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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브로 전도여행 (행 1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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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겸손'이란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앤드류 머레이>의 글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박식한 소경은 빛에 관한 모든 과학적 사실을 책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빛이 무엇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어린아이가 소경 학자보다 빛을 더 잘 안다.
학자는 전부 생각으로 알지만 아이는 실체를 보고 누려서 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도 이와 같습니다.
특히 오늘 부터는 바울의 전도여행이 시작되는데
본문말씀을 바울의 전도여행 기행문 정도로 보는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손길을 보는 성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구브로에 들어가 전도했다
이고니온에 들어가 전도했다는 것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브로 전도를 통해 나타난 성령의 역사
이고니온 전도를 통해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13장에 오면 복음 사역의 중심지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베드로의 활동은 숨겨지고
안디옥에서 파송된 바나바와 바울의 활동무대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의 지시가 내려진 것입니다.
선교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은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고
이제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은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살펴봄으로
선교를 통한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
4절에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로 갔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최초의 선교사의 사역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여줍니다. <2>
선교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에게 선교사로 가라 하신분도 성령님이요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 하신 분도 성령님이요
바나바와 사울에게 구브로로 가서 전도하라고 하신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선교를 한다는 시작은 같은데
그 과정에서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를 위하여 더 기도하고
선교 현장에서 우리 선교사님들이
성령의 음성에 더 민감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를 잘 섬기다가
성령의 지시로 선교사로 보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나바와 사울에게만 성령의 지시가 있었는 것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도 성령의 지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사명 주셨다고 혼자 선교사로 가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모든 지체들로부터
[ 저 사람은 선교사로 가도 된다 ]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선교사들이
[ 나 선교사로 가서 알아서 할테니 교회는 지원만 해 달라 ] 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본 교회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선교지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로 갈려고 하면
본 교회에서 기도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전도도 잘 하는 사람 보내야
선교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바나바와 사울이 첫 선교지로 구브로를 택한 것은
선교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바나바와 사울은 1차 선교지로 구브로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령의 지시로 구브로로 가게 되었지마는
결코 바나바와는 무관한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브로 출신의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먼저 사도들로부터 인정받게 하고
그리고 안디옥 교회로 파송을 받아 역시 그곳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고 그리고 구브로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구브로 전도를 살펴보면
1)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2) 살라미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3>
3) 요한을 데리고 갔습니다.
요한은 골4:10절에 보면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그러니 고향이 같겠지요
우리는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선교전략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선교는 혼자 독불장군 식으로 난생 처음 낮선 곳에 가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한국 선교사들이 실패를 하는 것은
대책 없이 선교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한다면
바나바와 사울이 1차 선교지를 구브로로 정하고 떠난 것은
선교사들의 실패 원인이 되고 있는
1) 타문화권 이해와 적응 2) 팀사역
선교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바자바와 사울의 처음 선교지, 구브로는 어떤 곳입니까?
3. 당시 구브로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6-7절)
구브로란 현재의 키프러스 섬을 말합니다.
행13장에 보면 이 섬의 상황은
유대인의 회당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지마는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예수>라는 무당이
총독 서기오의 관저에서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며
사탄의 세력이 그 섬을 장악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전도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본래 안디옥 교회가 세워질 때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주 예수를 전파하여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구브로에서
그래도 바나바와 같은 신앙의 인물이 나왔다는 것
이것은 바로 구브로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며
하나님이 구브로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브로 출신 바나바를 구브로에 보내게 되었고
어두움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구브로를 향해
바나바를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혹 우리들 가운데 유독히 미신을 섬기는 마을, 혹은 가문 출신의 교인들 있지요.
그 가운데 나를 먼저 구원해 주신 것은
나를 통해 마을을 복음화 하고 가족을 복음화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브로뿐만이 아니라 <4>
이 세상은 사탄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세요. 어느 분야든지 들추어내어 보세요.
부정 부패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썩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은 오늘 교회로 하여금
나아가라고 합니다. 부딪히라고 합니다.
어떻게 나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부딪힐 수 있습니까?
대기업이라고, 일류대학이라고, 벤처 사업이라고
마냥 좋아만 해서는 안됩니다.
단단히 훈련되어져야 그 곳에서 신앙인으로써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 직장 들어가기 전에
사업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신앙훈련 받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2) 지금도 어느 마을에 교회를 세운다든지 또는 선교지에 가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이 무당신앙 즉 토속신앙입니다.
그 지역의 전통적인 종교를 만나게 됩니다.
한번 보세요, 무속신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땅에 불교가 들어와 무속신앙에 다 잡아 먹혀버렸습니다.
삼신 할매한테 아들 점지해 달라고 빌던 무속 신앙이
이제 부처 앞에 엎드려 빕니다.
불교에서도 부처 앞에 빌면 우상이라고 합니다.
유교 보세요 무속 신앙에 다 잡아 먹혀버렸습니다.
천주교 보세요 조상께 제사 지내는 것은 미풍 양식이라고 하며
무속 신앙 앞에 다 잡하 먹혀버렸습니다.
우리 기독교 역시 무속 신앙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그래서 한국 기독교의 자성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기복 신앙 아닙니까?
우리는 복음으로 무속신앙을 물리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바나바와 바울이 어떻게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총독 서기오에게 복음을 믿게 했습니까?
즉 어떻게 마귀적인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구브로 섬에 도착한 바울이 그곳에서 어떻게 사탄의 세력에 대처를 합니까?

