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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결국은 (살전 1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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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3절에 “일의 결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결국”이라는 말은 ‘결론’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끝에 와서 ‘내가 하는 이야기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십시오. 이것이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많은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자신의 경우를 실례로 들었습니다.

이 “결국”이라는 말은 구약셩경의 원어는 히브리말로는 ‘오티’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말이 큰 글씨체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 다음에 오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알기 쉬운 말로 번역된 성경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전도서」라는 제목을 「솔로몬의 인생론」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제목을 기초로 한다면 솔로몬은 ‘인생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나는 지금까지 많은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결론은 하나님 잘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 “결국”이라는 말이 여러 군데에 나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인데 여기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렇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믿음의 결론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결론은 다른 것 아닙니다. 영혼의 구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우리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천국이 예약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천국과 연결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천국이 예약되지 않은 사람들, 천국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에 관련된 그 밖의 것들은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의 결국, 믿음의 결국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교회의 결국은 무엇인가?’ 이 점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결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의 결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의 결국은, 전도입니다!
교회의 결국, 교회의 결론이 전도라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전도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도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는, 그리고 모든 교회들은 예수님이 세우셨는데 예수님은 왜 교회를 세우셨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라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줄이면 ‘전도해라!’ 이렇게 됩니다.
예수님은 ‘전도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하기 힘들 터이니 여럿이서 함께 해라! 그러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면서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셨습니다.

은행이나 기업은 본사가 있고 여러 곳에 지점들이 있습니다.
지점들은 왜 세웁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것은 이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지점입니다. 교회도 이익을 많이 내야합니다.
교회가 이익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헌금을 많이 거두어들인다는 뜻입니까?
전도에 힘써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많이 생기게 하는 것, 이것이 교회가 이익을 많이 내는 것입니다.
은행이나 기업의 지점들이 고객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우리는 전도를 열심히 해서 천국의 고객들, 천국의 시민들이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천국의 목양지점은 전도 열심히 해서 이익을 많이 내는 우수지점으로 소문나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 받게 하는 것,’ 이것을 두 글자로 말하면 바로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 승천하시면서 자기가 하던 일이 이 땅에서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일을 힘써 계속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이와 같이 전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결국은 전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결국은 전도라는데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시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이 신앙공동체 목양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까?

교회의 결국은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첫째, 전도중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고대세계에 로마가 세계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바울 서신 가운데 로마서가 가장 중요한 편지 성경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럿이지만 모든 길이 통하는 곳에 세워진 교회에 보낸 편지라는 점을 빼놓을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든 것은 무엇으로 통해야 합니까?
교회의 모든 것은 전도로 통해야 합니다!
교회는 전도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요즘 기독언론 매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교계 신문이나 팸플릿은 목양 카페 앞 신문꽂이에 빠짐없이 꽂아놓고 잡지들은 교육관 3층 도서실에 비치해 놓고 있습니다.
또 전파 매체들도 많고 요즘은 인터넷이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 매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언론 매체들은 한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글 한 줄, 말 한 마디가 모두 선교의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효과라는 원칙 밑에 지면을 구성하고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정적인 면들을 무분별하게 폭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삼가야합니다.
예전에는 이 원칙이 어느 정도 준수되었습니다.
지금도 양심적이고 우수한 매체들은 이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매체의 경우 이 원칙이 실종되어 버린 것이, 특히 인터넷 매체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도 ‘이 일이 전도에 얼마나 효과가 있나?‘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은 전도에 있습니다. 
전도 열심히 하는 교회는 펄펄 살아 뛰는 교회이고,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어가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신앙고백 여섯 번째 조항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여기 “전도와 선교”라는 말이 나오는데 전도와 선교는 어떻게 다릅니까?
여기에 대해서 ‘전도는 국내에서 하는 것이고 선교는 해외에서 하는 것이다,’ ‘전도는 개인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선교는 사회구원을 포함한다,’ 이렇게들 말합니다.
‘전도’라는 말은 ‘좁은 의미의 전도’이고 ‘선교’는 ‘넓은 의미의 전도’입니다.
전도도 전도이고 선교도 전도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교회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바로 전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얼마 전까지 300만 총력전도운동을 펼쳤습니다.
저희 교회 교육관 입구 오른쪽 벽에는 ‘감리교회 300만 총력전도운동 경기연회 용인서지방 목양교회 본부’라는 아크릴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그 분이 하던 일도 흐지부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감독회장님이 바뀌면서 300만 총력전도운동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해서 참 안타까웠는데 다행히 경기연회에서는 이 일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연회본부 안에 운동본부 사무실을 마련하고 두 주일 전에 현판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운동은 감리교의 신앙고백에 충실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연회의 국내외선교분과위원장이라는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경기연회의 300만 총력전도운동은 본부장이 따로 있고 실무책임자도 있지만 넓게는 제 책임 밑에서 진행됩니다.
이 말씀을 왜 드립니까?
목양교회가 이 전도운동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감리회 신앙고백에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에베소서 4장 12절에 나오는 말인데  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심장입니다.
죽어가는 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의사들이 먼저 하는 것은 심장이 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심장을 마사지 하고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전도는 교회의 심장입니다.

