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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달라야 합니다 (민 1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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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 목사님이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실 때,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반이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교회도 불에 탔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화재 현장에 서 있을 때, 사람들이 목사님에게 말합니다. "왜 교회가 불에 탑니까? 다른 곳은 타도 교회는 타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무디의 성령 운동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로서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을 했습니다. 그때 무디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교회가 부흥해서 새로 교회를 지으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돈 안들이고 깨끗하게 치워주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또 비웃었습니다. "교인들도 피해를 입고, 교회의 재산도 다 타버렸는데 어떻게 교회를 다시 지으려고 하십니까?" 교인들이 대부분 화재를 당하여 건축 헌금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샘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 내게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몇 달 후에 무디 목사님은 영국에 부흥 집회를 갔습니다. 부흥회 때 교회의 사정을 들은 영국 교인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아 건축 헌금이 영국에서부터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의 집회로 헌금이 모아져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을 짓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앙의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같은 넥타이를 삽니다. 색깔도 같고 모양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값이 다릅니다. 이유는 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어려운 일에 부딪히니까, 괴로운 일에 부딪히니까 후퇴하는 모습을 가진다면 불신앙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환경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장애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과거에 체험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을 적용할 줄 모름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체념해 버립니다. 의미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때 하나님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우리에게 언급하십니다.

본문 24절에서 하나님은 "오직 내 종 갈렙은 그들과 다르다" 고 말씀하십니다. 민족성이 같았고 목적이 같으면 모든 것이 같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갈렙은 분명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내면에 뜨거움이 있었고, 신앙의 눈으로 삶을 바라 볼 줄 알았던 사람으로서 여호수아 곁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갈렙은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주하는 자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갈렙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른 사람과 무엇이 달랐습니까? 과연 우리는 무엇이 달라야 합니까?

첫째로 마음이 달라야 합니다

우산장수와 짚신장수를 아들로 가진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비가 오면 짚신장사 아들의 장사를 걱정하고 또 반대로 날씨가 좋을 땐 우산장수 아들의 우산이 안 팔릴 것을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어머니는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머니는 그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이 잘 팔리겠다고 생각하며 좋아하고, 날씨가 좋으면 짚신이 잘 팔리겠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매일 싱글벙글 기뻐하는 즐거운 생활을 보냈다고 합니다. 내가 행복하느냐 행복하지 않느냐는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갈렙은 그 마음이 달라서"라고 표현됩니다. 여기에서 '마음' 이란 히브리어의 '루아흐'는 '영' 을 말한 것입니다. 즉 갈렙의 영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갈렙은 영이 달랐기에 열명의 정탐꾼과 이스라엘백성들이 믿음 없는 선택을 함에도 담대히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인 주장을 할 때에도 긍정적으로 피력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이루어짐을 확신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갈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머리가 아니고 마음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영입니다.

영이 잘못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잃어버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요 영입니다. 이전의 가난했던 시절에는 하나님만을 열심히 찾았고 바랐습니다. 그래서 신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고,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나아지자 교회들은 무릎꿇는 예배당에 의자를 들여놓고 허리를 폈으며, 다리를 꼬고 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기도가 약해지고, 심령이 잘못되어져 갔으며 교회의 자리가 비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영이 달라짐에 교회가 올라갔고, 우리의 영이 달라지자 교회가 내려갔습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안수함에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마술사 시몬이 돈으로 성령을 사려고 합니다. 이 때 베드로의 무서운 책망을 받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 마음이 잘못되면 생각이 삐뚤어지고, 생각이 삐뚤어지면 영이 타락합니다. 그러므로 영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둘째로 말이 달라야 합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한 병사가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는 신체장애로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다행히 수영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해수욕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수영을 하고 난 후에 모래밭에 누웠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그의 상처 난 발을 보면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수치심이 생겨났습니다. 그 다음에 아내가 수영을 가자고 할 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다시는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내는 한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여보! 당신 다리의 상처는 당신의 용기를 증명해 주는 표시예요. 당신은 훌륭한 행동을 한 결과로 그것을 얻었으니 결코 숨길 필요가 없어요. 어떻게 해서 그것을 얻었는지 생각하신다면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남들에게 보일 수 있는 거예요. 다시 가서 수영을 하세요." 아내가 사랑으로 감싸는 말을 해 주며 위로해 주었을 때, 그 순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열등감을 타파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말할 수 있는 특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말에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말이 은혜롭습니다. 갈렙은 말이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부정적인 말이 아닌 긍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우리는 능히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이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라고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 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올라가자 능히 이기리라" 고 말합니다. 말이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믿음은 말에도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렙은 민수기 14장 8절과 9절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고 말합니다. 말 한 마디마다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과 다른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순종이 달라야 합니다

세계의 여러 선교기관 가운데 '위클리프 성경번역회' 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미의 부족국가에 들어가 글이 없는 곳에서 언어를 만들어 주고 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합니다. 이 선교회의 선교사 한 사람이 남미의 어떤 마을에 들어가 성경번역을 하다가 그 마을 언어 가운데 "순종"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일을 "꼭 해야만 된다"고 강조하면서 계속 이 말을 강조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꼭 해야 된다. 네 모든 마음으로"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심부름 가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 그래서 "순종"이란 단어를 번역하기를 "마음을 나누지 않고 온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좇습니까? 온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24절에 하나님께서 갈렙을 향하여 "오직 내 종 갈렙은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의 '온전히' 라는 히브리어 '말레' 는 '만족시키다, 고갈을 해소시키다' 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만족하게 해소시켜 드리듯 하나님 뜻에 순종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민수기 32장 12절에 보면 "그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순종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두 구절에서 다 '온전히' 라는 단어를 강조합니다. 갈렙은 하나님께 마음을 반 만 드리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에 온전한 마음으로 주를 좇았습니다. 온전히 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서 순종하였습니다. 갈렙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향하여 순종하며 좇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할 수 있다" 고 고백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갈렙에게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행동을 시작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가나안 정복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갈렙은 가나안땅을 소유하고 축복 받는 경험 속에 들어갔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20세 이상의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가나안 입주의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고, 약속하신 기업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렙의 온전한 믿음, 최선을 다한 신앙에 풍성한 보상과 최고의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차별화 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중심이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신앙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갈렙처럼 다르게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악평과 불평으로 산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다르게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며, 슬퍼하며, 곡하며, 삶을 포기하는 자학 속에 있다해도 대다수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더하기 표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을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눈입니다. 이제 달라야 합니다. 갈렙의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갈렙의 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갈렙의 순종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는 신앙이 되어 영원히 기록에 남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 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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