4절 말씀,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라는 예언자의 기도가 확연히 깨달아졌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 때 나의 일행이 탄 대형관광버스는 마치 신뢰하는 사람들을 품고 그 많은 와디들의 바다를 넘어 움직이는 피난처, 노아의 방주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의 환난 속에는 이미 낙심에서 감동으로의 반전이 예비되어 있었고 그 반전의 실체는 우리를 어디서든지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겪는 환난과 재난 속에는 위대한 반전의 기회들이 들어 있습니다. 얼마전 쓰나미해일은 큰 참사를 남겼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의 심판과 구원의 물결이 세상을 덮어나가리라는 하나님의 큰 예언도 일깨웠습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구약성경, 하박국서2:14)”,  그러므로 개인이나 민족이나 고난, 역경을 겪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반전은혜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반전의 소식과 추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난의 파도를 넘는 우리의 방주가 되시고 방주의 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방주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큰 반전과 안심의 품입니다.  불안심리는 온갖 병의 원인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안심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걱정꺼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이 모든 걱정꺼리를 씻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있을 대심판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심판이 노아의 홍수 때 있었던 것 같이 장차 불로 이루어지는 대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합니다.  대심판의 내용은 여러가지로 성경이 예언합니다만 그 중에 한 곳, 요한계시록6장12절에서 17절까지의 예언을 보면 이렇습니다.

계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큰 지진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요즈음의 지진은 마지막 있을 큰 지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해가 깜깜해 지고 달이 피같이 어둡고 붉어집니다.

계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계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계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대심판은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성도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심판은 있지만 우리는 그 심판 앞에서 새 하늘 새 땅, 천국을 만날 줄 믿습니다.  대심판을 면한 안심은 큰 것입니다.  나머지 어떤 곤란, 재난, 역경도 대심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다.  그러므로 대심판에 대해서는 경고가 있습니다.  아울러 구원도 함께 예고되어 있습니다. 

벧후3:12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대심판을 당하지 않음을 믿어야합니다.  안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심판을 면한 안심이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축복은 안심의 축복이며 방주는 안심의 품입니다.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방주를 지었고 그리고 그 방주 안에 가족이 들어가면서 안심을 얻고 홍수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7: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7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방주는 안식의 품입니다.  안심의 큰 품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120년에 걸쳐 길이 90.9m, 너비 15.15m, 높이 9.09m, 상 ·중 ·하 3층으로 된 배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방주입니다.  노아는 8명의 가족과, 한 쌍씩의 여러 동물을 데리고 이 방주에 탔습니다.  대홍수를 만나 모든 생물이 전멸하고 말았지만, 이 방주에 탔던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은 살아 남았습니다.  큰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서 난리였지만 그럴수록 노아의 가족은 안심이 되었겠지요.  방주는 안심의 품입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그 뜻이 ‘휴식, 안식’입니다.  노아가 지은 방주는 안식의 방주, 안식의 품이었습니다.  노아 방주의 안식은 어떤 것입니까?  심판을 피하게 되어서 누리는 안식입니다.  우리가 장차 오는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안식이요 평안입니다.  순종하는 사람,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방주의 품이며 이는 큰 심판을 피하게 된 안식입니다.  방주의 안식은 장차 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큰 심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 구원받는 은혜를 감사해야합니다. 마지막 날 대심판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11,12절에 보면 대심판이 있는데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장차 올 대심판, 불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불 못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대심판은 영원히 가장 극심한 고통의 벌을 받는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 대신 우리를 생명, 영생의 품으로 옮겨주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를 믿는 자는 따라서 방주의 품, 안식을 체험합니다. 교회는 이 믿음의 방주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장차 오는 하나님의 심판, 큰 심판에서 우리가 용서받고 보호받는 사실을 믿는 곳입니다. 믿음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큰 안심을 주는 곳입니다.  큰 풍파가 이는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던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마14:27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장차 있을 큰 심판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믿고 또 확고히 믿는 믿음의 교회, 안식이 있는 교회를 지어야합니다. 