요즘 목양교회가 전도중심적인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어제 얼마나 더웠습니까?
그 무더위 속에서도 전도 팀들이 변함없이 맡은 전도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수지 한 복판, 풍덕 초등학교 앞에 좋은 체육공원이 생겼습니다.
거의 완공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운동할 곳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분당 중앙공원 부럽지 않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지의 집값 올라가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들은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전도하기 좋은 곳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수지에 살고 있지만 그쪽으로 갈 기회는 별로 없어서 그 체육공원이 완공단계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전도 팀들이 전도 나갔다가 돌아와서 체육공원이 거의 완공되었는데 빨리 체육공원 전도 팀을 조직해서 우리가 먼저 가서 전도해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야 알았습니다.
어제 일부러 가보았더니 정말 잘 만들어졌습니다.
관리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28일, 다음 주 목요일입니다. 이 날 문을 연다고 합니다.
테니스 코트, 족구장, 육상경기장, 여러 운동시설들이 있는데 인조잔디를 깐 축구장이 있더군요.
‘오, 이것은 목양축구선교단을 위해 만들었구나!‘ 했지요.
그리고 ‘내년 목양 한마음 체육대회는 이 체육공원에 와서 하면 되겠구나!’ 했습니다.
전도집회 하기에 좋은 시설도 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 지난 주일 저녁에 분당중앙공원에서 있었던 청소년전도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는데 이제는 수지에서도 그런 집회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 몇 해 전에 풍덕천 상가 앞에 있는 조그만 공원에서 마데테스 발표회를 가진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체육공원에서 규모가 큰 전도집회를 가져 보세요.

이 교회가 더욱 더, 전도중심적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교회의 결국은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둘째, 안타까운 음성을 듣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먼저 사람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 28~30)

하며 부르십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 사람들에게 주님 앞으로 나가라고 주님을 가리켜야 합니다.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이끌고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찬송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사람들을 부르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목소리를 합해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합창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 8a)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9: 37b~38)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추수할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또,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 35b)

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낫을 들고 전도의 밭으로 나가야합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또 하나의 음성은 그리스도를 모르고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탄식소리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입니다.
심프손이라는 사람이  “선교의 부르짖음“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 시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제1연, 시작 부분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와 허물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네
한 줄기 빛도, 희망도 없이 끝없는 밤처럼 내세의 어둠과 함께
자신들의 운명대로 스러져 가네

끝 부분, 마지막 연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만의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와 허물 속에서 떠나갑니다. 무섭게 떠나갑니다.
오, 그리스도의 증거자들이여 우리가 저들을 구하지 않는다면
두려운 심판 날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요

이 시를 쓴 시인은 그리스도를 모르고 탄식하며 신음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개의 귀를 주셨습니다.
한쪽 귀로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을 듣고, 한쪽 귀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신음과 탄식소리를 듣는다면 우리의 입에서는 주님을 전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전도에 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교회의 결국은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셋째, 전도의 실천에 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전도는 실천입니다.
지난 4월에 전도를 주제로 한 부흥회를 했는데 강사가 빌 이 말, ‘전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전도는 실천입니다’ 하면서 하루 오후는 전도 실습을 하도록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프레드릭 H. 오토라는 사람이 미국 교회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적을 둔 100명의 교인 가운데에서 5명은 행방불명이고 20명은 전혀 기도하지 않고 25명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30명은 전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40명은 헌금하지 않고 50명은 교회학교에 출석하지 않고 60명은 밤 집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는다. 
70명은 해외선교를 위해 아무 것도 바치지 않고  75명은 교회에 대한 봉사를  전혀 하지 않고 80명은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고  90명은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100명 중에서  95명은 한평생 한 사람도 전도하지 않는다.

무슨 근거로 이와 같은 통계를 제시하고 있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우리에게 교훈과 자극을 주는 수치입니다.
이 말 듣고 여러분, 혹시 뜨끔하시지 않습니까?

