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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는 대로 거둡니다 (창 29: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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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형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 에서는 분노했습니다. 동생 야곱이 자기가 받을 복을 속여 가로챘습니다. 에서는 동생을 죽여 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리브가는 당황했습니다. 리브가는 급히 자기 친정으로 아들 야곱을 피신시키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일 때, 사실 야곱은 겁이 났습니다. 때에 어머니 리브가가 나섰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알아도 벌은 자기가 받겠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다 어머니의 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어머니로서 책임이 무거웠습니다. 맏아들 에서의 분노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외삼촌의 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반드시 외삼촌의 딸과 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야곱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외삼촌 집에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외삼촌 라반이 물었습니다. “네가 내 골육이라고 해서 내 일을 거져 해서야 되겠느냐? 품삯을 얼마나 주면 좋겠느냐? 말 해 보아라.” 큰 딸은 레아였습니다. 작은 딸은 라헬이었습니다. 레아는 부드러운 눈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라헬은 몸매도 아름다웠고 용모도 예뻐서 야곱은 라헬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 드릴 테니 작은 딸을 아내로 달라고 했습니다. 라반은 “다른 사람에게 주느니 보다 너에게 주는 편이 낫겠다.” 하면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야곱은 장가들 생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7년이라는 세월도 며칠 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냈습니다. 그만큼 그는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외삼촌에게 기한이 다 찼으니 라헬을 아내로 맞아 결혼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동리 사람들을 청해놓고 결혼식 잔치를 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라반은 큰 딸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다 주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야곱이 눈을 떠 보니 어이없게도 그것은 레아였습니다. 너무 실망했습니다. 7년을 머슴살이 했습니다. 그는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외삼촌에게 항의했습니다. “외삼촌이 저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저는 라헬에게 장가들려고 7년을 머슴살이 한 것 아닙니까? 왜 저를 속이시는 겁니까?” 그 때 라반은 “우리 고장에서는 작은 딸을 큰 딸보다 먼저 시집  보내는 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7년간 일을 해 주면 라헬을 주겠다”고 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또다시 7년을 머슴살이 했습니다. 그제야 라반은 야곱에게 딸 라헬을 주었습니다. 야곱은 첫째 부인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야곱의 역사는 파란만장합니다. 저도 오늘 “심는 대로 거둡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야곱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야곱을 위대한 족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말썽이었습니다. 야곱의 어머니는 “내가 이래서야 어떻게 살 수 있겠나?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번번이 형과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뺏기도 했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납니다.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선을 뿌리면 선한 열매를 거둡니다. 악한 것을 뿌리면 벌을 받습니다. 성경에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사실 성경 전부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율법의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나라가 편안하고 복을 받았습니다. 대신 우상숭배를 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 엄청난 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상이 다릅니다.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남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남의 손가락질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되지요. 사람은 당장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내일을 위해 한 장의 인격의 벽돌을 쌓아가야 합니다. 남이야 고통을 당하든 말든 상관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더불어 살자고 합니다.

1985년에 “우리는 하나 We are the World”라는 곡이 세계적으로 유행 했습니다. 세계적인 작곡자가 곡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인 가수들이 한마디씩 노래를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돌아보자는 취지의 음반이었습니다. 이는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피부 색깔, 인종, 종교를 뛰어 넘어 서로 사랑하고 돕고 이해하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는 한 달에 미국 돈 1불 우리나라 돈 1,200원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되시지요. 우리 조금씩 아끼면 그들도 더불어 살 수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진 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100만 명이 넘습니다. 그 중에 상당수는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꿈을 가지고 돈 벌기 위해 왔습니다. 의료보험 혜택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인격적인 모욕을 받습니다. 품삯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우리 이러면 복 못 받습니다. 그들에게 임금을 착취하면 하나님이 섭섭해 하십니다.

우리는 야곱을 잘 봅니다. 야곱은 형님을 속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아주 간사했습니다. 우리는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남의 가습에 상처를 주면 안 됩니다. 어느 글을 읽었습니다. “결혼은 밑지는 것, 결혼은 미친 짓”이라 했습니다. 자꾸 가정들이 삐걱거립니다. 잡음이 들립니다. 조금씩 우리도 말을 아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하라, 도우라, 격려하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한 때 어느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내용 다 묻지 말고 말 그대로는 정말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형제입니다. 자매입니다. 가족입니다. 그런데도 남처럼 대합니다.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은 형을 남처럼 대한 것입니다. 형제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성경에 형제(이웃)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 최고라 했습니다. 목숨까지는 너무 멉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힘을 얻습니다. 사랑의 눈빛에도 감동받습니다. 몇 푼의 돈에도 가슴이 뜨겁습니다. 야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계획적으로 골탕 먹였습니다. 계획적으로 형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야곱적인 성격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정말 간사했습니다. 그는 쌍둥이였습니다. 쌍둥이는 어쩌면 한 몸입니다. 쌍둥이는 아플 때도 같이 아프답니다. 하나가 배탈이 나면 다른 한 사람이 배탈이 난다지요. 그것은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그런 특별한, 아주 특별한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형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야곱의 속뜻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내가 비록 동생이지만 형만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이 행복하면 동생도 행복합니다. 동생이 잘 되면 형은 덩달아 좋습니다. 이것이 형제사이입니다. 이것이 쌍둥이 사이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형 에서는 다 뺏긴 것입니다. 억울하지요. 분하지요. 동생을 죽이고 싶은 것은 이 경우에 너무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사랑은 주고받음입니다. 사랑은 순수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고 합니다. 다 좋아 보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사이는 아주 좋은 사이여야 합니다. 형이 더 잘 되어야 합니다. 아우가 더 행복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광고 중에 “형이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이북과 우리나라 6자 회담이 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전기 200만 Kw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프는 6자회담은 성과가 없을 것이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부시 미 행정부) 북한에 속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되기만을 바랍니다.