470장 찬송 4절에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4절)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없겠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안심하십시오.  주님은 심판 대신 구원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믿으면 안심합니다.
믿으면 평안을 얻습니다.  교회는 큰 믿음, 안심을 주는 방주의 품이 되어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방주의 품이 되어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처가 되도록 믿음의 방주를 지어야합니다. 믿는 교회가 되게 해야합니다.  장차 오는 대 심판의 두려움에서 쉼을 얻는 교회, 안식의 품에 안긴 우리에게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방주의 품은
2.큰 사랑의 품

방주의 품은 큰 사랑의 품입니다.  거기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파트너들로 가득한 새생명의 세계였는데 그 새생명이 가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번식할 수 있는 생물들이 짝을 지어서 들어왔습니다.  이는 장차 이방인들도 주님의 품에 들어와서 안기고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번식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7: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짝을 지어서 들어오는 그들은 사도행전10장에서 베드로에게 보여졌던 보자기의 생물들 같이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신 이방인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다 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파트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세계를 열고 번식할 파트너들입니다.  교회는 이 파트너들을 갖고 있어야합니다.  교회에는 주님께서 용납하시는 번식의 짝들이 있어야합니다. 둘씩 둘씩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짝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한가지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이 다 받아들여졌던 것 같이 교회는 모두를 용납하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세상이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아니, 노아 홍수 때 죄악을 행한 사람들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부정한 것을 방주에 들여보내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죄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보면 우리의 큰 죄는 불신앙의 죄입니다. 믿지 않아서 심판을 받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비록 죄인이라도 주님의 품에 안아주시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방주의 품은 크고도 크신 사랑의 품입니다.  이 사랑의 품에 우리는 안겼고 이 사랑의 품에서 우리는 잘 믿는 사람이든지 처음 믿는 분이든지 거룩하게 사는 분이든지 아직도 죄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든지 함께 파트너가 되어서 주님의 부흥의 짝이 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제가 홍콩에서 사역을 할 때에 많이 들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재키 플린저라는 여성이었습니다. 현재 그녀는 세인트 스테판 소사이어티(St. Stephen's Society)라는 재활공동체를 통해 마약중독자들의 전인회복을 목표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재키 플린저는 22세의 나이로 외부 지원도 없이 무작정 홍콩으로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은 홍콩의 악명 높은 갱단원들과 마약 중독자 처럼 세상이 포기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재키 플린저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 가난 가장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사악한 사람들 중에 가장 사악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녀는 살인이나 강간 같은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인간적으로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는 전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십자가 안에서 함께 용납되어져서 품어지고 사랑받으면서 주님의 오른 손 왼 손들이 되어지는 곳입니다.  교회가 생육하고 번식하는 부흥의 짝, 파트너를 갖는 것은 이렇게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 정결한 사람, 부정한 사람, 둘 다 함께 포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의인과 죄인이 함께 주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의 짝이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부흥의 짝이 가득한 방주의 품, 교회는 비록 부득이 징계를 해도 서로 품어주는 가운데 부흥하는 품이어야합니다.  주님은 이런 사랑의 품에 놀라운 축복을 채워주십니다.  제키 플린저가 베트남 난민들 6000명이 홍콩에 있는 한 섬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을 홍콩 정부도 무조건 도울 수 업다고 해서 내 버려 두고 있을 때입니다. 재키 플린저는 그 들도 용납을 해야한다고 믿고 그들에게 사랑의 품을 열었습니다.  당시 그는 돈이 없었습니다. 함께 하고 있는 동역자들에게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재키는 믿었습니다.  주님 안에 난민들도 품어야한다, 라고 믿고 오렌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6000개의 오랜지를 매일 보내는데 신기하게도 주님의 공급이 계속되었습니다.  선교부의 재정이 바닥날 줄 알았는데 두 달 동안 계속 그들을 도울 물질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품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히 열리는 방주의 품입니다.  믿습니까.

