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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눔운동 (행 4: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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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행전4:32-37.

어떤 사람은 평생을 받기만 하며 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주기도 하면서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늘 주면서 삽니다. 성경에도 세 종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에로스입니다. 주지는 않고 받으려고만 하거나, 요구하고 탈취하는, 즉 자기만을 위한 사랑을 말합니다.

둘째는 필로스입니다. ‘서로 섬기라. 서로 짐을 져줘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용서하라.’ 성경은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사랑을 중요시합니다. 우리 인간사회에는 반드시 주고받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는 좋은 의도와 열정으로 친절한 미소로 헌신과 봉사를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도 한 쪽에서만 계속 주다보면 주는 사람이 피곤해 집니다. 가족 안에서도 받는 것 없이 일방적인 사랑을 계속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을 주던 쪽이 지쳐서 ‘아, 나도 이제 모르겠다’ 하고 사랑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사랑 없는 냉랭한 분위기가 되어버립니다. 혹시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면, 필시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계속 사랑을 주다가 지쳐 포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받으면 반드시 줘야 합니다. 사랑은 주고받을 때 서로 격려가 되어 유지되지, 그렇지 않다면 곤란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었지요. “천국에 가니 긴 젓가락을 주더랍니다. 긴 젓가락을 가지고 어떻게 먹나 했더니 그걸 가지고 서로 음식을 먹여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들이 다 훤하더랍니다. 반면 지옥에 가니 긴 젓가락으로 자신만 먹으려고 애쓰다가 먹지 못하여 모두 삐쩍 말랐더랍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필로스입니다.

셋째는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처럼 계속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므로 250만 종이나 되는 생물뿐 아니라, 하늘과 바다와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심지어 자는 중에도 건강과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이렇게 계속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도 세 가지 사랑의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주는데 익숙해서 언제나 주려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번 주었으면 받기를 기다리다가 받아내는, 즉 주고받는 형이 있으며, 아예 줄 줄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있어 자신만 돌보고 남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중심적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주는 훈련’이 잘 되어 일평생 주면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도와줘야 합니다. 지금까지 식량, 비료, 약품 등 각종 물품을 보내주었고, 최근에 정부는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필요합니다. 유명한 고려호텔도 전기부족으로 불이 나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평양의 광복거리에는 수십 층짜리 큰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전기부족으로 엘리베이터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합니다. 38층에 사는 사람은 전기가 나가면 어떡해야 할까요?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제 동생이 18층에 살기 때문에 저도 한번 걸어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곳을 매번 오르내려야만 했던 동생은 이젠 무릎이 망가져 움직이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한답니다. 이런 북한을 우리 대한민국이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바랍니다. 계속 주지 않으면 또다시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을 지도 모릅니다. 지난번에 300만 명이나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에 줄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분이 매주 성미주머니에 담아온 쌀을 모아 필요한 가정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만 해도 약 90가정이 성미가 필요하고, 각 교구별로 요청이 더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8자루씩 모이다가 요즘은 줄어들고 있답니다. 성미 내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가져오다가 안 가져오는 분들, 오늘 당장 회개하고 다음주부터 한줌씩만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티끌모아 태산이 아닙니까? 주려는 마음과 주는 습관이 여러분의 삶의 방식으로 형성되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어릴 때부터 연습시켜야 합니다. 요즘 중국이 좀 어렵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랍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고 부모가 아이의 이익과 욕심만 채워주어 아이들이 자기밖에 모르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많이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주십니다. 주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째로,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줄 것이 있어도 주지 않습니다. 본문에 보니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행4:32). 주고 싶은 마음이 모두에게 생긴 것입니다. 이 마음은 어디서 납니까?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주시는 분이므로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주고 또 주고 싶은 마음들입니다. 제가 수십 년 목회하면서 보니 꼭 있다고 주는 것은 아니더군요. 많이 갖진 못했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주는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은 계속 주면서 살지만, 연습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 줘보지 않은 사람은 꽉꽉 모아두고 내놓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감사하게도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일할 수 있는 손과 발과 몸과 직장과 환경과 여건을, 공부할 수 있는 머리도 하나님이 주셨다.’ 이것이 청지기사상입니다. 그래서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누는 습관은 어릴 때 시작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주일학교에 갈 때 새 돈을 항상 준비해 주셨습니다. 주일에만 새 돈을 만질 수 있어 좋고 신나서 주일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어린 마음에 조금 억울했던 건 그 새 돈을 교회에 바치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은 탓에 일평생 지금까지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받으며 사는 사람인지 주며 사는 사람인지 스스로 점검해보세요. 늘 주는 습관이 없다면 기도하며 연습하세요. “하나님, 제게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을 주옵소서. 줄 수 있고 주며 사는 인생을 만들어 주옵소서.”