한 평생 한 사람도 전도하지 않는다는 95명, 그 분들도 전도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다만 실천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백 명 중의 다섯 명의 성도, 제일 차원이 높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 반열에 드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월요일에 쉬고 화요일에 그 주간의 목회를 시작합니다.
저는 화요일에는 새벽기도회가 끝난 다음에 바로 일과를 시작해서 먼저 한 주간의 결재를 합니다.
결재를 할 때 이런 순서로 합니다. 먼저, 출석통계, 그 다음에 재정, 그 다음에 교역자와 직원들의 일일 근무일지(목양일지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에 당직일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일낮예배 결석자 명단을 결재했습니다.
심방전도사님들이 주일낮예배 때 문앞에서 성도들을 영접하면서 나오시는 분, 안 나오시는 분 확인을 합니다. 소리 내지 않고 출석을 부릅니다.
안 나오신 성도들은 왜 안 나오셨나, 사유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저도 강대상에서 내려다보며 부지런히 확인을 합니다.
이 대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제게는 조금 불편해진 것이 하나 있는데 교회당이 너무 넓어져서 결석한 성도를 확인하기가 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안심하지는 마세요. 곧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해 낼 것입니다.
전도사님들이 작성한 주일낮예배 결석자 명단을 보면서 ‘이런 사유 때문에 못 나왔구나, 이 분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다’ 표시, ‘이 분은 심방을 해야 하겠다’ 표시합니다.
때때로 ‘어, 이 분은 나오신 것 같은데 전도사님이 잘못 파악하신 것 같네’ 물음표를 합니다.
얼마 전부터 결재 순서를 바꿨습니다.
제일 나중에 하던 주일낮예배 결석자 명단을 제일 먼저 하고 있습니다.
화요일 아침에 결재를 하려면 두 시간 가까이 도장을 백 번 가까이 찍어야 하는데, 끝에 가서는 집중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집중력이 제일 강할 때 성도들의 형편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행정하기 위한 곳이 아니고 성도들을 보살피기 위한 곳이다.’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까 100명 중의 30명은 전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저희 교회는 장기 결석자 비율은 17.8%니까 이것보다는 낮습니다.
그래도 이런 노력을 통해서 그 숫자가 더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주일 오후에 주보와 신문, 전도지를 들고 고기동 올라가는 길 좌우에 있는 조그만 빌라 단지에 가서, 기도하면서 우편함에 꽂아놓고 돌아오곤 합니다.
두어 해 전에는 그 지역에 전원주택도 여러 채 생겨서 거기에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모두 백 가구 가까이 됩니다. 그렇게 하고 돌아오면 흐뭇합니다.
‘그거 누가 읽겠나?’ ‘무슨 유익이 있겠나?’ 하실 것입니다. 
한 동안은 매주일 나갔는데 그래도 그 다음에 가보면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최소한 ‘목양교회’라는 교회 이름은 읽었을 것이고 ‘목양교회에서 다녀갔구나’ 하는 것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즉석효과를 바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전한 전도지가 아지 못하는 사이에 그 분의 마음속에 인식되고, 언제인가는 ‘아, 그 때 거기에 그런 말이 있었지!’ 섬광처럼 빛을 내는 일이 많습니다.
이 자리에 토월약수터에서 전도 팀이 전한 전도지 받고 이 교회에 출석하게 된 분이 여럿 계십니다.
얼마동안 나가지 못했는데 오늘 덥고, 오후에 여러 바쁜 일정이 있지만 전도에 대한 설교를 했으니 나부터 실천에 옮기기 위해 나가려고 합니다.
요즘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출입통제가 엄하고 카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서 전도하기 쉽지 않은데 그곳은 그런 제약이 전혀 없어서 푸근하게 느껴집니다.

대학 교수로 수고하는 장로님을 한 분 알고 있습니다.
구비문학 교수인데  저희 교회 여선교대회에 와서 강연을 한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이 ‘전도는 실천이다’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실천할까?’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좋은 방도가 떠올랐습니다.
연초가 되면 제자들이 세배를 하러옵니다.  세배를 받으면 덕담을 하지 않습니까?
‘올해도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게’ ‘자네 올해 졸업인가? 좋은 취직자리가 나오기 바라네’이렇게 덕담을 하는데 이 분은 그것을 바꿨습니다.
세배를 받으면 ‘자네 예수 믿나?’ 이렇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다고 하면 ‘예수 믿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사실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은 덕담 가운데 덕담입니다.
이 분, 올해 정년퇴임을 하는데 그런 소리를 할 기회가 적어진 것을 제일 아쉬워할 것입니다.

길고 복잡한 논문을 읽을 때 결론만 읽으면 그 논문의 내용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됩니다.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알고 싶으면 그 교회가 얼마나 전도 열심히 하나 그것을 보면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5절에서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라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자의 일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어  8절에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상급이 가장 큰 일입니다.
그래서 평생 전도에 힘쓴 바울은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전도는 상급이 가장 큰 일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칠칠 전도상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성지순례도 큰 상급입니다.
성지순례는 아는 사람들끼리, 같은 교회 교인들끼리 하면 더욱 은혜롭습니다.
지난번에 3남선교회가 그렇게 했는데 참 좋았다는 이여기를 여러 분에게서 들었습니다.
마흔아홉 명 전도한 분들이 많아져서 그런 분들이 단체가 되어 성지순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상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더욱 큰 상급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상급의 반대는 벌급(罰給) 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도하지 않은 벌급이 가장 큽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오는데 전도하지 않은 성도, 전도하지 않은 교회는 염소 가운데서도 왕염소 취급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교회의 결국은 전도입니다.
교회의 결국, 교회의 결론에 충실한 교회는, 전도에 힘쓰는 교회는 본질에 충실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전도중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부르는 주님의 음성, 그리고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탄식 소리를 듣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전도의 실천에 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교회를 이루는데 앞장 서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 관 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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