바나바와 바울은 그 곳 섬 가운데로 지나면서 바보란 곳에 이르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그 지역 총독으로 있는 서기오 바울을 만나
주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서기오 총독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는 그들을 불러 더 자세한 진리를 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기오 총독으로 복음을 따르지 못하도록 사탄의 역사가 따릅니다.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가 <5>
이 서기오 총독과 함께 있으면서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면서 훼방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여 보고 꾸짖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탄을 세력을 꺾는 방법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탄의 세력 즉 귀신을 쫓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먼저 남의 속에 있는 사탄의 세력보다
내 속에 있는 사탄의 세력을 먼저 물리칠 줄 알아야합니다.
어쩌면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내 안에서도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으려고 하면 내 속에서
때로는 가정에서 난리를 치는 영이 있습니다.
기도해야 되겠다 싶어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가려고 하면
난리를 부리는 영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별나게 믿어야 하나
별난 교인 치고 문제 안 일어키는 교인 없더라 하고
욕하고 방해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 막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9절에 [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
1)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귀신이 꿈쩍도 안합니다.
[ 너나 잘 믿어라 ] 고 합니다.
그러니 귀신을 쫓으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귀신을 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귀신이 되려 무섭습니다.
먼저 나 자신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은]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 지면 떠나갈 줄 믿습니다.

2) 주목해야 합니다.
똑 바로 주시해야 합니다.
복싱 선수나 격투기 선수들이 링 위에 올라가면
벌써 눈 부릅뜨고 상대방을 쳐다보면 판가름이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귀신들의 장난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충 하고 넘어 가버리려고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귀신을
예수 믿는데 방해하려고 하는 마귀적인 방해를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자로 직시하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축복하고 기복하고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꾸짖었습니다. <6>
가로되 10절에
[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거치지 아니하겠느냐? ]
우리는 행3장에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배웠습니다.
이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꾸짖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사울의 이름이 바울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9절 말씀을 보면 [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 라고 했습니다.
사울이란 이름은
그가 유대인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 이 이름을 사용하였고
바울이란 이름은 라틴어로 '작다'란 뜻으로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면서 부쳐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울이란 이름은 유대인 사회에서 기독교의 핍박자로 잘 알려졌던 이름이요 그가 본격적인 복음 사역에 나서면서 이 이름을 버리고
바울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크자 사울이 작은 자 바울로 변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과 영성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약함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과 영성은 역설적입니다.
약할 때 강하고,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과 영성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문제 중의 하나는 너무 강하고 너무 지혜로워진 것입니다.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당시 은혜 받았다고 하며 파당을 짓소
은사 받았다고 자고하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고전3:5절에
[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
원문으로 말하면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며 바울은 무슨 물건인냐?
다음 7절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 아무 물건도 아니라 ] 는 멸시적인 말까지 썼습니다.
영어로는 nothing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고후11:30절과 12:9절에서는
[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 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존 스타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7>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복음과 영성의 또 하나는 특성은 착함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행10:38절에 [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제자들더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마5:16절에 [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행12장 까지는
베드로의 설교와 행적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 것을 기록하지만
사실 그 길을 미리 예비한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착한 삶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행9장의 도르가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이미 복음 전파의 준비가 욥바에 마련되었고
행10장의 고넬료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이미 복음 전파의 준비가 가이사랴에 마련되었습니다.
도르가의 착한 행실과 고넬료의 착한 행실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제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행11:24절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전에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11년 연속 세계 최고 부자의 신화를 지켜오는 빌 게이트
그에 관한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세계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진실 즉 착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리안이라는 미국계 중국 광고대행업체가 있는데
중국의 고위직 간부를 채용하기로 했는데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샤오장이라는 청년이 2차 시험까지 합격하여
광고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베커 이사장과 면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면접 시험장에 들어간 샤오장에게 베커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 당신이군요 이런 자리에서 만나다니 한 동안 찾았습니다. ]
그리고 주위 면접관들을 돌아 보면서
[ 여러분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이 젊은이가 바로 저번에 제 딸을 구해준 사람이랍니다 ]
그리고 샤오장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8>
[ 저번에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딸을 살피느니라고 정신이 없어 인사를 못드렸습니다.
저를 기억하시죠 쿤밍호 공원에서 말이요
그때 내가 당신의 얼굴에 있는 큰점을 똑똑히 기억하지요 ]
그러나 샤오장은
[ 베커씨,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전 따님을 구해준 적이 없습니다 ]
그러니 베커씨가 하는 말이
[ Well done ~! 하면서
젊은이 자네의 솔직함이 마음에 드네. 면접은 여기 까지야] 하더랍니다. Well done~! 많이 들어본 말이지요
마25장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님이 하신 말이지요

제가 기독교 복음과 영성의 특징인 약함과 착함을 강조하는 것은
바나바와 바울이 구브로에서 사탄의 세력을 장악한 것은
단순한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바울의 약함과 바나바의 착함이 받쳐주는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엘루마 바예수를 꾸짖어면서 하는 말 가운데 보면
11절에
[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합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란 말
주의 손이 바예수를 소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똑 같은 주의 손인데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표적을 나타내며
어떤 경우에는 소위 손을 보는 심판의 손으로 나타납니까?
그것은
복음을 믿고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주의 손은 역사하는 손이요 축복하는 손이지만
복음을 거역하고 복음을 방해할 때
심판의 손으로 나타남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김 성 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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