Ⅱ. 심는 대로 거둡니다.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가짐이 발라야 합니다. 야곱은 오직 축복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뿌린 대로 거두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7년을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었습니다. 라헬과 결혼한다는 희망으로 살 것입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라헬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라헬을 보기만 하면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러기에 7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그는 외삼촌에게 “이제 라헬을 제 아내로 주십시오.” 했습니다. 동리 어른들을 모셨습니다. 부잣집 잔치여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풍속이 어떠했는지 잘 모릅니다. 얼굴을 가렸겠지요.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아내였으리라 믿었던 라헬이 아니었습니다. 그 언니 레아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속인 것입니다. 억울하지요. 섭섭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분했습니다. “이렇게 나를 속일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외삼촌입니다. 그것도 7년을 머슴살이 했습니다. 한 푼의 품삯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라헬만 자기 색시만 된다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지금 그런 남자가 있을까요. 이 약점을 안 외삼촌 라반은 이용한 것입니다. 레아를 들여보내고도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자초지종을 조카인 야곱에게 말을 했어야지요. 양해를 구했어야지요. 그 지방 풍속이 그러면 처음부터 첫째가 결혼을 그 때까지 못하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했어야지요. 그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속임수 결혼식을 한 것입니다. 라헬이라 하고 레아를 첫날밤에 넣은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야곱은 속상해도 또 7년을 머슴살이를 한 것입니다. 라반은 신사적인 사람이 못 됩니다. 조카의 약점을 십분 이용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이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입니다. 저가 어렸을 때 먼 일족인 신앙 좋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목사님이십니다. 그 어머니 되시는 분이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집은 생활형편이 넉넉했습니다. 그 며느리인 집사님은 시 어머니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소 먹이러 산으로 보냅니다. 소꼴을 뜯어 오라합니다. 밭 메라 별의 별 일을 다 시킵니다. 물론 집안 살림인 빨래, 설거지 다 시킵니다. 그러면서 밥은 언제나 밀밥, 보리밥, 쌀이 드문드문 보이는 나물 넣은 갱죽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 자부 집사님이 교회에서는 기도, 봉사가 으뜸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시어머니가 그의 시어머니를 너무 섭섭하게 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말씀이 꼭 자기 한 대로 보응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둡니다.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둡니다.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열립니다. 미움을 심으면 미움이 돌아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식들에게 존경 받습니다. 부모에게 잘 못하면 자식들에게 꼭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올곧아야 합니다. 속임수를 쓰면 자기도 속습니다. 늘 우리는 남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됩니다. 진리 문제 아니거든 너그러운 사람 되세요. 양보하세요.

야곱, 그리 먼 훗날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외삼촌에게 당하는 것 보십시오. 제가 부산중앙교회에 있을 때, 저는 9층에 살았습니다. 15층 90평에 사시는 부산지방법원 부원장이 사셨습니다. 그 분이 대구서문교회가 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섬기는 교회 나오셨습니다.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어디 가실 때는 저희 집에 열쇠를 맡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어머니는 대신동에서 큰 부자였습니다. 왜정시대나 해방 후에 가난 할 때 걸인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장로님이 대문을 닫지 않았답니다. 걸인들 위해 밥을 따로 한 솥을 더했답니다. 그러니 그 자식들이 다 잘 되고 형제간의 우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두어 달 전이었습니다. 후배 목사님이 자기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신실한 장로님이 사업을 한답니다. 캐나다에서 한 10년 사셨답니다. 신발 깔창을 파는데 허리 아픈 데, 다리, 디스크 등에 백발백중이랍니다. 그가 직접 전화해서 그 분이 오셨어요. 발을 잉크로 찍고 값은 33만원이랍니다. 또 아들 내외 것도 해 주었습니다. 딸 내외 것도 주문하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직접 만든 것도 아닙니다. 상, 중, 하 사이즈를 가지고 주는데 12,000원에 수입해서 33만원에 의사와 짜고 팔아 이득을 130억 챙긴 것입니다. 하다못해 목사에게 까지 이런 속임수를 쓰니... 우리는 야곱이 외삼촌에게 당한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가 속였으니 그도 속는 것입니다. 그가 형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으니 그도 속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화목해야 합니다. 형에게 줄 것이 있으면 양보도 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는 형을 이상한 방법으로 속인 것입니다. 그는 어쩌면 한 몸과 같습니다. 형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손해 봐야지요. 형의 잘 됨을 박수 쳐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엉뚱한 꾀를 부렸습니다. 앞으로 야곱은 이 보다 몇 100배 보응을 받습니다. 그 때는 달고 시원했을지 모릅니다. 그는 수십 년을 아들들에게 속았습니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그것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남을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돌아옵니다. 남의 마음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내 가슴에 대못으로 찔리는 이상의 고통이 옵니다. 정직하게 삽시다. 선하게 삽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주면서 삽시다. 우리의 내일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제 버릇 개주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은 이러고도 외삼촌에게 승부를 던집니다. 우리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7.24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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