둘째로, 물건과 재물이 있어야 합니다. 주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다면 어떻게 주겠습니까? 있어야 줄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독창으로 주를 찬양하고 싶어도 배우지 않은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많이 연습하고 많은 투자를 해야 가능합니다. 아까 들은 호른 이중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호른을 갖고 씨름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이 줄 수 있습니다. 없으면 줄 수 없습니다. 쌀을 주고 싶은데 쌀이 없고, 사랑을 주고 싶은데 사랑이 메말라있다면 줄 수가 없습니다. 친절을 주고 싶은데 친절 훈련이 안되어 있다면 줄 수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하여 맨 날 기도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이 기도를 해봤어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도 해주지 않겠습니까? 기도를 받기만 원할 것이 아니라 주기도 해야 합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해서 기도의 능력을 갖고 있어야 줄 수 있습니다. 먼저 내가 가져야 남에게 줄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중반, 제가 대학 2학년 때 수련회를 갔는데, 강사 목사님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분토로 여기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주를 위해서 다 분토로 여겨라’는 설교는 일주일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분토로 여길 것조차도 없어서 ‘좀 갖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하고 속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것은 쓸데없으니 다 버리고 예수님 한 분만...’ 한편으론 옳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것을 분토로 여기라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그물과 배외에는 버릴 것도 없었던 베드로였습니까? 아닙니다. 가진 게 많고 부자라서 버릴 게 많았던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유대인인데도 돈 주고 산 로마시민권이 있었고 가말리엘 문하 최고학부를 나와서 지식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게는 그리스도가 최고니 다른 것은 배설물로 여긴다’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가진 것이 있어야 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주는 삶을 살고 싶어도 줄 것이 없다면 어떻게 주겠습니까?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소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 속에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특별한 것을 먹고 싶습니까? 하나님은 주실 수 있습니다. 값진 것을 갖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구하라. 달라고 하라” 하셨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 이 아이를 사회의 훌륭한 재목으로 키워주옵소서.” 그리하여 여러분의 자녀 중에서 다음 세대의 대통령이 나오길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잘 살게 해줄 수 있습니다. 뭐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큰 은혜와 힘을 주옵소서. 이 나라가 잘 살아 모든 세계에 나누어주는 나라로 이끌어갈 기회를 주옵소서.” 기도와 소원과 소망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지혜와 총명과 기술과 상품과 회사와 손님을 주셔서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돈도 더 많이 가져야합니다. 없으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도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 지식을 나눠주게 해주옵소서” 기도해야 하나님이 주실 것이요 여러분이 받을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수가 되고 싶어 기도했더니 아무 여건도 구비되지 않았지만 길이 척척 열렸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생겼고, 길이 안 보였는데 열린 것입니다. 구하면 열립니다. 하나님께 구하세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뭐든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나눠줄 수 있는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나눠줄 줄 알아야 합니다. 나눠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더 이상 주시지 않습니다. 컵에 물을 가득 부어놨는데 아무도 안 마시면 그 물은 썩습니다. 그러나 그 물을 마시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면 또 채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누십시오.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 맡겼더니 나눠줄 줄 아는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능력이 있구나’ 하시면서 또 주실 것입니다. 재주든, 돈이든, 쌀이든, 물건이든, 여러분이 줄 것은 많습니다. 얼마 전에 성도 한 분이 담요 200장을 교회에 기증했습니다. 이번에 우리교회에서 개최되는 전국 청소년수련회에서 아이들이 잘 덮고 잘 것입니다. 