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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의 교회진단 (엡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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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3-16)

요즘 흔히 듣는 말 중에 <조기진단>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병이라도 조기진단만 했었으면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암도 조기 진단만 하면 못 고칠 병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말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 그런 줄 알면서도 정작 일년에 한 차례씩 정기 검진을 받기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다 그대로 넘어가는 줄 압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스스로의 진단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있다면, 오늘의 교회들이 과연 건강한지? 아닌지? 스스로 진단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국 교회 전반에 걸친 진단을 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역사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 나라 경제 성장이 1970년대 부터라고 한다면, 한국 교회도 양적성장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곳곳마다 대형 교회당이 건축되고, 개발 붐을 타서 지역 발전과 함께 고도성장을 이룬 것이 우리 한국교회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부터 성장률은 둔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많은 교회들이 이제는 사회로 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교회가 줄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사회에서, 정부 차원에서, 복지 정책들로 인하여 교회에서 하던 일들이 차차 줄어들게 되었고, 그런 결과로 교회로 부터의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에는 구제사업이라 하면, 교회들이 담당했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동사무소나, 구청 사회과에서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더더욱 문화생활 추구로 인한 웰빙 바람이 불어오면서, 교인들 스스로도 모이는 교회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교회학교의 숫적 감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이미 유럽의 교회들이 밟아온 전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교회들 처럼, 교회는 이제 늙은이들만 모이는 곳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주 5일제 실시로 인하여 모이는 교회는 점점 힘들어갈 것입니다.
요즘도 벌써 금요일 오후 부터 시외로 나가는 차들은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토요일은 도리어 시내 거리들이 한산한 지경입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교회는 어떤 대비를 세워야 할 것일까?

앞으로 한국 교회는 한 사람 목사의 지도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느 특정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오는 교인들이 있었지만, 그리고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들로 인하여 특징적인 현상이 있는 교회들이 있었지만, 예를 들어 새벽기도회로 남달리 성장을 이룩한 교회라든가, 평신도를 일깨운다는 구호를 내걸고 종래의 구역 조직을 순 모임으로, 요즘에는 셀 조직으로 하는 교회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 가지고 21세기의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성도들 개개인의 교회에 대한 기대도 그런 것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교회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일까?
지금부터 변화에 대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과거에도 언제나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도전을 받으며 이어왔지만, 21세기야말로 그 어느때 보다 교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심각한 세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까?

1. 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끝까지 고수해야 할 일은 <말씀 중심>의 교회입니다.
이 말은 교회는 프로그램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는 어떤 행사(Event) 중심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으로 나가다가는 유럽의 교회들처럼 공동화(空洞化) 되어 갈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교회들처럼 자유화 되어 퇴락의 길을 걸을 것인가 하는 참으로 중요한 기로에 접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문화 변동에 따른 파장이 교회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모이는 교회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외부적 요인 보다는 교회 내부적인 요인으로 교회가 정체 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교인들 스스로가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무감각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에 대하여 교인들 스스로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1970년대 부터 한국 사회의 물량주의가 교회까지 침식해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숫적 증가를 위한 기교적인 성공욕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말씀> 대로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생활 신앙>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앙과 생활이 따로 따로 놀았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모두 교회의 직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장로, 권사, 집사가 되었습니다.
세례문답도 거의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교회 나와서 믿겠다는 것만도 감사한데, 무슨 까다롭게 하느냐? 하는 식으로 마구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덤핑 세례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을 지양해 나가려는 행동적 결단이 <말씀 중심>의 교회란 말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위해 먼저 각오해야 할 것은 목회자들 자신의 의식입니다. 이것은 또한 목회자들만의 의식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당회원이나 제직들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최소한 정직해지려는 노력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한 스스로의 치리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문제를 사회 법정에 까지 끌고 가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기에 벌써 사회로 부터 존경의 대상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가르친 말씀대로 최소한의 실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공동체적 의식이 생겨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교회라야 말씀 중심의 살아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2. 말씀 중심의 교회는 젊은이들이 머무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위기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떠나는 데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 자체도 모른 채 관심은 기성세대에만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멀어지는 데는 청년문화를 이해하지 못함에 있습니다.
한 나라의 미래는 바로 젊은이들에게 있다면, 교회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합니다.
100년을 내다보면서 교육정책을 펴야 하겠는데, 오늘 우리 나라의 문제중에 문제가 바로 교육정책에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이 교육에 관하여는 뚜렷한 이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키워내야할지 사회적 공감대와 가치관이 없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다시 놓지 않으려는 그런 것에만 생각들을 합니다. 교육이야 어떻게 되던지 장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어떻게 청년문화를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한국 사회에는 지금 문화코드가 양분화 되어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기성세대로서 변화를 우려하는 세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문화코드입니다.
이들의 관계를 쉽게 보면 이렇습니다.
청바지에 구멍을 뚫린 것을 입고 다니는 것을 청년문화라고 한다면, 그 구멍을 기워 입어야 한다고 하는 세대는 기성세대입니다.
이 두 문화 코-드가 교회 안에서도 상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양립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보면 청바지라는 본질적 사회변동은 공히 수용해야 합니다. 단 구멍을 뚫고 입느냐, 아니면 기워 입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와 달라야 하는 것은 왜 청바지를 입고 다녀야 하느냐? 하는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단지 유행을 따라 그렇게 입고 다니려고 한다면, 그 유행의 물결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교회에서 가르쳐야 하고, 교회에서 청년문화를 이끌어가는 가치가 말씀 속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프로그램 위주로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것이 앞으로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 머물게 하는 말씀 중심의 교회입니다.

여러분!
영국교회가 세속화 물결에 침몰되어갈 때 옥스퍼드 대학의 젊은이 몇 사람이 말씀 중심으로 뭉쳐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일어난 것이 요한 웨슬레 부흥운동이었습니다.
미국교회가 다 세속화 물결에 휩쓸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뜨겁게 젊은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씀이 생활신앙으로 이어지는 교회에서는 지금도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우리 한국교회의 제일 큰 과제입니다.

3. 말씀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는 교회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라도 이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에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에는 너무나 교회들이 등한히 하였습니다.
교회에서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농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간구도 보면 모두 개인주의적인 것이 많습니다. 나 하나만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경쟁의식만 생기게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까지 그런 학생들을 우대했습니다.
장학금 제도를 두어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혜택을 주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공부 못함으로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에서까지 그런 모습으로 나왔으니,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인물들을 이제 교회 안에서 키워내야 합니다.
오직 교회에서는 가능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교회가 되어질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될 줄 확신합니다.  ♣
(김 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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