이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의 품을 열고 의인이나 죄인이나 포용하는 이 사랑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이 땅에서 여는 방주의 품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가 생명인 주님의 품입니다. 이 생명력으로 충만한 방주의 품, 의인과 죄인이 함께 부흥의 짝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방주의 품은
3.큰 증거의 품

방주의 품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을 안는 품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큰 증거가 솟는 품입니다.  전도하고 싶고 선교하고 싶어지는 품입니다.  교회는 방주의 품 안에서 큰 증거를 가진 간증자가 됩니다.  그리고 큰 증거를 세상에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증거되는 곳입니다.  홍수가 세상을 씻을 때 방주는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방에 증거할 간증을 갖는 센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증인입니다.  방주의 품은 성령의 큰 구원역사를 증거하는 큰 증거의 품입니다.  우리는 큰 증거를 가지고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말하는데 시간을 보내야할까요?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 안심과 사랑의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교회는 이 증거를 가진 곳입니다. 

7: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7:11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7: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는 날, 이 예언은 또한 장차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의 사건을 예고하는 일이었습니다.  노아당시는 세상을 심판하는 홍수가 시작된 것이지만 마가다락방에서는 이제 성령의 큰 홍수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덮는 나라, 교회를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성령의 큰 역사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교회는 그 위에 떠서 다니며 세상은 성령의 홍수로 씻어지고 구원의 세계가 다시 열리는 일을 기도해야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씻습니다. 무엇을 씻으실까요.  우리의 불안을 씻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전해 주십니다.  또한 미움과 편견을 씻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닫힌 입, 봉한 입을 씻습니다. 그리고 열어주십니다. 증인으로 만드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씻는 가장 큰 죄는 여전히 불신앙과 미움입니다.  전도하지 못하게 입을 막는 두려움입니다.  성령께서 이것을 씻으시는 품이 방주의 품,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정결케 하시는 능력 외에는 이 모든 것을 씻고 안심과 사랑의 포용, 좋은 증인들이 되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구합시다.  성령이 크게 역사하시는 대부흥의 일을 기도합시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생육번식할 사랑의 짝으로 가득한 방주의 품을 가진 교회가 됩시다. 

이제 우리가 실천할 일이 있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 속에서 안절 부절 못하고 서로를 향해 긴장하고 미워한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번 신문에 보면 교계를 지도해온 유명한 목사님 세 분이 회개의 선언을 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중 김창인 목사님의 회개가 가장 귀해 보였습니다.  지난 날 그 분이 신사참배한 목사들이 시무하는 교회를 마귀당이라고 한 것을 회개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귀한 회개입니다.  저도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총신 장학금전달식에 갔습니다. 그 때 부산 수영로 교회의 정필도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셔요.  화를 내지 말아야한다, 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교회가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화를 내곤 했습니다.  앞으로 화를 내지 않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화를 낸 것으로 인해 회개도 합니다. 오직 거룩한 화만 낸다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될 수 있는대로 화를 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품 방주의 품을 갖기를 원합니다. 큰 그릇, 큰 심령의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딛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바로 이 마음입니다.  범사에 온유한 품, 이 품이 예수의 품이요 예수의 마음입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이 우리에게 큰 구원의 방주입니다.  예수의 마음에 안기고 예수의 마음을 품읍시다.  큰 안심을 주고 큰 사랑으로 관용하며 큰 증거의 영이신 성령의 솟아오르는 은혜가 충만한 심령, 방주의 품을 가집시다.  방주의 품, 예수님의 마음을 전도합시다. 예수님의 마음은 마치 사도 요한이 그 품에 의지하여서 주님의 사랑의 복음을 가까이 들었듯이 우리에게 지금도 열려져 있는  방주의 품입니다.

요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이제 예수님의 품을 품고 방주가 내 안에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노아시대의 방주를 찾고자 아라랏산을 꼭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말합시다.  방주의 품은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인 것을 증거합시다.  인생의 위대한 반전이 예수 십자가에서 이룬 것을 믿으면서 우리와 이웃을 품고 반전시켜주시며 방주같이 구원의 품이 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마음을 전합시다.  우리를 용납하시는 그 마음을 전합시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의 큰 방주의 품, 예수님의 안심과 사랑과 성령의 역사를 땅끝까지 전하시는 방주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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