집에 두고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기증함으로써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고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담요 200장 이상의 가치를 부어주셨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많은데 할 일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나눠주는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봉사단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젊었을 때부터 주는 습관이 든 사람은 ‘어떻게 남을 도와줄까?’를 먼저 생각하고 인생을 .재미있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마음이 있고 물건과 재물이 있고(32절) 또 큰 권능이 있다(33절)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재주는 참 다양합니다. 교회 건축할 때도 보니, 허름한 차림으로 일하러 온 인부들이 모두 맡은 분야에 전문가요 손재주가 있었습니다. 말없이 꾸준히 일을 잘해서 결국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건물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능력이 있어야 그 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능력이 있으면 자식들의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능력이 없으면 귀찮고 방해만 될 것입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어떤 능력이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갖추고 싶은 능력을 구하세요. 구하면 주십니다. 자녀가 달라고 하는데 왜 안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늘 가난하게 사는지, 왜 줄 것이 없는지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십니다. 여러분 일평생 언제나 주께 구함으로 넉넉해져서 받은 것을 다시 나눠주며 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33절)” 나눠주었습니다. 그들은 영생의 은혜 뿐 아니라 구할 때마다 주시는 은혜를 이 땅에서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받은 은혜가 많으니 줄 은혜도 있었습니다. 재주도, 사랑도, 기도도, 위로도, 격려도 나눠주려면 자신이 충만하게 가지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바나바라고도 하는데 번역하면 ‘권위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내세울 권위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바나바는 격려하기를 좋아했는데 그의 격려로 기독교역사상 유명해진 분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돌이켜 예수 믿은 후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는 회개한 후에도 죄의식 때문에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는 생활을 합니다. 바나바는 사울의 가치를 보고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찾아가 “나오시오. 사도들을 소개해 주겠소.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지요.” 하자 사울은 “나는 전에 신자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처넣고 죽였던 죄수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소.” “그것은 예수 믿기 전이요.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이전 것은 지나갔고 이제 새 것이 되었소.” 바나바는 사울을 격려하여 위대한 사도바울이 되게 했습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가정과 교회에 여러분의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아주 많지만 격려해주는 바나바가 적어요. 여러분이 넉넉한 사랑과 은혜로 주위사람들을 끊임없이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으려면 전도훈련과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 근처의 외과 의사인 그 분은 평신도목회연구원을 3학기동안 공부했는데 요즘 사람들의 질문에 이상하게 대답이 술술 나온다고 합니다.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더니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해져서 남들에게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무 좋아 이제 그의 아내도, 어머니도, 동생도, 처제까지도 평목공부를 한답니다. 줄 수 있는 것은 돈과 물건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풍성히 받아서 얼마든지 나누어주며 사는 인생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주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사람들은 복음과 권능과 은혜와 성령이 충만해서 물건이 있는 사람은 물건을 나눠주고, 바나바는 격려뿐만이 아니라 밭도 팔아 나눠주었습니다. 물론 자기가 먹고 사는 생계의 터전이 되는 밭이 아니라 “밭 하나쯤 없어도 괜찮아” 하고 생각했을 또 하나의 밭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눠주며 살수 있도록 많은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주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주는 것도 연습해야 합니다. 많은 것을 주어봐야 많은 것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니까요. 받기만하고 살아온 인생은 고달픈 인생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가 남은 일평생 주면서 살려고 하는 그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받기 원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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